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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딧 님의 서재입니다.

내 친구의 첫사랑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완결

이네딧
작품등록일 :
2021.10.11 12:36
최근연재일 :
2022.07.21 20:30
연재수 :
129 회
조회수 :
7,694
추천수 :
167
글자수 :
658,878

작성
22.04.22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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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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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92화. 사람이 저렇게 밝게 웃을 수 있다니...

DUMMY

짜증 난 얼굴의 나희는 대답하지 않았고, 콘솔 위는 깨끗했다.


“농담이고. 어제 온 그, 이하윤인가? 기상캐스터. 그분이 나희 니 친구라며?”


“네.”


양준태의 질문에 나희는 짧게 대답했다.


양준태는 몇 가닥 남지 않은 앞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말을 늘어트렸다.


“어···. 그···. 아···. 허···.”


말을 이어서 하지 않고 계속 뜸들이자. 답답한 표정의 나희가 말했다.


“지금 여기 앉아서 똥 싸세요? 하실 말씀이 뭔 데요?”


나희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아저씨가 설마 소개팅? 같은 개소리는 안 하겠지?


만약 그런 말이 두텁고 건조한 양준태의 입술에서 나온다면 나희는 양준태의 입을 주먹으로 때려 막을 것이었다.


양준태 연출이 어필하듯 머리를 넘기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나희는 실눈을 만들며 양준태의 건조한 입술에 집중했다.


“그게 말이야. 이런 부탁을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양준태는 느리게 말하면서 미소 지으며 마른침을 삼켰다.


나희는 본론을 말하지 않고 말을 질질 끄는 게 수상했다.


“아우 답답해 뭔 데요?”


“어. 그···. 이하윤씨 말이야. 우리 공연에 다시 한번 초대할 수 없나 해서?”


양준태는 어렵게 본론을 말했다.


나희는 자기가 걱정했던 게 아님을 이제야 알았다.


그럼 그렇지 설마.


나희는 안심하며 물었다.


“글쎄요. 말은 해볼 수는 있겠지만, 왜요?”


“왜라니. 어제 안봤어? 니 친구 인기가 대단하던데. 어제처럼 말없이 갑자기 오지 말고, 우리 홍보도 할 수 있게 미리 약속하고 오면. 우리 공연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은데. 너 생각은 어때?”


자신만의 예술 세계에 목숨 걸었다는 양준태는 장사꾼의 얼굴을 하고 말했다.


눈빛은 반짝거렸다. 콧구멍은 돈 냄새를 맡기 위해 벌렁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공연이 망하면 양준태는 오갈 데도 없었다.


인생의 절반을 대학로 연극에 바쳤는데 공연이 매진된 건 어제가 처음이었다.


오늘도, 내일도, 이번 주는 매진이다.


이게 이하윤 효과라 생각했고, 이게 바로 홍보라는 것을 알았다.


나희에게 이하윤 같은 유명한 친구가 있을 거라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 기세를 몰아 흥행하는 공연 연출가로 우뚝 서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된다면 사랑하는 옥경(반디 사장)이 누나 앞에서 당당할 수 있다.


황옥경은 양준태가 첫사랑이자, 끝 사랑으로 생각하는 여인이다.


어제 매진이 되고 양준태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진짜 매진이 되다니, 어제의 설렘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나희에게 부탁을 하고 싶었다.


어렵겠지만 하윤을 한 번 더 초대해서 홍보를 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었다.


양준태는 나희의 쌍꺼풀 없는 커다란 눈에 눈을 맞췄다.


나희는 콘솔 위에 팔꿈치를 대고 손바닥에 머리를 올리고 양준태를 바라봤다.


“뭐 해 줄 건데요?”


나희는 조금 뻔뻔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양준태는 나희의 반응이 의외라는 듯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뭘 해 주다니?”


나희는 점점 더 뻔뻔스럽게 말했다.


“그럼 그냥 공짜로요?”


“야···. 도나희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세상 물을 너무 많이 먹었구나. 아니 상철이 형님이 너 이러는 거 알아? 잠 못 자고 고민하다가, 어렵게 얘기했는데. 매우 당황스럽다.”


양준태는 말하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더 이상 상종 못하겠다는 듯 몸을 휙 돌리며 오퍼실을 빠져나가는데.


나희가 양준태의 팔을 잡아 세운다.


“연출님 농담이에요. 농담. 연출님이 저 놀래 켜서 농담한 거에요.”


양준태는 못 이기는 척 몸을 돌려 나희를 바라봤다.


“놀래 킨건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


“제가 하윤이한테 이야기 해볼게요. 착한 애라 도와줄 거예요.”


자신 있게 말하는 나희 말에 양준태의 얼굴에 화색이 돋아났다.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그래. 고맙다. 나희 너를 무시해서 그런 건 아니지만. 너한테 그런 친구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난 니 친구는 그, 땅딸 만한 애만 있는 줄 알았어.”


양준태는 자기 허리 옆에 손 뻗으며 말했다. 바로 소민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나희는 입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때 경주가 오퍼실 입구에 서서 말꼬리를 늘어트리며 느리게 말했다.


