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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군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無明에구
작품등록일 :
2013.06.1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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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2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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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2.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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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이몽학의 난

DUMMY

4 이몽학의 난










단기 3929년(1596) 봄


김포평야에서 시행된 종자 배양법이 성공하여 새로운 김포벼가 탄생했다. 김포벼는 그 양이 충분하여 전국적으로 보급되고 남반도 일부의 논에까지 심어졌다. 이제 김포평야에는 순수한 제주벼만이 재배되고 있었는데 2, 3년 후면 제주벼가 전국적으로 보급될 예정이다. 소금과 쌀을 매점하고 유통시키면서, 강제적으로 새로운 화폐가 유통되었다. 전국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어 주는 한양과 의주 간의 도로가 개통되었는데 이는 대륙 진출의 시금석이 되었다.

한양과 원산 간의 도로는 산간 지역이 많아 좀 더 시일이 지체되고 있었다.

증기 기관이 실생활에 조금씩 이용되면서 수공업은 차츰 기계 공업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생산물은 대부분 천군부에서 소비되고 있어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혜택이 돌아가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지만 그로 인해 서서히 산업화의 기초가 다져 갔다.

전국적으로 3년 과정의 소학교가 신설되기 시작했다. 각 도에는 중학교가 신설되었고 한양에는 고등학교와 영재학교가 운영되고 있어서 인재 양성에 힘쓰고 있었다.

사대부들은 정계로의 진출이 완전히 막혔다. 게다가 지방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많은 사대부들이 몰락해 갔다. 몇몇 적응력이 뛰어난 사대부들은 염점과 미곡점을 불하 받아 장사에 뛰어들었으나 이도 저도 할 수 없었던 사대부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끼리끼리 모여 신세 한탄으로 하루하루를 소일했다.


압록강 얼음이 녹아 내리고 있는 의주에는 공수여단에서 차출한 1개 대대를 근간으로 하여 창설된 제1기병사단이 주둔하고 있었다. 이들은 장교로 승진한 많은 천군 병사들에 의해 정예병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작년 가을에 모집된 5만의 병사는 천군부 휘하에 두었고 또 다른 5만의 병사가 순차적으로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 포병여단과 기병사단 소속의 포병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재래식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보병사단은 궁병과 창병, 도병으로 이루어졌고 기병사단은 기병연대와 궁병, 창병연대, 포병대대를 갖추고 있었다.

함경도와 평안도에는 각각 기병사단이 진주해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남반도에 주둔했다. 한반도에는 내년에나 보병사단이 주둔할 예정이었는데 구성 인원이 창병과 궁병이다 보니 그 훈련이 총병보다 오래 걸렸다. 지휘관들도 태부족하였기에 빠른 시일 안에 군대를 현대화된 직제로 재편할 수가 없었다.

사실 작년에 편제된 5개 사단 규모의 병력도 그 숙련도와 군기에 있어서는 기병사단을 제외하면 민병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 왜란 때 구성된 의병들은 천군부에 흡수된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생업으로 복귀했다. 기존의 조선 관군들은 수군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대마도와 남반도에 집중 배치되었다가 천군부 소속 인원으로 대체되어 일부는 현지에 남고 대부분은 지방군으로 고향에 돌아갔다.

단 1년 사이에 상비군이 10만을 넘어서자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었지만 왜로부터 받은 곡식과 염점에서 나오는 소득으로 빠듯하게 이끌어 가고 있었다. 다행히 초기에 소요되던 화폐 발행용의 막대한 금이 한계치에 이르자 발행되는 화폐의 양이 줄어들었다. 그 잔여분을 재정에 흡수하여 사용하고 있었지만 다른 세원을 찾는 것이 시급한 당면 과제였다.



한양 외무부


“의주에서 기별이 왔습니다. 조만간에 명의 사신이 의주에 도착한다는 소식입니다.”

외무부 대명부 부장인 이인석이 짧은 전화 통지문을 들고 서 있었다.

“누가 오는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이 부장과는 대조적으로 외무부 장관인 조경환 장관은 느긋했다.

“왕삼계가 사신으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음, 올 것이 왔군. 계획대로 하면 되겠지. 아주 적절한 때에 적절한 사신이 왔어.”

조경환 장관은 무엇이 그리도 맘에 드는지 오히려 명의 사신을 반기는 듯 했다. 이인석이 멀뚱멀뚱 서 있자 조경환이 어깨를 툭 쳤다.

