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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군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無明에구
작품등록일 :
2013.06.1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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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2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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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2.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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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왜란종결

DUMMY

단기 3927년(1594) 12월 오사카항


과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정벌을 준비하면서 새롭게 쌓았던 오사카성은 지난달에 있었던 천군의 공격으로 폐허나 다름없게 변해 버렸다. 반면에 그 뒤에 자리한 항구는 활기로 넘쳐 나고 있었다.

조선의 판옥선들이 화물을 싣고 들고 나길 반복하며 짐을 부리는 인부들과 그들을 통제하는 사람들, 창을 들고 경비하는 조선 병사들로 항구는 혼잡하기 그지없었다.

“이보게, 이 서방. 셈은 다 끝났는가?”

“예, 나리. 이번 것까지 실으면 300석입니다. 인수증을 써 주고 바로 출항 준비를 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100척만 더 실으면 올해 물량은 다 끝나는가 봅니다.”

“그래, 이 많은 곡식이 한양으로 들어가니 이제 조선도 굶어 죽는 사람은 없게 되겠지.”

“예, 나리. 모두가 천황 폐하와 천군의 은덕입니다요.”

“허허, 그래. 수고하게. 난 이만 처소로 가야 되겠네. 작업이 끝나면 인부들에게 술이라도 대접하게나.”

이곳에 있는 조선인 모두가 즐겁고 넉넉한 모습이었다.

지난번 천군의 무시무시한 공격에 오사카성에 머물고 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그의 애첩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 등 그의 가문이 깨끗이 제거되었다.

그가 죽고 조선 정벌군이 한 명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소식을 접한 혼슈의 많은 다이묘들은 처음에는 군사를 일으켜 조선과 대적하려 하였다. 곧이어 대마도가 점령되고 큐슈에 수만의 조선군이 상륙했다는 소식이 들어왔을 때까지도 괜찮았다.

그러나 조선의 신무기로 인해 많은 항구가 한 순간에 완전 폐허에 가까운 피해를 입게 되자 그들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대표로 내세워 화의를 요청하게 되었다.

조선의 야전 사령관들은 이번 기회에 왜를 완전 정벌하여야 한다며 극구 반대하였다. 하나 조선은 2년여 동안의 전란으로 인해 국토가 피폐해진 터라 더 이상 전쟁을 지속시킬 능력이 없었다. 북방 여진족의 발호도 염두에 두어야만 했다.

천군부에서는 다음을 기약하며 내년 농사에 힘쓰기로 하고 화친을 맺기로 한다. 조건은 대마도와 큐슈 및 우베나가토 야마구치현을 조선에 할양하고 매년 백미 30만 석을 전쟁배상금으로 지불하는 것으로 이에야스와 화친을 맺게 된다.

지금 오사카에서 조선의 판옥선에 실려 옮겨지고 있는 것이 그 화친의 대가였다.



단기 3927년(1594년) 12월 가미야카타 포구


“이봐, 빨리빨리 실으라고.”

“어이, 조심해. 이런 참!”

“야, 빨리빨리 안 해?”

제주여단 소속 김해도 일병은 서툰 일본어로 일본인 잡부들을 다그쳤다.

포구에는 철제 농기구부터 칼, 화살촉, 무사의 도에 이르기까지 잡다한 철 제품들이 포구 한 곳에 가득 쌓여 배에 실려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마도와 큐슈 지역에는 올해 안으로 모든 귀금속을 회수하여 조선으로 보내라는 천군부의 명령이 내려졌다. 쇠붙이로 무기를 만들어 대항하려는 왜인들의 시도를 처음부터 제거하려는 천인들의 의도도 있지만, 내부 발전을 위해서는 자원이 턱없이 부족했던 이유가 더 컸다.

수거를 맡은 조선 병사들은 지역 내 모든 마을을 돌아다니며 솥을 뺀 모든 쇠붙이를 회수했다.

무기의 회수는 그나마 쉬운 편이었다. 생활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부엌칼이며 일부 농기구를 회수할 때는 꼭 충돌이 일어나 무력을 사용해야만 했다.

예외적으로 제외된 물품은 불교 사찰에 있는 불상과 특별히 예술적 가치가 있는 물품들이었지만 그 외에는 여지없는 수거 대상이었다.