“나희 언니. 오늘 오선희 선수님 공연 보러 오신다면서요오. 언니 알고 계셨어요오?”


오선희 선수 이름에 양준태 연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선희 선수는 국가대표 펜싱 선수이자 국민영웅이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오선희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응. 알고 있지. 경주 넌 어떻게 알았어?


나희는 숙취가 남아 있는 머리를 두 손으로 짓누르며 말했다.


어제 하윤이와 과음했는데 성인이 되어 처음 만나는 선희와 술 마실 예감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알고 계셨구나···. 분장실에서.”


양준태는 경주의 대답을 가로막았다.


“버터플라이 오선희? 국민 영웅, 국민 언니, 국민 누나. 그 오선희?”


양준태의 트레이드 마크인 무겁고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갈라지면서 입에서 빠르게 나왔다.


나희는 물끄러미 양준태 연출의 얼굴을 뜯어봤다.


두 눈을 바닥에 떨어트릴 것처럼 크게 뜨고 빨리 대답해 달라는 듯 애타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처럼 엉덩이도 흔들어 댔다.


양준태 연출을 알고 지내면서 이렇게 생기 있는 눈빛과 표정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예. 맞아요. 그 오선희···.”


“진짜?? 진짜야? 와!! 하! 하! 하!”


나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양준태는 오퍼실이 아니 공연장이 떠나갈 듯 소리치며 웃었다.


양준태는 오선희의 광 팬이었다.


양준태는 오선희가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순간 태어나서 처음으로 많은 눈물을 흘렸다.


콧물까지 합하면 한 바가지는 나왔을 것이다.


오선희의 결승 상대는 세계 1위 프랑스 선수였고, 신장과 체격조건이 오선희를 압도했다.


1대1 마지막 3바우트에서 오선희는 3대 13으로 10점 차이로 지고 있었다.


오선희는 패색이 짙어져 갔고, 해설자는 미리 패배를 예감한 듯 은메달도 대단한 결과라며 오선희를 치켜세웠다.


그런데 오선희는 각본 없는 드라마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비처럼 날아 내리 10점을 따라붙었고, 당황한 프랑스 선수를 몰아붙여 15대 14로 승리했다.


오선희의 경기는 올림픽 역사상 가장 극적인 우승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경기를 지켜봤던 국민들은 가슴을 졸이며 오선희를 응원했고, 승리를 거두자 함께 눈물 흘렸다.


오선희는 승리 후 피스트 (펜싱 경기가 펼쳐지는 곳) 위에 누워 눈물을 흘렸다.


목이 터져라 오선희를 응원했던 양준태는 하염없이 눈물 흘렸다.


감동의 순간은 양준태의 머릿속에 영원히 각인되어 있었다.


양준태는 오선희 선수가 올림픽을 마치고 귀국하는 날 인천 공항에 나갔었다.


그날은 양준태가 사랑하는 옥경이 누나의 생일이었다.


처음으로 옥경이 누나의 생일을 챙겨 주지 못한 날이기도 했다.


인천 공항에서 오선희 선수에게 꽃을 주기 위해 기다렸다.


입국장 문이 열리고 많은 인파가 몰려와 펜싱 국가대표를 맞이했다.


오선희 선수에게 고생하고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꽃을 전해주고 싶었지만,


인파에 묻혀 양준태는 오선희 선수의 머리끝도 못 본 채 돌아왔다.


공항버스를 타고 대학로에 돌아오는데 금메달을 따고 눈물 흘리던 오선희의 모습이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마음속 깊이 간직했던 팬심이 끓어올라왔다.


드디어 오선희 선수를 만날 수 있다니.


그것도 자기가 연출하는 공연을 보러 직접 온다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앞니를 보이며 웃는 양준태의 웃음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하! 하! 하! 하!!”


이런 사연을 알리 없는 나희와 경주는 목이 터져라 웃어대는 양준태의 웃음소리에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양준태의 웃음소리는 분장실까지 전해졌다.


분장실 배우들은 무대와 분장실을 가로막고 있는 검은색 커튼 사이로 얼굴을 내밀어 오퍼실을 바라봤다.


오퍼실 안에서 웃고 있는 양준태를 보며 한마디씩 말했다.


“야, 매진이 좋긴 좋다.”


“그러게요. 대학로 우울의 대명사가 저렇게 웃다니.”



***



진호는 우울한 얼굴로 2층 거실 베란다에서 서쪽하늘 끝에 떠 있는 태양을 바라봤다.


1년 전 하윤은 파주 출판단지 공원에서 서쪽하늘 노을을 보며 진호에게 먼저 말했다.


‘우리 친구할래요?’


그 말을 들은 진호는 날아갈 듯 기뻤다.


완벽한 이상형인 여자가 먼저 친구하자고 하다니 믿을 수 없었다.


진호의 시선이 마당으로 향했다.


나무로 만든 평상이 덩그러니 마당위에 놓여 있고, 마당 한쪽 구석에는 나희의 분홍색 비너스 스쿠터가 세워져 있다.


