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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그좋아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숫자를 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추리

저그좋아
작품등록일 :
2019.04.01 10:01
최근연재일 :
2019.11.19 21:00
연재수 :
183 회
조회수 :
151,973
추천수 :
3,311
글자수 :
1,250,240

작성
19.04.01 10:05
조회
7,621
추천
81
글자
10쪽

*1*

DUMMY

1.

*1*

*1*

정확히는 내가 약자이기 때문이다.

작은 체구인 나는 중학교까지 은따 혹은 왕따 신세를 면치 못했다.

물론 작은 체구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은따나 왕따가 된 건 아니다.

제일 큰 이유는 인간이 악하기 때문이다.

*1*

*1*

그리스로마에 대해서 대부분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크고 커다란 건축물을 만들고, 지금까지도 영향력을 미치는 철학적 사상이 창시된 시대였으니, 사람들이 위대한 문명으로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건 한 고등학교 교실에서 반짝이는 눈동자로 오십 대 안경 쓴 배불뚝이 남성이 말하는 내용을 적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만 봐도 알 수 있었는데, 그중 유일하게 굳은 얼굴인 아이가 있었다.

첫 번째 줄 창가 쪽에 앉은 아이였는데, 아이 가슴에 ‘박수호’라고 검은 글씨로 적힌 초록색 명찰을 달려 있었다.

“그래서 현재 우리는 민주주의를 이룩할 수 있었습니다. 즉, 이렇게 역사를 알고 후대에 이어주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으며, 우리들의 발전을 위해선 항상 과거를 돌아보고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걸 목적으로 세계사 수업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겁니다.”

슥.슥.


거짓말.


곧고 바른 글자를 적은 아이의 손 주변에 글들이 어지럽게 적혀 있었다.


신화 – 제우스는 정의가 아닌 변태 – 욕망 가득한 신과 인간 – 힘으로 찍어 누르는 갑질의 시대 – 변하지 않은 인간 -


툭.

아이의 뒤쪽에서 날아온 종이 뭉치가 머리에 부딪혔지만,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아이는 한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시선 끝에는 칠판 앞에 오십 대 남성이 있었는데, 그자는 안경을 고쳐 매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여러분 시험에 나올지 모르는 중요한 내용을 말하겠습니다. 잘 적으세요. 나 자신을 알라는 신전에 새겨진 문구로 일곱 현인이 다른 해석을 내놓을 정도로 유명한데요. 이 격언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툭.

어김없이 뒤에서 날아온 종이 뭉치에 아이는 반응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아이는 한곳만 바라보았고, 그 시선 끝에 위치한 안경을 고쳐 맨 오십 대 남성이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신보다 약한 인간이 자신의 무지함을 알 때 비로소 진실 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거짓말.


툭.


신 위에 인간이 있고


툭.


인간은 악하다.


툭.


고로 진실은 악한 강자만 얻는다.


점점 종이 뭉치가 늘어나는 가운데, 세계사 수업은 오십 대 남성의 목소리만 울려 퍼지다 끝이 났다.

*1*

*1*

중3 또는 고등학생이 되면 어린 시절 천방지축으로 날뛰던 일진이나 그와 비슷한 위치에 있던 아이들이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자신들의 행동이 범죄라는 사실을 알아서.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이 덩치가 커지거나 여러 이유로 비등 또는 강하다고 생각되어서.

중학생 때보다 더 크고 직접적인 처벌을 받는 시기라서.


제일 위의 이유로 아이들이 정신 차렸다면 좋았겠지만, 대다수는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이유로 그만두는 경우가 훨씬 많다.

문제는 위 세 가지 이유를 모르는 경우 계속해서 같은 짓을 반복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도 그나마 나은 경우고 제일 끔찍한 경우는 바로 자신의 상황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는 놈이다.

그게 지금 박수호의 머리를 향해 던지고 있는 김명호가 그렇다.

김명호.

박수호와 동갑이자 중학교 동창인 녀석으로, 훤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로 중학교에서 많은 인기를 누렸으며, 대법원장을 지낸 사람의 손자이자, 거대 로펌의 아비를 둔 금수저다. 비록 유흥업소 여자 몸에서 태어난 사생아이지만, 정식으로 호적에 들어간 놈이었다.