조선 병사들이 얼마나 악착같이 쇠붙이를 회수하였던지 화친 후 한 달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는 대마도와 큐슈에서는 쇠붙이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뒷골목에서 거래되는 가격이 천정 부지로 치솟아 있었다.


단기 3927(1594)년 12월 한양 어전 회의실


“지금 마포에는 왜에서 들어온 백미가 매일 3천 석씩 들어오고 있고, 전라도와 평안도에서의 수확이 늘어나 겨울나기에는 무리가 없을 듯하오. 그러나 차후를 대비하여 천군부에서 식량을 관리하며 식량 통제는 계속 실시할 예정이오.”

높은 단상에 올라 각부 장관들과 처음으로 회의다운 회의를 주재하는 천황은 사뭇 상기된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천군부가 제주도에서 처음 실시한 식량 통제는 조선 반도를 완전히 장악한 지금도 계속되고 있었다. 앞으로 계속될 전쟁을 위해서는 군수 물자의 확보가 절실했다.

“오늘 이 자리는 지난 왜란 동안 고생한 백성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여진족에 대한 경계의 수위를 정하며, 천인단과 천군부가 마련한 앞으로의 정책 방향을 추인하기 위한 자리이오.”

치우 천황은 천군부에서 하자는 대로 모든 것을 허락해 줄 요량이었다. 지금은 성공 일로를 걷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들도 실패할 때가 있을 것이고 내부적으로 분열하거나 빈틈을 보일 것이라 생각하고는 그때를 기다릴 참이었다.

“공을 세운 모든 장수들과 병사들에게는 이번에 병합한 큐슈 지방의 땅을 충분히 분배하도록 하고 능력 있는 자는 지방관으로 임명하도록 하시오. 이 일은 내무부와 국방부에서 협의하고 일부 사대부와 고위 장수들에게 치우치지 않도록 각별히 살펴 시행하도록 하시오.”

“천황 폐하의 명을 받드옵니다.”

내무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이 큰소리로 대답했다.

“왜의 포로들은 부산에 수용소를 만들고 그들의 관리를 건설부에 일임하니 그들에게 부산과 한양을 거쳐 의주를 잇는 대로와 목포에서 한양을 거쳐 원산을 잇는 대로를 내도록 하시오. 함경도지사에게는 명과 여진족에게 밀정을 파견하여 그들의 동태를 파악하게 하시오. 아울러 이항복을 사면하여 대마도주에 임명하고 큐슈를 남반도라 칭하겠소. 남반도주에 유성룡을 사면하여 임명하니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왜와의 전쟁을 준비하라 명하시오. 또한 대마도와 남반도에 거주하는 왜 귀족들을 모조리 포박하여 부산의 포로 수용소에 수용하고 그 신병을 건설부에 인계하도록 하시오.”

회의라기보다는 천황의 일방적인 명령이 계속 이어졌다. 그것 역시 미리 천군부에서 작성하여 천황에게 읽게끔 한 것에 불과했지만 형식은 천황의 입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어느 누구도 반대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참석자 대부분이 천인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천인이 아닌 몇몇 관리들은 이런 장소에서 말문을 열 만큼 간이 크지 못했다.


그 해 겨울, 조선 각지에서는 전후 복구와 사회 기반 시설 건설이 한창이었다. 건설부에서 주관하는 도로 건설과 천인단의 도움을 받은 소형 화력 발전소, 각 하천 상류에 지어지는 소형 댐과 수력 발전소가 전국 곳곳에 세워 졌다.

건설 현장에는 조선인들이 노임을 받고 겨우내 일했다. 농번기에 놀고 있는 백성들에게 일거리를 줌과 동시에 그들에게 천인들의 정신 교육이 병행되었다.

왜에서 가져온 철들은 건설 재료로 쓰여졌다. 대장간에서 만들어내는 철 제품으로는 대형 공사에서 요구되는 수준의 제품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작업 시간도 오래 걸려 공사가 그만큼 지연되곤 했다.

천인단에서 가장 역점을 둔 도로 건설은 왜인 포로들이 담당했다. 왜인 포로들에게는 도로 건설이 끝나면 왜로 돌려보낸다는 약속을 해주었기에 별다른 소요는 없었다.

