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에구에구 님의 서재입니다.

천군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無明에구
작품등록일 :
2013.06.18 10:38
최근연재일 :
2015.07.22 20:59
연재수 :
153 회
조회수 :
1,184,011
추천수 :
28,362
글자수 :
1,225,279

작성
14.12.11 18:19
조회
17,157
추천
321
글자
23쪽

2 새로운 세상

DUMMY

제주읍성 제주 목사 관아


“여기 모이신 분들은 이곳이 앞으로 건설될 새로운 대한민국의 시험장이라 생각하시고 8월까지 3개월 동안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번에 겪은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다음에 본격적으로 있을 조선의 개혁에서는 시간을 많이 단축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기술자 단장을 맡고 있는 김영철의 당부였다. 그의 위치는 조금 애매모호했지만 암묵적으로 모두들 조준옥 사령관과 동급으로 대하고 있었다. 전 시대부터 그들은 동급이었고 더군다나 절친한 친구 사이이기도 했다.

“그럼 각자 맡은 분야에 대한 보고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부터 학교를 개교할 예정입니다. 3개월 동안 한글과 산수를 각각 두 시간씩 가르칠 예정입니다. 현재까지 참여한 인원은 천 명이 넘어섰기에 각 성에 한 개씩 운영하고 추후에 추가할 예정입니다. 여기에는 정훈장교를 비롯하여 민간인 백 명이 투입됩니다. 군사 학교는 군부에서 별도로 운영할 예정입니다.”

“현재 정확한 제주도민의 인구를 파악 중이며 이 일에만 공수여단 전 병력이 동원되었습니다. 이 달 말 중으로 파악이 끝날 것이라고 합니다. 아울러 토지 조사도 병행되고 있습니다. 워낙 문서가 빈약하고 계측도 엉망이라 다음 달이나 되어야 구체적인 윤곽이 나올 것 같습니다.”

“제주 순환도로는 어느 정도 윤곽이 나왔고 8월까지 관통도로를 신설할 예정입니다. 여기엔 공병여단이 전부 투입될 것입니다. 길이 없는 구간이 많아서 상당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생각되지만 화약을 이용하면 8월 안으로 한 군데 정도는 공사가 끝날 예정입니다.”

“풍력 발전만으로는 원활한 전력을 생산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지금 소형 화력 발전소를 건설하고 있습니다만 인원이 부족하여 다음 달에나 완공될 것 같습니다.”

김영철 단장은 각 분야를 맡고 있는 책임자들의 보고가 끝날 때마다 열심히 노트에 뭔가를 적었다.

민간인 지원단 소속 인원들은 제주도 행정을 완전히 접수하고 제주도 전체를 장악했다. 일부 지배층들이 반란을 도모하였지만 대한민국인들을 천신으로 생각하고 받드는 제주 도민들의 밀고로 대부분 사전에 발각되어 체포되었고 간혹 조각배를 타고 전라도로 탈출을 감행한 자도 있었지만 검거되었다.

“이제 제주도는 우리가 장악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조만간 군사 작전이 있을 예정입니다. 그때까지 좀 더 확실하게 제주도민들의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잘 해왔습니다만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절대로 제주도민들 앞에서 추태를 부리지 마십시오. 하다못해 화장실도 조심해서 가십시오.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이 신뢰입니다. 그럼, 이것으로 회의를 마치겠습니다.”

김영철 단장이 노트를 덮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회의 참석자들이 하나 둘 일어났다. 그들은 서둘러 자신들이 맡고 있는 부서 사무실로 발길을 옮겼다. 벌여 놓은 일이 한두 개가 아니어서 지금 제주도는 어딜 가더라도 시끌벅적했다.


너무나도 세상이 빠르게 움직였다.

새로운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던 지식인들은 대부분 옥에 갇히는 꼴을 면하지 못했고 모든 토지는 완전 몰수되어 농민들에게 균등하게 분배되었다. 삼 할의 세금을 낸다는 조건이 달려 있었지만 농민들에게는 문제도 아니었다. 자신의 토지를 소유한다는 것 자체가 큰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정책으로 민심을 완전히 획득한 대한민국인들은 현대화된 행정 조직을 갖추고 앞으로 있을 한반도 경영을 차근차근 대비해 나갔다.