게다가 머리가 좋아, 반 평균 점수에 턱걸이하는 박수호와는 다르게, 항상 전교 1등을 차지하는 놈이었다.

머리 좋은 아이는 미리 조숙해진다고 하지만, 이놈은 조숙하다 못해 썩어들어간 유형이다.

툭.

교과서를 뜯어 종이 뭉치를 만들어 다섯 자리 앞에 있는 박수호의 머리를 향해 종이 뭉치를 던지는 김명호의 행동이 멈춘 건 큰 목소리로 수업을 진행하던 남성이 세계사 책을 덮은 직후였다.

“이것으로 오늘 수업을 마칩니다. 종례는 생략하고, 토일 예배에 참석한 뒤 출석 도장을 모두 받아야 된다는 점 꼭 기억하세요. 그럼 수업 종료 기도를 시작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오늘도...”

그의 말을 따라서 아이들도 같이 기도를 하고 난 후, 오십 대 남성이 급한 걸음으로 바깥으로 나가자, 아이들도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들의 교과서를 들고 교실에서 벗어났다.

그 아이들 틈으로 박수호도 같이 떠나려고 했다.

그러나.

“박수호. 어딜 가시려고 그러나.”

김명호의 부름에 우뚝 멈춰선 박수호는 그럴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아, 오늘 수업이 끝나서 저녁 먹으려고... 갈이 갈래?”

잠시 그를 바라보던 김명호는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어디서 나와 맞먹으려 들어.”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다가오는 그를 보며, 박수호는 뒤로 물러나며 더듬거렸다.

“아. 아니.... 나. 나. 나-”

퍽.

“큭.”

배를 부여잡고 쓰러진 박수호를 뒷덜미를 붙잡은 김명호가 그를 끌며 말했다.

“벌로. 오늘 내게 피 터지게 맞는 거다.”

“아악.”

“입 다물어! 비명이라도 흘러나오면 죽을 줄 알아.”

그의 엄포에 박수호는 입을 다물었고, 김명호에게 끌려 교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교실 바로 옆에 출구로 나선 그들이 어두워지고 있는 산속으로 들어가 사라졌고, 그들이 사라진 곳 옆 사람 크기의 십자가만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1*

*1*

나는 놈이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있다.

내가 두려워하는 모습, 아파하는 모습을 원한다.

그래서 나는 더 크게 비명을 질렀고, 눈물을 짜내었다.

그러면 놈은 둘 중 하나로 행동했다.

나를 더 때리거나, 알아서 뒤로 물러나 비웃으며 나를 떠나거나.

오십 대 오십.

이 빌어먹을 확률이라도 나는 실행했다.

덜 맞기 위해서.

지금의 고통이라도 덜기 위해서...

하지만, 오늘은 그 정도가 심했다.

퍽.

“너 때문에.”

퍽.

“내가.”

퍽.

“시골에 처박혔잖아!”

퍽.

“그런데”

퍽.

“실실 웃어? 이.”

퍽.

“빌어먹을 새끼야!”

고통이 내 목구멍을 막아버린 이때, 놈이 나무토막 무더기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저걸로 때리려고 하는 구나, 그러면 나는 죽는데...

어떻게든 벗어나야 하는데...

죽기 싫어!

문득 옆에 낭떠러지에 가까운 경사로와 도로가 있다는 걸 떠올렸다.

기자! 기어서 구르자!

그때부터 나는 힘이 안 들어가는 왼손을 제외하고 나머지 오른손과 두 발을 이용해 짐승처럼 기어갔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되는 상황에서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새끼가 도망치려고 해!”

퍽.

눈앞에서 번개 친 것처럼 번쩍이더니, 세상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김명호, 나무, 바닥.

김명호, 나무, 땅.

김명호, 나무, 덤불.

김명호, 나무, 도로.

차가운 빛과 날카로운 비명소리.

그리고 따뜻한 어둠이 찾아왔다.

*1*

*1*

다시 눈을 떴을 때, 하얀 천장이었다.

누런 빛깔의 하얀 색이 아닌, 새하얀 천장이라는 사실에 나는 이곳이 교실이나 기숙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안도감이 들자마자 눈이 스르르 감겼고,

띠 – 띠 – 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좀 더 많은 곳을 둘러 볼 수 있었다.


