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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군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無明에구
작품등록일 :
2013.06.1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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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2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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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2.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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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이몽학의 난

DUMMY

단기 3929년(1596) 여름 덕수궁


“폐하, 권율 국방부 장관이 들었사옵니다.”

내관이 권율 장관의 방문을 알렸다. 천군부 장관이 황궁에 들 때 미리 변통을 넣어 그를 이곳에 오게 했는데 시간이 절묘했다.

안으로 든 권율은 천군부 장관을 보며 약간 의아해했지만, 서로 예를 취한 후 자리를 잡았다.

“찾아계시옵니까, 폐하.”

“그렇소이다, 장관. 국방부를 맡아 수고가 많으시구려.”

“황공하옵니다, 폐하.”

치우 천황은 권율을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일을 도모할 거면 좀 더 조심스럽게 하지, 이게 뭐란 말인가.’

어찌 보면 질책의 눈빛이기도 했다.

“듣자 하니 일부 불순한 자들이 획책하는 구정물 속에 장관께서 연루되어 있다기에 그 진위를 파악하고자 이렇게 불렀소. 장관께서는 이것에 대해 할 말이 있으신지?”

직설적인 천황의 질문에 권율은 머리카락이 치솟고 식은땀이 맺혔다. 어느새 등에서 땀이 흘러 내렸다.

‘어찌 그 일을 알았단 말인가? 극비 중의 극비로 간세가 끼어들 틈이 없었건만. 요망한 천군부에서 이미 알고 있었단 말인가? 얼마 전에 충청도지사도 가담하기로 하였기에 일의 반절은 성공하였다고 생각했거늘. 지난 봄에 홍주목사를 살해한 것이 잘못되었던가?’

홍가수의 가담 소식을 듣고 좋아하던 권율은 그가 갑자기 한양으로 올라온다는 소리에 겁을 먹고 그를 소리 소문 없이 죽이라 했는데 어쩌면 그때 그 일로 인하여 꼬리를 잡혔을지도 몰랐다.

잠시 멍해져 있던 장군은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가 머리를 바닥에 세게 찧으며 고하는 소리가 방 안 가득 울렸다.

“폐하, 소신이 어찌 그런 불충한 마음을 먹었겠나이까. 부디 소신의 충정을 믿어주시옵소서.”

“그만 하시오. 짐이 노신의 충정을 의심하지는 않지만 이것을 한번 들어 보시오.”

치우 천황이 탁자 위에 놓여져 있는 상자의 머리 부분을 오른손 검지로 누르자 테이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더군다나 지난날 서해 수군을 맡고 계신 원균 대감과 국방부 장관이신 권율 대장군을 비롯하여 많은 뜻있는 조정의 신료 분들이 저희들의 거사에 동참하겠다고 알려왔나이다.

―오늘 충청도지사가 합류 의사를 밝혔나이다.


테이프는 한참을 돌아가더니 어느 순간에 녹음된 목소리를 모두 토해내고 멈추었다.

“권율 장관은 어찌 생각하시는지?”

“폐하, 소신은 정녕 모르는 일이옵니다. 이는 모함이옵니다, 폐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요? 누가 장관을 모함한단 말인가. 음,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구려. 이렇듯 증거가 명백하고 짐이 듣기에도 저 소리 상자에서 나오는 소리가 거짓됨이 없어 보이니, 오늘부터 이 사건의 전모가 밝혀질 때까지 국방부의 모든 권한을 천군부에 이관하고 그 소속 인원은 모두 국방부에 감금하겠소. 아울러 가족들에게도 금족령을 내리겠소. 명을 어기는 자는 참형으로 다스리겠으니 그리 알고 나가 보시오. 그간 공을 생각하여 그대 집안의 목숨은 살려줄 터이니 자중하시오.”

대전을 나온 권율은 다리 힘이 풀려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고 그가 나오길 기다리던 천군부 소속 요원들이 그를 부축하여 국방부로 이송했다.

국방부에 돌아온 장군은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부하들이 모조리 결박당하여 한구석에 몰려 있었고 천군부 소속 병사들이 곳곳을 쑤시고 다니고 있었다.