도로 공사 초기에는 병드는 자들이 부지기수였고 죽어 나가는 자도 하루에 수 명에 달하다 보니 진척이 늦어져 12월에 시작한 도로가 이제 겨우 밀양에 다다르고 있었다. 하지만 내년까지는 의주까지 폭 10m 정도의 길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건설된 도로 중앙에는 50보 간격으로 나무를 심어 중앙분리대로 삼았고 도로 양 옆으로는 도랑을 깊게 파 배수에도 신경을 썼다. 훗날 왜도라고 불리게 된 이 도로는 산업화와 고속 성장을 지원하는 조선의 대동맥이 되어 주었다.



천군부 사령실


실로 오랜만에 천군부의 각 장령들이 모인 회의가 진행되었다. 왜란을 일단락시킨 후 조선이 전화를 딛고서 활기 차고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만든 업적과는 상반되게 회의실 분위기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지금까지 정보참모장이 보고한 정세 분석을 들어 보면, 아직까진 불만 세력들이 전국에 산재해 있고 언제 저들이 연합하여 우리를 공격할지 모릅니다. 어쩌면 저들은 명이나 여진족과 손을 잡으려 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특히 국방부 소속 장성들의 움직임을 잘 파악해 두어야 합니다. 당분간 전쟁이 없을 테니 모든 역량을 정보부에 투입하여 사태를 미연에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하고, 특별기동대대를 편성하여 항시 대기시키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예, 장관님. 이미 조치가 취해지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각 부서의 보고를 듣겠습니다. 앞으로가 중요합니다.”

조준옥 천군부 장관이 앞으로 필요한 것들에 대한 보고를 듣고자 했다. 가장 먼저 군수 보급을 책임지고 있는 참모의 군수품에 대한 보고를 시작으로 계속해서 보고가 이어졌다.

“포탄과 총탄의 재고가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유류 재고량은 절망적입니다. 이를 보충하고 대체하기 위한 조치가 절실합니다. 전국에 발전소가 건설 중이니 그때를 맞추어 전기로 움직이는 기관을 생산하던가 아니면 기동성 확보를 위한 대체 운반체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 점은 천인단에서 노력하고 있으니 좀 더 기다려 봅시다.”

“천인단에서 공병여단의 지원을 거듭 요청하고 있습니다. 교량 건설에 많은 어려움이 있나 봅니다만, 천군부에서 벌여 놓은 공사도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내년 봄이 되어서나 지원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통보하도록 합시다. 천군부에서 진행시키고 있는 것이 더 급합니다.”

“이제는 전국의 병력 배치도를 한번 봅시다.”

조준옥 장관은 어느 정도 제기된 현안들이 정리되어 나가자 각지에 흩어져 있는 군 병력을 확인하고자 했다.

“빨간색은 국방부 소속 조선군이고 파란색은 천군 소속입니다. 남반도에는 2기갑여단 병력과 공수여단 병력이 주둔 중이고, 제주여단 1, 2대대와 1함대 소속 수병들로 구성된 1포병여단이 주둔 중입니다. 대마도에는 제주여단 3대대가 맡고 있습니다. 조만간 2기갑여단을 사단으로 승격시켜 인원을 보충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각 도에 1개 중대씩 1기갑여단 병력이 주둔해 있으며, 한양에는 3기갑여단, 공병여단, 강화도에 방공여단, 고속정단, 김포에 2포병여단이 주둔 중이고 부산에 고구려 항모가 있으며, 원산에 잔여 함정이 정박해 있습니다. 국방부 소속 병력은 1보병사단이 대마도에 주둔하고 2, 3보병사단이 남반도에 주둔 중입니다. 각 도에는 지방군이 약 2만 정도 흩어져 있고 모두 도지사 휘하에 있습니다만 고령화되고 상비군이 아니기에 무기를 대부분 반납하고 전란 복구에 투입되어 있습니다.”

조선이 현 시점에서 가용할 수 있는 대부분의 관군은 대마도와 남반도에 넘어가 있었다. 조선 한반도는 천군부 소속 병력이 전부였다. 이럴 때 명이나 여진족이 국경을 넘는다면 꼼짝없이 한양 북쪽 평양까지 내주어야 할 형편이었다.

“병력이 너무 부족하군. 앞으로 왜와는 전쟁을 한 번 더 해야 하고, 어쩌면 먼저 명과 전쟁을 해야 할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지금쯤 명에도 소식이 들어갔다고 봐야 하지 않겠나? 명을 잘 다독거리지 않으면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으니 요동에 주둔하고 있는 명군에 대한 정보 수집에 특별히 신경 써야 되겠어.”

