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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구에구 님의 서재입니다.

천군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無明에구
작품등록일 :
2013.06.1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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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2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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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2.1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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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새로운 세상

DUMMY

1594년 4월 29일 새벽 00:30 제주읍성 상공


제주 목사가 기거하고 있는 제주도에서 가장 큰 성인 제주읍성으로 괴성을 지르는 헬기들이 다가갔다. 역사 기록에 의존하여 침투 작전을 펼치고 있는 공수여단 소속 병사들은 불안하기만 했다. 휴대 장비의 우수함에서 오는 믿음과 시끄러운 헬기로부터의 음이 어느 정도 불안감을 밀어내곤 했지만 전투가 주는 원초적인 두려움을 완전히 떨치게 하지는 못했다.


―중대장이다. 1소대는 관청을 빠른 시간 내에 접수하고 제주 목사 및 관리들의 신병을 확보하라. 2소대와 3소대는 각 성문과 성곽 주요 지점을 확보하고 자리를 이탈하지 마라. 무단 접근 자는 그 신병을 확보하라. 최대한 살상을 자제하도록. 건투를 빈다. 각 소대 별 산개!

네 대의 치누크 편대는 각각의 목표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뒤따르던 AH―1S 코브라 헬기가 만약을 대비해 1소대를 따라 움직이며 엄호했다.


제주도에는 왜의 대규모 공격이 없었지만 온 나라가 전쟁 중인 터라 관청 곳곳에 횃불을 환하게 밝힌 채 경계를 서고 있었다.

“우리가 오는 줄 알고 횃불까지 켜 놓고 기다리고 있다니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야.”

정확성이 의심스러운 500년 후의 지도를 바탕으로 관청을 찾아가고 있던 헬기 조종사에게는 횃불은 충실한 길잡이 역할이 되어 주고 있었다. 각 성문으로 흩어졌을 2소대와 3소대를 실은 헬기 조종사들이 착륙 지점을 찾느라 고생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더욱 기쁘고 반가운 일이었다.

“정문에 보초가 둘 있습니다.”

아파치의 정찰 보고를 들은 중대장은 곧장 지시했다.

“1소대장은 곧장 중앙으로 들어가 목사의 신병을 확보하라. 난 정문으로 들어가겠다. 살상을 최소화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전 대원 랜딩 존에 다 왔다. 작계대로 움직이고 상호 무선을 연결시켜 놓기 바란다. 적의 화살에 주의하고 활을 든 자는 무조건 공격하여 제압한다. 안전 최우선. 이상이다. 무운을 빈다.”



제주 목사 관청 앞


타타타타타타타!

“말똥아범. 저디 무스꽝?”

번을 서고 있던 말똥아범은 할으방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밝은 빛을 내는 뭔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빠르게 자신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게메 마씀.”

빛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소리도 커지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날 봅서. 보랑지게 귀태우수다.”

“경 헙써.”

“억!”

말똥아범은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줄을 놓았다. 멍하니 말똥아범을 보던 할으방은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확실히 고무탄도 무서운 거구나! 잘 활용하면 사상자를 많이 줄이겠는데요, 중대장님?”

“그렇긴 하군. 이 중사는 역시 사격 솜씨가 좋아.”

중대장은 이 중사가 간단히 정문 앞의 보초들을 제압하자 일이 쉽게 풀릴 것 같았다. 첫 번째 단추가 잘 끼워 지고 있다는 느낌에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헬기가 정문에 착륙하자 본부 중대 중대장과 요원들이 뛰어내렸다. 대원 서넛이 빠르게 움직여 쓰러진 군졸들을 줄로 꽁꽁 묶어 놓고는 문을 활짝 열었다.

안쪽에는 헬기 소리에 놀란 군졸 20여 명이 창을 들고 몰려 나와 있었으나 제정신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처음 보는 헬기에 넋이 나갔는지 어떤 이는 고개를 든 채 넋을 놓고 있고 어떤 이는 절푸덕 앉아 오줌을 지리고 있었다.

“방독면 착용, 최루탄 발사.”

