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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군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無明에구
작품등록일 :
2013.06.1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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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2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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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1.0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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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대한제국

DUMMY

단기 3932년(1599) 봄 한양


한양의 영재학교에서 물리를 가르치고 있는 이재성은 올해도 전국에서 올라온 열 살 미만의 아이들을 시험하고 있었다. 그들 중 총명한 아이들 100명이 추려져 10년 동안 이곳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며 천주학을 배우게 된다. 1년 중 8월과 1월 한 달 간의 방학을 제외하면 열 달을 오로지 천주학만을 배우게 된다.

올해로 4년째인 영재학교에는 총 350명의 학생들이 100명의 천인단원들이 짜놓은 과정에 따라 학습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5년 동안 기초 학문을 배우고, 2년은 고등 과학을 배운다. 나머지 3년은 각자의 특성에 맞는 전문 분야를 공부하게끔 되어 있다.

그곳에서 어린 학생들은 구구단과 주기율표를 동시에 암송하고 인문 과학에서부터 천체 과학까지 모든 분야의 기초 학문을 배우게 된다. 그들의 학비는 전액 국가에서 부담하고 얼마간의 용돈도 지급되었다. 하지만 매년 실시되는 진급 시험에서 탈락하면 유급되고 다음 진급에서 탈락하면 퇴학 조치가 내려졌다. 매년 100명의 학생들이 신입생으로 들어오지만 10명 내외의 학생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그래, 이름이 뭐냐?”

“예, 탁영환입니다.”

“부모님은 무엇을 하시는가?”

“경기도 김포에서 농사를 지으십니다.”

이재성은 탁영환이란 아이에게 책을 한 권 내밀었다.

“그래, 이 책을 아무 데나 펼쳐서 읽어보아라.”

탁영환은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 들고는 중간 부분을 펼쳐 읽었다.

“2백억 년 전에 어떤 일이 일어났다. 대폭발 이전의 우주는 손톱 만했다고 한다. 폭발로 인해 팽창했고 그것이 바로 우주의 시작이다. 우리는 이것을 대폭발이라고 부른다. 어째서 그와 같은 대폭발이 일어났는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확실하다.”

탁영환은 또박또박 책을 읽어 나갔다.

“그만 하거라. 그 의미를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모르면 앞으로 알아가면 되겠다. 하나에 하나를 합쳐서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해 보아라.”

탁영환이 지금 읽은 부분을 이해할 리 없었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어 나가더라도 이해하기 힘든 내용인 만큼 중간에서 잠시 읽은 우주빅뱅론을 이해하는지를 물어본 것 자체가 잘못된 질문이다. 다만 이재성은 탁영환이 어떻게 대답하는지 그것이 알고 싶었다.

“물방울 하나에 물방울 하나를 더하면 큰 물방울 하나가 됩니다.”

소년의 대답에 이재성은 빙그레 웃었다.

“되었다. 너는 저기 오른쪽으로 가서 다음 절차를 밟도록 하여라.”

탁영환이라는 아이가 일어나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는 오른쪽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가자, 비게 된 자리는 머리를 치렁치렁 따고 온 여자 아이가 차지했다.


몽고 지방과 시베리아에서는 지금도 소규모 국지전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었지만 그곳을 제외한 전국은 평화로웠다.

일본 함대 이순신 사령관은 홋카이도에서 싹트고 있는 왜 잔당들의 근거지를 소탕하기 위해 함대를 이동하여 단숨에 홋카이도를 점령하고 그 위의 사할린 섬도 점령하여 일본부의 영토를 크게 확장했다.

조선에서는 김포 평야를 시작으로 농수로 조성 사업과 농지 정리 사업이 병행 실시되었다. 10년 계획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 사업은 나라의 동맥이라 할 수 있는 도로가 완성되자마자 천인단에서 의욕적으로 시행하였으나 이제 겨우 김포 일대를 마칠 수 있었다.

