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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딧 님의 서재입니다.

내 친구의 첫사랑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완결

이네딧
작품등록일 :
2021.10.11 12:36
최근연재일 :
2022.07.21 20:30
연재수 :
129 회
조회수 :
7,635
추천수 :
167
글자수 :
658,878

작성
22.04.13 22:05
조회
33
추천
1
글자
11쪽

88화. 펜싱선수 도나희

DUMMY

친구 진호는 바보처럼 자기를 보고 노래하는 줄 알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민준은 테이블 위 캔맥주를 들어 입에 가져다 댔다.


이하윤이 오진호가 아닌 도나희를 사랑한다?


이하윤이 남자가 아닌 여자를 사랑한다?


이하윤이 기상청 연구원을 까고 백수나 다름없는 공연 기획을 사랑한다?


진호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고층 옥상 난간에 서 있는 진호의 모습이 떠올랐다.


민준은 고개를 흔들며 캔맥주를 마셨다.


하윤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의 진짜 의미를 알게 되자,


심장이 두방망이질했다.


영화에서나 나올 듯한 황당한 상황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눈물을 닦아내는 진호를 보고 혼잣말했다.


“아이고 불쌍한 놈아. 눈물 좀 적당히 흘려라.”


하윤의 노래가 끝나갈 때쯤 민준은 진호를 보며 쉬지 않고 캔 맥주를 들이켰다.


현재 상황을 맨정신으로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윤은 자기 마음을 담아 고백 노래를 끝냈다.


팡파레와 함께 기계음이 노래방 안 가득 울려 퍼졌다.


“와우!!! 놀라운 실력이군요! 100 점입니다.”


테이블 위에 마이크를 올려놓는데 눈앞이 흐릿해졌다.


알코올 기운이 순식간에 올라왔다.


흐릿한 시선에 소파에서 일어서서 박수 치는 진호의 모습이 들어왔다.


앉아 있는 나희의 박수 치는 모습도 보였다.


진호가 다가와 하윤을 부축해줬다.


노래방 안 친구들은 똑같은 소리를 냈다.


“어, 어, 어, 어.”


그리고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의 밤하늘은 보석을 뿌려 놓은 것처럼 많은 별들이 반짝였다.


밝은 달은 푸른 바다 위에 거울을 보듯 떠 있었다.


달빛과 별빛들이 해변을 따라 길게 늘어선 바다 위 수상 가옥들을 비추고 있다.


나무로 만들어진 수상 가옥 사이에 도상철 부부(나희의 부모님)와 오성진 부부(진호의 부모님)는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뜨거웠던 낮의 열기를 식히고 있었다.


한국을 떠날 때 하얀 얼굴은 어느새 구릿빛이 되어 있었다.


두 부부는 1년 전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 바자우족(바다 위 수상가옥에서 생활하는 민족)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왔다.


나희와 진호가 태어나기 전 두 부부는 술라웨시 섬으로 봉사활동을 왔었다.


국적도 없이 바다 위에 흩어져 사는 바자우족을 만나게 됐고,


물질적인 욕심없이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모습에 감동받았었다.


하지만 교육을 받지 못한 바자우족은 다른 민족들에게 이용당하기 일쑤였다.


도상철 부부와 오성진 부부는 바자우족에게 꼭 학교를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지켜질지 모를 먼 미래의 약속을 그들은 순수하게 믿어줬다.


한국에 돌아온 부부에게 나희와 진호가 태어났다.


나희와 진호를 데리고 이곳에 온 적도 있었다.


도상철은 대학로 연출가였고, 오성진은 사회복지 공무원이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바쁘게 생활했다.


바자우족과의 약속은 두 부부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약속을 지키자는 말을 누가 먼저 꺼내지는 못했다.


젊을 때의 열정은 사라져 버린 지 오래됐었다.


한국의 생활을 버리고 이곳에 온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기 때문이었다.


두 부부는 작년 봄 집 마당에 있는 평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일상적인 말들이 오가던 부부는 동시에 술라웨시 섬 수상 가옥에 사는 바자우족을 추억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결정하게 됐다.


술라웨시 섬 바자우족들과의 약속을 지키러 가자고.


아이였던 나희와 진호는 이제 다 컸다.


지금이 아니면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이라고.


두 부부는 주변을 정리했고, 나희와 진호에게 바자우족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술라웨시로 떠나겠다는 말했다.


나희는 응원해줬고, 진호는 어리광을 부렸다.