중대장은 방독면을 착용하며 헬기에 최루탄 발사를 지시했다. 하늘에서 하얀 꼬리를 달고 내려온 최루탄은 사방에 하얀 연기를 흩뿌렸다.

잠시 최루탄 가스가 퍼지기를 기다리던 중대장은 군졸들이 콜록콜록 기침을 하며 바닥에 엎어지기 시작하자 1소대 대원들에게 진압 명령을 내렸다.

“살살해라.”

눈물 콧물을 쏟아 내던 20여 명의 군졸들이 우르르 달려드는 병사들이 휘두르는 개머리판에 머리를 두드려 맞고 하나 둘 쓰러졌다. 1소대장은 분대 하나를 대동하고 관청 내원 쪽으로 달려갔다.

“최루탄 한 방에 스무 명이라… 이거 완전히 장난이구만.”

순식간에 제압해 나가는 부대원들의 모습에 중대장은 자신의 부하들이 믿음직스러웠다.

군졸들의 진압이 완료되자 병사들은 쓰러진 사람들을 묶어 한곳으로 끌고 갔다. 아직 정신을 잃지 않은 자들이 반항하였지만 굳센 군화발과 개머리판 세례에 이내 몸을 축 늘인 채 질질 끌려갔다.

두 명을 포로 감시 및 정문 경비로 남겨 두고 중대장은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내원 쪽은 1소대장에 의해 제압이 끝난 상태였다.

“두 명을 포로 감시 및 정문 경비로 남겨두고, 2개 분대는 외곽을 순찰하도록.”

중대장이 혹시 있을지 모를 탈출자를 잡기 위해 순찰을 지시했다.

관청 접수는 쉽게 완료되었다. 의외로 제주읍성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목사를 비롯하여 군졸들이 채 200명도 되지 않았다. 기록대로라면 제주도에 1천 명의 상비군이 존재해야 했지만 여러 성과 진으로 흩어진 터라 성에는 많은 군사가 있질 않았다.

진압 완료를 알리자 2진이 도착하여 추가 병력을 내려놓았다.

1대대장인 오종우 중령이 가볍게 인사를 받으며 관청 안으로 들어섰다. 심 대위는 대대장을 보자 잔뜩 군기 깃든 모습으로 경례를 올렸다. 언제 조인트를 깔지 모르는 오 중령이었기에 현황 보고를 올리면서도 내심 조마조마했다.

“충성! 1중대 보고합니다. 현 시각부로 본청을 완전히 장악하였으며 목사의 신병을 확보하고 200여 명의 포로를 획득하였습니다. 아군 사상자와 부상자는 없습니다. 2∼3소대 역시 각 성문을 장악하였으며 포로 150명을 획득하였습니다. 작전 과정에서 3명의 경미한 찰과상을 제외하면 모두 큰 피해 없이 성공리에 작전을 완료하였습니다. 윽!”

보고하던 심 대위가 오른쪽 무릎을 붙잡고 쓰러졌다가 고무줄처럼 퉁겨져 올라왔다. 오 중령의 무지막지한 조인트 까기가 시공간을 초월해서 나타났다.

“저분들은 포로가 아니다. 우리의 조상님 이시다. 알았나, 대위?”

“예, 대대장님.”

오 중령의 냉엄한 말과 눈빛에 더욱 얼어 버리는 심 대위였다.

“사령부에 작전 완료를 전달하고 이후 항구까지 길을 개척한다. 2중대가 개척, 3중대는 관청 내부 건물을 수색하여 주요 인사 신원 확보 작전을 전개하도록.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으니 사는 사람들은 모조리 신원을 확보한다.”

오 중령은 대대원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고는 목사가 있었던 방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1594년 4월 29일 오전 6시 고구려함


“대체적으로 이번 작전은 성공입니다. 약간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만 우려했던 대량 학살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일부 인사들이 성 밖으로 탈출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만 아직 제주도를 탈출하지는 못했을 것으로 파악됩니다.”

작전참모장의 보고를 들으며 조 사령관은 밝아 오는 아침을 아일랜드에서 맞이했다. 서서히 아침 해가 떠오르는지 어스름이 가시고 동쪽 하늘이 시나브로 밝아 오기 시작했다.

