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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님의 서재입니다.

천하제일인 말고 장사할게요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5.08 17:48
최근연재일 :
2024.06.30 22:00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73,467
추천수 :
1,448
글자수 :
308,562

작성
24.05.08 22:41
조회
2,390
추천
50
글자
11쪽

사해가 동도.

DUMMY



“확실히 산채에는 약재들이 많이 필요하긴 하지”


근육질 덩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을 들은 대식의 얼굴이 희망으로 밝게 빛났다. 하지만 상대방은 곧바로 검지손가락을 들어보이며 까닥까닥 흔들어댔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있다. 너는 아무래도 그것을 간과한 것 같군”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린 뭘 사려고 돈을 낸 적이 없다는 사실이지”


근육질 덩치는 자신이 한 말이 퍽이나 마음에 드는지, 허리에 손을 올리고는 으하하핫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자 나머지 졸개들도 그를 따라 신나게 웃으며 나를 손가락질했다.


“우헤헤! 살다보니 산적한테 뭘 팔아먹으려고 하는 놈을 다 만나네!”


“이놈! 약재도 내놓고 주머니에 남은 것도 다 털어놓아라!”


산적들이 무기를 겨누고 대식과 나를 마차 한쪽 끝으로 몰았다. 여러 병장기가 눈 앞에서 번뜩이자 대식이는 부들부들 떨며 내 옷소매를 붙잡고 늘어졌다.


“도련님!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아씨. 생각대로 잘 안되네”


태연하게 머리를 긁적이는 나를 보며 대식이 두 발을 동동 굴렀다.


“제가 뭐라 그랬습니까! 장사를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니까요?”


“기다려. 진정한 장사꾼은 마지막까지 협상을 포기하지 않는 법이다”


턱 밑까지 칼을 들이밀어도 내가 아무 반응이 없자, 대머리 산적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내 이마를 향해 칼자루를 내리찍었다.


“애송아, 순순히 무릎꿇고 가진 것을—”


퍼버벅. 퍽.


대머리 산적이 날아가 커다란 나무 기둥에 쳐박히는 것을 시작으로, 대식이와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산적들 네 다섯이 일제히 훨훨 날아갔다.


“뭐···뭐야!”


나머지 산적들이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채챙- 무기를 고쳐잡았다. 쓰러진 산적들은 끄으으 신음소리만 낼 뿐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이것 보십쇼. 산생활은 다치기 일쑤라니까요?”


어깨를 으쓱해보이자, 뒤쪽에서 내내 팔짱을 끼고 있던 근육질 덩치 녀석이 어금니를 꽉 깨물며 다급히 외쳤다.


“무공을 익힌 놈이다! 한꺼번에 덤벼!”


그들은 근본없는 산적들치고 꽤나 합공에 익숙했다. 근육질 사내의 외침을 신호로, 서너명은 정면에서, 나머지들은 좌우와 뒤에서 시간차를 두고 칼과 도끼, 곤봉들을 휘둘러왔다.


“에그머니!”


대식이 머리를 감싸쥐고 바닥에 주저앉자, 나는 그의 엉덩이를 차서 마차 밑바닥으로 굴려넣었다.


녀석이 안전해진 것을 확인한 이후, 호흡을 내뱉으며 몸의 힘을 덜어냈다. 무게 중심은 뒤쪽에 남겨둔 채 휘청이듯 우측으로 한발자국을 내딛었다가, 앞으로 두걸음 빠르게 걸어나갔다.


春風難以預測. 춘풍난이예측.

봄에 부는 바람은 그 방향을 예측하기 어렵다.


내 뒤통수를 월도가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가고, 방금 전까지 내 엉덩이가 있었던 공간을 도끼가 휭하니 갈랐다.


“어구, 흉흉해라”


여러 명이 수차례 무기를 휘둘러도 나에게는 무엇 하나 닿는 것이 없었다. 부하들의 뒤에서 기회만 엿보던 근육질 대장이 인상을 팍 쓰며 소리쳤다.


“이상한 보법을 쓴다! 움직일 공간을 주지말고 무기를 크게 휘둘러라!”


그 순간, 멸치같은 놈이 휘두른 채찍이 내 발목을 휘감았다.


“잡았습니다!”


“좋아!”


멸치가 외치자 근육질 대장이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팽팽하게 부풀어오른 근육으로 커다란 도를 머리 위까지 치켜올린 것이, 단칼에 나를 두조각 내려는 것이 틀림없었다.


채찍에 잡힌 다리를 앞쪽으로 내주었다가 뒤로 쭉 빼자 멸치가 맥없이 딸려왔다. 당황한 표정으로 나풀나풀 날아오는 멸치에게 진심어린 충고를 해주었다.


“좋은 약재로 꾸준히 탕을 지어 먹으면, 허약한 체질을 개선하는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오”


퍽!


“꽥!”


턱을 가격당한 멸치의 몸이 수직으로 솟구쳐 근육질 대장을 덮쳤다. 어느새 내 손에 옮겨진 채찍이 멸치와 근육대장의 몸을 휘리릭- 한데 엮었다.