온 몸에 붕대를 맨 사람.

식도에 관을 꽂은 사람.

수많은 기계 장치에 둘러싸인 사람.


모두 환자복을 입고 있었고, 중환자들만 있는 곳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세 명의 환자 중 두 자리가 비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죽었을까? 살았을까?

나도 그들처럼 이곳에서 사라질까?

그런데 이번에 다른 점이 하나 생겼다.

“어머! 선생님! 박수호 환자 깨어났어요!”

한 명의 간호사와 눈이 마주쳤고, 간호사가 사라지고 난 뒤, 사람들이 다가왔다.

“수호 학생 의식이 있으면 눈동자를 움직이세요.”

눈앞에 세상이 좌우로 움직이고,

“잘했어요. 이번엔 위아래로 움직여 보세요.”

이번엔 위아래로 움직였다.

“보호자를 부를까요?”

“당연히 불러야지.”

그리고 기다렸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고, 세상이 어두워졌다.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깨어나는 시간이 많아졌고, 입에 달고 있던 호흡기를 떼고 한눈에 보아도 호화로운 일인 병실로 옮겨졌을 때가 돼서야, 비로소 나의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나와 다르게 키가 크고 근육질 몸매의 소유자, 약간 치켜 올라간 눈꼬리와 볼 때마다 굳게 닫혀 있는 두툼한 입술, 항상 무표정해 차가움이 느껴지는 남자.

박진남.

진실한 남자가 되라는 할아버지의 뜻이 들어간 이름의 사나이.

그 사나이가 내게 시킨 행동은...

“넌 아무것도 모른다.”

거짓말이었다.

순간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비례 대표 – 야당 – 자리 부족 – 연줄 부족 – 김명호 – 전직대법원장


권력을 위해 나를 팔았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화를 내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1


하얀색 숫자가 눈앞에 보였다.

나의... 아버지 머리 위에서 보였다.

내가 미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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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파일18# 원래 (10) +3 19.11.17 153 1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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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파일18# 원래 (8) +1 19.11.13 168 8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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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파일18# 원래 (6) +1 19.11.08 179 6 24쪽
177 파일18# 원래 (5) +1 19.11.06 169 7 12쪽
176 파일18# 원래 (4) +1 19.11.03 172 8 18쪽
175 파일18# 원래 (3) 19.11.02 182 7 13쪽
174 파일18# 원래 (2) +1 19.10.30 187 8 11쪽
173 파일18# 원래 (1) +1 19.10.28 211 9 11쪽
172 파일17# 변해야 산다.(3) +2 19.10.26 176 7 15쪽
171 파일17# 변해야 산다.(2) +3 19.10.21 211 8 13쪽
170 파일17# 변해야 산다.(1) +1 19.10.19 193 9 11쪽
169 파일16# 여왕개미.(6) +2 19.10.17 197 9 16쪽
168 파일16# 여왕개미.(5) +4 19.10.15 205 9 15쪽
167 파일16# 여왕개미.(4) +1 19.10.13 205 8 14쪽
166 파일16# 여왕개미.(3) +2 19.10.11 194 9 11쪽
165 파일16# 여왕개미.(2) +1 19.10.09 199 9 14쪽
164 파일16# 여왕개미.(1) +1 19.10.07 202 8 16쪽
163 파일15# 허수아비 안에 사람은 없다.(4) +2 19.10.06 201 10 19쪽
162 파일15# 허수아비 안에 사람은 없다.(3) +1 19.10.05 208 9 12쪽
161 파일15# 허수아비 안에 사람은 없다.(2) +1 19.10.04 204 8 14쪽
160 파일15# 허수아비 안에 사람은 없다.(1) +1 19.10.03 210 8 15쪽
159 파일14# 사미용두 (5) +1 19.10.02 213 8 18쪽
158 파일14# 사미용두 (4) +1 19.10.01 216 6 20쪽
157 파일14# 사미용두 (3) +1 19.09.29 232 9 13쪽
156 파일14# 사미용두 (2) +3 19.09.28 222 8 13쪽
155 파일14# 사미용두 (1) +1 19.09.26 246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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