“잠수함 소식은 없나?”

“예, 아직 없습니다. 그들은 이곳으로 오지 않았거나 다른 시간대로 이동된 건 아닌지…….”

작전참모장이 말끝을 흐렸다.

“당시 잠수함의 심도를 알 수 있나?”

조준옥 사령관은 안타까웠다. 오지 않았다면 또 모를까,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동시대에 같이 왔다면 자신은 그들을 구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잠망경 심도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전방의 에너지 막을 관측하기 위해선 올라와야 했을 테니까요.”

“음… 오늘까지만 수색하도록 하지. 우리에게는 기름이 너무 부족해. 그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1594년 4월 29일 오후 5시 사고 해역 상공 해리어


사라진 잠수함을 찾기 위해 예상 지점을 수색했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사령부에서 수색 중단 명령이 내려와 있는 시점에서 조종사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모두 포기해 버린 그들이었지만 수색을 맡은 해군 항공대로서는 그들을 포기할 수 없었다. 오늘 아침에 전달받은 수색 중단 명령은 잠수함 승무원들에게는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였다.

막 마지막 편대가 수색 임무를 마치고 기수를 돌려 회항하려던 참이었다.

―지지직… 여기는 장보고다. 아무나 응답하라. 지이치치이…….

기다리고 기다렸던 무전이 들어왔다.

“박 소령님, 통신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한 참 앞서가던 2번기 조종사는 1번기 편대장에게 흥분된 마음으로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이런 젠장, 누구 없어? 아무나 좋으니까 대답하란 말야!”

오 대위가 수색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접하는 무선 통신이었다. 어쩌면 저들은 실종된 잠수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송신을 시작했다.

“여기는 고구려함 함재기다. 소속을 밝혀라.”

“다시 한 번 말해 주기 바란다. 방금 고구려함이라고 했나?”

“그렇다. 대한민국 해군 항공대 소속 오상구 대위다.”

“와아! 만세! 우린 살았다!”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다가 곧 주위가 조용해지며 다시 음성이 들려 왔다.

“나는 대한민국 해군 잠수함 사령부 소속 장보고함 통신장교 이소철 대위다. 무척 반갑다.”

“현 위치를 알려주기 바란다.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도 잘 모르겠다. 모든 항법 장치가 고장 나서 이리저리 헤매다가 마지막으로 부상하여 통신을 시도 중이다. 통신기도 망가져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통신 유지하고 잠시만 기다려라. 고도를 높이겠다.”

이번 비행은 그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현재의 유류 보급 사정으로 볼 때 이번이 마지막 비행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는 마음으로 예정 수색 지역을 벗어나 버렸고, 그 덕에 장보고와 만날 수 있었다.

기수를 올려 고도를 높이고는 해상 수색 레이더를 최대로 가동했다. 레이더 상에는 작은 점들이 깜빡이고 있었다. 사고 발생 지점에서 서쪽으로 150㎞ 이상이나 이동되어 있었다.

“여기는 오 대위다. 레이더로 확인했다. 접근하여 육안으로 확인하겠다.”

고도를 낮추고 레이더 상의 작은 점으로 빠르게 접근한 오 대위는 빨갛고 파란 신호탄이 연이어 올라오는 곳에서 잠수함 두 척이 떠올라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가까이 접근하자 잠수함 갑판에 수병들이 가득 밖으로 나와 손을 흔들어댔다.

“여기는 장보고함 함장이다. 여기가 어디쯤인가?”

“현재 위치하신 곳은 제주도 남서쪽 130㎞ 지점입니다.”

“함대는 어디에 있나?”

“지금 제주도에 있습니다. 제주도까지 항해가 가능하시겠습니까?”

“불가능하진 않지만 쉽지도 않다.”

“함장님, 죄송합니다만 저는 지금 돌아가야 합니다. 연료가 다 떨어져 갑니다. 구난 헬기와 함정이 곧 도착할 겁니다. 그때까지 조심하십시오.”