조준옥은 임진란 때 이여송이 이끌고 온 10만의 대명군이 아직 만리장성을 넘지 않고 요동에 주둔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보고 체계로는 조선의 상황이 명 황실에 알려지고 다시 조선으로 출병하기까지는 몇 개월의 시간이 소비될 것이지만 그 기간이 긴 것은 아니었다.

“그 점에 대한 복안을 대외 작전실에서 마련하고 있는 중입니다. 조선의 일이 압록강을 넘지 못하도록 할 계획입니다.”

김지영 대외작전실장이 조준옥 장관이 우려하는 점에 대해 간략히 보고했다.

김지영 해군 소장은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해군 사령관 직에서 물러나 천군부 대외작전실 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휘하에는 내년 가을쯤에 저격여단과 해상여단을 창설하여 배치할 예정이지만 지금으로써는 대략 1천 명의 인원이 전부였다.

그는 앞으로 몇 년간은 무척 바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각국과 각 지역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분류하고 대처하느라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다. 명과 금, 왜에 파견된 첩자만 해도 200명이 넘고 내년에는 러시아에 파견할 계획으로 요원 교육이 한창이었다. 그들은 모두 조선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모두 현지어에 능통한 자들로 차출되었다.

“재정이 부족해 내년 가을까지는 상비군을 더 이상 모집할 수 없습니다. 내년 추수가 끝난 후 잉여 재정만큼만 징집하도록 하고 50만 대군이 만들어질 때까지는 전쟁 회피에 주력해야 합니다. 대외 작전실에서 시간을 좀 벌어 주셨으면 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지영 실장이 역시 간단하게 대답했다.

“일전에 언급했던 경제 구조 개혁을 위해서는 화폐를 발행하고 시장 경제를 도입함과 동시에 산업 혁명을 인위적으로 발생시켜 생산물을 늘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에 소요되는 제정을 감당할 여력이 없습니다.”

천인들이 겪는 모든 문제의 시발점은 언제나 경제력이었다. 조선의 생산력이 획기적으로 증대되지 않는 이상 온갖 구상들은 그저 계획으로만 남아 있어야 했다.

천인단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몇 가지 내놓았다.

첫째, 금 본위 화폐를 발행한다. 여기에 소요되는 금은 전주와 김제, 금구 등 금광을 개발하여 충당한다. 대략 쌀 한 되를 10원으로 한다. 관직의 급료를 화폐로 지급하고 건설 현장에 투입되는 인부들의 일당도 화폐로 지급한다.

둘째, 왜에서 들어오는 백미 30만 석을 이용하여 전국에 미곡점을 열어 오직 화폐로만 쌀을 매매하게 한다. 자연스레 전국적으로 화폐가 통용될 기반을 마련한다.

셋째, 황실에서 운영하고 있는 염전을 국가에 귀속시켜 개보수하고 소금은 염점을 통해서만 매매하게 한다. 일단 미곡점과 염점은 각 도에 파견된 중대에서 관할하고 각 고을의 희망자에서 소매점 운영권을 매각한다. 향후에는 도 단위 도매점도 희망자에게 매각한다.

천인단에서는 미곡점과 염점에서 얻어지는 수익만으로도 약 10만의 군사를 먹여 살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건 단지 수치적인 것일 뿐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었다.

천인단에서 파견한 사람이 계속해서 경제 개발에 대한 의견을 내놓았다.

“본토에서 걷히는 세수를 합하면 내년 가을이나 내후년에는 약 15만의 상비군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전국적으로 개량된 종자가 퍼질 것으로 예상되는 내후년에는 지금의 세 배에 이르는 식량이 생산될 것이고 잉여 농산물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일단 왜에서 걷히는 세금은 남반도 주둔군과 천인단에서 사용합니다. 상기 경제 개발 2개년 계획은 천인단에도 통보되었으며 지금 검토 중입니다. 그에 따른 예산 집행은 내년부터 이뤄지고 올 겨울에는 세부 계획이 완성됩니다. 천인단 전체회의에서 계수 과정을 거쳐 최종 통과될 것입니다. 올 겨울은 그야말로 내년 봄을 위해 잠시 휴식하는 기간이라 하겠습니다. 앞으로 2년만 잘 버티면 다음부터는 좀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2년을 천군부에서 확보해 주셔야만 합니다.”

“잘 되어야 할 텐데. 계획대로 되면 좋으련만.”

