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6) - 조용한 아침의 나라
- 1890년 5월 21일. 인천.
청나라에서 계약을 끝마친 이후 나는 인천항을 통해 조선에 입국했다. 청과의 거래가 순조롭게 흘러갔다는 소식이 이 조선 땅에도 흘러 들어온 까닭일까, 사극에서나 봤던 갓 쓴 사람 수십 명이 몰려와 우리를 반겨주었다.
‘분명 한국말인데 왜 이렇게 어렵지?’
아무래도 시대가 시대다 보니 현대 한국어하곤 억양이나 사용하는 어휘에서 약간의 괴리가 있는 듯하다. 집중하면 알아들을 수 있긴 한데, 그러긴 귀찮으니 그냥 통역관을 통하기로 했다.
“조선에 입국하신 걸 열렬히 환영하오. 이야기는 전부 들었소이다. 주상 전하께서 친히 기다리고 계시니, 어서 짐을 내리고 움직입시다.”
허허, 이거 참. 기관총이 뭐라고 국가 최고 권력자가 직접 행차하는 걸까. 뭐, 나로선 나쁠 건 없다. 그러면 어디 한 번 고종 실물을 봐 보실까······.
잠시 후, 딱 봐도 고종으로 보이는 사람이 수행원들을 데리고 내게 다가왔다. 그러곤 기관총 시연을 곧장 볼 수 있겠냐고 물었다.
“물론입니다. 다만 그 전에 구매 수량을 알고 싶습니다만······.”
“우선 본국에서 생각 중인 금액은 총 15,000달러입니다.”
정당 가격이 500달러이니, 대략 30정 정도 구매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당연히 내 코엔 차지도 않는 금액이기에, 나는 그렇게 적게 구매하는 건 곤란하다는 투로 고개를 저었다.
이에 역관은 곤란한 표정으로 고종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그러자 고종은 애매한 눈빛으로 나를 쓸더니, 2만 달러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2만 달러면 40정가량이군. 여전히 내 성에 차진 않는다만, 조선의 재정 상황을 감안했을 때 그다지 여유가 있진 않겠지.’
당연하지만 가격을 거저 깎아줄 생각은 없다. 나는 어디까지나 장사꾼이고, 조선땅에 온 건 기관총을 제값에 팔러 온 거다. 하지만 난 지금 2만 달러에 50정을 팔아주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돈보다 더 값진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바로 내 친형 스티브의 출세다.
“저는 최소한 50정 단위로 판매합니다. 그 정도는 되어야 수지타산이 맞거든요.”
“하오나 우리 측 예산은 2만 달러가 한계입니다. 40정 도입은 어찌 안 되겠습니까?”
“400달러에 1정 꼴로 해서 50정 드리겠습니다. 단,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만······.”
나는 고종을 지긋이 바라본 후, 이건 외교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고종은 역관의 통역을 듣고는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더니, 자신이 뭘 해주면 되겠냐고 물었다.
“물론 저는 미국을 대표하는 외교관은 아닙니다만, 미군과 이해관계가 조금 얽혀 있어서 말입니다. 미국에 군사고문단을 추가로 요청해 주신다면 2만 달러에 50정을 넘겨드리죠.”
“전하께서 그래야 하는 이유를 물으십니다. 단순히 거래 조건으로 고문단을 부르는 건 타당치 않다고 하는군요.”
의아해하는 고종과 그 수행원들을 향해 나는 내 친형을 군사고문단으로써 조선에 파견 보내고 싶어서라고 이유를 밝혔다.
“제 친형은 미 육군 대위입니다. 최근에 진급하였고, 조만간 해외 파견근무를 신청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당장 딱히 갈 만한 국외 근무지가 없어서 신청을 못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조선 측에서 미국에 군사고문단을 추가로 요청한다면 제 형이 갈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겠지요.”
“전하께서 좋다고 하십니다. 올해 중으로 미국에 군사고문단을 요청하겠다고 하시는군요. 대신 금액을 조금만 더 깎아달라고 하십니다.”
“오케이. 천 달러 깎아서 19,000달러에 팔지요. 이 정도면 어떻습니까?”
고종은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시간이 잠시 난다면 커피나 한잔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안 될 것 어디 있겠습니까. 오히려 저 같은 사람에게 전하가 이야기를 제안한 것 자체가 영광입니다.”