제주읍성의 관아에서 민간인의 회의가 있을 무렵 대정현성에 사령부를 설치한 원정군 사령부에서는 모든 장성들과 사령부 참모진들이 모여 한반도 진주 전략과 명과 금, 왜에 대한 전략을 수립하는 마라톤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일전에 한반도에 투입된 정찰대로부터는 연락이 있었습니까?”

“예, 사령관님. 그들은 현재 한양에 침투해 있으며, 추후 있을 공격에 대비하여 주요 인사 및 주요 지점에 대한 정찰 활동을 개시한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앞으로 열흘에 한 번씩 보고를 해올 것입니다.”

“그들의 체류는 누가 책임지고 있는 거요?”

“제주에서 제법 크게 장사를 하는 김 초시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가 소유하고 있는 한양의 한 점포를 거점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각별히 안전에 신경 쓰도록 하시오. 김 초시가 믿을 만한 사람인 건 알겠지만 완전히 우리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 말이오.”

대면한 적이 있던 김 초시의 얼굴이 떠오른 조준옥 사령관은 그의 얼굴에서 전형적인 장사꾼의 모습을 발견했었다. 시대가 다르다고 장사꾼의 습성이 다를 리 없었다. 필요하다면 양다리 세 다리를 걸치고도 나중에 가서는 태연하게 그런 적 없다고 시치미를 뚝 떼는 것이 장사꾼들이다.

“그건 그렇고, 작전부에서 기안한 앞으로의 작전에 대해 이제 그만 결론을 내리도록 합시다. 너무 오래 끌었소.”

조준옥 사령관이 작전참모장을 바라보자 작전 참모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작전참모부 소속의 중령이 작전 개요 지도를 벽에 걸었다.

“일단 9월에 있을 한양 접수 작전입니다. 공수여단이 가장 먼저 투입됩니다. 한강을 고속정대가 거슬러 올라가 내륙 깊숙이 침투합니다. 고속정 뒤에는 2기갑여단이 장갑차 50대와 함께 투입됩니다. 아울러 강화도를 1기갑여단이 장갑차 30대를 대동하고 상륙합니다. 3기갑여단 전 병력이 소총으로 무장하고 한강을 거쳐 2기갑여단을 지원합니다. 9월 1일 22:00에 작전을 개시하여 24:00에 침투 완료. 익일 03:00에 한양을 접수하고 10:00에 방공여단 전 병력과 잔여 해군 병력이 마포나루를 거쳐 한양으로 입성합니다. 제주도는 공병여단과 민간인 부대가 도로 건설과 함께 방어에 임합니다. 본 작전에는 수송선 3척과 상륙함, 지원함 각 1척이 지원합니다. 헬기가 총동원되며 자주포대 1개 포대가 2기갑여단을 지원합니다. 이 작전의 요체는 1공수여단이 얼마나 빨리 궁을 점령하고 선조 및 광해군등 왕족의 신병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최대한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실탄 장전을 건의합니다.”

참모의 작전 설명에 알맞게 지도가 교체되었다.

“한양 접수 완료 후에는 의병과 관군을 규합하여 울산과 부산에 주둔하고 있는 왜군을 공격하여 포로를 최대한 많이 획득합니다. 그 여세를 몰아 바로 일본 대마도와 큐슈를 접수합니다. 한반도에서의 작전과 일본 큐슈 점령전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큐슈에서 생산되는 식량을 한반도로 수송하여 식량을 바탕으로 우리의 입지를 강화하게 된다면 1차 목표를 성공리에 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 대마도 접수 작전은 제주도민과 해군으로만 수행할 예정이며 큐슈 접수 작전은 의병과 조선 수군을 이용할 예정입니다. 그간 왜에게 당한 것이 많으니 훌륭한 전과를 이뤄낼 것이라 생각됩니다.”

제법 긴 작전참모장의 작전 개요를 듣고 있던 1기갑여단장 노성민 준장이 한 가지 의문을 제기했다.