조준옥 장관을 비롯한 장령들이 한결같이 천인단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기를 고대했다. 그들 역시 경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모든 국력은 그 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물산을 생산해 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 그것은 국방력도 예외는 아니었다.

“왜가 항복하였다고는 하나 힘을 더 소모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게 좋을 것입니다.”

오늘의 천군부 회의 마지막은 이에야스 막부의 힘을 어떻게 소진시킬 것인가에 대한 토론이었다.

회의가 모두 끝나고 회의장을 떠나는 장령들의 어깨에 얹어진 짐은 오히려 더욱 무거워져 있었다.



시모노세키 공수여단 사령부


김준용 준장은 한가히 앉아 지난 일들을 회상하며 구기자 차의 맛을 음미했다. 지리산 자락에서 난다는 진상품을 조금 얻어 마셔 보았는데 처음에는 풀 냄새가 나서 싫더니만 계속 마시다 보니 어느새 구기자 차 애호가가 되어 있었다.

그는 한가할 수밖에 없었다. 남반도에서의 행정적인 일은 유성룡 도주가 알아서 잘 하고 있었고 사령부에서는 왜인을 위한 학교에 선생을 몇 명 파견하고 2사단과 3사단의 주요 인사를 감찰하는 것이 하는 일의 전부였다. 왜인 귀족들은 지금쯤 조선에서 열심히 땅을 파고 있을 테니 감시하고 싶어도 감시할 왜인이 없었다.

조선병들이 모든 쇠붙이와 식량을 강제로 회수할 때만 해도 왜인들은 심한 저항을 했다. 조직적인 저항으로 이어질 기미까지 보였으나 강력한 진압과 일정량의 식량 배급이 이루어진 후부터는 고분고분해졌다.

오히려 좋아진 점이 많았다. 영주나 무사들이 행하던 행패도 없었고 식량을 배급 받는 조건으로 겨우내 일을 조금 해주면 되었다. 실생활에 대한 간섭이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는 조선으로의 합병을 반기는 분위기까지 일었다.

“장군님, 천군부에서 명령문이 왔습니다.”

당직사관이 종이 한 장을 들고 서 있었다.

“무슨 내용인가? 이리 줘봐.”

암호문으로 작성된 명령문을 해독하여 가져온 명령문은 간단했다.

“극비.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왜인의 힘을 소진하라.”

명령문을 읽은 김준용 준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직 천군부가 한반도 전체를 장악하지 못하고 있었고 소모되는 탄약에 대한 보급도 원활하지 않은 상태였다. 시간이 필요한 때였기에 천군부에서는 왜인들끼리 싸우도록 분위기를 잡아 주려는 모양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여단장은 명령문을 불태운 뒤 정보참모장과 최윤락 중령을 호출했다. 이 임무를 수행하기에는 3대대가 적절했다. 침투, 요인 암살, 폭파 교육을 이수한 최정예 공수 대원들로 구성된 3대대였다.

“충성! 부르셨습니까!”

부스스한 머리에 흐리멍덩한 눈을 보니 어젯밤에 술집에서 일본 여자와 진탕 논 꼴이었다.

그 꼴을 정보참모장이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최 중령, 요즘 살만 한가 보지 ? 그런가 보지? 어제 그 여자 속살 맛이 좋던가? 조심하라고. 지금은 성병도 치명적인 질병이니까. 괜히 비명 횡사하지 말고.”

김준용 여단장의 가벼운 질책에 얼굴이 빨개진 최 중령은 어찌할 줄을 몰라 더욱 부동 자세를 취했다. 온몸에 힘을 주었지만 어제 확실히 과음한 모양인지 다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쁜 여자를 봐 두었다고 강상엽 대위가 꼬시지만 않았어도 이러지는 않을 텐데.’

최 중령은 어제 밤새 시달리느라 잠 한숨 못 잤는데 다 사령관의 긴급 호출을 받고 달려오느라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편히 쉬라고. 참모장, 왜의 현 정세를 알려 주게.”

“예. 오사카 폭격 이후 내부 갈등이 있었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어린 천황과 주요 성을 장악하고 있어 실질적인 쇼군이 되었으며, 지방의 몇몇 다이묘들이 그에 반하여 조선과 쇼군에게 대항하고 있습니다.”

“그럼 저들을 혼란스럽게 하려면 누구를 제거해야 하겠는가?”

“이에야스를 없애면 됩니다.”

