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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님의 서재입니다.

천하제일인 말고 장사할게요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5.08 17:48
최근연재일 :
2024.06.30 22:00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73,480
추천수 :
1,448
글자수 :
308,562

작성
24.05.23 05:20
조회
1,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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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글자
12쪽

금자 열 냥 (3)

DUMMY

사람들이 일거에 빠져나가자 집무실이 황량하게 느껴졌다.


“아버님, 괜찮으시겠습니까?”


금자 열 냥이라는 말에 참지 못하고 웃음소리를 내었던 장본인, 백리연이 조심스레 그녀의 아버지에게 물었다. 백리율은 침묵에 잠겨 있었지만 표정이 어둡거나 우울해보이지는 않았다.


허총관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가씨야말로 정혼자가 다쳤는데 안가보셔도 되겠습니까?”


“그래. 앞니가 없어진 이와 앞으로 평생을 살아가려면···컥!”


깐죽거리던 백리담이 그의 동생에게 거세게 옆구리를 강타당하고 숨을 헙 들이삼켰다.


백리연은 그의 아버지와 허총관의 안색을 자세히 살폈다. 이 중요한 시국에 벌어진 우방 가문과의 갈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리율은 그다지 크게 낙담하는 것 같아보이지 않았다.


“어째 허총관님이나 아버님이 너무 태연하시군요. 제가 모르는 것이 있지요?”


백리연의 질문에 허총관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바싹 마른 입을 열어 재차, 그리고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배신입니까?”


쉽게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무거운 단어. 백리율과 그의 자녀들, 그리고 허 총관의 눈빛이 교차했다. 백리율이 긴 침묵을 끝내고 입을 열었다.


“그렇게 보기엔 이르다. 하지만 슬쩍 떠보는 말에 반응하는 것을 보니, 최소한 중간에서 저울질을 하고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군”


“저울질이라뇨. 그것이 배신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백리담이 눈을 부라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그들은 저희와···”


정혼으로 맺어져 있는 관계라는 말이 당사자인 백리연의 입에서 나오다 쏙 들어갔다.


“아직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여러 문파들을 배후에서 움직이고 있는 세력은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조가장에게도 그에 상응할 만한 대가가 약속되었겠지요. 저희 세가와 혈연으로 묶이는 것보다도 더욱 달콤한 무언가가 말입니다”


“그들을 상대하며 허송세월할 시간은 없어. 너희들이 겪은 일들만 돌이켜 보더라도, 상대방의 움직임은 은밀하면서도 빠르고 과감하다”


백리연은 지난 수개월간 벌어진 일들을 돌이켜보았다. 여러 사파 세력들이 일제히 크고 작은 문제들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 고작 몇개월 전의 일이다. 처음에는 그저 우연이 겹쳤을 뿐이라 치부했지만, 파고들수록 드러나는 그 실체는 끝을 알 수 없었다. 어둠과 혼돈. 그 장막 속에 감춰진 세력이 수대에 걸쳐 어렵게 지켜왔던 안휘성의 평화에 균열을 내고 있었다.


“전면전을 각오해야 할 거다. 잠시 후 동맹무가들과의 만찬 자리에서 현재의 상황을 남김없이 밝힐 생각이야. 지금부터는 진정으로 믿을 수 있는 이들끼리의 결속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점이다”


“그렇다면 아버님께서는 애초에 조가장을···”


“그렇다. 비록 조가장의 세력이 적지 않지만, 마음 속에 한가닥 의심을 품은 상태에서 어찌 그들과 터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느냐?”


“그런 판국에 조승지가 알아서 구실을 제공한 격이군요”


백리율은 고개를 돌려 복잡한 표정을 짓고있는 그의 딸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아직은 마냥 어려보이기만 하는 백리연이다. 엉뚱하고 재기발랄한 구석이 있으면서도, 매사에 현명하고 가문에 대한 걱정과 고민이 깊은 아이였다.