농수로 농지 정리 사업단이라는 제법 긴 이름을 단 농림부 소속 직원들이 김포 평야를 돌아다니며 이뤄낸 결과치곤 초라했다. 정확한 토지 측량과 농토의 수치화에 따른 세수의 예측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사업이지만 진척은 무척 더뎠다.

비록 더디지만 김포를 관통하는 하천과 한강의 풍부한 수계를 이용한 농수로 정비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자 김포는 물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전쟁으로 인해 뜸했던 포르투갈인들이 나가사키에 다시 상관을 설치하고 일본부와의 교역이 시작되었다. 그들을 통해 유럽의 정세와 여러 정보를 입수해야만 했던 천군부에서는 나가사키에 역관을 설치하고 포르투갈어를 가르치는 학교를 열었다.

천군부에서는 포르투갈인들이 전하는 기독교에 대해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다만 외국인의 내륙 여행은 철저히 금지시켰으며, 입항할 수 있는 항구도 일본부에 설치된 나가사키 하나만을 허용하고 한반도와 그 외 지역은 철저히 통제하였다.

이를 무시하고 들어왔던 포르투갈 선박은 함포에 가루가 되어 바다속으로 사라졌다. 조선은 아직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어야 했다.


동아시아에서 있었던 큰 전쟁과 새롭고 강력한 국가가 건설되었다는 사실이 유럽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이쯤이었다. 일본과 마카오를 출입하던 포르투갈인들이 유럽으로 돌아가 조선이라는 나라를 유럽에 소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식민지 확장에 열을 올리던 유럽 제국들은 정보 수집과 무역로 확보를 위해 소규모 선대를 동쪽으로 파견하였으나 단 한 척도 돌아오지 못했다. 포르투갈 선박을 제외한 다른 선대는 길을 잃고 헤매다 대부분 제주 함대나 서해 함대에 걸려 포로로 잡히거나 수장되었기 때문이다.

포로로 잡힌 그들은 함경도 북방 청진으로 이주되어 고립된 생활을 하였고 일부는 외부와 철저히 격리된 채 외교부에서 파견된 관리들에게 언어와 유럽 정세를 가르치는 교사 노릇을 하고 있었다.

아직 인도차이나반도를 확실히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동쪽으로 더 이상 확대할 수 없었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했던 유럽 제국들은 점점 동쪽에 대해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포르투갈인들이 전하는 과장되고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탐욕스런 유럽인들을 자극했지만 돌아오지 않는 선박이 늘어갈수록 관심은 떨어지고, 조선은 신비로운 나라로 비쳐지기 시작했다.


바이칼호에서 제1기병사단과 임무 교대를 한 제3기병사단과 제5보병사단은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서진하기 위한 행군을 시작했다.

그들은 천군부 무기 개발부에서 생산된 60미리와 80미리 박격포를 소지하고 있었다. 견인포를 가지고 다니기에는 운송 수단과 도로 사정이 열악한 지역 특성을 고려하여 휴대가 간편한 박격포가 지급되었다. 60미리는 주로 보병사단이, 80미리는 기병사단 포병대대에게 지급되었는데 사거리가 각각 2, 3㎞는 족히 나갔다.

주둔지를 일본에서 시베리아로 옮겨 바이칼호 근처에 주둔하고 있던 제3기병사단 병력이 오브강을 건넌 것은 유월 초순이었다. 그리고 오브강 건너에서 자그마한 마을을 발견한 것은 6월 20일로 그들을 처음 발견한 이는 제3기병사단 수색중대원이었다.

“저건 제정 러시아의 사람들이 분명한데… 부대원 가운데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자가 있던가? 에이, 모르겠다. 일단 마을을 점령하고 사단에 보고한다. 통역관을 수배해서 지원해 달라고 해. 전 부대 마을을 포위하고 접근한다. 중화기 소대, 박격포를 방열하고 신호를 기다린다.”

제3기병사단 수색중대장이 보기에 마을은 대략 이십 호 정도로 크기가 작았다. 그는 본대에 연락병을 파견하면서 중대병력으로 마을을 상대하는 것이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멀리서 다가오는 일단의 무리를 발견한 이 마을의 우두머리 격인 블라지미르 공작은 은근히 두려움을 느꼈다.

