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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구에구 님의 서재입니다.

천군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無明에구
작품등록일 :
2013.06.18 10:38
최근연재일 :
2015.07.22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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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2.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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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이몽학의 난

DUMMY

임천군수 박진국은 실로 진퇴양난의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며칠 전 홍산에서 사람이 다녀간 후 바로 천군부 소속 군사가 관아로 들어와 잠시 머물다 갔다. 필시 그 전령을 따라왔음에 틀림없으나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던 천군부 군사들은 훈련 중에 도움을 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 버렸다.

그런데 오늘 또 홍산에서 전령이 찾아와 이틀 후 거사하기로 하였으니 출병 준비를 서두르라는 명을 전하고 갔다.

원래대로라면 추석 전후가 거사 예정일이었으니 이리도 서두르는 것을 보면 이미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럴 때는 조정에 고하거나 앞서 이몽학을 진압하는 것이 좋았으나 시간으로나 병력으로나 모두 역부족이었다. 더군다나 자기가 알기로도 많은 관리들이 포섭되어 있었다. 사방이 적인 사지에서 이십여 명뿐인 포졸들과 관아에 속한 삼십여 명의 잡부들은 아무 소용 없었다.

“어찌한다… 어찌한다…….”

밤새 서성이던 박진국은 결국 그날 밤으로 식솔들은 처가인 경상도로 몰래 보내 버린 뒤 약조대로 반란군에 합류하는 척하다가 냅다 한양 쪽으로 도망갈 계획을 세웠다. 어차피 틀어진 일이라면 살길을 찾아야 했다.



한양


한양의 기방에서 거의 매일을 술과 아리따운 기생들과의 계집질로 정신이 없던 왕삼계 명 사신은 자신이 조선에 온 목적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기생 치마폭에서 헤어날 줄을 모르고 있었다. 관례대로 상국의 사신은 이른바 국빈 대접을 받으며, 많은 선물과 향응을 제공받고는 하였는데 이번은 그 도가 지나쳤다.

그런 사신 일행의 퇴폐 향락은 한양 주민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었지만 모든 것을 당연하게만 받아들인 사신 일행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매일매일 놀기에 바빴다. 설사 알았다손 치더라도 그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오늘도 대낮에 월향이라는 기생을 품고 운우지락을 나눈 후 월향의 젖무덤에서 노닐고 있던 왕삼계는 밖에서 들려오는 떠들썩한 소리에 대충 옷을 추스리고는 방문을 열었다.

“무슨 일인데 이리 시끄럽느냐!”

“나리, 큰일 났사옵니다! 변란이옵니다, 변란!”

시종 하나가 난리법석을 떨고 있었다.

“무엇이? 변란이라니. 자세히 말해 보거라!”

“어제 충청도 홍산에서 변란이 일어나 여러 고을을 점령하고 홍주를 거쳐 공주를 함락하고 파죽지세로 한양으로 올라오고 있다 합니다. 저들의 군세가 1만을 넘어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조만간에 한양에 다다를 것이라는 소문입니다.”

“무엇이? 그 말이 참말이더냐? 이런! 어서 궁으로 가자 광혜군을 만나야겠구나. 그리고 너는 처소에 돌아가 하시라도 떠날 수 있도록 짐을 싸도록 하고 단단히 준비하여라, 어서!”

그간 한시라도 떨어지지 않던 월향이 손을 붙잡아도 뿌리치며 방문을 나선 왕삼계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변란이라니… 만일 이것이 사실이더라도 반란군이 나를 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혹 모르는 일이지.’

성난 폭도들은 어디로 튈지 몰랐기에 이곳에 머무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왕삼계는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 이역만리 조선에서 폭도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싶진 않았다.

부랴부랴 거리로 나온 왕삼계는 한양 곳곳이 부산하고 군사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변이 생긴 건 사실인 모양이었다.

왕궁을 향해 가던 왕삼계가 지나쳐 간 국방부 앞에는 수많은 군사들이 모여들어 진을 치고 있었고 왕궁 입구에도 역시 많은 군사들이 살벌하게 번을 서고 있었다.

“변란이 일어났다는데 그것이 사실이옵니까?”

왕삼계는 치우 천황이 있는 곳에 들어가자마자 예를 취하는 것도 잊은 채 서둘러 물었다.

