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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그좋아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숫자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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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그좋아
작품등록일 :
2019.04.01 10:01
최근연재일 :
2019.11.19 21:00
연재수 :
18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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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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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0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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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파일14# 사미용두 (4)

DUMMY

154

“어디서?”

“어디서요? 영동에 대마를 키우고 있는 곳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가셨다가...”

“관할은?”

“관할은요? 대전이요? 감사합니다. 일 보세요.”

“직장 동료?”

“아니요. 남편분이요.”

남편이라는 단어에 박수호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남편이라고? 그럼 사수라는 사람 여성이었어?”

“청소년들과 관련된 곳은 대부분 여경이 가잖아요.”

“이름.”

“김나래요.”

“운동신경은 좋나?”

“마흔이 넘은 분이세요.”

“좋지 않다는 말이군. 이러면 잡아간 사람 성별도 특정하지 못하겠는데... 대전 서에 아는 분이 있으니 내가 전화해보지.”

스마트폰을 꺼낸 박수호가 전화를 걸었다.

“이명석 경정님 안녕하세요. 수호입니다. 아드님 결혼식 때 뵈고 일 년 만이네요. 개미는 이신후 경감님이 수사 중입니다. 네. 저야 그런 의혹을 받아도 거뜬한 거 아시잖아요. 하하. 네. 고등학교 때부터 살인범 취급받았죠. 네. 다름이 아니라, 김나래 경위 실종 사건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네. 개미와 연관된 사건을 담당한 경찰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연락드렸죠. 음...”

박수호는 이마 부분을 주무르며 말했다.

“실종 장소 근처에서 피해자 혈흔이 발견되었다고요? 목격자는 없습니까? 알겠습니다. 고생하십쇼.”

전화를 마친 박수호에게 김선애가 다가왔다.

“이명석 경정님이면, 김도훈이 죽었을 때, 담당 형사셨잖아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김선애가 고개를 숙였다.

“파일을 보고...”

한숨을 내쉰 박수호가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말한다.

“그분 부하들이 수사를 담당하고 있다니까,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문자로 보내주시겠다고 하셨어.”

“생각보다 사건이 복잡해지는데요.”

“처음부터 복잡한 사건이었잖아.”

“이제부터 나래 경위 사건을-”

“아니, 그곳은 그분들이 알아서 하게 하고, 우리들은 이 사건에 집중한다.”

“하지만, 이곳보다는 납치범을 찾는 게 더 빠르지-”

“빠르지 않아. 납치 골든타임인 스물네 시간이 지났고, 만약 우리 예상대로 세 명이 공범이라면, 경찰과 검찰 내부 인사들을 이용해 우리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을 거다. 중간에 빠질 수 있으면 모를까. 지금은 그들의 예상 범위 내에서 돌아다니다가, 유인하거나, 급습해야 해. 그래야 잡을 확률이 올라가.”

“음... 역시 머리는 쓰는 건 어렵네요.”

“대신 몸은 잘 쓰잖아. 때려잡는 것도 중요한 능력 중 하나고, 머리야 경험으로 커버하면 돼. 그러니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말고.”

“네...”

박수호는 장갑 낀 손으로 책을 꺼내며 말했다.

“나는 책상을 뒤질 테니까. 너는 옷장이랑 선반을 조사해.”

“네.”

김선애가 옷장으로 가고, 박수호는 책상에 있는 책을 하나씩 꼼꼼히 살펴보았다.

교과서와 교재의 여백에는 다양한 색과 깔끔한 글씨로 가득했고, 그것까지 전부 확인하느라 바삐 움직이던 박수호의 눈동자가 한 곳에 멈췄다.


전부 죽었으면 좋겠어.


‘도덕 3’이라고 적힌 앞부분을 봤다가 다시 안을 바라본 박수호는 여러 개의 의심스러운 글자들을 볼 수 있었다.


아니야. 그러면 안 돼.

죽여야 네가 산다고.

아니야 엄마는 고아야. 힘이 없어. 어차피 나도 죽어.

바보같이 계속 맞고 살겠다고?

하지만... 너도 알잖아. 우린 버림받은 놈이라는 거.

그래도 우리도 인간이야! 인간 대접은 받아야 할 거 아니야!

미안. 인간 대접 이하래도. 다시 그분 맘에 들어야 해.

미친놈! 엄마가 아닌 네가 중요해! 네가 살아야 세상이 돌아가는 거야!

미안... 정말 미안. 엄마도 나도. 그분이 필요해.