1년 전에 등극한 고두노프 짜르에 반대하다 무기형을 언도받고 시베리아 유형지로 쫓겨 온 모스크바 귀족 출신들이 대부분인 마을 사람들은 짜르가 바뀌지 않는 이상 죽을 때까지 우랄대간을 넘어갈 수 없었다.

다가오는 무리는 얼추 보아도 1백은 넘었다. 마을 주민 전체가 50명이 채 되지 않고, 그나마 싸울 수 있는 자들은 20명 정도였으니 싸워 물리치기는 힘들었다. 만약 마을을 포위하며 다가오는 무리들이 축치족의 전사라면 이 마을은 한 사람도 살아날 수 없었다.


“중대장님, 저쪽에서 누가 오는데요.”

백기를 들고 나오는 사람을 보며 본부 소대장이 소리쳤다.

“이거 난감한데… 누구 러시아어 할 줄 아는 사람 없어? 아니면 불어라도?”

난감해하고 있는 사이에 백기를 든 블라지미르 공작이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하고 있자 중대장과 일부 대원들이 말에서 내렸다. 그들은 총구를 전방을 향해 경계를 취하며 다가오는 그를 기다렸다.

“어이, 안녕하십니까. 나는 조선국 제3기병사단 3연대 수색중대장 오자명입니다.”

상대방이 조선 말을 알 턱이 없지만 일단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는 생각에 오자명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블라지미르 공작은 자신의 앞에 있는 군인이 타타르인과 흡사하다는 것을 알아채고 타타르인일 거라 생각하며 등골이 오싹해졌다. 지금도 타타르 족과는 러시아 남부에서 교전 중이고 과거 백여 년 전만 해도 그들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곳이 모스크바였기 때문이다. 손을 내밀까 말까 망설이던 그때 갑자기 저쪽에서 프랑스어가 들려왔다.

“영어할 줄 아십니까?”

“조금 할 줄 압니다.”

블라지미르는 영어로 대답했지만 사실 프랑스어가 더 유창했다. 러시아 귀족 대부분은 프랑스어를 애용하고 있었고 러시아어는 하층민들이 사용하고 있었다.

사실 오자명 중대장은 영어나 프랑스어도 아주 조금밖에 알지 못했다. 그것도 우연한 기회에 일본에서 몇 마디 배운 게 전부였는데 영어가 그나마 나았다.

결국 바디 랭귀지로 서로 의사 소통을 마친 오자명 대위와 블라지미르는 둘 다 남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 중대는 마을에 초대되어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사단 사령부에서는 프랑스어에 능한 이를 통역관으로 딸려 보냈고 3연대 전 병력을 그 마을 주위에 전개시키는 조치를 내렸다.

조선군의 러시아 정착촌 방문은 다음날 정착촌을 빠져나온 첩자에 의해 에카쩨린부르그에 있는 알렉산드리아 기병연대에 전달되었다. 그는 정착민들의 이동과 생활을 감시하기 위해 알렉산드리아가 파견한 첩자로 3연대 병력이 마을 주위를 장악하기 전에 마을을 떠나 조선군의 정확한 규모와 의도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이른 새벽에 첩자의 보고를 받은 알렉산드리아는 이 일을 모스크바의 고두노프 짜르와 한창 카자흐 족과의 전투를 지휘하고 있는 자신의 상관 드미뜨리 대공에게 보고를 올리고 명령을 기다렸다. 조선병의 숫자가 100명이라지만 그들은 전초 부대일 가능성이 높았고 뒤에 어느 정도의 후속 병력이 오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틀이 지나자 드미뜨리 대공에게서 명령서가 내려왔다.

“귀관이 요청한 지원병은 불가하다. 지금 이곳도 어려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고 모스크바에서의 지원도 바라기 힘든 상태이다. 귀관은 귀관의 연대와 사형수들을 모아 현 지점을 사수하고 적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주력하라.”