“그러잖아도 내 대신을 부르려 하였소. 반도들은 흉악무도하게도 역심을 품고 난을 일으켰소. 그런데 잔압할 병력이 태부족이오. 대부분의 군사는 왜에 가 있고 그나마 조선에 있는 군사는 여진족을 경계하기 위해 평안도와 함경도에 있는데 이를 어찌한다는 말이오. 저들이 벌써 경기도에 들어섰다 하니 아무래도 잠시 평양으로 몽진을 갔다가 북방의 군사를 몰아 저들을 막아야 할 것 같소. 대신께서도 서둘러 채비를 차리도록 하시구려.”

치우 천황의 말은 왕삼계를 어이없게 만들었다. 나라에 변란이 나면 마땅히 진압 부대를 먼저 편성하여 진압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조선의 왕이란 자는 도망갈 준비부터 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왕이 역도가 무서워 떠나는 마당에 나라고 온전할까?’

자신이 이곳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의 일도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으니 서둘러 명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을 굳힌 왕삼계는 그래도 도망간다는 소리를 듣기는 싫어 짐짓 허세를 부렸다.

“그것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몽진을 가시다니요. 당장 요동에 달려가 주둔 중인 명의 군사를 몰고 올 것이니 잠시만 기다리시면 저 역도들 정도는 걱정없을 것입니다.”

“이를 말입니까. 그렇게만 된다면 그 은혜는 꼭 갚으리다.”

천황은 왕삼계의 손을 붙잡고는 감격의 눈물을 글썽였다..

실로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안 드는 왕삼계는 살며시 손을 빼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저는 이 길로 요동으로 가겠사오니 다시 올 때까지 평안하시옵소서.”

“그러시오. 어서 가시오. 좋은 말과 변변치는 않지만 작은 선물을 준비하라 일러 놓았으니 그것을 가져가시고 황상께 잘 말씀드려 주시오.”

부랴부랴 황궁을 나와 숙소에 도착한 왕삼계는 서둘러 하인들과 수행원들을 모아 한양을 떠났다. 조선에 올 때는 다섯 수레였던 짐 행렬이 갈 때는 열다섯 수레가 넘는 긴 행렬이 되었다. 모두 조선에서 뜯어 가는 선물 명목의 뇌물이었다.

지나가는 동안 마주친 길거리의 행인들은 누구 하나 그것에 신경을 쓰지 않고 모두들 짐 보따리를 들고 한양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왕삼계가 보기에 왕이 몽진을 명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평양을 거쳐 의주에 도착하는 동안 왕삼계는 수많은 군사와 백성들이 남과 북으로 오가는 것을 보았다. 이미 역도들이 한양에 다다르고 있고 왕은 개성에서 평양으로 쫓겨가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천군이 조선에 있어 종묘사직을 보살피고 있었다면 이리 허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천군이란 것은 왜가 지어낸 거짓말임이 분명하다.’

왕삼계는 압록강을 건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여유를 찾았다.

“그 다마스란 놈의 목도 어깨에 붙어 있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하하하.”

자신의 말에 따라 왜에서 왔다던 사신의 목이 왔다 갔다 할 것을 생각하니 우습기까지 했다. 그에게 이번 조선행은 의외로 짭짤했다. 의주에 처음 도착하여 관도에 들어섰을 때는 그 넓고 곧음에 적이 놀라 소문이 사실이 아닐까 싶었지만 이제는 다 허황된 소문이라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명에 가서 이 일을 고하면 그의 임무는 엄청난 부수입과 함께 끝나는 것이다.

사실 명이 다시 출병하기란 어려웠다. 왜란은 이미 종결되었고 조선에서 다른 왕이 세워진다 해도 명의 속국임이 변하는 것은 아니었. 말을 듣지 않으면 그때 출병해도 늦지 않았다. 오히려 조선을 좀 더 허약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군주를 잘못 만나 고생하는 백성들을 보고 있자니 측은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변방 속국의 백성들에게까지 베풀 자비는 자신에게 없었다.


“방금 의주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명 사신이 의주를 건너갔다 합니다.”

“우리의 계획대로 조선에 큰 난이 일어난 것처럼 알고 있을까?”

“확실히 그럴 것입니다. 헛소문이 그들에게 들어가도록 조치하고 각 지역 수령들에게 일급 경계령을 내렸으니 모두들 속아 넘어갔을 것입니다.”