잠시 후 탁자를 사이에 두고 나는 고종과 마주 앉았다. 잠시 후 하녀가 커피를 대령해 오자, 고종은 내게 커피를 들이밀고는 한번 마셔보라고 영어로 말했다. 물론 어색했다만.
“감사합니다, 전하.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요?”
“전하께서 앞으로 미제 무기를 계속 수입하고 싶은데, 어떻게 도움을 받을 수 없겠냐고 하십니다.”
호오, 이거 잘됐군. 보아하니 고종은 무기 수입에 꽤 진심인 것 같다. 그렇다는 건 청나라에 팔지 못하는 무기들을 조선에 팔아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지.
‘아무래도 청나라에 소총까지 팔아먹는 건 무리일 터. 하지만 조선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래, 보병용 소총을 개발하는 대로 조선에 한 번 납품을 시도해 봐야겠다. 자동권총 판매도 꽤 괜찮을 테고······.’
나는 마음을 굳힌 후 고종에게 자동권총을 구매할 생각은 없냐고 물었다. 이에 고종은 나쁘지 않다는 듯한 눈빛으로 추후 주문서를 보내면 되겠냐고 물었다.
“노스캐롤라이나 파예트빌 소재의 맥도날드 제너럴 암즈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그곳이 제 회사입니다.”
“노스캐롤라이나가··· 어디요?”
“아주 좋은 땅이죠. 뭐랄까, 꼴통 같은 땅이랄까요. 허허. 아무튼 무기 수입 관련해서는 제가 도울 수 있는 대로 도와드리겠습니다. 물론 제 회사와 우선적으로 계약해 주신다는 조건 하에 말입니다.”
“꼴통이라······.”
그렇게 조선에서의 협상은 끝이 났다. 기관총 50정 가격으로 19,000달러에 운송 비용까지 쳐서 2만 달러. 청나라 계약 건에 비하면 초라한 규모지만, 그렇다고 내가 얻은 게 없는 건 절대 아니다.
스티브의 출셋길을 열어준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상당한 이득을 본 셈이지. 올해 내로 스티브는 조선 땅으로 가게 될 것이고, 몇 년 뒤 청일전쟁이 발발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자기 능력을 힘껏 발휘하게 될 것이다.
- 1890년 6월 27일.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돌아왔어, 램지? 기다리고 있었다고.”
“뭐야, 스티브. 캘리포니아까진 웬일이야?”
“네가 돌아오는데 아버지는 바쁘셔서 못 간다고 해서, 내가 특별히 휴가를 내서 찾아왔지. 다만 기간이 촉박해서 바로 출발해야 하는데, 괜찮겠나?”
19세기 미국에서 지낸 이래 나는 점차 램지 킹 맥도날드라는 사람에 물들어갔다. 그런 까닭일까, 고작 2년밖에 알고 지내지 않은 스티브라는 사람이 정말로 친형처럼 느껴진다.
‘그래, 친형이긴 하지. 아무튼 그래도 고맙긴 하군. 전생에는 외동이라 형제애라는 걸 못 느꼈는데 말이지······.’
스티브는 내 손에 가득 들려 있던 가방을 잡아챈 후 그 안을 살며시 열어보았다. 그러곤 굉장히 놀란 표정으로 이게 도대체 뭐냐고 소리쳤다.
“뭐긴 뭐야, 은괴지. 대금으로 받은 거야. 이건 얼마 안 되고, 사실 저기 뒤에 쌓여 있는 상자 더미가 진짜배기야.”
“너 도대체 동양에서 뭘 하고 온 거야······?”
“뭐긴, 거래지. 앞으로도 자주 할 일이야. 출장 갈 일은 없겠지만. 그나저나 한 가지 전달할 사항이 있는데.”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하자고. 두 달 넘게 출장을 갔다 왔는데 맥주 한 잔 정도는 괜찮잖아?”
잠시 후, 나는 스티브와 함께 술집에 들어섰다. 향긋한 미국 맥주가 앞에 놓인 가운데, 나는 스티브에게 해외 파견근무 건은 어떻게 됐냐고 물었다.
“그게 아직 자리가 없다고 하더라고. 대위로 진급해서 조건은 되는데 말이지······.”
“그거 말이야. 조만간 자리가 생길 거야. 내가 저번에 추천했던 코리아 있잖아?”
코리아라는 말에 스티브는 두 눈을 부라리며 설마 동양에 가서 조선에다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온 거냐고 물었다. 이에 나는 빙그레 웃으며 정답이라고 소리쳤다.