“일단 그들의 이목을 속여야지. 천군부와 의논하고 이 일을 승정원에 알리도록 하지.”


6월 초입에 한양에 도착한 왕삼계는 한양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조선병을 보고 의아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다마스에게 듣기로는 조선에는 천군이라는 기이한 군인들이 있어서 신식 조총을 들고 백 리 밖에서도 사람을 상하게 한다는데 그런 조총을 들고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왕성 군데군데에 족히 수만 근은 나갈 철덩이가 놓여 있기는 했지만 저걸 움직이려면 족히 백 필의 마소가 필요할 것 같았다.

치우 천황의 환대를 받으며 대전으로 들어선 왕삼계는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 진 잔칫상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사신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특별히 차려 진 상에 가득 마련된 산해진미는 먹어 줄 사람들의 후각과 시각을 자극하고 있었다.

덕담이 오가고 술이 몇 순배 돌아가자 치우 천황이 임진란에 있었던 명의 도움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지난날 대국의 도움이 없었던들 어찌 오늘과 같은 날이 있을 수 있었겠소. 대국의 보은을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소. 과인이 비록 상왕의 뜻을 받들어 왕위에 올랐으나 이 또한 대국의 은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소.”

“다 저희 대명 황제 폐하의 보살핌이 하늘에 닿아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렇듯 사리가 분명하신 광해군께서 어찌 아직까지 사신을 보내지 않으셨는지 그것이 심히 이상합니다. 그간의 경과를 보고하는 것은 신하국으로서의 당연한 의무이거늘 이렇듯 대국의 신하가 찾아오게 하는 것인지 그 저의를 알 수 없고 이것이 정녕 대국의 보은을 생각하는 이치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왕삼계는 조선에서 명에 사신을 보내지 않아 자신이 직접 이곳까지 오게 된 것에 대해 불편한 심정을 드러내며 오만방자한 발언을 거침없이 해댔다.

그럼에도 치우 천황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명과는 아직 전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명 사신의 비위를 건드리지 말 것을 거듭 부탁한 천군부의 당부 때문이었다.

“그 점은 죄송스럽게 생각하오. 그간 조선에 너무도 황망한 일들이 많았지 않소이까 ? 그보다 대국 황제께서 대신을 친히 사신으로 보내심은 깊은 뜻이 있을 터, 말씀해 주시오. 경청하겠소.”

“황제 폐하께서 말씀하시길, 듣자 하니 조선이 왜를 크게 물리치고 화친을 맺었음에도 왜의 영토에서 군사를 물리지 않고 막대한 조공을 요구한다 하니 그게 사실이면 그 일을 파하라 명하셨소. 또 듣자 하니, 상왕을 폐하고 아들이 왕좌를 찬탈하였다 하니, 그게 사실이면 아들을 폐하고 상왕을 복원시켜라 하셨소. 거기에 대국의 황은을 입어 왜를 물리쳤으니 그에 상응하는 조공을 바치라 명하셨소. 조공 물품은 따로 전해 드리겠소이다.”

사신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치우 천황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안으로 삭이며 태연히 말을 이어 나갔다.

“황제 폐하의 구명지은과 천지신명이 조선을 굽어살피시어 왜를 이 땅에서 물리치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왜와의 전쟁에서 조선의 국토는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지고 많은 조선인들이 볼모로 잡혀간건 대인도 잘 아는 바 아닙니까 ? 그 보상을 받고 빼앗긴 조선의 물건과 잡혀간 조선 백성을 다 찾아 귀환시키면 그때는 군사를 물리려 하였소. 왕위 찬탈에 관한 부분은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시오. 상왕께서 왜란을 겪으신 뒤 고초가 심하시어 국사를 돌보기 힘들다 하시기에 자식된 도리로 어버이의 뜻을 받든 것이오. 이 일은 빠른 시일 안에 사신단을 파견하여 황제 폐하의 윤허를 받겠으니 사신께서 잘 말씀해 주시구려. 대국의 보은에 보답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니 결초보은하겠소.”

잠시 숨을 고른 치우 천황이 다시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황제 폐하에게 명과의 사사로운 무역을 허가해 주시면 어떠하겠느냐고 진언을 드려 주시오. 조선의 물산이 부족하여 대국과의 교역이 절박한 실정이니 소국의 어려움을 대국이 헤아려 주셨으면 감사하겠다고 말이오.”