“사대부들을 어찌 처리할 생각이십니까? 그들을 모두 통제하기는 힘들 텐데. 더구나 의병들이 우리의 통제 하에 들어올지도 의문이고 말입니다.”

“사대부는 일단 왕명으로 해결합니다. 모든 관료들을 파직시키고 새로이 임명합니다. 되도록 중인들을 등용하고 명망있는 관료들은 유임시킵니다. 의병들은 왜와의 싸움을 오히려 반기지 않을 까 싶습니다. 거기다 왕명이 있으면 크게 문제되지는 않겠죠. 보다 확실하게 하기 위해 이달 말부터 한양에 천군이 내려온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릴 예정입니다.”

“그런데 지금 선조는 어디에 계시오?”

시큰둥하게 작전참모장의 설명을 듣고 있던 1함대 사령관인 김지영 소장이 입을 열었다.

지금은 해군이 힘을 쓸 일이 거의 없다. 기껏해야 목선을 상대해야 될 해군으로서는 고속정 한 척만으로도 목선 수백 척을 상대할 수 있다. 물론 탄약 지원이 계속된다는 가정 하에서지만. 어쨌거나 하릴없는 방관자의 입장에 서게 된 그로서는 당연한 질문들만 해댔다. 왕은 당연히 궁에 있어야 했다. 모두들 그럴 거라 생각했다.

김지영 소장의 질문에 작전 참모장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책상 위에 놓여진 노트북 키보드를 몇 번 두드렸다. 그는 모니터에 나와 있는 정보를 난처한 표정으로 읽어 나갔다.

“6월 14일 영유 출발, 강서 도착. 8월 11일 해주 출발. 임해군, 순화군과 상봉. 9월 22일 한양으로 떠남.”

“아니, 그럼 작전 개시일에 한양에는 아무도 없다는 말 아닙니까? 더군다나 작전참모장이 말하는 날짜는 음력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것 참…….”

한방 먹은 작전 참모장은 할 말이 없었다. 너무도 당연한 것을 그는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평상시라면 당연히 왕은 한양에 있을 것이지만 지금은 전시였다. 게다가 왜란이 일어난 지 1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작전을 처음부터 다시 짜든가 아님 선조를 모셔 올 부대를 따로 편성해야 되겠군요.”

김준용 공수여단장이 작전참모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만약 그의 말대로 왕가를 모셔 올 부대를 편성해야 한다면 자신의 부대가 투입될 가능성이 많았다.

“선조를 모셔 올 부대를 편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차라리 작전 일시를 한 달이나 두 달 뒤로 늦추는 것이 좋을 듯싶은데요.”

작전참모가 새로운 작전을 짜는 것에 난색을 표시했다. 제대로 된 지도 한 장 없는 상태에서 헬리콥터를 띄울 수는 없었다. 납치 작전의 특성상 밤에 이루어져야 하는데, 헬기의 야간 비행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한두 달 작전을 늦추면 바로 겨울입니다. 우리 군은 겨울에 대한 대비가 취약합니다. 겨울을 준비하는 시간만 해도 족히 서너 달은 걸립니다. 그것도 임시방편으로 말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제주도에서 나는 산물로는 우리 군대가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군수참모는 지금도 각 군에서 소모하는 엄청난 식량을 대느라 별 짓을 다 하고 있었다. 심지어 한라산에 사는 모든 동식물의 멸종을 우려해야 할 정도로 사태는 심각했다.

“일단 정보를 취합하기 위해 해주에 정예의 정찰대를 파견하도록 합시다. 이번 작전에는 잠수함을 투입합니다. 한양에 있는 정보대에게도 선조 일행을 추적하라 하시고요. 일단 정확한 정보가 도착한 이후에 다시 한 번 작전을 검토합시다. 참모진은 다시 한 번 작전을 검토해서 완벽을 기하기 바랍니다.”

오늘도 끝내 결론을 내지 못하고 회의가 종결되었다. 막상 일을 시작하긴 했지만 쉬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조준옥 사령관은 끝내 한숨을 내쉬며 회의실을 나섰다.