그는 슬쩍 웃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네 정혼자의 이빨을 날린 이가, 네가 말한 그 장사꾼 청년이 맞느냐? 담이의 머리카락을 쥐어 뜯었다는?”


백리율의 웃음기 섞인 질문에 허총관이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세가에 도착하고 나서야 머리카락에 얽힌 진실을 알게 된 백리담이 인상을 구기며 옆머리를 만지작거렸다.


“하여간 맘에 들지 않는 녀석이었습니다. 그 돈귀신이 왜 금자도 마다하고 갑자기 사라졌나 했는데, 역시나 일을 저지르고 지레 겁나서 도망친 것이었군요. 게다가 감히 우리 후원 담벼락에··· 흥!”


“암습으로부터 오라버니의 목숨을 구해낸 것도, 팽도혁의 목숨을 살려서 이곳에 데려올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 분의 역할 덕분이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이 소협이 아니었다면 지금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있었을 거에요”


“돈만 밝히는 사고뭉치 녀석을 너는 왜이리 감싸는 것이냐? 그리고 사내대장부라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지. 이렇게 일언반구도 없이 도망치듯 사라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느냐?”


“그는 우리같은 강호인들과는 달라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잣대를 너무 엄격하게 들이대면 안되겠죠”


백리연 남매가 투닥거리는 사이, 허총관이 백리율에게 말했다.


“조가장 사람들이 사사로이 보복을 하려 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가씨에게 들은 바로는 이 소협의 무공실력이 보통은 아닌 듯 하나, 그래도 저희가 나서서 도와줄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백리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 설령 조가장주가 우리와 완전히 갈라선다 하더라도, 지금 상황에서 그들과 정면으로 맞부딪히거나 지나치게 압박하는 것은 피해야 할 것이야”


“좋은 방법을 강구해 보겠습니다”


허 총관이 상념에 잠기자 백리담이 툴툴댔다.


“알아서 잘 도망칠 녀석을 굳이 뭐하러··· 게다가 당장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녀석을 어떻게 은밀하게 찾아내서 보호합니까?”


그 때, 백리연이 고개를 번쩍 들으며 허 총관에게 말했다.


“총관님. 그 일은 저에게 맡겨주세요”


“또 무슨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냐? 그 자가 어디로 갔을지나 알고 하는 말이냐?”


백리담의 질문에 백리연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요. 뻔하지 않겠어요?”



***



엎지러진 물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부러진 이를 다시 붙이는 수법은 이곳 중원에는 존재하지 않을 터이니.


금자 열 냥을 못 받은 것이 속이 쓰리긴 하지만, 조가놈 패거리나 백리세가 사람들에게 다시 잡힌다면 그땐 돈이 문제가 아닐 터였다. 다른 이도 아니고 백리세가 사위가 될 사람이 아니던가!


“아이고, 내 신세야!”


“아이고, 내 팔자야!”


서둘러 당나귀를 몰던 대식 녀석도 나에 못지않게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어째 뭔가 일이 잘 풀려가나 했습니다. 백리세가의 후원에서 향긋한 차와 연과자들을 먹을 때만 해도, 도련님 덕분에 제가 이제 호강할 일만 남았다 싶었죠. 그런데 곧바로 이렇게 도둑놈마냥 도망치는 팔자라니!”


“알았으니까 좀 조용히 하거라. 빠르게 쌓아올린 성이 빠르게 무너지는 법이 아니더냐. 차근차근 또 나아가면 된다”


“그나저나, 이 수레랑 마차도 다 버리고 도망쳐야하는 것 아닙니까? 맘먹고 쫓아오면 반나절이면 따라잡힐 텐데요”


“쓰읍– 어찌 소중한 장사 밑천을 함부로 버린다는 말을 한단 말이냐!”


“그럼 어째요?”


“시전(市廛)으로 가자”


“...이 와중에요?”