조선 왕의 고분고분한 태도에 왕삼계는 내심 놀랐다. 광해군이라면 출중한 인물로 명에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오늘 보니 그 소문은 너무 과장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일국의 왕으로서 보여지는 기개와 위엄은커녕 자존심도 없어 보였다.

“조선의 고충을 황제께 주청드리겠지만 황제께서 윤허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보다 제가 광해군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황명이 지엄한지라 소신 나름대로 알아볼까 하니 안내할 조선의 관리를 천거해 주셨으면 합니다.”

왕삼계는 연회가 끝날 때까지 조선의 왕을 광해군으로 지칭했다. 아직까지 명의 허락을 받지 않은 왕은 진정한 왕이 아님을 계속 암시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해 이견을 말하지 않았다. 의외로 고분고분한 조선의 태도가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지금은 명분이 없었지만 그 많은 조공을 올해 안으로 보내지 않으면 그 일을 빌미 삼아 조선을 한번 혼내주면 그뿐이었다. 아직도 요동의 10만 명군은 진영을 풀지 않고 있었다.

그보다 더 급한 일은 천군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것이었다. 이미 같이 온 정탐꾼을 풀어놓았으니 조만간 쓸 만한 것들을 꾸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그리하겠소. 내 신료들에게 대신을 각별히 모시라 일러두었으니 그 점은 염려하지 마시구려. 자, 이제 그만 하시고 술이나 한잔 더 하며 여독을 풀어야 하지 않겠소. 여봐라, 풍악을 울리도록 하여라. 무희들은 뭐 하느냐.”

치우 천황이 외치자 풍악이 울리며 무희들이 들어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후에 치우 천황이 직접 사신 일행들에게 돌아가며 술잔에 술을 가득 채워 줬다.

다음날 엄청난 조공 물목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관리는 군소리없이 왕삼계가 내민 물목을 거의 수락하였다. 물목에 대한 논의가 쉽게 끝나 일찍부터 처소에서 쉬고 있던 왕삼계는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부풀려 자신의 것으로 챙길 걸 하는 후회를 했지만 이미 끝난 일이었다. 이렇게 되면 이곳에 있는 동안 무슨 꼬투리를 잡아서라도 많이 울궈 먹어야 될 것 같았다.

왕삼계는 광해군이 꺼냈던 사무역에 대한 요청을 기억해 내고는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조선과의 교역을 늘리는 것은 명에게 오히려 좋은 일이 될지도 모르는데. 지난 출병으로 재정 압박을 받고 있는 명 조정으로서는 사무역을 통한 관세를 제법 챙길 수 있고. 그 와중에 내가 좀 챙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지만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명 태조 주원장은 후손들에게 외부와의 교역을 삼가라는 유훈을 남긴 바 있었고 아직까지도 그 유훈은 지켜지고 있었다.

“대인, 안에 계시옵니까?”

“들라.”

잠시 상념에 잠겨 있던 왕삼계가 밖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 오자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래, 알아보라는 것은 알아보았느냐?”

방문을 열고 들어온 사내는 난감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말하였지만 왕삼계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황당무계한 것들투성이였다.

“그래, 그러니까 네가 밖에서 수집한 것들이 죄다 하늘에서 불사조가 불을 떨어뜨렸다, 천군이 바람처럼 하늘을 날며 왜인을 죽였다, 천군은 백 리 밖의 왜인을 죽인다, 천군은 철새를 기르고 있고 철어를 기르고 있다, 뭐 그런 이야기들이란 말이냐? 너는 그 말을 참말로 믿었더란 말이냐? 이런 쓸모없는 놈들!”

왕삼계가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보자 사내가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하지만 그 역시도 도저히 믿기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인, 조선 백성들은 모두 진짜라고들 합니다. 직접 보았다는 사람도 아주 많이 있었습니다.”

“시끄럽다! 너는 다시 나가서 천군이 언제, 어떻게, 조선에 왔는지 알아보고 지금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찾아보도록 하여라.”

“예, 대인.”

다음날 왕삼계는 직접 천군에 대해 조사해 볼 요량으로 처소를 혼자 나왔다. 조선 조정에서 붙여둔 이만재라는 관리를 전혀 믿을 수 없어서 자신이 평소 알고 지내던 관리들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동안 안면을 터왔던 조선의 괸리들은 단 한 명도 한양에 있지 않았다.