“하하하하.”

대화를 나누고 있는 대명부 부장과 외교부 장관은 서로를 보며 호탕하게 웃고 있었다. 그동안 명 사신 때문에 죽치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그건 그렇고 홍주의 일은 어찌 되어 가고 있는가? 혹 소식이 있는가?”

“지금쯤 진압 작전이 시행되고 있을 것입니다. 잠시 홍주… 공주가 저들의 손에 들어갔지만 조만간 끝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거사가 시작되었음에도 전라도에서 온다던 관병 2천은 끝내 그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전주목사에게 보낸 전령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 외에도 많은 전령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전주목사에게 간 전령은 전주에 다다르기도 전에 뒤따르던 그림자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반란군은 순식간에 홍주와 공주를 점령하고 그 기세를 몰아 천안으로 움직였다. 천안에 이르렀을 때는 군세가 8천이 넘어서고 있었다. 전라도 관병이 합세했다면 큰 힘이 되었을 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작부터 잘못되었음을 깨닫지 못한 이몽학은 천안에 무사히 도착하자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아 흡족해 하고 있었다. 비록 전라도의 호응을 얻지 못하여 후위를 계속 돌봐야 하는 부담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변변한 싸움 없이 천안까지 올라왔으니 닷새 안에는 한양을 포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천안을 점령한 이몽학은 오늘 낮의 일이 자꾸 신경 쓰였다. 천안의 미곡점 점주인 박항우라는 자가 군량미로 내놓아야 할 쌀 5백 석을 마련하지 않은 것에 대해 처벌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이몽학은 약조를 지키지 않은 자들은 모조리 목을 베어 버렸다. 그들의 변명은 약조라도 한 듯이 한결같았다. 하나같이 거사를 알지 못하였다고 했다. 하지만 같은 지역에서 누구는 전갈을 받고 누구는 못 받았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저들이 죽기 싫어 거짓을 말한다 하며 모조리 참하였으나 박항우의 말은 그에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내 이놈, 이몽학아! 한낱 필부의 마음을 가지고 큰일을 도모하려 했단 말이냐! 내 권율 대장군의 친필만 아니었던들… 아! 천추의 한이로다.”


아직도 박항우의 마지막 모습이 눈에 선했다. 때마침 거사 후의 상황이 급박하여 미처 챙기지 못했던 일이 떠올랐다.

“김덕령을 급히 들라 해라.”

잠시 후 김덕령 장군이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찾아 계시옵니까, 장군.”

“그렇소. 어서 오시오. 몇 가지 확인할 일이 있어서 말이오. 일전에 각 지역으로 보냈던 전령들이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는지 궁금하오.”

“각 전령들은 현지에서 협조 세력과 같이 움직이기로 되어 있었으니 홍산을 떠날 때는 확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각 지역을 거쳐 오면서 확인했어야 했는데 소인이 불민하여 미처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김덕령이 관할했던 전령대는 거사가 시작되자 거의 대부분이 군병으로 임무가 바뀌었고 전령대 임무는 다른 병사로 대체되었다. 전령이 노려지는 것을 회피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전언이 제대로 전해졌는지 파악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었다. 게다가 군세가 급속하게 확장되면서 그들 개개인의 신상을 파악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지금 당장 알아보겠습니다.”

김덕령이 이몽학 처소를 나오자마자 부장들을 불러 이 일을 급히 알아보라 시켰다.

반나절이 지나 전령들의 소재가 파악되었다. 그들 중 상당수가 실종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특히 세력이 크거나 충청도를 벗어난 자들은 대부분 돌아오지 않았다.

이미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사실이었지만 김덕령은 이를 무시했다. 반란을 일으킨 지 열흘이 지났지만 예정대로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었고 천군부나 관군의 이렇다 할 저항도 없었기에 그것이 큰 변수로 작용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아산 근처 거산


김덕령이 이끄는 3천의 병사들은 홍성을 거쳐 아산으로 향했다. 김덕령은 아산에서 이몽학의 본대를 기다렸다가 천안으로 진격할 요량이었다. 그들이 지나가는 길목에서는 화살 하나 날아오지 않아 편하게 진군을 계속할 수 있었다.

