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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비 님의 서재입니다.

지상 최강의 좀비가 된다면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이호비
작품등록일 :
2019.01.12 21:51
최근연재일 :
2019.08.20 21:30
연재수 :
136 회
조회수 :
61,756
추천수 :
720
글자수 :
748,164

작성
19.03.1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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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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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3. 강해져야 할 때, 잿빛가루의 공간

DUMMY

톡! 톡! 톡!


일정한 리듬감을 가지고 귓가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또 정신을 잃었나.”


이세계로 오고 난 뒤로 지금까지 한 식사보다 기절을 더 밥 먹듯이 하고 있었다.

이제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가까스로 마족과 싸우던 중이었다는 걸 생각해낸 나는 한 손으로 머리를 더듬어보기 시작했다.


녀석의 한 방은 곧 즉사였다.

머리와 심장이 터져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숨이 붙어있다는 점에서 내 육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스스로를 좀비에 빗대어 생각하고 있었건만, 이건 좀비라는 것으로 치부하기엔 무리가 있어보였다.


“그 전에, 진짜 살아있기는 한 건가?”


상당히 익숙한 공간에서 눈을 뜬 나는 두 다리를 이끌어 자리에 섰다.


“사후세계는 아니지? 눈을 떴는데 왜 이런 장소에서 일어 난거야, 괜히 사람 불안하게.”


잿빛가루가 뭉쳐 만들어진 침대를 한 번 만져보았다.


푸스스스···


“느껴지는 감각은 그대로인데.”


내 손길에 의해서 침대는 원래의 부드러운 입자로 되돌아가기 시작했고, 손바닥을 타고 흐르는 잿빛가루를 털고 난 뒤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웃는 녀석이랑 대화를 나눈 공간이 틀림없지?”


스스로에게 묻고 대답하며 어둠속을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심연과 같은 공간속에 있는 것이라곤 잿빛의 가루가 흩뿌려진 대지 뿐.


“아무도 없어요?”


동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가진 힘도 꽤나 강한 축에 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설마 그런 말도 안 되는 능력을 지닌 녀석이 있었을 줄이야.


부디 잘 도망갔으면 좋겠는데······.

살아남은 뒤에는 날 찾겠다고 론 우저를 휘젓고 다니진 않을까?


“그래도 클로버가 있으니 괜찮겠지.”


어떻게든 상황만 잘 벗어났다면 내 정체를 알고 요정과 얘기가 잘 통하는 클로버가 곁에 있으니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 세라도 있고.


게다가 상당히 강해보이는 요정도 왔었으니까.


“아무튼 지금은 여기서 빠져나가는 것만 생각하자.”


그래봤자 계속 어둠속을 걷고 있을 뿐이었지만.

그때였다.


“다시 인사 올립니다, 이세계인이여.”


“까, 깜짝 놀랐잖아!”


박쥐마냥 거꾸로 매달린 채 웃는 남자가 불쑥 나타났다.

그것도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말이다.


예상범위를 아득히 뛰어넘는 등장에 의해서 절로 뒷걸음질 쳐졌고 내 가슴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정도로 놀란 것도 거의 처음이 아닐까 싶었다.


“하하하, 실은 어떻게 인사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답니다.”


여전히 가면을 쓴 것처럼 가식을 담아 웃고 있었다.

허공에서 몸을 돌려 바닥에 내려온 마이즈는 다시 한 번 내게 인사를 건네 보였다.


“설마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마주하게 되리라곤 생각지도 못 했습니다.”


“···네가 날 이곳으로 데려온 게 아니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당신께는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드리지 않았습니까. 하하하.”


넉살좋은 웃음과 함께 귓가에 속삭이듯 다가와 구슬은 잘 가지고 있냐며 조심스레 물어보기까지 한다.


“네가 아니면 누가 날 이곳으로 데려와?”


그때와 마찬가지로 마이즈로부터 짙은 광기가 피어올라 날 괴롭게 만들기 시작했다.

코를 부여 막고 인상을 찡그린 채 뒷걸음질 치니, 그 걸음에 맞춰 녀석이 성큼 다가와 상당히 곤혹스럽게 느껴졌다.


“그것이······우선은 저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시겠습니까?”


불쾌하게 여겨질 만큼의 짙은 광기가 녀석의 눈빛에 서리기 시작했다.

녀석의 시선에는 날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하나의 도구로써 바라보고 있음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결코 좋은 뜻에서 관심을 보이는 것이 아니었기에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도록 밀쳐보이자 조금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죄송합니다, 당신만 보면 제 자신이 흐트러지는 것을 도저히 막을 수가 없군요.”


헛기침을 연발하면서도 여전히 웃는 얼굴.

광기가 누그러짐에 따라 내 인상도 조금씩 편안하게 펴지기 시작한다.


“아무튼 네가 아니라면 다른 백하단의 조직원이 날 이곳으로 데려온 거겠지.”


기억을 더듬으며 순백의 가면을 착용한 여성을 떠올렸다.

현실이 아닌 잠재의식 속 광기의 바다보다 더 깊은 심연 속에서.


그 사람은 대체 누구였을까?