한나절을 소비하고서야 처소에 돌아온 왕삼계는 이만재에게 그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상왕이 자리를 물러나신 후 자신의 죄를 크게 뉘우치고 왜로 건너가 조선인 볼모를 찾고 있다고 하였다.

어쩔 수 없이 왕삼계는 점심을 마치고 오후에 이만재와 다시 처소를 나섰다. 천군부에 도착한 왕삼계는 더 황당한 이야기를 천군부 관리라는 자에게 들었는데, 천군들은 이미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는 것이다.

그로서는 그 약하기만 한 조선이 막강한 왜군을 어찌 몰아내고 오히려 왜를 정복했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천군의 존재를 믿을 수도 없었다. 분명히 뭔가 있긴 있는 듯하였지만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조선 왕에게 물었으나 하늘의 도우심으로 왜를 물리쳤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난감한 왕삼계는 좀 더 조선에 머물며 저들의 속셈을 파악하기로 마음먹고 북경으로 돌아가는 것을 잠시 미루기로 했다. 분명 이상한 뭔가가 있기는 있었다. 예전의 모습과는 다른 이질적인 느낌이 조선 조정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충청도 홍주목사 관저


홍주목사 홍가수는 고단한 하루의 업무를 마치고 관사에 들어 저녁을 들었다. 저녁상을 물리고부터 가슴이 답답하여 밤하늘의 은하수를 바라보았지만 검은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은 말이 없었다.

찬바람에 그만 들어갈까 하던 차에, 수십 년간 자신의 집에서 일을 해주고 있는 김 서방이 이몽학이란 분이 뵙기를 청한다는 전갈을 가져왔다. 만나보니 깊은 죽립을 쓰고 털털하게 차려입은 모양새가 양반은 아닌 듯하였으나 그 기도가 제법이었다.

김 서방에게 차를 내오라 이르고 손님과 함께 방에 들어가 자리를 잡자 손님이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지난날 속모관 한헌의 부대에서 선봉장을 맡았던 이몽학이라 하옵니다.”

“그래, 자네가 어쩐 일로 이런 야심한 시각에 나를 보고자 했는가? 우린 서로 안면이 없던 것 같은데 아니 그런가?”

홍가수는 언뜻 이몽학이란 이름 석 자를 듣긴 한 것 같았지만 그가 안면을 트고 지내기에는 신분에 많은 차이가 났다.

“목사 어른! 목사 어른께서는 작금의 사태를 어찌 보시는지요.”

생전 처음 보는 자가 하는 질문이라고는 당돌하기 그지없었다.

‘작금의 사태라니!’

“네 이놈! 방자하기 그지없구나! 작금의 사태라니, 그것이 무엇을 뜻하느냐!”

“목사 어른, 저 패악무도한 천인이라 칭하는 모리배에 의해 작금의 천황은 덕수궁에 유폐되다시피 하시고, 군주로서의 권위를 상실하여 하루하루를 위협에 떨며 사시는 데다, 백성들은 전국적으로 이루어지는 공역에 힘들어하고 있나이다. 더군다나 그들은 황명을 사칭하여 나라의 근간이 되는 유교를 억압하고 사대부들을 핍박하며 천주학이라는 허무맹랑한 학문을 전파하여 혹세무민하고 있으니 어찌 하늘인들 가만히 있겠나이까.”

홍가수로서도 지금은 예전의 관직인 목사직을 수행하고 있지만 언제 갑자기 자신의 목이 달아날지 모르는 형국이었다. 무지한 백성들은 저들을 칭송하고 있었고, 새롭게 저들의 학교를 졸업한 이들이 관직에 조금씩 등용되고 있었다.

자신이 수십 년 동안 닦아 온 학문이 일거에 물거품이 되고 있으니 자신과 가문의 앞날이 걱정되기는 하였다. 자신의 자식에게 지금까지 배운 것들이 다 잘못되었으니 이제는 천주학을 배워야 한다고 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었다. 세상이 다시 뒤집어지지 않는 이상에는 말이다.

자신의 앞에 있는 이몽학이란 자는 지금 그것을 논하고자 이곳에 온 듯 했다. 하지만 이는 반역이요, 잘못되면 멸문지화를 당할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지금까지는 황명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들의 처사가 다 마땅한 것은 아니나 다 못마땅한 것도 아니다. 민심이 저들에게 있으니 어쩌겠는가.”