예산 이시언 목사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예산을 통과한 그는 이시언이 내어준 5백여 관병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그사이 이몽학이 이끄는 6천의 병사는 공주에서 유구를 거쳐 아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최담령은 잔여 병사를 이끌고 홍주와 공주를 수비하고 있었으며, 혹시 모를 전라도의 지원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는 참새, 너구리 나와라, 오버.”

“여기는 너구리다. 무슨 일인가?”

“지금 일단의 군대가 거산을 지나고 있다. 약 5천 정도.”

“무기는 무엇을 휴대하고 있는가.”

“창과 칼, 화차와 총통 같은 화기도 보인다.”

“알았다. 다음 지점으로 이동하라.”

“알았다, 이상.”

광덕산에 잠복해 있던 저격여단 소속 정찰조가 자리해 있던 흔적을 지우고는 숲 속으로 사라졌다. 반란군의 이동 경로를 따라 잠복해 있던 저격여단 요원들은 반란군의 움직임을 대부분 파악하여 천군부에 보고하고 있었다.



한양 천군부


천군부에서는 의외로 그들의 군세가 많은 것을 보고 놀라고 있었다. 현재까지 파악된 숫자만 1만이 넘고 북진하고 있는 병력이 대략 8천이며 갈수록 늘어나고 있었다.

“이몽학의 군이 이미 수원에 다다랐다는 보고입니다. 이쯤에서 이만 이번 연극을 끝내야 할 것 같은데요, 장관님.”

시시각각 올라오는 보고를 받고 있던 김영철은 조준옥에게 그만 진압 작전 시행을 종용하고 있었다.

천인단으로서는 할 일이 태산 같은데 이번 연극으로 인하여 근 두 달 동안 일손을 놓고 있었다. 하루빨리 사회를 안정시키고 만주를 도모하여 필요한 원유를 확보하여야 했다. 원유의 확보는 천인들이 가진 기술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에 17세기의 세상을 21세기로 올려 놓을 중대한 요소였다. 원유 없이는 유럽과 불과 100년을 앞설 수 있을 뿐이고 그것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오히려 역전당할 수 있었다. 그만큼 에너지의 확보는 중차대한 현실적 문제였다.

“지금 군수 공장과 발전소에만 경비 병력이 배치되어 있지만 혹여 반란군이 그곳 중 하나라도 장악하거나 파괴시킨다면 큰일입니다. 이쯤에서 그만 하시지요. 전라도를 방공여단이 장악한 것은 잘된 일이지만 김포가 텅 비어 있습니다. 겨우 포병여단 병력밖에 없지 않습니까?”

묵묵히 김영철 단장의 말을 듣고 있는 조준옥 장관이 경기도에 배치되어 있는 군대를 살펴보았다. 경기도 쪽에는 그들을 저지할 만한 병력이 없다. 그래도 좀 더 가까이 올 때까지 두고 볼 생각이었다. 밀명을 받고 아산만으로 출발한 일부 병사가 이시언의 도움으로 반란군에 스며들었다. 그들은 반란군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결정적인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럽시다. 이미 작전은 다 세워져 있고 시작만 하면 됩니다. 애석하게도 의외로 사대부들이 직접 참가하지 않았어요. 단지 하인과 자금을 대고 있다는 보고인데… 직접 가담하지 않고 막후에서 조종만 하겠다는 생각인지…….”


오산을 거쳐 수원으로 올라오던 1만 2천의 반란군은 전초병으로부터 전방 십 리 밖에 관군이 포진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는 진영을 갖추기 시작했다. 보고된 바로는 적은 기껏해야 1천 정도로 무장도 빈약했다. 성을 나와 벌판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인데 이몽학으로서는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유리한 수성전을 하지 않고 성 밖으로 나온다? 뭔가 있는 것일까?’

이몽학이 빠르게 머리를 굴리는 사이 누군가가 소리쳤다.

“관군에게서 전령입니다. 백기를 들고 오고 있습니다.”

멀리서 한 사람이 백기를 든 채 말을 달려 이몽학의 진영으로 다가왔다.

“난 경기지사 이인화이다. 죄인은 황명을 받으라.”

쩌렁거리는 소리로 사신이 외치고는 곧장 두루마리를 펼쳐 읽었다.