녀석들이 우리를 추적한다면, 가장 먼저 특정할 것은 다름아닌 우리의 마차와 수레가 될 터였다. 그래서 나는 시전에서 빠르게 포목(布木)들과 수레, 마차, 당나귀들을 모두 처분하고 행색을 바꿔볼 생각이었다. 금자 열 냥도 못받은 판국에 포목 등에 투자한 원금이라도 회수해야하지 않겠는가.


중앙 시전은 활기가 넘쳤다. 가까운 곳에 백리세가가 단단히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인지, 이곳 저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심상치 않은 일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듯한 평온한 모습이었다. 일단 외진 구석에 자리를 잡은 뒤, 대식에게 수레를 맡겨놓고 곧바로 가격 조사에 나섰다.


‘제길··· 어느 정도는 손해를 볼 수 밖에 없겠는걸?’


기대보다 원단의 시장 가격이 낮게 형성되어 있었다. 애초에 중간 마을들을 들려서 처분했어야하는데, 이런 저런 일들을 겪느라 백리세가가 위치한 큰 마을로 바로 와버린 것이 문제였다.


‘아이고, 내 돈이야!’


마음이 쓰라리다. 이제는 가지지 못 할 금자 열 냥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아지랑이 같이 희미해지는 금자를 붙잡으려 손을 휙휙 휘저으니 주변 사람들이 나를 미친놈 취급하며 멀리 떨어져갔다. 그 와중에 험상궂은 얼굴로 시전을 돌아다니는 무인들이 왠지 나를 쫓는 조가장 사람들인것만 같아 고개를 푹 숙이고 빠르게 걸었다.


“도련님! 됐습니다. 되었어요!”


수레에 거의 되돌아왔을 때, 저 멀리서부터 대식이 환한 얼굴로 뛰어오며 나를 반겼다.


“무엇이 되었다는 말이냐?”


“제가 해냈습니다. 포목들 전부 다 한방에 팔았어요!”


무슨 헛소리를 하나 싶어 멀뚱멀뚱 녀석을 바라보았다. 분명 시장조사를 나가기 전, 대식에게 매입가 이하로는 절대 타협하지 말라고 단단히 지시하지 않았던가. 시세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화살 때문에 이곳 저곳 손상된 상품들이 이렇게 쉽게 팔렸을리가 만무하다.


제정신인가 싶어 녀석의 얼굴을 붙잡고 이리저리 관찰하자, 대식이 억울하다는 듯이 외쳤다.


“저를 왜이리 못믿으십니까? 저기 저 대인분께서 틀림없이 모두 한번에 구매한다고 하셨다니까요? 마침 물건이 많이 필요했던 상황이라, 저희가 부르는 가격도 다 맞춰주겠답니다!”


대식이 자신만만하게 가르키는 곳을 쳐다보니, 거대한 상단 행렬이 멈춰선 채 열심히 물건들을 나르고 있었다. 그들이 수레에 차곡 차곡 쌓아올리고 있는 것은 틀림없이 우리가 싣고 온 포목들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정녕 나의 심복 대식이 해낸 것이란 말인가.


감격스러운 마음 반, 의심스러운 마음 반에 대식의 손을 붙잡고 상단 행렬 쪽으로 뛰어가 보았다. 짐꾼들에게 이리저리 지시를 하고 있는 중년의 상인은 틀림없이 내가 처음보는 사람이다. 누군가의 수작질이 아니라, 정말 거래가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황송한 마음에 넙죽 허리를 접으며 인사를 올렸다.


“이 아무개가 감사 인사 올립니다! 대인께서는 좋은 물건을 알아보는 안목과 결단력을 동시에 갖추셨으니, 앞으로 하는 일마다 운수가 대통하시어 빵빵 터지실겁니다!”


갑작스레 장황한 인사를 받은 짙은 눈썹의 중년인이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껄껄껄 호쾌하게 웃어보였다.


“아니오. 나도 마침 빠르게 물건을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소이다. 그래, 은자 서른 냥을 이야기하던데, 그 가격이면 되겠습니까?”