한풀 꺾인 목사의 말을 들은 이몽학은 목소리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그간 초야에 묻혀 사시는 많은 유림의 선비 분들과 덕망있는 분들을 만나뵙고 모두들 목사 어른과 같은 심정이라는 것을 소인은 알게 되었사옵니다. 더군다나 서해 수군을 맡고 계신 원균 대감과 국방부 장관이신 권율 대장군을 비롯하여 많은 뜻있는 조정의 신료 분들이 저희들의 거사에 동참하겠다고 알려왔나이다.”

“그대는 지금 말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는가?”

“저희들은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이몽학의 말은 곧 목사가 가담하지 않는다면 바로 죽일 것이라는 무서운 협박이었다. 그 내용을 잘 알고 있는 홍 목사의 등 뒤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섣불리 결정할 수 없었다. 가문 전체의 목숨이 달려 있는 일이었다.

“그대들에게 그만한 힘이 있는가? 저들의 천군을 무슨 수로 감당할 것인가? 그들에게는 10만에 가까운 군사가 있네. 저들의 듣도 보도 못한 무기들은 말해서 무엇 하겠나? 그에 대한 확실한 대비책이 없다면 난 가담할 수 없네.”

홍가수는 이몽학의 일에 가담하고 싶었다. 그는 내심 천군부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고 언제 자신이 목사 자리에서 쫓겨날지 몰라 하루하루가 불안하기만 했다.

하지만 성공할 수 없는 반란엔 가담하고 싶지 않았다. 특히 역모는 너무 위험했다.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차라리 여기서 이몽학이란 자를 잡아 천인들에게 넘기는 것이 더 득이 많았다.

“비록 10만이라곤 하나 대부분이 훈련병들이어서 전투력이 형편없습니다. 그나마 믿을 만한 관병은 모두 북쪽이나 남반도에 있지 않습니까. 조선에 있는 군대도 뿔뿔이 흩어져 있고 그들을 움직이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그전에 우리가 충청도를 장악하고 한양을 포위한다면 바로 한양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함경도와 평안도의 천군부 소속 기병사단은 명과 여진족 국경에 인접한지라 움직이기 쉽지 않을 것이고, 대부분의 천군들은 전국으로 흩어져 있어서 한양 주위에는 기껏해야 일이 천 정도입니다. 각 고을에서 저들의 움직임을 잠시나마 묶어둔다면 우리에게 승산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군세는 얼마 되지 않지만 홍주목이 합세하고 기존의 군대를 수용하면 순식간에 수만에 이를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염점과 미곡점의 몇몇 점장들이 우리와 뜻을 같이 하기로 약조하였습니다. 조선에 있는 군대는 기병사단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국방부 소속으로 권율 대원수의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이몽학의 말은 분명 귀가 솔깃하였다. 더군다나 국방부 소속 조선병들이 참가한다면 승산이 매우 높았다. 지금은 예전의 조선 관군들의 지위가 많이 내려갔다지만 그들은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다. 그들 역시 불만이 있을 것이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말미를 달라며 이몽학을 돌려보낸 홍가수 홍주목사는 지금 밤새도록 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내일 다시 온다 하였으니 그 안에 특단의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홍가수 일생일대의 결정이 내려지는 그때에 천군부 정보부에서는 홍주에서 올라온 급보에 비상 회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일찍이 이몽학의 난을 염려하던 천군부에서는 이몽학의 주변을 계속 감시하고 있었고 홍주목사와의 대화를 녹음할 수 있었다.



단기 3929년(1596) 한양 천군부 정보실


“역사에 예정된 일이긴 합니다만 지금은 역사에 기록된 그것과 사뭇 다릅니다. 역사에는 부랑민과 승려들이 주축이 된 반란이라 기록되어 있지만 홍주에서 올라온 보고에 의하면, 이번 반란의 주축은 소외된 사대부뿐만 아니라 국방부의 수장까지 연루된 일이라 진압하기가 쉽지 않을 듯합니다. 이 일에 대한 대책을 대폭적으로 수정해야 합니다.”