“일찍이 왜란이 있어 선황과 천군의 도움으로 난을 평정하였노라. 이제 태평성대를 염원하는 것이 천심이거늘, 어찌 흉악무도하게도 짐에게 반기를 들고 세상을 어지럽혀 하늘을 욕보이는가. 짐은 일단의 무리들에 속아 혹세당한 이가 적지 않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노라. 그대들의 죄를 사하여줄 것이니 무기를 버리고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도록 하라. 더 이상 세상을 어지럽힌다면 하늘의 문을 열어 그대들을 벌하겠노라.”

경기지사 이인화는 어깨를 쫙 펴고 있는 힘껏 목소리에 힘을 주어 교지를 읽어 나갔다. 밀려오는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악을 쓰고 있는 모습이 역역했다.

“푸하하하, 고작 1천여 병력으로 우리를 막겠다는 것이냐. 너는 썩 물러가 전하여라! 어버이를 폐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패악무도한 놈이 어찌 하늘을 논한단 말이냐. 그런 하늘이 있다면 내가 용서치 않을 터이다. 당장 군사를 물려 길을 열고 우리와 힘을 합쳐 저 흉악무도한 놈들을 처단하는 것이 진정한 하늘의 뜻이니라. 너는 일찍이 우리의 거사에 협력하기로 약속하고서 이제 와서는 이렇듯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하니 어찌 사내 대장부라 하겠느냐. 차라리 안방에서 바느질이나 하여라, 하하하.”

이인화는 이몽학의 놀림에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그의 뒤에는 1천의 부하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 이놈! 감히 천황을 능멸하고도 살기를 바라느냐! 고작 서자 출신인 자가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구나. 이몽학, 너는 어찌 모르느냐! 이 모든 일이 하늘이 관여한 일임을!”

“썩 물러가거라.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사신이라 할지라도 목을 베겠다. 제장들은 전투 준비를 하라. 저놈이 돌아가는 즉시 공격할 것이니라.”

“예, 대장군.”

이인화는 말을 돌려 반란군 진영에서 들려오는 함성을 뒤로하고는 박차를 가해 진영으로 되돌아갔다. 애당초 저들을 설득할 마음은 없었다. 설득한다고 통할 무리들이 아니다. 그래도 마지막 기회를 줄 필요는 있었다. 또 천군부에 이런 자신의 모습이 보고되기를 은근히 기대했다.


“먼저 부랑민으로 구성된 부대를 선봉에 세워 공을 세우라 하라. 그 뒤를 민병이 따르고 그 뒤를 관병이 따른다. 포병은 앞으로 전진하여 화차와 포를 준비하고 궁병은 포병을 엄호하며 적을 공격하라.”

이몽학의 명이 떨어지자 부산해지는 반란군의 움직임은 이인화에게도 훤히 보였다.

“적들이 공격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장군.”

이인화는 진영에서 천군이 준 쌍안경을 보면서 혀를 차고 있었다. 반란군이 비록 숫자가 많다고는 하나 아군의 상대가 되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뒤에는 막강한 천군 포병이 진을 치고 있었으나 저들의 진형을 보니 그것을 모르고 있음이 분명했다.

“불쌍한지고. 저들 사이에 아군이 섞여 있으니 그들의 위치를 포대에 알려주어 피하도록 하고 준비되는 대로 방포하도록 명하라.”

“예, 장군.”

“다른 관병들은 어디 있나?”

“적 후미에서 대기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잘 되었군. 하긴 정예병이라 할 수 있는 관병을 이런 곳에 투입하고 싶지는 않겠지. 궁수를 후위에 대기시키고 쫓아오는 적들을 막으라 하라. 언제라도 철수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명을 기다려라.”


세에에에에에!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파열음에 이몽학 진영의 모든 병사들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작은 점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 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날아와 포를 방열하고 있는 포대 위에서 작렬했다.

쿠콰콰쾅!

너무나 강렬한 폭발음에 넋을 잃고 있는 반란군 병사들 위로도 그 점들은 떨어지고 있었다.

꽈과광! 꽝!

“으악!”

“내 다리!”

“크억!”

폭발음과 함께 온갖 처절한 비명이 사방에서 난무했다.

“이 무슨…….”