강화도 서해수군 사령부


권율이 덕수궁에서 치우 천황을 만나고 있을 무렵, 강화도에 있는 고속정전대와 방공여단에 비상이 걸렸다. 그들에게는 서해수군 사령부를 접수하라는 명령이 내려와 있었다. 가능하면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라는 천군부 장관의 의견이 첨부되어 있었지만 상황이 격화되면 어찌될 지 몰랐다.

강화도 초계진에 한동안 묶여 있던 고속정대가 혹시 있을지 모를 서해수군 소속 판옥선들의 강화도 탈출을 막고 강화만 일대를 봉쇄하기 위해 포구를 떠났다.


원균은 지난날 대마도를 단독으로 점령하고 많은 군량미를 조선으로 수송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웠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의 고속 승진에 비하면 그의 승진은 높이 올랐다고 할 수 없었다. 말직만 전전하다 일약 수군 사령관으로 승진한 이순신에 비하면 원균은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셈이었다.

원균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책을 펼쳐 놓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수병들의 훈련을 좀 더 강화시켜야겠다. 이순신, 그때 내 밑에서 얼마나 버티는지 보자.’

바깥에 손님이 오셨다는 전갈을 받기 전까지 원균은 몇 달 후면 있을 반란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찼다. 권율 장관의 확답을 받았으니 혁명이 성공하기만 하면 자신은 국방장관이 될 수 있었다.

“장군님, 방공여단장님께서 오셨습니다.”

원균이 방문을 열고 나오자 전에 한 번 대면한 적이 있던 방공여단장이라는 사람이 정복을 입고 와 있었다.

‘그의 이름이 김준모라고 했던가?’

여단장은 꽤 많은 사병과 같이 왔다.

‘왜 이리 많이 몰려온 거야?’

“아니, 장군께서 기별도 없이 어인 일이십니까?”

마음과는 다르게 원균은 얼굴에 화색을 띠며 김준모 장군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두 손을 맞잡은 원균이 김준모 장군을 안으로 이끌자 김준모가 마지못해 따라갔다.

“급히 상의드릴 일이 있어 이렇게 불시에 찾아와 폐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송구스럽습니다.”

“별말씀을! 이렇게 오셨으니 술이라도 한 잔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여봐라, 가서 주안상을 마련하여 들이도록 해라. 귀하신 분이 오셨으니 대접에 소홀함이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야. 알겠느냐?”

“예, 장군.”

김준모 장군이 바닥에 앉기를 기다린 원균이 찾아온 방공여단장의 기색을 살폈다. 원균도 방공여단의 1천여 천군이 강화도에 자리한 것이 자신을 비롯한 서해수군을 감시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천군을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한 터라 애써 만나려 하지 않았고 저쪽에서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 어인 행차이신지요, 장군?”

방 안을 한 번 둘러본 김준모가 원균 머리맡에 있는 장군도에 시선을 멈추었다. 칼이 약간 빠져나와 예리한 검기를 밖으로 내뿜고 있었다.

“칼이 칼집에 잘 꽂히지 않았습니다, 장군.”

김준모가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몸을 일으켜 장군도 손잡이를 살짝 밀어 안으로 집어넣고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사람 사는 것이 다 저런 것인 모양입니다. 칼이 칼집에 있으면 그 속을 알 수 없으나 저렇듯 조금이라도 칼집에서 나와 있으면 그 위험함을 알게 되는 것 아닙니까? 하물며 시퍼런 칼날을 마음속 깊은 속에 간직할 재간도 없으면서 너무 위험한 장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여럿 있습니다. 자기 딴에는 모든 것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자들 말입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장군?”

알쏭달쏭한 선문답 같은 김준모의 말에 원균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저 생각없이 내뱉는 말이려니 받아넘기기에는 말속에 뼈가 있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장군. 칼이 칼집에 있다고 해서 안전하다고 볼 수는 없지요.”