김지영 실장은 수립된 계획의 전면 수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김지영 실장은 완벽한 정보에 완벽한 작전을 수립하길 선호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천군부 장성들은 화력의 우위에서 오는 자신감이 넘친 탓에 이번 정보의 중요성을 크게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번이 다시없는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불만을 품고 있는 세력을 일거에 소멸시킬 수 있고 명의 사신을 쫓아버릴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작전참모부의 장군들은 한 번의 작전으로 여러 개의 효과를 이끌어 낼 뭔가를 찾길 좋아했다. 그들은 이번 기회에 조선에서 자신들에게 반기를 드는 자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구상을 하고 있었다.

“그건 그렇지만 가용할 병력이 너무 적은 것이 문제군요. 그리고 이런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입할 수는 없습니다. 저희 천인단에서는 조기 진압을 건의합니다. 너무 일이 커지면 내부 불안이 가중될 수 있습니다. 반란은 조기에 진압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남반도에서 병력을 이동 배치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번 일은 우리가 겪게 되는 최초의 내부적 시련입니다. 너무 오래 끌면 안 됩니다. 천군부에서 잘해 주시리라 믿습니다만 말입니다.”

천인단장은 발전의 장애가 되는 전쟁이나 소요를 우려했다. 건설 현장이나 다른 생산적인 일에 투입되어야 할 인적, 물적 자원이 소모성 전투에 사용되면 조선의 발전은 그만큼 늦어진다.

“먼저 이 일을 천황과 상의한 후 주요 관련자들을 아주 조용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천인단이나 정보실장님의 의견을 최대한 수용하겠습니다만 이런 좋은 기회를 버릴 수는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파악한 자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입니다. 더 많은 관련자를 조사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정보실에서 힘써 주시고 각 지방의 천군들에게 언제든지 출동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춰주십시오.”


홍가수와 이몽학의 만남이 있은 지 닷새 후에 천군부 장관인 조준옥과 치우 천황의 독대가 이루어졌다.

테이프 내용을 다 듣고 난 치우 천황은 만감이 교차했다. 이 일을 어찌 해결해야 할지 안타깝기만 했다. 저들이 폭도인지 우국충정에 기인한 충신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고, 천군부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몰라 선뜻 말문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천황 폐하, 저들이 비록 명분은 천황 폐하를 위하고 백성을 위한다 하나 이미 들으신 바대로 저들은 빼앗긴 권력을 되찾기 위해 이 어려운 때에 난을 일으키려 하고 있사옵니다. 워낙 많은 사대부들이 연루되었기에 그들을 모조리 처형할 수도 없는지라 천황 폐하의 영명하신 명을 받잡고자 이렇게 독대를 청하였나이다. 이 일을 어찌하오리까?”

천군부 장관의 말을 듣고 있던 치우 천황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지금 그에게는 천군부에서 요청하는 서류에 옥새를 찍어주는 일 외에는 아무런 실권도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이름뿐인 천황으로 후세에 남겠구나. 그나마 목숨을 부지하려면 옥새라도 잘 챙겨야겠지. 이런 때에 구신이 떨쳐 일어나 저들을 물리칠 수 있다면…….’

이내 치우 천황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고 있었다. 천군부에서 나라 살림을 맡은 후 백성들의 생활이 좋아졌으면 좋아졌지 나빠지지는 않았다. 여기저기에 공역장이 늘어 백성들의 불평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은 돈이나마 노임을 지불하고 있었다.

‘군주의 역할이 무엇인가? 백성들을 배불리 먹이고 편안하게 사는 것을 으뜸으로 삼지 않았던가? 이런 시점에서 반란이라니! 이는 아니 될 말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다 죽일 수는 없는 일이다. 가뜩이나 충신들이 부족한 이때에…….’

치우 천황의 머리 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그래, 장관에게는 어떤 복안이 있소?”

“예, 폐하. 저들 또한 우리의 백성이옵고 다는 아니더라도 무지몽매하여 속아 가담하는 자도 많을 것으로 사료되는지라 저들을 최대한 설득하고 그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노력하겠나이다.”

“그래, 그래야겠지요. 피는 피를 부르니 저들을 보살피는 데 힘써 주시오. 장관이 그렇게 얘기해 주니 짐은 기쁘기 그지없소.”