포목들 전체를 처분하는데 서른 냥이면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나는 재빠르게 머리를 굴려 늙은 당나귀들과 수레, 마차를 가리키며 한번 더 협상을 시도했다.


“혹시 이것들까지 모두 가져가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함께 하시면 도합 서른 두 냥에 넘겨드릴 수 있습니다”


중년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허어, 혹 장사를 그만 두기라도 하는 것이오?”


“그럴리가요. 이래뵈도 장사에 큰 뜻을 품고 있는 청년입니다”


“그런데 어찌 장사 밑천을 송두리째···”


우수에 젖은 표정으로 당나귀의 목을 쓰다듬으며 답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지라 잠시 소나기를 피하려 할 뿐입니다. 어찌 쉽게 이 길을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흐음···”


잠시 짧은 고민에 빠졌던 중년상인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수레나 마차는 더 필요 없지만, 그대들 같은 전도유망한 청년 상인들과 인연을 맺어나가는 의미가 있겠지. 좋소! 모두 함께 매입해드리리다!”


“대인···!”


통 큰 중년인의 말이 내 심금을 울렸다.


“단, 가격은 내가 제시하도록 하겠소”


“헛··· 혹시 얼마를 생각하시는지요?”


이제 와서 다시 가격 협상이라니. 거래가 성사될 것처럼 해서 마음을 들뜨게 해놓고 가격을 후려치려는 수법은 아닐까? 나와 대식은 바짝 긴장하여 그의 입을 주시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중년인이 손가락을 쫙 펴보이며 외쳤다.


“금자 열 냥! 금자 열 냥은 어떻소?”


···금자 열 냥?


참으로 터무니없으면서도 묘한 금액이 아니던가.

그야말로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대식과 내가 입을 헤 벌린 채 멍하니 있으려니, 상단 행렬 사이에 끼어있던 마차에서 맑은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마차의 문이 드르륵 열리고,

백리연이 깔깔 웃으며 그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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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노인 (2) +1 24.05.31 1,274 28 13쪽
25 노인 (1) +1 24.05.30 1,319 23 12쪽
24 조가장 (5) +1 24.05.29 1,326 27 13쪽
23 조가장 (4) +1 24.05.28 1,309 25 12쪽
22 조가장 (3) +1 24.05.27 1,318 29 12쪽
21 조가장 (2) +1 24.05.26 1,361 27 12쪽
20 조가장 (1) +1 24.05.25 1,458 24 11쪽
19 금자 열 냥 (4) +1 24.05.24 1,507 28 12쪽
» 금자 열 냥 (3) +1 24.05.23 1,466 30 12쪽
17 금자 열 냥 (2) +1 24.05.22 1,478 32 12쪽
16 금자 열 냥 (1) +1 24.05.21 1,504 29 12쪽
15 백리세가 (2) +1 24.05.20 1,570 29 13쪽
14 백리세가 (1) +3 24.05.19 1,630 31 13쪽
13 음모 +1 24.05.18 1,661 32 13쪽
12 암살 +2 24.05.17 1,660 30 12쪽
11 적기방 (2) +1 24.05.16 1,716 30 12쪽
10 적기방 (1) +1 24.05.15 1,782 33 12쪽
9 암습 +1 24.05.14 1,823 38 12쪽
8 바가지 +2 24.05.13 1,903 37 13쪽
7 백리연 +2 24.05.12 2,016 39 13쪽
6 와장창! +1 24.05.11 2,046 40 11쪽
5 첫 거래. +3 24.05.10 2,132 41 12쪽
4 인연은 그 앞날을 알 수 없다. +2 24.05.09 2,191 47 11쪽
3 사해가 동도. +3 24.05.08 2,391 50 11쪽
2 일대종사 (一代宗師) +2 24.05.08 2,879 39 12쪽
1 +3 24.05.08 3,634 4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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