“그렇습니까? 허허, 딴은 그렇군요. 빠져나온 칼은 도로 집어넣으면 되지만 칼집에 있는 칼은 알 수가 없지요. 제가 수수께끼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맞추시면 제가 오늘 술을 거하게 내지요.”

“수수께끼라… 그것도 술내기라… 좋지요. 어디 한번 내보십시오, 내가 맞춰 보리다. 못 맞추면 내가 술을 한 동이 내지요.”

뜬금없이 수수께끼를 내겠다는 말에 원균은 맞장구를 쳤다.

원균은 김준모가 갑자기 화제를 바꾸자 내심 안심하였다. 그냥 해본 소리려니 하고는 김준모가 내는 수수께끼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수수께끼가 자신의 목숨과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듯했다.

“그렇습니까? 좋습니다. 한번 맞춰보시지요. 자, 제 수수께끼입니다. 일전에 말입니다. 한 이상한 사람이 저를 찾아왔었습니다. 그자가 말하길 붉은 산에 숨어 있는 자를 조심하라 하더이다. 그리곤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지요. 장군께서는 그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으시겠습니까? 붉은 산에 있는 자 말입니다.”

“붉은 산에 있는 자요? 글쎄요… 붉은 산에 있는 자라…….”

원균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김준모가 낸 수수께끼의 답을 알아내려 머리를 굴렸다. 그가 알고 있는 모든 고사성어를 하나씩 생각해 내다가 그것도 여의치 않자 읽었던 책에서 그런 내용이 있나를 궁리하다가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붉은 산, 홍산이라는 지명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홍산에 있는 자라면 이몽학을 말하는 것인가?’

“참 그런 수수께끼도 있었습니까? 당최 모르겠습니다. 여봐라, 아직 주안상이 마련되지 않았느냐?”

원균이 밖에 대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소리가 너무 커서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방공여단 사병들과 서해수군 사령부 수병들이 깜짝 놀랐다.

“정녕 모르시겠습니까?”

김준모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물어보았지만 원균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원균은 김준모가 이몽학의 일을 알고 온 것인지 아니면 한번 떠보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이 이몽학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아무도 몰랐다. 자신이 가장 신임하는 부하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 이 일을 알고 있는 자는 자신과 권율 대장군 그리고 이몽학 이렇게 세 사람밖에 없었다. 거사를 실행할 때는 거사일을 며칠 앞두고서야 믿을 만한 부하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그들을 포섭할 계획이었다.

원균은 마음을 다잡았다. 이곳은 자신의 진영이었다. 여차하면 김준모와 그의 수행원들의 목을 베어버리면 될 것이다.

“정녕 모르겠습니다. 그래, 그게 누구입니까, 장군?”

원균은 태연하게 되물었다.

“애석합니다, 장군. 장군께서도 모르고 계시는군요. 허참, 이 문제를 누구에게 물어봐야 속 시원한 대답을 해줄지… 혹여 추천해 주실 분이 없으십니까, 장군?

그때 문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주안상 대령입니다. 지금 들이올까요, 장군?”

“그래, 안으로 들이도록 하여라.”

원균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방문이 열리자 기대했던 주안상 대신 방공여단 병사들이 소총을 든 채 서 있었다.

놀란 원균이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벽에 걸려 있는 장군도를 빼 들기 위해 손을 뻗었다.

탕!

어느새 권총을 빼 든 김준모가 막 칼집에서 빠져 나오려는 장군도의 칼집을 정확히 맞추었다.

“칼은 칼집에 있어야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장군 같은 훌륭하신 분께서 붉은 산의 주인과 끈이 연결되어 있으셨다니. 오늘 부로 서해수군은 저희 방공여단에서 잠시 맡도록 하겠습니다. 장군기와 인장을 내놓으시지요.”