잠수함들은 이상한 에너지 막을 조사하기 위해 막 부상하던 중에 변을 당했다. 모두 깨어나 보니 잠수함은 엔진이 멈춘 채 해류를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잠수함의 장교와 수병들은 수상함처럼 바로 사태를 파악하지 못했다. 단지 기기의 고장으로 추측할 뿐이었다. 부상을 하고 나서야 그들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전파도 잡히지 않았고 교신에도 응답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디젤 엔진을 겨우 고쳐 항해를 시작했지만 항법 장치의 고장으로 인해 별자리를 보며 항해해야 했다. 생각만큼 쉽지 않아 몇 번의 시행 착오 끝에 겨우겨우 이곳까지 온 것이다.



1594년 5월 15일


제주도에서 길이가 가장 긴 냇가에 자리 잡은 냇기 마을을 방문한 공병여단 정훈 장교들이 마을 주민들이 모여 있는 공터가 보이자 헛기침을 해댔다. 고구려함 갑판에서 헬리콥터를 타고 이곳으로 오는 중이었다. 기름 소모를 극도로 통제하고 있던 원정단은 제주도민들에게 자신들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믿음을 주기 위해 제주도민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가끔씩 특수 효과를 연출하곤 했다.

“빨리 오시오.”

“알았으니 재촉하지 마소.”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공터에 몰려든 사람들은 어린아이들의 손을 잡고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천인들을 구경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이라는 방이 인근 마을 전체에 붙여 졌기에 걸을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 모였다. 행여 천신께 불경하여 큰일이나 당하지 않을까 싶은 주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냇기에 모여들자 족히 1천여 명은 넘었다.

“할머니, 어어어 저기 저기.”

“왜?”

할망은 누가 옷깃을 자꾸 붙잡아 당기자 오른쪽 다리에 고목나무의 매미마냥 매달려 있는 손자 놈을 바라보았다. 손자는 마을 뒤쪽에 있는 오름을 가리키며 두려운 눈망울로 할망을 올려 보았다.

“뒤에뒤에.”

웅웅웅웅―

“이놈의 자식이…….”

할망이 손자 놈이 가리키는 오름을 바라보다 그만 그 자리에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고동 오름을 넘어온 헬리콥터 한 대가 웅웅 거리며 다가오더니 이내 소리가 타타타타 굉음으로 바뀌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주변으로 흩어지느라 난리가 아니었지만 강력한 바람이 땅 위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키자 도망가기를 포기하고 그 자리에 엎드려 손을 싹싹 비볐다. 천신들이 화가 나서 자신들을 데려 가지 않기만을 빌고 또 빌었다. 허리에 지고 있던 허벅이 깨져 물이 흘렀지만 아낙네들이 갓난아이가 든 구덕을 감싸 안고 엎드렸다.

“살려줍소, 살려줍소.”

바닥에 바짝 엎드려 있는 사람들 머리 위를 한 바퀴 돈 헬리콥터가 적당한 공터에 착륙하고는 엔진을 껐다. 한참이 지나자 사람들이 하나 둘씩 고개를 들었다. 난생처음 보는 것에 대한 경외심 그리고 두려움이 가득 찬 그들의 눈망울에 헬리콥터는 거대한 알 수 없는 신의 동물로 보였다.

“왕 봅서.”

헬리콥터에 연결된 확성기를 잡고 있는 제주도 출신 천 병장은 자신의 제주도 사투리가 지금도 통용될지 의문이었지만, 정훈단은 그나마 서울 말보다는 나을 거란 생각에 천 병장을 이리저리 데리고 다녔다.

갑자기 들려 온 소리에 모여 있는 냇기 마을 사람들이 어리둥절하는 모습으로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았다. 하늘을 날아온 사람들이 자신들의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천인들이다. 백성들의 기도가 하늘에 닿아 우리가 내려왔으니 너희들은 그리 알고 천인의 명을 따르라.”

“사는 것에 걱정하지 마십시오. 조금 있으면 잘 살 수 있습니다.”

정훈장교의 말을 어줍잖게 통역하던 천 병장은 자신이 지금 똑바로 통역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릴 적 사용했던 말이지만 너무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터라 생소하고 낯설기만 했다.

“가자. 나머지는 육방들이 알아서들 하겠지. 다음은 어딘가? 그래, 모슬포군.”