마당 화단을 가득 채운 라일락 꽃은 보라색 빛을 뽐내며 만개해 있었다.


따뜻한 봄바람에 라일락 꽃향기가 진호의 코끝을 자극했다.


진한 라일락 꽃향기가 진호를 더욱 우울하게 만들었다.


라일락 향기는 하윤의 향수 향이기 때문이다.


하윤은 진호와 함께 성북동 골목길을 걷다가 집에 왔었다.


마당에 들어온 하윤은 보라색과 흰색 꽃망울을 발롱발롱 돋아내는 라일락 꽃을 보고 꽃말을 이야기해줬다.


라일락의 꽃말은 첫사랑이다.


진호에게 하윤은 첫사랑이다.


어릴 때부터 화단을 지키고 있던 라일락 꽃이 새롭게 보이는 순간이었다.


하윤은 라일락 꽃 향기를 깊숙이 들이 마셨었다.


그리고 천사의 미소를 띠며 진호를 바라봤다.


진호도 하윤과 눈을 마주치며 미소로 답했다.


그리고 2층 진호 집에 들어와 하윤과 첫 키스했다.


너무 달콤하고 달콤함에 너무 흥분했다.


진호는 키스하며 거칠게 하윤을 소파에 눕혔다.


하윤도 진호의 리드에 몸을 맡겼다.


진호는 재빨리 벨트를 풀었고, 그때까지는 모든 게 완벽했다.


진호는 세상을 모두 얻은 왕이 된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서울에 지진이 발생하면서 모든 게 꼬였다.


진호는 기상청 지진화산국 연구원이다.


그날, 그 뜨거웠던 순간은 진호가 비상근무자로 대기하는 시간이었다.


하필이면 이때 왜? 원망하며 진호는 기상청으로 향했다.


하윤은 진호가 오기를 기다리며 혼자 진호집에 남았다.


근무가 끝나고 새벽에 집에 돌아오면 하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사실 여기까지도 좋았다.


그런데 비상근무는 아침까지 이어졌고, 지진이 발생한 추가령단층 조사를 위해 소청도 인근 무인도에 출장을 떠나게 됐다.


꿈에서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 눈앞에 현실로 다가왔다.


홀로 집에서 기다리던 하윤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고, 진호는 기상청에서 바로 무인도를 향해 떠났다.


진호는 무인도로 떠나는 날 하윤과 결혼하기로 다짐했다.


갈매기들로 가득 찬 무인도에서 하윤에게 프러포즈 할 생각에 깊이 빠져 있었다.


하윤도 진호의 프러포즈에 동의할 거로 진호는 확신했다.


그랬는데 현실은 진호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내 친구의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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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100화. 그녀들의 속마음 22.05.11 25 1 11쪽
100 99화. 내 친구중에 SM제약 회장 딸이 있다고? 22.05.09 26 0 11쪽
99 98화. 스트레스 22.05.06 26 0 11쪽
98 97화. 진호의 부탁 22.05.04 25 0 11쪽
97 96화. 외삼촌의 과거 22.05.02 27 0 11쪽
96 95화. 경주의 남자친구 22.04.29 24 0 11쪽
95 94화. 궁금한 이야기 3일 22.04.27 27 0 11쪽
94 93화. 올림픽 펜싱 금메달 리스트 오선희 22.04.25 25 0 11쪽
» 92화. 사람이 저렇게 밝게 웃을 수 있다니... 22.04.22 24 0 11쪽
92 91화. 미친 인맥 22.04.20 25 0 11쪽
91 90화. 오늘부터 1일 22.04.18 34 0 11쪽
90 89화. 달려라 오진호 22.04.15 24 1 11쪽
89 88화. 펜싱선수 도나희 22.04.13 34 1 11쪽
88 87화. 둘은 모르고 셋은 안다 22.04.11 30 0 11쪽
87 86화. 노래방에서 22.04.08 30 0 12쪽
86 85화. 하윤을 향해 돌격 앞으로 22.04.06 34 0 11쪽
85 84화. 연애 코치 22.04.04 27 0 12쪽
84 83화.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22.04.01 32 1 11쪽
83 82화. 기억과 추억사이 22.03.30 31 0 12쪽
82 81화. 봄비 내리는 대학로에서 22.03.28 28 0 12쪽
81 80화. 집착은 사랑을 멀어지게 한다 22.03.25 28 0 11쪽
80 79화. 어쩌다 보니 친구 22.03.23 26 0 11쪽
79 78화. 불안한 기운 22.03.21 24 0 11쪽
78 77화. 광채 22.03.18 27 0 12쪽
77 76화. 진호의 추리 22.03.16 35 0 12쪽
76 75화.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 22.03.14 29 1 12쪽
75 74화. 공연 매진 22.03.11 26 1 11쪽
74 73화. 고향으로 귀농을 꿈꾸는 양준태의 고향은 압구정동 22.03.09 31 1 12쪽
73 72화. 엇갈리는 전화통화 22.03.07 32 1 11쪽
72 71화. 나희의 전화 22.03.04 26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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