진영 선두에 떨어진 포탄 소리와 비명 소리에 이몽학은 혼이 빠져나갈 듯 놀랐다. 정찰병의 보고에 따라 적에게는 포병이 없는 줄로 알았다. 실제로 눈앞에 보이는 적들의 모습에서도 창병과 궁병뿐이었다. 그럼에도 포탄이 날아들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

그는 황급히 적 뒤쪽을 둘러보았다. 그의 상식상 포대를 아무리 멀리 숨겨 놓았다 하더라도 시야 내에서 사격을 해야 했기에 검은 포연을 발견할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주변 사방 어디에도 화약 연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포탄은 계속 떨어져 내리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계속 떨어지는 포탄에 이몽학 군의 선두는 혼란 속에 완전히 사분오열되었다. 간발의 차로 돌격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 쏟아져 내린 포탄에 유랑민 병사들이 공포에 떨며 허둥대다가 사색이 되어 도망가기 바빴다. 난을 일으킨 뒤 처음으로 맞이한 전투는 너무나 일방적이었다.

이러다간 군사가 흩어질까 두려워지기 시작한 이몽학이 후미에 대기하고 있던 관병을 진격시켰다. 관병은 떨어지는 포탄을 피해 이인화 진영으로 달려갔다.

반란군이 달려오는 것을 본 이인화가 소리쳤다.

“활을 쏴라!”

일시에 수백의 화살이 빗발치듯 날아갔다. 선두에서 달리던 자들이 피를 뿌리며 고꾸라지자 뒤에서 달리던 자들이 방패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화살에 맞아 쓰러지는 병사들이 현저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쏴라!”

다시 한 번 화살 비가 쏟아져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모두 전속 후퇴하라.”

이인화는 화살 세례가 끝나자 머뭇거림없이 전군에 후퇴 명령을 내렸다. 그때는 말을 탄 반란군의 장수들이 이인화의 진영에 거의 다다를 무렵이었다.

이인화의 군사들은 마치 후퇴를 훈련받은 양 썰물이 빠져 나가듯 진영을 버리고 수원성으로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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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대륙진출 +6 15.01.17 10,438 309 14쪽
36 대륙진출 +8 15.01.16 10,196 262 15쪽
35 대륙진출 +4 15.01.15 10,110 298 16쪽
34 대륙진출 +6 15.01.14 10,159 277 15쪽
33 대륙진출 +5 15.01.13 10,636 284 15쪽
32 대륙진출 +5 15.01.12 10,845 310 14쪽
31 대륙진출 +4 15.01.11 10,848 305 12쪽
30 대륙진출 +3 15.01.10 10,491 271 12쪽
29 대륙진출 +4 15.01.09 11,840 292 16쪽
28 대륙진출 +3 15.01.08 11,922 290 13쪽
27 대한제국 +2 15.01.07 11,670 353 14쪽
26 대한제국 +3 15.01.06 11,056 269 16쪽
25 대한제국 +17 15.01.05 11,706 319 18쪽
24 대한제국 +5 15.01.04 11,814 293 16쪽
23 대한제국 +3 15.01.03 12,389 330 14쪽
22 대한제국 +3 15.01.01 12,336 281 22쪽
21 대한제국 +6 15.01.01 12,388 334 17쪽
20 대한제국 +5 14.12.31 12,855 320 19쪽
19 오사카방화 +7 14.12.30 11,953 292 16쪽
18 오사카방화 +4 14.12.28 11,519 274 17쪽
17 오사카방화 +5 14.12.27 11,759 265 17쪽
16 오사카 방화 +2 14.12.25 13,070 321 17쪽
15 이몽학의 난 +3 14.12.22 12,944 302 17쪽
» 이몽학의 난 +4 14.12.21 12,168 310 21쪽
13 이몽학의 난 +3 14.12.20 12,693 306 21쪽
12 이몽학의 난 +3 14.12.19 13,818 306 25쪽
11 왜란종결 +5 14.12.18 13,350 285 17쪽
10 왜란종결 +5 14.12.17 13,682 304 26쪽
9 왜란종결 +5 14.12.16 14,514 310 22쪽
8 왜란종결 +5 14.12.15 15,073 335 24쪽
7 3. 왜란종결 +4 14.12.14 15,792 340 21쪽
6 새로운 세상 +6 14.12.13 16,386 338 20쪽
5 2 새로운 세상 +7 14.12.11 17,158 321 23쪽
4 2 새로운 세상 +7 14.12.11 19,704 387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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