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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비 님의 서재입니다.

지상 최강의 좀비가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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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이호비
작품등록일 :
2019.01.12 21:51
최근연재일 :
2019.08.20 21:30
연재수 :
1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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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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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
글자수 :
748,164

작성
19.04.05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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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5. 포션을 만든다는 것

DUMMY

아침이 밝아오고 점심이 되기 직전까지 우리들은 숲을 벗어나지 못했다.

정확히는 좀비처럼 빌빌거리던 레이나 때문에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부작용은 완전히 사라졌어?”


“네······.”


이런 넓은 땅에서 마주한 인연이었기 때문에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다.

심연의 목소리는 레이나보다 세계의 운명이 더 급급하다며 잔소리를 퍼부어대었지만 적어도 멀쩡히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보살펴주는 것 정도는 괜찮잖아, 라는 말로 밀어붙였다.


숲에서 사냥을 하고 고기를 굽는 동안에야 겨우 원래의 컨디션을 보이기 시작했다.

레이나의 안색이 첫 만남에 비해 훨씬 좋아졌는데 모종의 이유로 인해서 시무룩하게 축 쳐진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다.


자신이 민폐라 생각되어 눈을 마주치려 들지 않는 거겠지.

나는 피식하고 웃은 뒤 잘 구워진 고기를 건네며 호수의 물을 부어 불을 껐다.


처음 안 사실이었는데 이 세계의 엘프는 육식도 가리지 않는다고 한다.

지구에서의 엘프는 이슬만 먹고 사는 그런 자연과 함께하는 이미지였는데, 역시 직접 겪어보지 않는 이상은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우치게 되었다.


[포션을 제작하고 연금술에 눈을 뜬 엘프는 상식적으로 어긋나 있긴 하지만.]


‘그건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는 거지 심각하게 분위기 잡고 할 말은 아니잖아.’


고기를 크게 한 입 베어 물며 속으로 대답해주었다.


레이나는 반나절 이상 자신을 힘겹게 만들었던 포션병을 꺼내 눈살을 찌푸리며 던지려고 했는데, 식겁한 내가 그녀의 팔을 제지하여 겨우 깨뜨리지 않을 수 있었다.


실패작이라 생각해서 버리려고 했던 레이나는 내가 두 눈을 크게 뜬 채 말리자 실눈으로 나직막이 대답했다.


“또 저 놀리시려는 거죠?”


포션병을 꽉 움켜진 손과 그 안에서 찰랑이는 갈색의 액체.

그녀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있었다.


[제대로 싫증나버린 모양이군.]


‘그러니까.’


밤새 그녀를 간병하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었는데, 그 중 가장 오랜 시간을 포션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꽃을 피웠었다.


나는 레이나의 손에 들린 저 갈색포션을 좀비포션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이유는 단순했다.

저 갈색포션을 마시면 대상은 좀비처럼 빌빌거리기 때문이다.


딱히 생명까지 위협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친구들끼리 내기를 통해 벌칙으로 쓰이면 좋을 그런 종류의 포션이었다.


내 말에 레이나는 실패작이라며 얼굴을 감싸고 전부 폐기시키려고 했지만 몇 번이나 막아보였다.

그녀는 이런 효능이 나올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도움이 되고자 하는 포션을 만들려고 했다는데, 그런 입장에서 바라보면 실패라고 우기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쓸모도 없는 포션을 어디에 쓰시려고요.”


“이게 왜 쓸모가 없어,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말 몰라? 비록 레이나가 실패작이라 부르는 이 포션도 언젠가는 필요로 하는 순간이 올 테니 잘 보관하고 있어야지.”


“역시 절 놀리시려고 그런 거잖아요.”


좀비포션을 내 품속에 집어넣으려하니 레이나가 울상을 지으며 달려들었다.

그 와중에도 손에 쥔 고기를 꽉 지고 있는 모습이 웃겨서 소리를 내니 그녀는 스스로 더 착각 속에 허우적거리며 좀비포션을 빼앗으려 들었다.