1594년 5월 20일 제주도 모슬포 농촌


제주도 서쪽 해안을 따라 모슬포까지, 그리고 서귀포 쪽 속치 자구리와 선반내라 불리우는 지역에 펼져진 논에는 벼가 심어졌다. 이곳은 화산 폭발의 영향을 덜 받아 현무암층으로 대변되는 제주도에서도 벼농사가 가능한 몇 안 되는 지역이다.

벼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들판을 바라보며 불어오는 바람을 시원스레 맞고 있는 김준영 박사는 두 달간의 기간이 꿈만 같았다.

사막의 열악한 환경에서 수경 벼 재배 연구를 위해 가져온 종자들이 논에서 커가고 있었다. 저놈들이 다 자라 수확할 때쯤이면 천군은 항거할 수 없는 용오름이 되어 하늘을 놀래키고 조선의 근간을 뒤집어 버리게 될 것이다.

한반도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김준영 박사는 김포 일대의 평야 지대에 이곳에서 자라고 있는 종자의 개체수를 늘일 것이고 얼마 후에는 한반도 전역에 뿌릴 생각이다.

‘농업에 신기원을 개척한 김준영! 신농씨가 내려오셨다고 농민들이 나를 얼마나 존경할까. 흐흐흐흐, 아마 내가 죽은 뒤 조선에는 나를 위해 제사를 지내 주는 사당도 생길지 몰라.’

들판을 바라보며 김준영 박사가 히죽 히죽 댔다. 옆에 있던 이상진 박사가 옆구리를 콕 찔렀다.

“밥 먹으러 가지.”

“어? 응, 그래.”

김준영은 움찔하며 앞서 가는 이상진을 따라 갔다. 한껏 들떠 있던 터라 기분을 잡치긴 했지만 배에서 음식 달라는 신호 계속해서 들려왔다. 요즘 너나 할 것 없이 소식을 하는 처지라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허기를 심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었다.

앞서 가고 있는 이상진 박사는 대한민국의 최연소 박사이며 최고의 석학임을 자타가 공인했던 사람이다. 그는 학계에 남아 후진을 양성하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추잡한 줄대기에 연연하는 학계의 더러운 고리가 만들어 놓은 높고도 두터운 벽으로 인해 끝내 교수가 될 수 없었다. 그런 그를 부른 것은 대학교의 연구소가 아닌 국방연구원이었다.

교수의 꿈을 접은 이상진 박사는 그곳에서 신무기 개발에 힘썼다. 그리고 그가 새롭게 개발한 휴대용 대공 미사일의 시제품을 들고 사막에서의 효용과 한계를 연구하기 위해 비밀리에 이란 파병단에 승선했지만 운명의 장난은 그를 5백 년 전의 제주도로 보내 버렸다.

요즘 이상진 박사는 완전 농업 사회를 산업 사회로 빠르게 이전하는 방법과 그 부작용을 어떻게 하면 최소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논문을 작성하고 있었다. 이는 사령부에서 그에게 의뢰한 연구로, 현재의 기반으로는 앞으로 백 년이 지나도 동북아를 장악하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래서 뭔가 획기적인 프로젝트가 필요했다.

무기를 시대에 맞게 발전시키는 것은 다른 팀이 받아서 연구 중이었기에 그는 거대한 사회 구조의 틀을 재구성하는 프로젝트를 구상해야만 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자원의 확보였기에 그는 어제까지 전국의 지하 자원 분포를 조사한 표를 작성하였고 그 활용법을 구상했다. 중국과 일본, 시베리아의 지하 자원 분포도를 작성해야 하지만 정보량의 부족으로 확인된 정보만을 취합하는 수준이다.