명령서를 받아 든 알렉산드리아는 일단 에카쩨린부르그의 성벽을 보수하며 수색 기병대를 현지에 파견하기로 했다. 사형수들을 훈련시키는 일은 일단 보류했다. 아직 그렇게 어려운 상황도 아닌데 황제에게 반기를 든 자들에게 무기를 제공할 수는 없었다.

다음날 그는 연대에서 가장 강력한 친위 부대인 소보르스키 중대를 정착촌으로 보냈다.


러시아의 정착촌에서 3일을 머문 오자명 중대는 임무를 1연대에게 인수하고 다시 서진(西進)을 시작하였다. 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우랄대간이었다. 대간 적당한 곳에 주둔지를 마련하고 본대가 도착할 때까지 주변을 정찰하는 것이 주 임무였다.

도중에 적을 만나면 교전을 회피하라는 지시도 내려져 있었다. 소수의 인원으로 적지 깊숙이 들어가 교전을 벌인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오자명 중대와 소보르스키 중대의 충돌은 정착촌을 떠난 지 이틀이 지났을 때였다. 먼저 적을 발견한 것은 소보르스키 대원들이었으며 돌격을 먼저 한 것도 그들이었다.

오자명 중대장은 그들을 발견하고 회피하려 했으나 이미 위치가 발각된 상태에서 회피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다행히 적들의 무장은 구식 화승총에 옆구리에 찬 칼로 이곳처럼 확 트인 벌판에서라면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박격포를 가져오지 않은 것을 아쉬워했지만 저들 정도는 박격포 없이도 충분해 보였다. 저격병들은 말에서 내려 조준 사격을 준비하고 다른 대원들은 말을 탄 채로 소총을 장전하며 준비했다.

소보르스키는 적과의 조우를 연대장에게 보고하기 위해 연락병을 보내고 대원들에게 전투 준비를 명령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앞에 있는 조선군은 타타르 족이나 카자흐 족과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러시아 최강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소보르스키는 앞에 나타난 조선군이 우습게만 보였다.

“전 중대, 돌격 앞으로!”

소보르스키의 명령에 따라 150기의 기병대가 칼을 뽑아 들고 조선 기병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달려나갔다.

몰려오는 적들을 보며 오자명 중대장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저들은 지옥으로 달려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쪽이 장거리 소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순식간에 서로 간의 거리가 좁혀지자 오자명은 전 중대원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적의 말을 겨냥하라! 사람은 나중에 잡는다! 전 대원 일제 사격!”

“사격!”

탕탕탕탕탕!

수백 발의 총탄이 소보르스키 중대를 향해 날아갔다. 전방으로 밀려오던 소보르스키 중대의 말들이 고꾸라지면서 뒤에서 달려오던 기병들의 진로를 방해했다. 조선군의 일제 사격을 간신히 피한 러시아 기병들이 달려들었으나 그들은 저격병의 정확한 사격에 의해 저지되었다.

“이럴 수가! 전원 퇴각하라!”

조선군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허무하게 쓰러져 가는 부하들을 보면서 퇴각 명령을 내린 소보르스키는 자신의 애마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뒤를 이십여 기의 기병이 뒤따랐고 백여 기의 조선병이 총을 쏘면서 추격전을 펼쳤다. 기마술에 있어서 조선군을 당하지 못한 소보르스키 부대는 금세 따라잡혀 전원 사살되었다.

현장을 수습하고 시체를 땅에 묻어버린 오자명 대위는 부대원들을 모아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


소보르스키가 보낸 전령의 보고를 받은 알렉산드리아는 대대 병력을 이끌고 교전 지점에 도착했으나 그들이 발견한 것은 말들의 시체뿐 어디에도 자신의 부하들은 없었다. 전멸하거나 전원 포로로 잡혔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대원들을 풀어 주변을 수색하자 금세 급조한 무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부하들이 묻힌 곳을 파헤치고는 분노의 눈물을 흘리며 땅을 쳤다. 단 1명도 살아남지 못한 것이다. 무덤에서 꺼낸 시체가 도합 150구로 중대 병력과 정확히 일치하는 숫자였다.