“기관총을 좀 싸게 팔아주는 조건으로 조선에서 미국에 군사고문단을 추가로 요청하기로 됐어. 그러니 조만간 해외 파견근무를 갈 수 있을 거야.”
“잠깐··· 고작 나를 위해서 그런 일을 벌인 거야?”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는 마. 중국에 가는 김에 조선에도 들른 거고, 형이 생각나서 한번 작업을 쳐봤는데 걸려든 것뿐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파견근무 잘 갔다 오도록 해.”
“이건··· 눈물나게 고맙군, 램지. 그래, 네가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코리아로 가지 않는 건 말이 안 되겠지. 몇 년 동안은 너를 못 보겠지만, 편지는 계속할게.”
스티브는 감격에 겨웠는지 맥주 한 잔을 순식간에 들이켰다. 그렇게 우리 형제는 수없이 많은 알코올을 위장 속으로 때려 넣었고, 다음 날에 숙취로 미친 듯이 고생하게 됐다.
- 1890년 7월 4일. 파예트빌, 노스캐롤라이나.
아놀드는 출장에서 돌아온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면서 내게 판매 실적이 적힌 서류 뭉치를 들이밀었다.
“판매 실적이 얼마나 잘 나왔길래 그럽니까?”
“민수용 시장에서 1천 정을 팔아 치웠다고! 게다가 연방군에서 4천 정을 더 주문했어. 4천 정을!”
“뭐요? 4천 정이나 주문했다고요? 그게 정말입니까?”
작년에 연방군이 주문한 M1889 자동권총이 1천 정 분량이었으니, 이건 4배나 되는 성장인 셈이다. 다른 말로 하면 128,000달러 규모 계약이 해외에 갔다 오자마자 성사되어 있었다는 이야기. 사실상 청나라에서 선금을 받아오지 않았더라도 기관총 생산에는 아무런 차질이 없었던 셈이다.
“아무튼 기관총 공장 건설은 전부 완료된 겁니까, 아버지?”
“물론이지. 공장을 두 개나 지었다고. 총 11만 달러가 들었고, 은행에 7만 달러를 빌려놨다. 물론 자동권총을 납품하는 대로 돈을 갚을 수 있을 테니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거야.”
“바로 갚아버리죠. 안 그래도 제가 중국에서 기관총 계약을 따내면서 선금으로 10만 달러어치 은괴를 받아왔거든요. 그래도 3만 달러가 남으니, 이 돈으로는 자동권총 공장이나 더 확장해 버리죠?”
“선금으로 10만 달러를······?”
아놀드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도대체 얼마나 큰 규모의 계약을 체결한 거냐고 물었다. 그리고 내 입에서 30만이라는 숫자가 튀어나오자 이마를 짚으며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아버지! 괜찮으십니까?”
“나는 이대로 족하다, 램지야······. 30만 달러라니··· 도대체 얼마를 벌어 제낄 생각인 게냐!”
“아무튼 기관총 공장 규모는 어느 정도지요? 공장을 두 개나 지었다면 확실히 규모가 작지는 않을 텐데 말입니다.”
아놀드는 공장 하나당 한 달에 40정씩 생산할 수 있는 규모라고 말했다. 즉, 한 달에 기관총 80정을 생산할 수 있는 셈이다.
‘청나라가 주문한 물량은 8개월 정도면 생산 완료되겠어. 마일스 장군 말로는 기관총 경쟁 입찰이 적어도 올해 하반기부터라고 했으니, 시기도 딱 맞아떨어지겠어.’
기관총 생산은 적어도 8월부터 시작할 수 있을 테니, 대략 내년 4월쯤부터 기관총 공장이 놀게 될 거다. 그러니 1891년부터는 미군에 기관총을 납품해야 한다는 이야기.
즉, 나는 올해 남은 시간 동안 기관총을 계속 개량해 나가면서 연방군의 요구 조건에 맞춰내야 한다. 그러면서 시간이 남는다면 본격적으로 슬라이드식 자동권총 설계도 짬짬이 해볼 생각이다.
‘슬라이드식 자동권총은 대충 1892년쯤에 출시하는 걸로 하자고. 일단 그 전에 토글액션식 자동권총으로 돈을 최대한 벌어먹어 두는 게 좋을 테니깐.’
- 작가의말
조선에/ 온 것을 환영하오- 낮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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