애석하게도 지금 가지고 있는 정보의 대부분은 CD로 저장되어 있는 백과사전과 부수적인 데이터 파일 정도였기에 조잡하기 그지없다. 자신이 살았던 시대 같으면 인터넷에 접속하여 쉽게 찾을 수 있을 만한 정보들도 여기에서는 하나하나가 많은 시간과 직접적인 노력을 요구하고 있었다. 어렵게 작성된 자료들도 직접 탐색해 보기 전에는 그 진위 여부를 가려낼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이상진 박사와 김준영 박사들 곁으로 아이들이 재잘대며 지나갔다. 새로 개설된 학교에서 공부하고 집으로 가는 아이들인 모양인지 책보를 하나씩 둘러멨다. 이달 초부터 각 읍성에는 8세에서 15세를 대상으로 하는 학교가 개설되어 한글과 산수를 가르치고 있었다.

멀리서 뛰어가는 청년들도 보였다. 군사 학교에서 훈련 받는 사람들로 점심때가 되자 훈련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는 광경이었다. 군사 학교는 1개월 과정으로 군사 훈련을 시키는 곳으로 신분의 차별을 두지 않고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었다. 그 때문인지 어느새 군사 훈련을 받는 젊은이가 1천여 명에 육박하고 있었다.



1594년 6월 20일 천군부 사령부


미래에서 온 사람들인 대한민국인들을 천신이라며 제주도민을 세뇌시키던 한 정훈 장교의 건의를 받아들여 민간인 지원단을 천인단, 군부를 천군부 개명하고, 앞으로 있을 조선의 효과적인 접수를 위해 행정 조직과 군 조직을 개편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급히 소집된 장령들이 컨테이너를 여러 개 겹쳐 놓은 천군부 회의실로 속속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오전에 육지 정찰대가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선조의 행방을 몰라 난감해 했던 사령부로서는 정찰대를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해군 장성들이 들어오자 모든 자리가 들어찼다.

“금일 오전에 접수된 한양 정찰대의 보고에 따르면 선조 일행은 이미 작년에 한양으로 돌아와 월산대군과 계림군의 집을 번갈아 머무른다고 합니다. 따라서 기존의 작전을 변경 없이 시행할 것을 건의합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영유나 해주에 있을 거라 하지 않았소? 10월에나 한양에 도착한다더니, 정보의 신뢰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아닌지 모르겠소. 이미 우리는 미래의 정보를 바탕으로 작전을 수립하였는데 이렇게 되면 우리가 알고 있던 정보들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부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세워 진 작전으로 인해 치명적인 결과가 발생하는 것이 아닌지 심히 우려됩니다. 작전 참모장은 작전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야 될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1함대 사령관인 김지영 소장의 지적은 누가 보기에도 타당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육군 주도로 이뤄 지는 작금의 상황에 대한 은근한 불만이 실려 있었다.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작전참모장의 얼굴이 절로 찌푸려 졌다.

“물론 지금과 미래의 정보 사이에는 어느 정도 오차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정보는 충분히 신뢰할 만합니다. 그에 벗어나는 사건들은 그때그때 수정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세워 진 작계에 따라 훈련이 진행되고 있고 민간인들의 건설 계획이 수립되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재검토는 현실적으로 무리이며, 결정적으로 연료의 한계치를 생각한다면 당초 세워 진 계획대로 계속 진행되어야만 합니다.”

“그만 하면 되었소, 장군들. 김지영 소장의 의견도 타당하고 작전참모장의 의견도 타당하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일단 세워 진 작계를 현실에 맞추어 약간 수정하기로 합시다. 그건 그렇고, 요즘 해군 사정은 어떻습니까?”

조준옥 사령관은 해군과 육군 간의 마찰이 걱정스러웠다. 공군은 그 숫자나 고위 계급에 있어서 타군에 비해 월등히 떨어지기 때문에 군소리 없이 사령부의 지시에 따랐다. 하지만 해군은 달랐다. 지금 여기에 있는 해군 세력은 21세기에 있다 하더라도 무시 못할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화력 면에서는 오히려 육군을 능가하고 있고 장병들의 병력 수나 지휘관들의 연배도 무시 못했다.

큰기침을 몇 번 터뜨린 김지영 소장이 말문을 열었다.