자신이 할 말만 하고 다시 헬리콥터에 오른 정훈 장교는 조종사에게 그만 이륙할 것을 지시했다. 헬기 문이 닫히고 엔진이 돌아가자 다시금 일진광풍이 불어와 멍하니 있던 사람들의 고개를 자연스럽게 땅바닥으로 향하게 했다.

웅웅웅 하면서 헬기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공터에 엎드려 있던 1천여 명의 백성들이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천신이 내려왔다는 소문을 익히 들어왔던 사람들은 직접 천신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목격하고 나서는 대한민국인들을 완전히 하늘에서 내려온 천신으로 믿어 버리게 되었다..

정훈장교들이 그럴싸하게 이야기를 꾸며내어 대한민국인들을 천군으로 둔갑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제주도를 완전히 장악했다고 생각한 원정군 사령부는 일단 공수여단, 1기갑여단, 공병여단, 민간인들을 제주도에 상륙시키고 나머지는 선상 생활을 계속해 나갔다.

제주도민과는 간혹 몇 건의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큰 무리나 마찰은 없었다. 비슷한 외모에 같은 한민족의 말을 쓰니 거부감이 크게 약화되어 있었다.

오히려 대부분의 도민들은 천군을 하늘처럼 받들었다. 대한민국 군인들이 최우선적으로 모든 지배층들을 잡아들여 가둬 버리고 그들의 재산과 곡식을 도민들에게 나눠 줘 인심을 얻었다. 또 새 세상이 도래했음을 제주도 전역에 선포함으로써 민심을 잡은 것이다.

공병여단은 우선적으로 고속정의 접안 시설을 마련하기 위해 임시적인 항구를 건설하였다. 이로써 함대와 제주도 간의 연락 통로를 만들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제주도를 빙 두르는 도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아스팔트를 까는 것이 아니라 궤도 차량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기존의 길을 넓히는 일이었기에 기술자들과 제주도민들이 합세하자 일은 빠르게 진행되어 나갔다. 중장비를 사용했더라면 훨씬 빨리 끝났을 일이지만 한 방울의 기름이 아쉬운 때에 이런 일에 기름을 허비할 수는 없었다.

모든 유류 소비는 전투 시에만 제공되도록 규정되었으며 중장비의 도움이 필요한 난공사 시에만 투입이 허가되었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부족한 에너지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자들은 모든 함이 장비하고 있는 비상 발전기를 뜯어내 풍력 발전기를 만드는 부품으로 사용했다. 그렇게 아쉬운 대로 전력을 생산하여 사용하고 있었으나 어둠을 밝히는 용도로 쓰기에는 많이 모자랐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병들은 조선 시대에 걸맞게 밤에는 대체 기름을 이용한 등잔불이나 호롱불을 사용하고 있었다.



제주도 어느 마을


‘이상한 복장에 말이나 소가 끄는 것이 아닌데도 커다란 쇳덩어리를 움직이는 것을 보니 그들은 틀림없이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이다. 들리는 말로는 진짜로 하늘을 날아다닌다고 한다. 놀라운 건 신선들이 알려준 대로 백록담 물을 끌어다 농사를 지으니 이렇게 쉬울 수가 없다. 백록담을 이용할 생각을 하다니 그들은 틀림없는 천신이다. 아마도 왜놈들에게 어려움을 당하는 조선 백성을 불쌍히 여겨 하늘님께서 보내셨으리라. 학교를 열어 신분에 상관없이 배우고자 하는 자는 다 받아들인다 하니 나도 한번 가봐야겠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뜬눈을 새운 개똥아범은 올해로 스물이었지만 허구한 날 빈둥빈둥 노는 게 일이었다. 그런 개똥아범이 하룻밤을 뜬눈으로 세우고 다음날 아침 봇짐을 지고 집을 나서게 만든 것은 어제의 일 때문이었다.


어제도 개똥아범은 하는 일 없이 동네를 기웃거리며 돌아다녔는데 이방이 마을 담벼락에 풀칠을 하는 것이 보였다.

“나리, 안녕하셨습니까요?”