“연대장님, 소보르스키 중대원들의 시체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그때 시체를 살펴보던 한 군의(軍醫)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알렉산드리아 곁에 다가와서 보고했다.

“무엇이 이상한가?”

“몇몇 병사는 칼에 의해 죽임을 당했지만 대부분의 병사들은 특이하게도 검이나 창이 아닌 총상에 의한 것입니다. 저들은 총으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150명이나 되는 자신의 부하들이 어떻게 죽었는가를 신경 쓰지 않았는데 군의관의 말을 듣고 다시 살펴보니 놀라운 점이 드러났다. 깔끔한 총흔(銃痕)은 적이 성능이 우수한 총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조선 기병들이 총으로 무장을 하고 있다면, 소보르스키 중대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전멸했을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조선 기병에게 총이 있는데 대포가 없을 리 없었다.

서둘러 현장의 시신을 수습한 알렉산드리아는 예카쩨린부르그로 향했다. 그는 드미뜨리 대공에게 조선군에 대해 최소한 연대 규모의 총병으로 보고하고 대포와 병력 지원을 요청했다. 하나 돌아온 대답은 소보르스키가 받았던 일전의 답변과 대동소이했다. 이번에는 드미뜨리공이 보유한 포대 중 하나를 지원해 준다는 약속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언제 이곳에 당도할지는 누구도 몰랐다.


알렉산드리아의 예상을 10배는 초과한 제3기병사단과 제5보병사단의 예카쩨린부르그에 대한 포위 공격은 8월에 시작되었다.

공격 개시를 알리는 포격이 시작된 후, 10일 동안의 일방적인 포격전과 총격전으로 조선군은 단 1명의 사상자도 내지 않고 알렉산드리아의 항복을 받아냈다. 조선군에게는 이번에 배치된 박격포의 포격 연습을 겸해서 치러진 전투였지만 화력이나 병력 면에서 우세한 조선군의 맹폭이 계속되자 알렉산드리아는 백기를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몽고를 평정한 다른 보병사단이 예카쩨린부르그에 도착하면서 우랄대간 동쪽을 완전히 장악하자 조선군은 동진을 멈췄다. 뜻하지 않게 시작된 러시아와의 충돌은 싱겁게 끝났다.

이러한 소식은 러시아 수뇌부에게 제대로 보고되지 않았다. 예카쩨린부르그는 완벽히 포위되어 있었고 러시아 전령은 성을 나오자마자 조선군에 발각되어 사살되었다.


단기 3933년(1600)


마침내 의주의 정제 시설이 완성되어 원유를 정제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여수에 정제 시설 건설을 위한 기초 조사가 시작되었다.

지금의 정제 시설로는 하루 천 톤이 한계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요를 충당할 수 없었다. 수 년 뒤에 다가올 시설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천인단은 여수에 대규모 정유소와 대단위 석유화학 공업단지를 조성하기로 결정했다.

정제 시설이 돌아가고 본격적으로 등유와 가솔린이 생산되자 군사적으로도 큰 변화가 일었다. 오리지날 천군 소속 사병과 하급 장교들이 모여 제1기갑여단을 창설하게 된 것이다.

제1기갑여단에는 그동안 창고에서 썩고 있던 장갑차 백 대가 배치되었으며 자주포 십 문이 배속되었다. 최강의 육군이 창설되는 시기였다. 처음 이 땅에 올 때는 장갑차가 3백 대가 넘었으나 2백 대는 주포와 기관총을 육군과 해군에서 포대로 사용하기 위해 해체되어 있었다.

그해 여름에는 항공대가 다시 창설되었고, 가을에는 통합사령부 소속 기동 함대가 고구려함을 기함으로, 구축함 양만춘함, 프리깃함 울산함, 수송선 전진함, 고속정 다섯 척으로 전환 배치되어 막강 함대가 구성되었다.

고구려함에는 전투기 대신 갑판 활주로에 백 문에 가까운 함포가 장착되었고 추가로 헬기가 다섯 대 배치되었다.