“해군은 앞으로 두 번 내지는 세 번의 작전을 보조하는 것을 끝으로 지금의 해군력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물론 잘 아시겠지만 연료와 탄약, 그리고 부품 부족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수병들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사령관께서 해군의 미래에 대해 확실한 입장 표명을 해주셔야 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모두의 시선이 조준옥 사령관을 향했다. 그의 입은 느리고 힘겹게 열렸다.

“모두들 아시겠지만 함대와 항공기는 시간이 지나면 모두 해체되어 산업 기반 시설 건설에 투입되어야 될 운명입니다. 물론 만약을 대비하여 최소한의 기체와 함정을 유지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만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현재의 해군과 공군의 재건을 위해 빠른 시일 안에 유전을 확보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만 빨라야 앞으로 10년, 길면 15년 후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해군과 공군에게는 죄송합니다만 어쩔 수 없이 육군으로 편입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일부는 해군사관학교의 교관으로 임명될 수 있을 것이고, 희망자에 한해서 희망 시설에 투입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한반도와 큐슈를 장악한 다음의 일이기에 지금 당장 발표하고 결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음을 이해해 주시고 이런 현실적 문제에 대해 충분한 사전 설득 작업을 시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사령관의 차분한 설명이 끝났다.

김지영 소장으로서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었지만 심정은 착잡하기만 했다. 모든 해군 장병들이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운명을 사령관으로부터 직접 확인하고 나니 허탈감마저 찾아 들었다.

하지만 그런 감정에 머물 수만은 없었다. 언제 다시 지금과 같은 해군의 위상을 휘날릴 그날이 올지 모르지만, 해군이 해체되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해군 없이 앞으로의 작전이 성공할 수 없는 만큼 일단 공을 세워 놓고 그에 걸맞은 자리를 요구하면 아무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 점을 해군 장병들에게 이해시키면 능력 이상의 전과를 올릴 수도 있다.

천군부 고위급 작전 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컨테이너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군수 지원에 대한 회의가 열렸다. 그 외에도 제주도 곳곳에서는 매일매일 장교들과 기술 지원단들의 회의가 끊이질 않았다.

“식량이 많이 부족합니다. 지금까지는 관아에 있는 곡식과 지방 유지들의 곡식을 빼앗아 사용했지만, 조만간 일반 백성들에게 갹출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한 달이 문제인데, 대체 음식이라는 것이 생선밖에 없어서 걱정입니다. 함정을 고기잡이에 사용할 수도 없고…….”

군의 보급을 책임지고 있는 보급 참모부에서는 식량 문제와 앞으로 닥칠 겨울을 대비하기 위한 회의를 매일 하고 있었지만 뾰족한 수를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일본 놈들 것을 좀 빌려 올까요? 지금쯤 대마도에다 엄청 쌓아 놨을 텐데요.”

장난기 어린 김 중령의 의견에 누구도 호응해 주지 않았다. 김 중령은 지금까지 너무 황당한 의견들만 내놓았다. 한 번은 전라도를 털자고 하더니 다음에는 상해를 털자고 했다. 전직이 도둑이거나 해적 집안 출신이었을 거라는 농담이 동료들 사이에 오가곤 했다.

“훈련생들의 훈련도 시킬 겸 사냥 훈련을 강화시키고 해산물 채취에 신경을 쓰도록 합시다. 식량 통제를 당분간 철저히 하도록 하고 각 부대별로 식량 절약에 협조하도록 공문을 돌리십시오. 이상으로 회의를 마칩시다. 그리고… 어이, 김 중령은 남아.”

김 중령이 일어나려다가 뜨끔한 표정으로 엉거주춤 다시 앉았다.

다들 나가자 보급참모장과 김 중령만이 남아 있는 회의실에 한기가 돌았다. 김 중령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바닥에 있는 발가락만 쳐다보고 있는데 보급 참모장이 입을 열었다.

“아까 자네가 한 말 말이야…….”

“예? 아, 예.”

“그거 가능할 것 같나?”

“정보만 확실하다면 모조리 빼앗아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보를 구할 수가 없는 데다 사령부에서 허가해 줄지도 의문입니다. 가뜩이나 기름 통제가 심한데…….”