땅에 보기좋게 처박힌 녀석들이 비탈길을 데굴데굴 굴렀다. 사이좋게 땅을 뒹구는 녀석들의 몸에 발을 올려 고정시킨 뒤 주변을 돌아보자, 나머지 산적들이 얌전히 무기를 땅에 내려놓았다.


온 몸이 칭칭 채찍에 둘러쌓인 근육질 덩치가 나를 올려다보며 비굴하게 웃어보였다.


“선생님. 혹시 약재를 얼마에 파실 생각이신지···”



***



“자! 여기까지면 된 것 같소!”


호탕하게 외치며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낑낑대며 마차를 밀던 산적들에게 다가가 한명 한명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해주었다. 외관상으로야 험상궂기 짝이 없지만, 나에게는 모두 정겹고 오래 알아온 친구같은 느낌이었다.


“참으로 고마웠소!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또 봅시다!”


“......”


기운차게 인사를 건네보았지만 그 누구도 흔쾌히 대답해주는 이가 없었다. 크게 괘념치는 않았다. 얼굴 이곳 저곳이 붓고 터져있어서 아마 말하기가 어려운 것일 수도 있겠다.


다시 마차에 오르니 대식이 이럇! 당나귀들을 채근했다. 데굴데굴 바퀴가 구르는 것을 확인하고 환하게 웃으며 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불손한 표정으로 침을 뱉으려던 산적들이 후루릅 황급히 침을 삼켜넣었다.


껄껄 웃으며 두둑해진 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몇 대 두들겨 맞은 덕분이랄까. 산적 친구분들은 수레가 가파른 산길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을 뿐 아니라, 수중에 있는 돈을 모두 털어 약재들까지 ‘일부’ 구매한 것 아니겠는가!


“대성공이군, 대성공이야! 첫 거래부터 이렇게 대박이라니, 앞으로도 이 거상님의 행보가 참으로 주목되는 바로다!”


“도련님. 그건 장사를 했다기보단, 산적 상대로 강도짓을 한 것이 아닙니까?”


나는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대식의 말에 반박했다.


“어허, 강도라니! 엄연히 서로간에 상품과 대금이 오가지 않았더냐?”


“돈은 있는 대로 뺏어놓고, 약재는 한웅큼만 쥐여주시지 않았습니까?”


“어리석은 녀석. 본디 가격이란 것은 양 측의 교섭력에 따라 변동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들이 먼저 무력을 협상의 도구로 썼기 때문에 나도 그에 응해준 것 뿐이야. 내가 그 녀석들보다 약했다면 반대가 되었겠지”


“또 어려운 말로 얼버무리려고 하시네요. 아무튼 아직 저는 도련님이 장사에 재능이 있다고 인정할 수 없습니다”


“하, 거 참. 이 자식 많이 컸네. 따박따박 말대꾸도 하고···”


눈을 가늘게 뜨며 대식을 노려보자, 그는 뜨끔하여 입을 꾹 다물었다가 다시 볼멘소리를 했다.


“그렇게 무공이 강하시면서, 도대체 뭐 때문에 장사에 뜻을 세우신 겁니까?”


“왜긴 왜야? 돈을 벌어서 부자가 되려는 것이지”


“하지만 강호에 이름을 떨치는 고수가 되면 자연스레···”


“임마. 고수는 무슨 고수?!”


“그 수많은 산적들을 무기 하나 없이 물리치는데, 고수가 아니면 뭡니까? 주인님께서 살아 생전에 그렇게 기대를 많이 하신 이유를 알겠던데요?”


나를 바라보는 대식의 눈빛에는 이전에는 당췌 보이지 않던 존경심마저 담겨 있었다. 하긴, 녀석은 내가 매일 변노인에게 얻어터지는 광경만 보았으니, 산적들을 상대하는 내 모습에 깜짝 놀랄만도 하다.


“대식아. 무릇 진정한 고수라면 말이다. 절벽을 평지같이 걷고, 하늘을 둥둥 떠다니고, 한번 휘두른 검에 산과 땅이 갈라져야 하지 않겠느냐? 내가 변노인에게 배운 것은 왔다리 갔다리 하는 어지러운 보법 하나랑, 흐느적 흐느적 거리는 검법 하나 말고는 없다”


세상에 하늘을 날아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무협지를 너무 많이 읽으신 것 아닙니까. 대식이 중얼거렸지만 나는 그의 말을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뭐 싸우다 보면 몇명 이기고 이름을 날릴 수는 있겠지. 하지만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아. 사람은 제 분수를 알아야 한다고! 칼 좀 휘두를 줄 안다고 폼잡고 으스대기 시작하면, 그만큼 더 강한 상대를 빨리 만나서 빨리 죽는거야”


“죽···죽는다구요?”


“그래! 내가 쌈박질만 하다가 어느날 칼침맞아 죽고 나면, 니 밥그릇은 누가 챙기냐? 누가 니 목에 진주목걸이를 둘러주냐?”