“그런 거 아니야, 이 포션이 왠지 모르게 정이 가서 소장하고 싶은 것뿐이야.”


“···고작 포션 따위에 정이 붙을 리가 없잖아요······.”


필사적으로 매달리며 돌려달라고 애원하는 레이나의 품속에서 포션의 제조법이 떨어졌다.


“앗!”


“어디보자.”


재빨리 슬쩍 낚아채어 좀비포션으로 추정되는 문장을 찾아내었다.

엘프의 글자로 적혀있었는데, 역시나 드래곤의 정신과 융합된 덕분에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이게 좀비포션의 제조법인가?”


정식명칭이 아직 적혀있지 않은 제조법이 눈에 띄었다.

나는 그것을 소리 내어 읽으며 레이나에게 벗어난 뒤 고기를 한 입 뜯었다.


“절망버섯과 우울꽃잎을 깨끗한 미온수에 6시간을 달인다, 절망버섯이랑 우울꽃잎은 뭐야?”


“제가 멋대로 붙인 이름이에요, 제발 그만둬주세요······.”


[네 녀석 마이즈랑 어울리더니 하는 행동도 비슷해졌구나, 쯧쯧.]


레이나의 움직임으로는 솜털처럼 가볍게 움직이고 있는 날 붙잡을 수 없었다.

울상을 지으며 달려드는 그녀의 모습에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계속 읽어나갔다.


“잘 달인 다음, 절망버섯과 우울꽃잎을 건져 바짝 건조시킨다. 달인 물은 차갑게 보관하고 하루가 지난 뒤 건조시킨 절망버섯과 우울꽃잎을 갈아, 달여 놓은 물과 함께 믹스.”


“저런 끔찍한 포션을 세상 밖으로 알리고 싶지 않아요.”


레이나는 드래곤의 기억력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한번 본 것은 영원에 가까운 시간동안 기억 속에 각인되어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끗한 미온수를 2분의 1온스 정도 준비한 다음, 마나를 주입시켜 포션에 떨어뜨리면 완성인가.”


“마, 망했어요. 저의 실패작이 세상 밖으로······.”


“실패작이라고 하면 아쉽잖아, 제조법을 보니 여러 가지 실험한 흔적이 엿보이는데.”


제조법을 건네주며 레이나의 어깨를 부여잡아 일으켰다.

새로운 무언가를 발명, 발견해나간다.

어느 누구도 시도해보지 않은 것을 자신의 노력을 녹여 만들어낸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레이나는 도움이 되고자 하는 포션을 만들고자 했겠지만 좀비포션이 몬스터에게도 통한다면 굉장한 디버프를 안겨주는 포션이지 않은가?


어떤 것이든 사용하는 자의 능력에 달려있는 것이다.

나는 이 좀비포션을 실패작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았다.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예상하지 못한 상태로 만든 것이니 성공도 실패도 없는 것이다.


레이나는 그런 위대한 업적으로의 한 발자국을 내딛어 보인 것이다.

스스로는 겁이 많다며 위축되고, 실패작이라며 울상을 지어도 다시 털고 일어나 또 다시 실험정신을 발휘한다.


포기하지 않는 정신은 실패를 마주할 각오를 동시에 지니는 것과 같다.


자신이 정말 겁이 많고 약하다고 생각한다면 다시 일어설 용기 또한 쥐려하지 않는다.

나는 노력하는 자들의 성과가 어떻든 간에 박수를 쳐줄 준비가 되어있다.

즐기는 자들의 행동에 환호를 해줄 준비가 되어있다.


“이건 선물이라 생각하고 내가 가지고 있을게.”


“장난이 아니고 진짜 가지려고 하신 거예요?”


“응, 장난이 아니라 진짜 이 포션에 정이 들었다니까.”


좀비포션이라는 것도 멋대로 지은 것이지만 왠지 모르게 내 마음에 속 들어버렸다.

제조법도 확인 했으니 나중에 절망버섯과 우울꽃잎이 어떤 것인지 확인해 봐야겠다.