의주에서는 정유소의 가동과 동시에 시범적으로 2기통 내연기관이 선보였다. 오늘날의 오토바이에 장착되는 엔진과 흡사한 기관을 기초로 자동차용 디젤엔진을 개발할 예정이었지만 당분간 2기통엔진은 천군의 기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곳저곳에서 원유 정제품을 원료로 한 합성 제품이 매일 생산되어졌다. 석유화학 공장이 정유소 건설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모든 시설은 군의 보호 하에 철저한 보안이 유지되고 있었고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5년간 공장을 떠나지 않는다는 계약 하에 일하고 있었다.

흥남에는 화학 비료 공장이 건설되었다. 이로써 천군부와 천인단은 필요한 화약을 충분히 공급받을 수 있었고 그동안 미루어온 고성능 고집약 폭탄 제조에 착수할 수 있게 되었다. 정유소와 비료 공장의 가동은 많은 화학원료를 공급하는 계기가 되어, 천군부의 병력을 재무장시키는 토대가 되고 있었다.

백성들의 생활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천군부만의 발전과 천인들의 기술이 하나둘씩 뿌리를 내리면서 조선은 너무도 이중적인 모습으로 성장하며 점점 밑바닥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부산 영도


지난 일본 전과 만주전에 참가하여 사병으로서 나름대로 열심히 싸운 이상훈 병장은 제대 날짜를 한 달 앞두고 재수없게도 다리에 화살을 맞아 상이군인으로 제대를 하게 되었다. 하필이면 화살이 힘줄을 끊고 지나갔기 때문에 왼쪽 다리를 절어야만 했던 그는 천군부에서 마련해 준 퇴직금과 위로금을 합쳐 부산의 영동에서 여객 사업을 시작했다.

상이군인에게는 많은 특권이 주어져서 관청에서 허가를 받는 데도 일사천리였고, 운 좋게도 마음에 맞는 동업자를 구할 수 있어 부담도 적었다.

일본부에서 교사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가는 길이던 동업자를 만난 것은 부산의 한 허름한 주막에서였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이상훈은 지금도 웃음이 나왔다.


동업자인 김세진은 왜인으로 보이는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와 같이 주막에 들어섰다. 여자는 나이가 겨우 열다섯이나 되었을까? 하지만 그녀는 임신을 하고 있어서 김세진은 여인을 신주 단지 모시듯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주막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었다.

“조심조심. 자자, 여기 앉자, 응?”

사람들의 시선이 못내 부끄러운 듯 아사꼬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김세진이 손으로 박박 문지르고 닦은 평상에 앉아 긴 숨을 내쉬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리면서 귀밑에 숨어 있는 보송보송한 솜털이 언뜻 보였다.

“거참, 되게 살갑게 구는구만, 민망스럽게시리.”

머리카락이 짧은 것으로 보아 군인임이 분명한 한 사내가 농을 걸어왔지만 김세진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주막 아줌마에게 탁주 한 사발과 국밥 두 그릇을 시켰다.

그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던 이상훈은 그들이 앉은 평상으로 자신이 먹던 밥상을 들고 자리를 옮겼다.

뜻하지 않은 불청객에 김세진은 난처한 표정이었다. 쫓아내지도 못하겠고 그렇다고 동석하기에도 찜찜했다.

“거 통성명이나 합시다. 난 이상훈이라고 하는데 군대에서 제대한 지 얼마 안 되었소. 다리를 다쳐 뭐 할일 없나 하고 부산에 내려오는 길이오. 그런데 댁은 일본에서 왔는가 봅니다.”

‘이거 잘못 걸렸구나!’