풀칠을 하던 이방은 개똥아범이 나타나자 내려놓은 종이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개똥아범이구먼. 저것 좀 집어주게나.”

“네, 네. 이것 말씀이시죠?”

개똥아범이 종이 한 장을 조심스레 집어 주자 이방은 들고 있던 붓을 입에 물고는 양손으로 종이를 들어 벽에 붙였다. 이방은 소맷자락을 들어 올려 종이가 찢어지지 않도록 잘 문지르고는 개똥아범을 돌아보았다.

“자네, 요즘 뭐 하나? 이번에 천신께서 자네 같은 젊은이를 모집한다고 하는데 한번 가보지 않으려나?”

이방이 마침 잘되었다는 듯이 개똥아범에게 운을 띄웠다.

“천신들께서 뭐 하러 저 같은 무지렁이를 모은 답니까요, 나리?”

“무지렁이니까 모으는 것이지, 이놈아. 너 같은 무지렁이들에게 천신들께서 글과 신문물을 가르쳐 준다고 야단이시다. 참 고마운 분들이시지. 이런 기회는 평생 없을 테니 개똥아범도 잘 생각해 보라고. 몇 달 고생하면 떡하니 벼슬 자리도 준다더라.”

벼슬 자리를 준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진 개똥아범이었지만 금세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농이 어디 있습니까? 세상천지에 저 같은 무지렁이에게 벼슬 자리가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절 놀리시려면 이만 갈랍니다.”

씩씩거리며 모퉁이를 돌아가는 개똥아범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방이 개똥아범을 뒤쫓아가며 소리쳤다.

“이놈아, 그러니까 천신이시지. 천신이 하시는 일에 농이 있더냐? 잘 생각해 보고 관아로 나올 테면 나오고 말 테면 말아라. 뭐 하러 저런 놈을 모집한다는 건지, 에잉!”

바람이 휙 불어 종이가 날리자 이방은 사색이 되어 종이를 주워 모았다. 혹여 흙이 묻지나 않았는지 요리조리 살펴보던 이방은 이내 풀 통을 들고는 다음 마을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오늘 열 군데는 더 돌아야 했기에 바삐 움직이지 않으면 방을 다 붙이지 못할 수도 있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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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대륙진출 +3 15.01.10 10,483 271 12쪽
29 대륙진출 +4 15.01.09 11,834 292 16쪽
28 대륙진출 +3 15.01.08 11,915 290 13쪽
27 대한제국 +2 15.01.07 11,661 353 14쪽
26 대한제국 +3 15.01.06 11,043 269 16쪽
25 대한제국 +17 15.01.05 11,694 319 18쪽
24 대한제국 +5 15.01.04 11,804 293 16쪽
23 대한제국 +3 15.01.03 12,381 330 14쪽
22 대한제국 +3 15.01.01 12,328 281 22쪽
21 대한제국 +6 15.01.01 12,381 334 17쪽
20 대한제국 +5 14.12.31 12,841 320 19쪽
19 오사카방화 +7 14.12.30 11,943 292 16쪽
18 오사카방화 +4 14.12.28 11,511 274 17쪽
17 오사카방화 +5 14.12.27 11,749 265 17쪽
16 오사카 방화 +2 14.12.25 13,062 321 17쪽
15 이몽학의 난 +3 14.12.22 12,937 302 17쪽
14 이몽학의 난 +4 14.12.21 12,160 310 21쪽
13 이몽학의 난 +3 14.12.20 12,684 306 21쪽
12 이몽학의 난 +3 14.12.19 13,794 306 25쪽
11 왜란종결 +5 14.12.18 13,343 285 17쪽
10 왜란종결 +5 14.12.17 13,674 304 26쪽
9 왜란종결 +5 14.12.16 14,506 310 22쪽
8 왜란종결 +5 14.12.15 15,062 335 24쪽
7 3. 왜란종결 +4 14.12.14 15,781 340 21쪽
6 새로운 세상 +6 14.12.13 16,370 338 20쪽
5 2 새로운 세상 +7 14.12.11 17,140 321 23쪽
» 2 새로운 세상 +7 14.12.11 19,682 387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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