방공여단 병사들에게 밖으로 끌려 나온 원균은 마당에 가득 찬 천군들과 무릎 꿇고 있는 부장들을 보고는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가문이 대역죄로 몰려 삼족이 멸하게 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마당으로 원균이 질질 끌려 나가 오랏줄에 꽁꽁 묶이기를 기다린 김준모 장군이 천군부에서 내려온 명령서를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죄인 원균은 치우 천황과 단군왕검의 하해와 같은 은덕을 입었음에도 역심을 품고 역당들과 역모를 꾀하였으니 파직하고 천군부로 압송하라. 아울러 서해수군을 철저히 조사하여 가담자를 색출하고 경중에 관계없이 모두 잡아들여 천군부로 압송하라. 이 시간 부로 서해수군 사령부는 수장이 결정되기 전까지 방공여단에서 관리하며 휘하의 모든 선박과 수병은 강화도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를 어기고 임의로 벗어나는 자가 있을 시 참형에 처한다.”


국방부의 일이 충청도 홍산으로 전해진 것은 그 일이 있은 후 이레가 지나서였다. 갑자기 천군부와 국방부를 비롯한 모든 군 병력에 비상이 걸리며 모든 외출이 금지되고 영내 대기 명령이 하달되었다.

사태를 이상하게 생각한 권율 장관의 큰아들은 아버지께서 입궐하실 때 주고 간 편지를 식솔 중 발 빠른 아이에게 주어 한양을 떠나게 했다. 그 아이는 용케 삼엄한 한양의 경비를 뚫고 홍산으로 달려갔다.



홍산의 산채


“장군,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많은 협조자들이 자리를 이탈하거나 소식이 끊기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연결 고리를 확실히 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거사일을 앞당겨야 하지 않을까요?”

원래는 추수가 끝날 무렵인 가을 늦게 거사를 할 계획이었다. 군량미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그들로서는 들판의 곡식이 익을 때를 기다려야만 했는데 요즘 돌아가는 모양새가 이상하기만 했다.

“장군, 산 밑에서 얼쩡거리는 놈을 잡아왔사온데 권율 대장군 댁의 서신을 가져왔다고 하기에 데려왔나이다.”

최담령과 김덕령 장군은 좌부장이 데려온 자의 행색을 살펴보았다. 언젠가 권율 대장군 댁에서 한번 본 적이 있는 듯했다.

김덕령 장군이 손을 내밀었다.

“그 서신을 이리 줘봐라.”

서신을 천천히 읽어가던 김덕령 장군은 얼굴색이 하얗게 변해가며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장군, 무슨 내용이기에 그러하십니까?”

최담령이 김덕령이 떨어뜨린 서신을 주워 들었다.

“계획이 이미 발각되었다는군. 국방부가 폐쇄되고 관련자들이 모두 잡혀 들어갔어.”

이미 한양에서의 내응은 불가능해진 것이다. 천군부에서는 벌써 토벌대를 준비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일이 발각된 지 이레가 지날 때까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으니, 이미 일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 같았다.

이런 중대한 때에 이몽학 대장군은 전라도 각지를 돌며 은거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으니 큰일이었다.

김덕령은 불길한 생각들을 떨쳐 버리고 정신을 가다듬어 일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전령대를 불러라.”

김덕령의 큰 목소리가 산채를 울렸다.

잠시 후 각 전령대 수장들이 들어오자 다급히 명령을 내렸다.

“즉시 전령을 이몽학 대장군에게 보내고 급히 홍산으로 오시라고 하여라. 화급한 일이니 최대한 빨리 오시라 하고 관도를 피해 소로로 이동하시라 전해라. 서신을 들고 온 자는 잘 감시하도록 하고, 지금 즉시 모든 협조자들에게 연락하여 거사를 앞당길 것이니 준비하라 하라. 거사는 여름이 가기 전에 할 것이며, 정확한 일자는 추후에 통보해 줄 것이니 하시라도 출병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명을 전하라.”

뒤이어 다른 전령대에게도 급박한 명령이 떨어졌다.

“연락이 끊긴 자들의 소재를 파악하는 데 주력하라. 어디에 그들이 있는지, 왜 연락이 끊어졌는지를 소상히 밝혀 열흘 안으로 보고하라.”

“예, 장군!”

명을 받은 전령들이 각지로 흩어졌다.