“그러면 저들이 힘을 합쳐 이곳으로 쳐들어오지 않을까?”

“아직은 힘이 부족합니다. 지난 임진란 때 약 20만의 정예병이 소모되었기 때문에 현재 10만 병력이 남아 있다 해도 정예병은 5만이 채 되지 않습니다. 그 숫자로는 이곳을 도모하기 어렵다고 보여 집니다. 물론 내란이 일어나면 병력은 조금 증가하겠지만 그래도 15만을 넘지는 못할 것입니다. 내란 중 소모되는 병력과 저들의 군수 물자를 감안하면 10만도 유지하기 힘들 것입니다. 그보다 큰 문제는 내란으로 인해 배상금 지불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최 중령은 김준용 준장과 정보참모장의 대화를 거의 비몽사몽 간에 듣고 있었다. 자신이 왜 이런 자리에서 저런 얘기를 들어야 하는지 그것이 궁금하긴 했지만 자꾸 풀어 지려는 다리 때문에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음, 그건 안 되는데… 앞으로 3년은 지속되어야 해.”

“그럼 왜의 천황을 제거하는 것이 어떨지요?”

“어린 천황을 죽인다…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인 천황을 죽인다 해도 그 파장은 크지 않을 거야. 일단 그 애는 살려둬야 돼. 이렇게 하지. 일단 우두머리는 살려주고 그 자식들을 죽인다. 이에야스의 유력한 협조자들의 아들을 제거하자고. 최 중령의 임무가 뭔지 알겠지? 선별해서 제거하고 우리가 개입되었다는 흔적을 남기지 말게. 반대파들이 했다고 오인하면 좋겠지. 작전 기간은 앞으로 한 달. 겨울 안에 끝내라고.”

“예, 알겠습니다.”

서둘러 자리를 모면하고 싶었던 최 중령은 이제야 겨우 대화의 참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최 중령이 사령관실을 나서자 뒤따라 나온 정보참모장이 최 중령의 어깨를 툭 치고는 얇은 서류철을 던져 주었다. 서류철을 받아 멍하니 들고 있던 최 중령은 정보참모장이 복도 끝 자락으로 사라지자 벽에 몸을 기대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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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대륙진출 +6 15.01.14 10,159 277 15쪽
33 대륙진출 +5 15.01.13 10,636 284 15쪽
32 대륙진출 +5 15.01.12 10,845 310 14쪽
31 대륙진출 +4 15.01.11 10,848 305 12쪽
30 대륙진출 +3 15.01.10 10,492 271 12쪽
29 대륙진출 +4 15.01.09 11,841 292 16쪽
28 대륙진출 +3 15.01.08 11,923 290 13쪽
27 대한제국 +2 15.01.07 11,671 353 14쪽
26 대한제국 +3 15.01.06 11,059 269 16쪽
25 대한제국 +17 15.01.05 11,707 319 18쪽
24 대한제국 +5 15.01.04 11,815 293 16쪽
23 대한제국 +3 15.01.03 12,390 330 14쪽
22 대한제국 +3 15.01.01 12,337 281 22쪽
21 대한제국 +6 15.01.01 12,390 334 17쪽
20 대한제국 +5 14.12.31 12,856 320 19쪽
19 오사카방화 +7 14.12.30 11,956 292 16쪽
18 오사카방화 +4 14.12.28 11,520 274 17쪽
17 오사카방화 +5 14.12.27 11,760 265 17쪽
16 오사카 방화 +2 14.12.25 13,071 321 17쪽
15 이몽학의 난 +3 14.12.22 12,945 302 17쪽
14 이몽학의 난 +4 14.12.21 12,170 310 21쪽
13 이몽학의 난 +3 14.12.20 12,695 306 21쪽
12 이몽학의 난 +3 14.12.19 13,820 306 25쪽
11 왜란종결 +5 14.12.18 13,351 285 17쪽
10 왜란종결 +5 14.12.17 13,684 304 26쪽
» 왜란종결 +5 14.12.16 14,517 310 22쪽
8 왜란종결 +5 14.12.15 15,078 335 24쪽
7 3. 왜란종결 +4 14.12.14 15,795 340 21쪽
6 새로운 세상 +6 14.12.13 16,388 338 20쪽
5 2 새로운 세상 +7 14.12.11 17,161 321 23쪽
4 2 새로운 세상 +7 14.12.11 19,706 387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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