“그럼 적어도 정상적인 포션을 가지시는 게······이 매의 발톱은 어떠세요?”


레이나는 그렇게 말하며 입에 고기를 물고 서둘러 허리춤에 매달려있는 포션을 하나 꺼내서 내게 건네주었다.


찰랑이는 액체는 뽀얀 흰 색이었고 마치 우유 같았다.


“이 포션은 왜 매의 발톱이라고 불러? 어떤 효능이 있지?”


좀비포션을 확실하게 챙긴 뒤 매의 발톱이라는 포션에도 호기심을 표출하며 물어보았다.

내가 호기심을 보이는 반응을 내비치자 기분이 좋아진 것인지 레이나는 신나하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역시 레이나는 포션이나 약초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면 금방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보는 사람마저 흐뭇해지는 모습에 내 얼굴에도 혹시나 티가 날까, 칠흑의 가면을 착용하였다.


“이건 매의 발톱을 닮은 꽃을 달여서 꽃이 지닌 본래의 힘을 추출해낸 포션인데요, 이걸 마신 자는 사기가 증진되며 공포와 저주로부터의 면역을 키워줘요,”


“흐음, 상당히 좋은 포션이네? 물론 나한테는 필요 없지만.”


“너, 너무해요······.”


빈말이 아니라 진짜 필요가 없었다.

사기가 증진되는 것은 몰라도 공포와 저주는 애초에 면역이었다.

저 포션이 내가 지닌 면역보다 훨씬 높은 등급의 면역을 키워주는 것이 아니라면 마시게 될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물론 드래곤이신 카지락스타님께선 이런 포션은 관심도 없으실 테지만, 그래도 조, 좀비포션보다는 제대로 된 포션이니까요.”


“제대로 된 것보단 좀비포션은 재미가 있으니까 마음에 든 건데?”


[둘이서 뭐하는 짓인지, 도저히 못 봐주겠구나.]


상당히 가까워진 거리로 인해 심연의 목소리가 혀를 차며 머릿속을 치고 들어왔다.

나는 알겠다며 자리에 앉은 뒤에 분위기도 가라앉힐 겸 조용히 입을 열었다.


“레이나도 이제는 편하게 불러줘.”


“편하게요? 뭘 편하게 부르면 될지···”


“여기서 편하게 불러봐야 나밖에 더 있겠어?”


“네?! 제가 감히 카지락스타님을 편하게 부르다니요.”


손사래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뒷걸음질 치다가 발이 꼬여 넘어지는 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잖아, 네가 알고 있는 드래곤이라면 이렇게 평범하게 얘기하고 있을 리도 없을 텐데?”


“그건 확실히 그러네요.”


내 말을 곱씹어보더니 수긍한 듯 고개를 미약하게 끄덕여보이다가 한 쪽 눈을 질끈 감아보였다.

하필 넘어져도 돌이 있는 곳에 뒤통수가 찍혀버린 레이나는 쓰다듬던 손에 피가 묻혀 나오자 두 눈을 크게 확장하며 애써 진정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겁보다 덜렁이는 것부터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레이나의 뒤통수를 확인해보았다.

갑작스런 내 행동에 놀라면서도 순순히 몸을 맡긴 그녀는 얌전히 고개를 숙인 채 피가 묻은 손을 닦으며 물었다.


“주, 죽을 정도로 심하면 제 포션으로는······.”


[떨림으로 보아 동요를 하는 모양이군, 스스로 겁이 많다고 하더니 사실이었나.]


‘쿠람보고 기절할 정도니까.’


심연의 목소리에게 대충 대답해준 뒤에 레이나의 갈색 머리카락을 살짝 젖혀보았다.

피가 엉겨 붙은 탓에 상당히 지저분하게 손에 달라붙었지만 상관하지 않고 찢어진 부위를 확인했다.


“고통도 안 느껴졌냐? 이정도면 상당한데······.”


“서, 설마 정말 죽을 정도로 심한 것은 아니죠?”