그들이 사라진 후, 숲 속에서 일단의 무리들이 그 뒤를 쫓아갔지만 누구도 그들을 눈치 채지 못했다.


전령의 전갈을 받은 이몽학은 급히 산길을 따라 홍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직 경상도 쪽을 둘러보지도 못했는데 일급 귀환령이 떨어졌다.

‘무슨 급한 일이기에…….’

홍산에 도착한 그는 산채가 일급 경계 태세 상태인데다 많은 병사들이 무장한 채 요소요소에 배치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불안감이 가중되었다.

그때 김덕령이 그의 도착을 알고 뛰어나왔다.

“대장군, 이제 오십니까.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오시면서 혹여 불상사는 없었습니까?”

“아무 일 없었네. 갔던 일은 잘 되었고 전주목사도 이 일에 동참하기로 했지. 휘하의 병사 2천을 거느리고 거사에 참여할 거네.”

“잘된 일입니다만, 한양에서 변괴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시지요.”

김덕령이 내민 서신을 읽던 이몽학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김덕령을 바라보았다.

“사실을 확인하였는가?”

“전령을 보냈으니 조만간에 정확한 소식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일이 이 지경까지 되었다면 이미 전 조선이 다 안다고 할 수 있는데, 왜 아직까지 소문이 나지 않았단 말인가?”

“관아에는 이미 파발이 갔을 것이오나, 대부분이 작금의 사태를 관망하거나, 모병하느라 바빠 군대를 보내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저들이 군대를 파병할 터, 우리가 선수를 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약정된 거사일을 바꾼다는 건 어려운 일이네. 이 일에 수천, 수만의 목숨이 달려 있어.”

“그래서 이미 주요 협조자들에게 그간의 일을 설명하는 전령을 보내고 거사를 앞당길 것을 통지하였나이다.”

“그래, 그건 잘한 일이야. 하지만 한양의 소식이 급선무이니 기다려 봄세. 그동안에 우리는 군세를 점검하는 게 좋을 것 같네.”

먼 길을 오느라 목이 말랐던 그는 냉수 한 잔을 청해 들고는 그제야 생각난 듯 말했다.

“아참, 원균 장군에게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는가? 그리고 저들에 대한 정보는?”

“일이 이 지경이 되었다면 원균 대장군께도 변고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저들의 군대는 대부분 평안도 이북에 집중되어 있는지라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아직 움직인다는 정보는 없습니다.”

“우리 사정은 어떤가?”

“지금 산채에 천 명의 병사가 있고 충청도에서 관병이 3천, 전라도에서 2천, 협조자들의 수가 2천 도합 8천입니다만 당장 움직일 수 있는 인원은 채 7백 명이 되지 않습니다. 산채 인원들이 지금 전국 각지로 흩어져 있으니 그들을 불러들이고, 거사일을 앞당겨 군세를 불린 뒤에 빠르게 한양으로 치고 들어가야 합니다.”

“한양으로 보낸 전령은 언제 오는가?”

“일이 있은 후 바로 보냈으니 내일이면 소식을 가지고 올 것입니다.”

“일단 전령을 기다리기로 하지. 난 조금 쉬어야겠네. 아참, 천군부에서 파병한 천군과 천인들의 동태는 파악하고 있는가?”

“그들은 모두 전라도에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들은 충청도에 있는 인원을 모두 전라도로 움직였습니다. 주변에 있는 천군이나 지방군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습니다.”

“각지로 파견된 전령은 돌아왔는가? 특히 강화도가 중요해. 수군이 없으면 한강을 넘기가 힘들지. 그쪽의 사정이 한양보다도 더 급해.”

“아직 다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가까운 곳에 간 자들은 왔지만 먼 곳에 간 자들은 아직…….”

“알았네. 지금 같은 중요한 때엔 정보가 생명이야. 작은 거라도 놓치지 말고 보고하게.”