“아, 배만 곯지 않게 해달라니깐요···”


겉으로는 손을 휙휙 내저으면서도, 목에 진주목걸이를 두른 상상을 또 하고 있는지 대식이 입을 헤- 벌렸다.


이 건방지고 단순한 하인 녀석을 보며 혀를 끌끌 차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 앞쪽에서 희뿌연 연기가 일어나며 다급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말들이 얼마나 빠르게 달리고 있었던지, 저 멀리서 오는 듯 했던 이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가까워졌다.


혹여나 괜히 마찰이 있을까 싶어 마차와 수레를 길 옆으로 빼놓고 바라보자니, 두 필의 말 위에 각각 흰색 경장 차림의 젊은 남녀가 타고 있었다. 말을 타는 날렵한 자세, 두 남녀의 허리춤에 차여진 검집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무림인인 모양이었다.


당연히 그냥 스쳐지나가겠거니 생각한 순간이었다.


우리를 발견한 여인이 몸을 세우며 속도를 줄이고 남자의 말까지 함께 멈춰 세웠다. 그들은 얼굴이 창백하고 찡그려져 있는 것이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보였는데, 특히 사내는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마냥 핏기가 없는 모습이었다.


사내가 숨을 가쁘게 허덕이며 여인에게 물었다.


“헉..헉··· 왜 멈추는 것이냐?”


“오라버니. 그 상태로 계속 달리는 것은 무리에요. 위험하지만 한번 도박을 걸어보죠”


여인의 목소리를 들은 대식과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옥구슬을 굴린 듯한 목소리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아름다운 것은 그녀의 목소리 뿐만이 아니었다. 차림새가 수수한 탓에 미처 눈치채지 못했는데, 하얀 피부에 길고 가느다란 눈썹, 얇으면서도 선명한 입술선이 매우 우아하고 귀티가 나는 얼굴이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촌동네를 벗어나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단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고급스러움이랄까.


여인이 우리를 돌아보며 수레에 산더미같이 실린 약재더미를 가리켰다.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네요. 저희는 어떤 흉악한 세력으로부터 쫓기는 형편이에요. 저 약재더미 속에 우리를 숨겨주신다면 사례해드리겠어요”


그녀가 품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꺼내 나에게 던졌다.


엉겁결에 받아보니 세상에, 무려 금자였다!


“연아!”


사내가 얼굴을 찡그리며 그녀에게 외쳤다.


나 또한 외쳤다.


“안됩니다!”


당황한 사내와 여인의 시선이 동시에 나에게로 와서 꽂혔다. 금자를 받고도 무림인의 부탁을 거절할 줄은 생각도 못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휘휘 손을 내저으며 단호한 목소리로 선을 그었다.


“저희는 평범한 상인입니다. 무림의 일에 엮이는 것은 절대 사절이라···”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반짝이는 금자 한 냥이 더 날아왔다.


재빨리 금자를 낚아챈 나는 허리를 깊게 숙이며 반갑게 손님을 맞이했다.



“사해(四海)가 동도(同徒)인데, 어찌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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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 24.06.02 1,320 27 13쪽
27 노인 (3) +1 24.06.01 1,308 26 13쪽
26 노인 (2) +1 24.05.31 1,274 28 13쪽
25 노인 (1) +1 24.05.30 1,317 23 12쪽
24 조가장 (5) +1 24.05.29 1,325 27 13쪽
23 조가장 (4) +1 24.05.28 1,308 25 12쪽
22 조가장 (3) +1 24.05.27 1,317 29 12쪽
21 조가장 (2) +1 24.05.26 1,361 27 12쪽
20 조가장 (1) +1 24.05.25 1,458 24 11쪽
19 금자 열 냥 (4) +1 24.05.24 1,507 28 12쪽
18 금자 열 냥 (3) +1 24.05.23 1,465 30 12쪽
17 금자 열 냥 (2) +1 24.05.22 1,478 32 12쪽
16 금자 열 냥 (1) +1 24.05.21 1,504 29 12쪽
15 백리세가 (2) +1 24.05.20 1,570 29 13쪽
14 백리세가 (1) +3 24.05.19 1,630 31 13쪽
13 음모 +1 24.05.18 1,660 32 13쪽
12 암살 +2 24.05.17 1,660 30 12쪽
11 적기방 (2) +1 24.05.16 1,716 30 12쪽
10 적기방 (1) +1 24.05.15 1,782 33 12쪽
9 암습 +1 24.05.14 1,823 38 12쪽
8 바가지 +2 24.05.13 1,902 37 13쪽
7 백리연 +2 24.05.12 2,016 39 13쪽
6 와장창! +1 24.05.11 2,046 40 11쪽
5 첫 거래. +3 24.05.10 2,132 41 12쪽
4 인연은 그 앞날을 알 수 없다. +2 24.05.09 2,191 47 11쪽
» 사해가 동도. +3 24.05.08 2,391 50 11쪽
2 일대종사 (一代宗師) +2 24.05.08 2,878 39 12쪽
1 +3 24.05.08 3,634 4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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