레이나는 내가 장난으로 내뱉은 말이라 생각하고 되물어보았지만, 그렇게 믿는 것과는 반대로 몸의 떨림은 더욱 심해졌다.


“콸콸은 아니고 좔좔 흐르는 정도?”


“또, 똑같은 말이잖아요, 거기서 거기 아닌가요?!”


“흠, 그런가?”


레이나가 급히 포션을 꺼내들기 시작했지만 동요 때문인지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심연의 목소리가 다시 어이가 없다는 듯 치고 들어왔다.


[용케도 이곳까지 왔군.]


상당히 길게 찢어졌기 때문에 바늘로 수십 자국을 꿰매야할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도 멈출 생각은 없었고, 때문에 새빨간 피는 어느 새 레이나의 목과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피를 확인한 레이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이 정도까지 피를 흘려본 것은 처음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적어도 몇 백 년은 살아온 엘프가 이 정도 상처도 처음이란 말인가?

굉장히 평화롭고 조심스럽게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처음이라면 그 공포가 당연한 것이라며 흐르는 피를 닦아주며 안정시켜주었다.


“걱정하지 마 이 정도는 내가 금방 치유해줄 수 있으니까.”


나는 오른손의 검지를 입에 가져다댄 뒤에 있는 힘을 다해 손가락을 물었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과 동시에 출혈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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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15. 영웅이 남긴 쪽지 19.04.09 107 1 11쪽
77 15. 원인을 알 수 없는 19.04.08 92 1 12쪽
76 15. 호수의 비밀 19.04.06 87 1 12쪽
» 15. 포션을 만든다는 것 19.04.05 95 1 12쪽
74 15. 금화 한 닢 19.04.04 92 1 11쪽
73 15. 조우 19.04.03 88 1 12쪽
72 15. 여정의 시작, 다시 론 우저로 19.04.02 93 1 13쪽
71 14. 무린, 뿌리 19.04.01 107 1 12쪽
70 14. 무린, 백하단의 그림자 19.03.30 105 1 12쪽
69 14. 무린, 신기 갈루 제 2 단 : 요격모드 19.03.29 100 1 11쪽
68 14. 무린, 신기 갈루 제 1 단 : 포격모드 19.03.28 116 1 12쪽
67 14. 무린, 폭풍전야 19.03.27 112 1 11쪽
66 14. 무린, 태양을 갉아먹는 자 천체 사로스 여왕 19.03.26 110 1 12쪽
65 14. 무린, 베이트리스와 주륙단도 19.03.25 122 1 11쪽
64 13. 강해져야 할 때, 신경사슬 (3) 19.03.23 124 1 11쪽
63 13. 강해져야 할 때, 신경사슬 (2) 19.03.22 132 1 11쪽
62 13. 강해져야 할 때, 신경사슬 19.03.21 134 2 12쪽
61 13. 강해져야 할 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 19.03.20 150 1 12쪽
60 13. 강해져야 할 때, 잿빛가루의 공간 19.03.19 122 1 12쪽
59 12. 백설십장, 기시단 프론락텀 19.03.18 149 1 12쪽
58 12. 백설십장, 조율의 공간에서의 격전 19.03.16 130 1 12쪽
57 12. 백설십장, 태초의 인간과 백설십장의 힘 19.03.15 151 1 11쪽
56 12. 백설십장, 치명상을 이끌어내는 육체 19.03.14 151 1 12쪽
55 11. 공백인형, 백설십장 파로에 프론락텀 19.03.13 155 1 12쪽
54 11. 공백인형, 앱솔루트 카운터와 마족 집결 19.03.12 147 1 11쪽
53 11. 공백인형, 죽음을 거부시키는 조건 19.03.11 131 1 12쪽
52 11. 공백인형, 조사 19.03.09 134 1 12쪽
51 11. 공백인형, 몰락 귀족가의 저택 19.03.08 157 1 12쪽
50 11. 공백인형, 론 우저 입성 19.03.07 172 1 12쪽
49 11. 공백인형, 요정령 노바 19.03.06 16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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