치우 천황은 왠지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짐이 도와 줄 일이 있겠소?”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께서는 아무것도 걱정하실 것이 없사옵니다. 다만 난이 일어나면 바로 몽진을 준비하라는 명을 내려 주셨으면 하옵니다. 주변에 천인들의 눈이 많사오니 폐하께서도 불순한 무리들을 멀리 하시옵소서.”

치우 천황은 장관에게서 몽진이라는 말이 나오자 눈을 크게 떴다. 그 이유를 물으려 하다가 곧 알 것 같았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천군부에서는 명의 사신을 명으로 돌려보내려는 속셈이 있는 듯했다. 천인들이 벌이는 일에는 한 치의 빈틈도 없어 보였다. 모든 일을 훤히 꿰뚫고 있어서 진짜로 저들이 신선이 아닌가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날 부로 홍주목사를 한양으로 불러들이라는 명령을 품은 파발이 홍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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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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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서쪽으로 +8 15.02.15 8,047 234 14쪽
52 서쪽으로 +3 15.02.14 7,768 211 11쪽
51 서쪽으로 +4 15.02.13 8,223 253 14쪽
50 서쪽으로 +5 15.02.12 8,553 238 13쪽
49 두마리 토끼 +8 15.02.11 8,278 230 17쪽
48 두마리 토끼 +5 15.02.10 7,975 233 12쪽
47 두 마리 토끼 +4 15.02.09 8,527 222 16쪽
46 두 마리 토끼 +6 15.02.04 8,733 246 13쪽
45 두 마리의 토끼 +4 15.02.04 8,777 231 11쪽
44 두 마리 토끼 +4 15.02.03 8,855 235 14쪽
43 두 마리 토끼 +6 15.01.29 9,726 253 14쪽
42 두 마리 토끼 +4 15.01.27 9,731 261 13쪽
41 대륙진출 +4 15.01.27 9,492 232 12쪽
40 대륙진출 +5 15.01.23 10,216 280 27쪽
39 대륙진출 +8 15.01.21 10,012 270 31쪽
38 대륙진출 +7 15.01.18 10,187 259 15쪽
37 대륙진출 +6 15.01.17 10,434 309 14쪽
36 대륙진출 +8 15.01.16 10,189 262 15쪽
35 대륙진출 +4 15.01.15 10,105 298 16쪽
34 대륙진출 +6 15.01.14 10,153 277 15쪽
33 대륙진출 +5 15.01.13 10,629 284 15쪽
32 대륙진출 +5 15.01.12 10,838 310 14쪽
31 대륙진출 +4 15.01.11 10,843 305 12쪽
30 대륙진출 +3 15.01.10 10,483 271 12쪽
29 대륙진출 +4 15.01.09 11,834 292 16쪽
28 대륙진출 +3 15.01.08 11,915 290 13쪽
27 대한제국 +2 15.01.07 11,661 353 14쪽
26 대한제국 +3 15.01.06 11,043 269 16쪽
25 대한제국 +17 15.01.05 11,694 319 18쪽
24 대한제국 +5 15.01.04 11,804 293 16쪽
23 대한제국 +3 15.01.03 12,381 330 14쪽
22 대한제국 +3 15.01.01 12,328 281 22쪽
21 대한제국 +6 15.01.01 12,381 334 17쪽
20 대한제국 +5 14.12.31 12,841 320 19쪽
19 오사카방화 +7 14.12.30 11,943 292 16쪽
18 오사카방화 +4 14.12.28 11,511 274 17쪽
17 오사카방화 +5 14.12.27 11,749 265 17쪽
16 오사카 방화 +2 14.12.25 13,062 321 17쪽
15 이몽학의 난 +3 14.12.22 12,937 302 17쪽
14 이몽학의 난 +4 14.12.21 12,160 310 21쪽
13 이몽학의 난 +3 14.12.20 12,684 306 21쪽
» 이몽학의 난 +3 14.12.19 13,793 306 25쪽
11 왜란종결 +5 14.12.18 13,343 285 17쪽
10 왜란종결 +5 14.12.17 13,674 304 26쪽
9 왜란종결 +5 14.12.16 14,506 310 22쪽
8 왜란종결 +5 14.12.15 15,062 335 24쪽
7 3. 왜란종결 +4 14.12.14 15,781 340 21쪽
6 새로운 세상 +6 14.12.13 16,370 338 20쪽
5 2 새로운 세상 +7 14.12.11 17,140 321 23쪽
4 2 새로운 세상 +7 14.12.11 19,681 387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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