“그렇겠지. 하지만 놀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 일단 세부 계획을 짜 봐. 필요 인원과 장비를 조사해서 내일까지 올려 보도록. 물론 유류 소비를 최소화해야겠지?”

“예, 알겠습니다.”

김 중령이 실실 웃으면서 회의실을 나가자 참모장은 한 손으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일어났다. 무려 만 명을 먹여 살리는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는 그였다. 현재의 물자 부족은 매우 심각해 바닥이 보이는 쌀독을 퍼내는 며느리의 심정처럼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7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천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3 서쪽으로 +8 15.02.15 8,049 234 14쪽
52 서쪽으로 +3 15.02.14 7,773 211 11쪽
51 서쪽으로 +4 15.02.13 8,227 253 14쪽
50 서쪽으로 +5 15.02.12 8,558 238 13쪽
49 두마리 토끼 +8 15.02.11 8,281 230 17쪽
48 두마리 토끼 +5 15.02.10 7,983 233 12쪽
47 두 마리 토끼 +4 15.02.09 8,533 222 16쪽
46 두 마리 토끼 +6 15.02.04 8,738 246 13쪽
45 두 마리의 토끼 +4 15.02.04 8,782 231 11쪽
44 두 마리 토끼 +4 15.02.03 8,860 235 14쪽
43 두 마리 토끼 +6 15.01.29 9,729 253 14쪽
42 두 마리 토끼 +4 15.01.27 9,735 261 13쪽
41 대륙진출 +4 15.01.27 9,497 232 12쪽
40 대륙진출 +5 15.01.23 10,221 280 27쪽
39 대륙진출 +8 15.01.21 10,024 270 31쪽
38 대륙진출 +7 15.01.18 10,192 259 15쪽
37 대륙진출 +6 15.01.17 10,438 309 14쪽
36 대륙진출 +8 15.01.16 10,196 262 15쪽
35 대륙진출 +4 15.01.15 10,110 298 16쪽
34 대륙진출 +6 15.01.14 10,158 277 15쪽
33 대륙진출 +5 15.01.13 10,636 284 15쪽
32 대륙진출 +5 15.01.12 10,845 310 14쪽
31 대륙진출 +4 15.01.11 10,848 305 12쪽
30 대륙진출 +3 15.01.10 10,491 271 12쪽
29 대륙진출 +4 15.01.09 11,840 292 16쪽
28 대륙진출 +3 15.01.08 11,922 290 13쪽
27 대한제국 +2 15.01.07 11,670 353 14쪽
26 대한제국 +3 15.01.06 11,056 269 16쪽
25 대한제국 +17 15.01.05 11,706 319 18쪽
24 대한제국 +5 15.01.04 11,814 293 16쪽
23 대한제국 +3 15.01.03 12,389 330 14쪽
22 대한제국 +3 15.01.01 12,336 281 22쪽
21 대한제국 +6 15.01.01 12,388 334 17쪽
20 대한제국 +5 14.12.31 12,855 320 19쪽
19 오사카방화 +7 14.12.30 11,953 292 16쪽
18 오사카방화 +4 14.12.28 11,519 274 17쪽
17 오사카방화 +5 14.12.27 11,759 265 17쪽
16 오사카 방화 +2 14.12.25 13,070 321 17쪽
15 이몽학의 난 +3 14.12.22 12,944 302 17쪽
14 이몽학의 난 +4 14.12.21 12,167 310 21쪽
13 이몽학의 난 +3 14.12.20 12,693 306 21쪽
12 이몽학의 난 +3 14.12.19 13,818 306 25쪽
11 왜란종결 +5 14.12.18 13,350 285 17쪽
10 왜란종결 +5 14.12.17 13,682 304 26쪽
9 왜란종결 +5 14.12.16 14,514 310 22쪽
8 왜란종결 +5 14.12.15 15,073 335 24쪽
7 3. 왜란종결 +4 14.12.14 15,792 340 21쪽
6 새로운 세상 +6 14.12.13 16,386 338 20쪽
» 2 새로운 세상 +7 14.12.11 17,158 321 23쪽
4 2 새로운 세상 +7 14.12.11 19,704 387 2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