김덕령과의 대화를 마친 후 처소로 들어온 이몽학은 그의 스승이신 권율 대장군을 생각했다. 이번 거사도 그의 적극적인 권유와 도움으로 계획되었고, 그의 친필 서신이 많은 인사들을 가담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런 만큼 권율 대장군께서 감금되었다면 큰일이었다.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지면 많은 인사들이 이탈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자명했다.

다행히 하옥이 아닌 감금이라 했으니 어쩌면 저들은 아직까지 이번 거사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렇지 않았다면 단지 감금으로 끝냈을 리 만무했다. 더군다나 자신이 전라도를 활보하고 다닐 수도 없었을 것이고 조선이 이렇듯 조용할 수는 없었다.

스승님이 못난 제자를 위해 모진 고초를 당하고 있으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고심하던 이몽학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피곤에 지쳐 쓰러졌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눈을 뜬 이몽학은 처소에 김덕령과 최담령이 들어온 것을 보고 자세를 바르게 했다.

“장군, 대장군!”

“무슨 일인가?”

“대장군, 한양과 강화도를 다녀온 전령이 방금 왔사온데 서신의 내용이 사실인 것 같사옵니다. 워낙에 경비가 삼엄하여 한양에 들어가지도 못 했다 하더이다. 하지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미 국방부는 폐쇄되었고 많은 협조자들은 식솔들과 함께 어디론가 끌려갔다고 하옵니다. 아직 우리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시간문제이오니 거사일을 하루라도 앞당기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조만간 한양의 소식이 전국으로 퍼질 것이옵니다.”

“그렇군. 사실이란 말이지…….”

잠시 허탈함이 전신을 휘감았다. 그렇게 조심했건만 들통이라니. 이제는 물러날 수도 없었다. 지금 그만두기엔 그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앞으로 닷새 후 거사를 할 수 있게 준비하도록 하라. 칠월 초닷새 밤에 출병하겠다. 각지에 전령을 보내 본대에 호응토록 하라. 약조를 어기면 배신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임을 분명히 알리라.”

“예, 장군.”

“오늘은 우리의 계획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검토하도록 하지.”

“알겠사옵니다.”

모두들 상기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 오후, 명을 받은 전령들은 다시 각지로 흩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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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대륙진출 +4 15.01.11 10,848 305 12쪽
30 대륙진출 +3 15.01.10 10,492 271 12쪽
29 대륙진출 +4 15.01.09 11,840 292 16쪽
28 대륙진출 +3 15.01.08 11,922 290 13쪽
27 대한제국 +2 15.01.07 11,670 353 14쪽
26 대한제국 +3 15.01.06 11,056 269 16쪽
25 대한제국 +17 15.01.05 11,706 319 18쪽
24 대한제국 +5 15.01.04 11,814 293 16쪽
23 대한제국 +3 15.01.03 12,389 330 14쪽
22 대한제국 +3 15.01.01 12,336 281 22쪽
21 대한제국 +6 15.01.01 12,389 334 17쪽
20 대한제국 +5 14.12.31 12,855 320 19쪽
19 오사카방화 +7 14.12.30 11,954 292 16쪽
18 오사카방화 +4 14.12.28 11,519 274 17쪽
17 오사카방화 +5 14.12.27 11,759 265 17쪽
16 오사카 방화 +2 14.12.25 13,070 321 17쪽
15 이몽학의 난 +3 14.12.22 12,944 302 17쪽
14 이몽학의 난 +4 14.12.21 12,168 310 21쪽
» 이몽학의 난 +3 14.12.20 12,694 306 21쪽
12 이몽학의 난 +3 14.12.19 13,818 306 25쪽
11 왜란종결 +5 14.12.18 13,350 285 17쪽
10 왜란종결 +5 14.12.17 13,682 304 26쪽
9 왜란종결 +5 14.12.16 14,514 310 22쪽
8 왜란종결 +5 14.12.15 15,073 335 24쪽
7 3. 왜란종결 +4 14.12.14 15,792 340 21쪽
6 새로운 세상 +6 14.12.13 16,386 338 20쪽
5 2 새로운 세상 +7 14.12.11 17,158 321 23쪽
4 2 새로운 세상 +7 14.12.11 19,704 387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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