어떻게 내 잠재의식 속을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었던 거지?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곧 당사자가 올 테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마이즈는 한 발자국 내 곁으로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또 뭐야.”


숨김없이 인상을 찡그려보이자 마이즈는 손사래를 살짝 치며 대답해보였다.


“이런 만남도 우연이지 않습니까? 백하단으로 들어오실 생각은 어떻게 정하셨는지요.”


“···솔직히 잘 모르겠어. 갑자기 그런 제안을 받아도 섣불리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무엇보다 저런 기분 나쁜 녀석이 있는 조직에는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이즈는 퍼포먼스를 보이며 백하단의 좋은 점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백하단은 정말 좋은 조직입니다. 세계를 진정으로 구하기 위해서만 초점을 두고 있죠. 누군가가 알아주는 것도 아님에도 저희들은 진실 된 평화를 위해···끄억!!”


퍽!!


잿빛가루와 어둠만이 존재하는 공간, 그 허공에서 순백의 가면을 착용한 한 여성이 마이즈의 머리위로 떨어졌다.

흰 제복에는 붉은 문양이 새겨져있어 상당히 권위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제복만큼이나 하얀 검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마이즈의 머리를 밟고 나타난 여성은 내게 고개를 살짝 끄덕여 인사한 뒤에서야 발을 치워보였다.


“파로에, 너무 하신 것 아닙니까?”


“······.”


‘잠재의식 속에서 봤던 사람이 틀림없어, 그런데 상당히 과묵하네.’


마이즈는 제복 바지와 칠흑의 래더아머에 붙은 잿빛가루를 털며 투덜거려보였다.

하지만 가면의 여성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뭐지, 상당히 말을 걸기 어려운 사람이네.’


아무런 문양도 새겨져있지 않은 가면 때문일까.

몸에 배겨있는 분위기 자체가 좀처럼 입을 열기 어렵게 만들고 있었는데, 어색해진 분위기 속에서 자유로운 행동을 보이는 것은 마이즈 뿐이었다.


그는 가면의 여성에게 다가가 의미심장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파로에, 설마 쑥스러워하시는 겁니까? 그런 겁니까? 천하의 파로에도 부끄러운 감정이 스며드는 모양입니다? 하하하.”


마이즈의 말에도 가면의 여성은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분노의 전조단계라는 생각을 가졌지만, 섣불리 입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면의 여성이 등장한 것과 동시에 가슴이 심각할 정도로 요동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임무도 아닌데 가면은 왜 착용하셨습니까? 평상시에는 그렇게 착용하라 일러도 거들떠도 안 쳐다보신 분께서 말입니다. 오늘은 이상하리만치 잘 착용하셨군요. 게다가 고정까지 완벽하게 말입니다. 하하하.”


아, 가면의 여성이 드디어 미세한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주먹을 쥔 두 손이 살짝 떨림을 머금어 보였는데, 이 이상의 도발은 좋지 않을 텐데도 불구하고 마이즈는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방정떠는 입은 폭주 기관차마냥 쉴 틈 없이 나불거리기 바빴다.


“파로에의 이 모습을 모두가 봐야했는데 말이죠. 설마 천하의 파로에가 이런 소녀 같은 감성을 지니고 있었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백설십장인 파로에가 말이죠. 그 파로에가 설마 이렇게까지 긴장을 하고 있······.”


스르릉


하얀 검을 뽑아든 파로에는 가면을 착용한 상태였기에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확인 할 수 없었으나, 나와 마이즈는 단 한 가지만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살의를 두른 행동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았으며, 얼마 안 가 한 생명이 이 자리에서 사라지리라는 것을.


“으아아아!!! 살려주십시오! 죄송합니다, 파로에!! 그냥 평상시에 한 번 놀려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10마리의 반투명한 흰 새들이 마이즈를 향해 매섭게 날아들었다.

파로에는 검을 낮게 늘어뜨리기 시작했는데 진심으로 목숨의 위협을 느낀 마이즈는 서둘러 내 등 뒤로 숨어보였다.


“뭔지는 몰라도 죽으려면 혼자 죽으라고!”


잿빛가루들을 휘몰아치며 빠르게 다가온 마이즈의 속도에 놀란 것과 동시에 파로에의 살의에 당황한 나는 머리와 심장이 터지고도 살아남은 육체임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파앙!


내 등 뒤에 숨어 목숨을 구걸하는 마이즈와 한바탕 소동을 벌이는 동안 파로에는 능력을 거두었다.

10마리의 흰 새들이 깃털을 날리며 사라졌고, 이내 검을 집어넣은 파로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할 말이 있으시면 하시죠?”


살기를 뿜어낸 것만으로도 사람 한 둘은 저승으로 인도했을 법한 사신이 지금은 가을바람에 떨어질락 말락 하는 나뭇잎마냥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고 있어 나도 모르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후우, 이것 참. 파로에 그만 진정하시죠?”


등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마이즈가 한숨을 내쉬며 앞으로 튀어나왔다.

여전히 날 방패로 삼고 있는 상태긴 했지만 말이다.


“······.”