두 부부가 예상했던 반응 그대로였다.


그렇게 한국을 떠나온 지 1년, 드디어 오늘 학교가 완성됐다.


오늘은 그 약속의 결실을 맺는 날이었다.


바자우족들은 축제를 열었다.


한 낮 뜨거운 열기보다 더 뜨거웠던 축제였다.


축제가 끝나고 밤이 깊어 가지만 두 부부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두 부부는 수상 가옥 위에서 해변가에 높게 솟아 있는 학교 건물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학교가 완성되고 육지와 수상 가옥을 연결하는 나무다리를 완성했다.


바자우족 아이들은 나무다리를 통해 학교를 오갈 수 있다.


이 모습을 나희와 진호가 함께 봤다면 좋아했을 것이다.


모든 일을 순조롭게 재정적인 도움을 준 익명의 기부자도 완성된 학교의 모습을 보길 바래본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세상에는 천사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두 부부는 나희와 진호에 대해 말하지 않지만 각자 자녀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은 새벽 1시가 넘었을 시간이다.


아이들과 통화해 본지도 오래됐다.


아옹다옹거리지만 잘 지낼 거로 믿었다.


후덥지근했던 바닷바람이 육지의 공기를 실어와 시원하게 변해 갔다.


내일을 위해서 잠을 청해야 했다.


도상철은 길었던 하루를 마무리하는 말을 꺼냈다.


“우리도 그만 들어가서 쉴까?”


“그럴까요 그럼.”


두 부부는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 각자의 수상 가옥으로 들어갔다.


바람과 함께 잔잔한 파도 소리가 들렸다.



***



이불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걸 느낀 하윤은 머리를 감싸며 눈떴다.


눈앞에 낯선 공간과 낯선 향기가 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 줬다.


순간 하윤은 이불을 들고 몸을 일으켰다.


과음의 후유증인 두통과 갈증이 밀려왔다.


여기는 어디인가? 숙취는 머리를 까부실 것처럼 조여 왔다.


하윤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생각했다.


분명 노래방에서 나희를 보며 박혜경의 고백 노래를 불렀었다.


그리고 삭제된 것처럼 기억이 없다.


창밖에서 주황색 가로등 불빛과 어둠을 몰아내는 태양 빛이 방에 빛을 뿌렸다.


하지만 방안은 아직 어둠이 둘러싸고 있다.


침대 옆에 누군가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고 있다.


방안은 빗줄기 소리로 가득했다.


창밖은 태양이 떠오르는데 빗소리 라니.


도대체 여긴 어디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머리를 감싸며 노래방의 기억을 되짚어 봤다.


노래를 마치고 테이블 위에 마이크를 내려 놨었다.


진호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쳤고, 하윤은 시야가 흐려졌었다.


몸은 흔들렸고, 진호가 다가와 하윤을 붙잡았다.


하윤은 진호에게 몸을 의지했다.


그리고 다음 기억은 지금 침대 위다.


그럼 진호와?


옆에 누워 있는 사람이 진호인가?


하윤은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내려다봤다.


분홍색 여자 잠옷을 입고 있다.


이불 속에서 꿈틀거렸던 물체가 두더지가 땅을 파고 오듯 이불을 들추며 하윤에게 다가왔다.


이불에서 검은색 털을 가진 강아지가 하윤을 보기 위해 머리를 내밀었다.


마루였다. 나희가 키우는 강아지.


그렇다면 여기는 나희의 방이다.


하윤은 어둠이 사라져가는 방안을 자세히 둘러보며 술 취한 나희를 데려다줬던 기억을 되짚어 봤다.


그래 여기는 분명 나희의 방이다.


그럼 옆에서 자고 있는 사람은 도나희다.


하윤은 마루를 가슴에 끌어안고 이불을 살짝 들춰 봤다.


이불 속에 나희가 하윤 쪽으로 얼굴을 내민 채 엎드려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진호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커트 머리의 앞 머리카락이 눈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하윤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숙취로 인한 두통과 갈증이 몸에서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볼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숨소리는 왜 이렇게 거칠어지는지.


하윤은 마루를 품에 안고 조용히 누웠다.


그리고 나희의 얼굴을 바라봤다.


하윤의 심장 소리가 귓속에 들렸다.


심장 소리에 나희가 깨어나면 어쩌지 걱정할 정도였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나희의 얼굴을 처음 본다.