군인인 줄 알았는데 그보다 더 대하기 나쁜 상이군인이었다. 여러 통로로 상이군인의 행패를 들어 알고 있던 김세진은 그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상이군인과 시비가 붙으면 언제나 손해 보는 것은 일반인이었다. 관청에서는 나라를 위해 싸우다 다친 자들에게는 무척 관대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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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99 마녀의솥
    작성일
    15.02.19 23:47
    No. 1

    잘 읽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마녀의솥
    작성일
    15.02.19 23:48
    No. 2

    여수에 정유시설과 화학공장을 만든건 좀 이상하군요. 현대라면 원유 수송로에서 가장 근접한 위치이므로 여수에 만들었겠지만 만주에서 원유가 생산된다면 만주의 어떤 특정지역에 만들었어야 할 정유시설이 여수까지 온다는건 역주행이므로 물류 원칙에 크게 어긋나지 않습니까?
    물론 이미 출간된 소설이니 바꿀 수도 없겠지만.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2 남도풍운아
    작성일
    15.07.22 18:04
    No. 3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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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서쪽으로 +4 15.02.13 8,223 253 14쪽
50 서쪽으로 +5 15.02.12 8,553 238 13쪽
49 두마리 토끼 +8 15.02.11 8,278 230 17쪽
48 두마리 토끼 +5 15.02.10 7,975 233 12쪽
47 두 마리 토끼 +4 15.02.09 8,527 222 16쪽
46 두 마리 토끼 +6 15.02.04 8,733 246 13쪽
45 두 마리의 토끼 +4 15.02.04 8,777 231 11쪽
44 두 마리 토끼 +4 15.02.03 8,855 235 14쪽
43 두 마리 토끼 +6 15.01.29 9,726 253 14쪽
42 두 마리 토끼 +4 15.01.27 9,731 261 13쪽
41 대륙진출 +4 15.01.27 9,492 232 12쪽
40 대륙진출 +5 15.01.23 10,216 280 27쪽
39 대륙진출 +8 15.01.21 10,012 270 31쪽
38 대륙진출 +7 15.01.18 10,187 259 15쪽
37 대륙진출 +6 15.01.17 10,434 309 14쪽
36 대륙진출 +8 15.01.16 10,189 262 15쪽
35 대륙진출 +4 15.01.15 10,105 298 16쪽
34 대륙진출 +6 15.01.14 10,153 277 15쪽
33 대륙진출 +5 15.01.13 10,629 284 15쪽
32 대륙진출 +5 15.01.12 10,838 310 14쪽
31 대륙진출 +4 15.01.11 10,843 305 12쪽
30 대륙진출 +3 15.01.10 10,483 271 12쪽
29 대륙진출 +4 15.01.09 11,834 292 16쪽
28 대륙진출 +3 15.01.08 11,915 290 13쪽
27 대한제국 +2 15.01.07 11,661 353 14쪽
26 대한제국 +3 15.01.06 11,043 269 16쪽
25 대한제국 +17 15.01.05 11,694 319 18쪽
24 대한제국 +5 15.01.04 11,804 293 16쪽
23 대한제국 +3 15.01.03 12,381 330 14쪽
» 대한제국 +3 15.01.01 12,328 281 22쪽
21 대한제국 +6 15.01.01 12,381 334 17쪽
20 대한제국 +5 14.12.31 12,841 320 19쪽
19 오사카방화 +7 14.12.30 11,943 292 16쪽
18 오사카방화 +4 14.12.28 11,511 274 17쪽
17 오사카방화 +5 14.12.27 11,749 265 17쪽
16 오사카 방화 +2 14.12.25 13,062 321 17쪽
15 이몽학의 난 +3 14.12.22 12,937 302 17쪽
14 이몽학의 난 +4 14.12.21 12,160 310 21쪽
13 이몽학의 난 +3 14.12.20 12,684 306 21쪽
12 이몽학의 난 +3 14.12.19 13,793 306 25쪽
11 왜란종결 +5 14.12.18 13,343 285 17쪽
10 왜란종결 +5 14.12.17 13,674 304 26쪽
9 왜란종결 +5 14.12.16 14,506 310 22쪽
8 왜란종결 +5 14.12.15 15,061 335 24쪽
7 3. 왜란종결 +4 14.12.14 15,781 340 21쪽
6 새로운 세상 +6 14.12.13 16,370 338 20쪽
5 2 새로운 세상 +7 14.12.11 17,140 321 23쪽
4 2 새로운 세상 +7 14.12.11 19,681 387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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