“긴장을 풀어드리려 해도 검을 뽑으시니, 제가 대신 설명합니까?”


오죽하면 싱글벙글 웃기 바쁜 마이즈의 표정에 미세한 변화가 일어났다.

미간이 살짝 좁혀지며 지금의 상황에 상당히 답답해하는 기색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러자 파로에는 결심을 한 모양인지, 가면으로 두 손을 가져다대었다.

잠시 멈칫거리기는 했지만 이내 가면의 양 끝을 잡고 아주 천천히 벗기 시작했다.


가면을 벗는 손에는 떨림이 존재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또 다시 내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족의 손에 의해 터졌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나도 모르게 가슴을 부여잡으며 심적인 고통에 한 쪽 눈이 감겨지기 시작했다.

고통 아닌 고통.

이런 기분은 또 처음 겪어보는 것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떨려오던 손과 더불어 그녀의 목소리에도 똑같은 떨림이 묻어나왔다.

참으로 아름다운 여성의 목소리.

포근하면서도 심금을 울려대는 그런 목소리였다.


“저는 파로에···”


날 향한 수줍은 인사에 더더욱 뭉클한 무언가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내 몸이 왜 이런 것인지.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으며 숨이 가빠온다.

그런 동시에 기대감에 전신이 흠뻑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프론락텀이라고 합니다.”


조심스럽게 자신을 소개한 그녀의 마지막 말에는 사죄의 감정이 담겨있었다.

뭐가 그리 미안한 것인지.

처음 보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날 향해 죽을죄를 지은 것처럼 처절하게 다가왔다.


분명 나와 그녀가 마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그런데 왜 마지막 그녀의 말에 슬픈 감정이 내비치는 것일까.


잠재의식 속 날 향해 따뜻하게 건넸던 말.

그 속에는 안도와 동시에 불안이 묻어나와 있었다.


잿빛가루의 공간에서 날 향해 슬픔과 고독을 담아내 건네는 말.

단순히 소개를 하는 것임에도 수줍음과 기쁨, 그리고 절망이 묻어나와 있었다.


왜 그런 감정들을 느낄 수 있는 것이지?


나와 같은 은발의 머리카락과 피를 담아낸 것처럼 붉은 눈동자.

생김새는 닮지 않았지만 분위기가 묘하게 닮아있는 그녀.


파로에 프론락텀.


[기시단과 파로에, 그리고 너라는 존재에 대해서 궁금하지 않아?]


잠재의식 속 심연의 목소리가 빈틈을 헤집고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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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15. 원인을 알 수 없는 19.04.08 93 1 12쪽
76 15. 호수의 비밀 19.04.06 88 1 12쪽
75 15. 포션을 만든다는 것 19.04.05 95 1 12쪽
74 15. 금화 한 닢 19.04.04 93 1 11쪽
73 15. 조우 19.04.03 89 1 12쪽
72 15. 여정의 시작, 다시 론 우저로 19.04.02 93 1 13쪽
71 14. 무린, 뿌리 19.04.01 108 1 12쪽
70 14. 무린, 백하단의 그림자 19.03.30 105 1 12쪽
69 14. 무린, 신기 갈루 제 2 단 : 요격모드 19.03.29 101 1 11쪽
68 14. 무린, 신기 갈루 제 1 단 : 포격모드 19.03.28 117 1 12쪽
67 14. 무린, 폭풍전야 19.03.27 113 1 11쪽
66 14. 무린, 태양을 갉아먹는 자 천체 사로스 여왕 19.03.26 110 1 12쪽
65 14. 무린, 베이트리스와 주륙단도 19.03.25 122 1 11쪽
64 13. 강해져야 할 때, 신경사슬 (3) 19.03.23 124 1 11쪽
63 13. 강해져야 할 때, 신경사슬 (2) 19.03.22 132 1 11쪽
62 13. 강해져야 할 때, 신경사슬 19.03.21 134 2 12쪽
61 13. 강해져야 할 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 19.03.20 151 1 12쪽
» 13. 강해져야 할 때, 잿빛가루의 공간 19.03.19 122 1 12쪽
59 12. 백설십장, 기시단 프론락텀 19.03.18 150 1 12쪽
58 12. 백설십장, 조율의 공간에서의 격전 19.03.16 130 1 12쪽
57 12. 백설십장, 태초의 인간과 백설십장의 힘 19.03.15 152 1 11쪽
56 12. 백설십장, 치명상을 이끌어내는 육체 19.03.14 151 1 12쪽
55 11. 공백인형, 백설십장 파로에 프론락텀 19.03.13 155 1 12쪽
54 11. 공백인형, 앱솔루트 카운터와 마족 집결 19.03.12 148 1 11쪽
53 11. 공백인형, 죽음을 거부시키는 조건 19.03.11 131 1 12쪽
52 11. 공백인형, 조사 19.03.09 135 1 12쪽
51 11. 공백인형, 몰락 귀족가의 저택 19.03.08 158 1 12쪽
50 11. 공백인형, 론 우저 입성 19.03.07 173 1 12쪽
49 11. 공백인형, 요정령 노바 19.03.06 17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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