하윤의 눈에 나희의 얼굴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여고시절 나희의 얼굴이 현재 얼굴에 겹쳐졌다.


하윤의 심장이 ‘도나희’ 나희의 이름을 불렀다.



***



진호는 침대 위에서 누웠다 엎드렸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삼겹살을 뒤집듯이.


술 마시고 필름이 끊긴 건 처음이었다.


집에 어떻게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랑하는 하윤이 진호가 누워 있는 2층 안방 바로 아래인 1층 안방에 누워 있다는 걸 생각해냈다.


위속에서 목구멍을 타고 숙취가 올라와 헛구역질이 나왔다.


몸을 일으켜 헛구역질을 하고 침대에 다시 누웠다.


창밖에서 날이 밝아왔다.


침대에 누워 있는 진호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나희의 과거가 자꾸 떠올랐다.


중학교 교복을 입은 진호는 학원 근처 골목길에서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진호보다 키가 큰 친구 네 명이 진호를 벽에 세우고 반원을 그리고 있었다.


진호는 주머니 속에 있는 돈을 모두 꺼내고 주머니 속을 까서 보여줬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때 네 명의 친구 중 키가 가장 컸던 친구 두 명 사이에 나희가 어깨동무했다.


“뭐 하냐 니들. 재밌냐?”


친구들은 나희를 멀뚱멀뚱 쳐다봤고, 진호는 드디어 안심했다.


나희는 씨익 웃으며 두 친구의 목을 졸라 넘어트렸고,


나머지 두 친구를 긴 다리로 뻥뻥 차버렸다.


그리고 네 명을 한 군데로 몰아 놓고 펜싱 칼을 뽑아 들었다.


펜싱 칼의 끝은 어디로 갈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네 명은 흔들리는 펜싱 칼끝을 보며 공포에 떨었다.


“야! 오징어는 내 꺼야. 나만 괴롭힐 수 있어. 알았어??”


나희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호는 나희 뒤에 몸을 숨기며 손등으로 눈물 닦았다.


네 명의 친구들은 공포에 질려 나희를 바라봤다.


나희는 긴 다리를 달달 떨며 말했다.


“다음은 말 안 해도 알지? 셋 센다. 하나, 둘···.”


네 명의 친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진호는 학원친구들이 따라다니며 괴롭히자, 나희에게 전화했다.


오늘 나희는 방학 전 마지막 훈련을 한다고 했다.


나희는 펜싱 칼을 칼집에 넣고 진호 어깨에 팔을 올려 어깨동무 했다.


“야! 가자 오징어.”


진호는 눈물을 닦으며 나희를 따라갔다.


골목 안 상황을 지켜보던 학원 여학생들은 나희를 보며 비명을 질렀다.


키가 크고 운동을 잘했던 나희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허스키한 목소리도 한몫 했다.


펜싱도 잘했다. 펜싱을 그만두지 않고 했다면 아마 국가대표가 되어 있을 것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1위까지 하고 선배들과 대판 싸우고 펜싱을 그만뒀다.


나희는 상신여고 뿐만 아니라 근처 여고생들에게 인기 1위라고 했다.


진호도 그걸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나희의 비너스 스쿠터는 하트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나희를 따라다니는 여고생들도 많이 목격했다.


진호는 나희의 과거를 떠올리며 떠올릴수록 마음 한구석에서 불안한 기운이 돋아나는 걸 느꼈다.


하윤은 첫사랑을 찾기 위해서 한국에 왔다고 했다.


상신여고를 다녔었다. 도나희가 졸업한 학교다.


첫사랑 때문에 펜싱을 배웠다고 했다.


도나희는 펜싱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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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95화. 경주의 남자친구 22.04.29 2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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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92화. 사람이 저렇게 밝게 웃을 수 있다니... 22.04.22 23 0 11쪽
92 91화. 미친 인맥 22.04.20 25 0 11쪽
91 90화. 오늘부터 1일 22.04.18 33 0 11쪽
90 89화. 달려라 오진호 22.04.15 24 1 11쪽
» 88화. 펜싱선수 도나희 22.04.13 34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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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86화. 노래방에서 22.04.08 30 0 12쪽
86 85화. 하윤을 향해 돌격 앞으로 22.04.06 34 0 11쪽
85 84화. 연애 코치 22.04.04 2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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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79화. 어쩌다 보니 친구 22.03.23 2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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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76화. 진호의 추리 22.03.16 34 0 12쪽
76 75화.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 22.03.14 2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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