전교 1등을 하면 이혼하고 이곳에 온다는 말을 믿는다고! 너 멍청이냐!

미안... 하지만... 이것 밖에는... 희망이 없는걸... 정말 미안.


“음...”

다른 부분을 살펴봤지만, 이상한 점은 없었고, 그곳을 박수호가 사진을 찍고 동영상 촬영까지 한 다음 비닐팩에 넣었다.

책을 다 살펴본 박수호는 이번엔 공책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다른 공책 사이에 끼워진 것조차 모를 정도로 얇고 약간 작은 공책 한 권을 발견한다.


개미의 일기


눈이 동그래진 박수호는 빠르게 내용을 살피기 시작했다.


**

아버지는 과묵했다.

하지만, 개미에 대해서만큼은 항상 많은 말들을 하곤 하셨다.


여왕개미, 병정개미, 일개미, 수개미.


그들이 모여, 다양한 환경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사회를 이루고 산다는 말과 함께, 그들 중 빠르게 소멸하는 사회는 나쁜 개미와 미친 개미들이 많은 곳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인간들도 마찬가지라고 하셨다.

...

나는 어려서 이해가 잘 안 되지만, 이거 하나만은 확실하다.

버림받을 개미.

그게 나인 거 같다.

그날 이후로 나와 어머니에게 찾아오지 않았다.

분명 전교 1등을 했는데...

왜 그는 찾아오지 않은 걸까?

...

두 번을 전교 1등을 더했지만...

그는 오지 않아.

이젠... 더는 버티기 힘들어.

참기 힘들다고!

이젠 참지 않을 거야.

나는 외치면서 거세게 반항할 거다.

그래서 내가 버림받을 개미가 아닌, 병정개미라는 걸 증명할 거다!

**


찰칵.

내용을 전부 찍은 가운데, 옷장을 뒤지고 있던 김선애가 구겨진 옷을 들고 찾아왔다.

“이거 보세요.”

“이건...”

박수호가 두 손으로 펼친 하얀색 셔츠엔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셔츠 가슴에 달린 이름표를 보며 박수호는 중얼거렸다.

“임우범.”

“때린 학생 중 한 명이에요.”

“어디서 발견되었지?”

“옷장 서랍 밑에 비닐로 싸진 채 붙여 놓은 걸 제가 발견했어요. 그냥 무심코 여닫으면 전혀 모를 정도로 붙여 놨더라고요.”

“흠...”

“그리고 이것도...”

김선애 오른손에 있는 손가락에 끼우는 너클을 받아든 박수호는 너클에 있는 피를 발견한다.

“증거를 모은 걸까?”

“저도 잘 모르겠어요.”

“만약 증거를 모은 거면, 더 구석진 곳에 숨겼을지도 모르니까, 다 뜯어봐야겠어.”

“뜯어본다고요?”

“그래.”

박수호는 방 전체를 둘러보았다.

“전부 다.”


**

강우호 학생 폭력 증거 목록

1. 임우범 셔츠 – 강우호 학생 피 발견.

2. 탄소강 소재 너클 – 김잔디, 이남호 지문 발견. 강우호 혈흔 발견.

3. 녹음 파일 – 폭언과 타격음. 그리고 떠는 내용이 담긴, 43개의 파일.

4. 카메라 영상 – 1분 20초짜리 구타 영상을 포함한 여러 영상 32개.

**

**

강우호 유서.


친구들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


한 시간 뒤.

XX병원. 보안실.

휠체어를 탄 아이가 화면에서 사라지는 걸 확인한 박수호는 굳은 얼굴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던 보안 요원에게 말했다.

“직접 뛰어내리는 장면은 없어 보입니다만.”

“옥상에 있는 도금한 동상을 감시하는 영상이라...”

말을 흐리며 어색하게 웃는 그였고, 옆에 서서 김선애가 책상 위에 펼쳐진 도면을 가리키며 말하기 시작했다.

“아까 박수호님이 사라졌다고 한 곳을 그려보니까, 옥상 입구와 사건 현장을 포함해서 디귿으로 사각지대가 형성되어 있네요.”

“그 말은 누가 밀어도 모른다는 뜻도 되는 건가.”

“네.”

“이거로 자살로 처리된 이유 중 하나가 사라지게 되었군. 거기에 보안 요원이 말한 대로 다른 영상도 같이 넘겼다면...”

김선애는 고개를 떨구었고,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박수호가 말을 이었다.

“네 사수가 졸속 처리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걸 너는 방관한 거라고 판단하면 내사과에서 너를 호출할 거다.”

박수호의 말에 김선애는 입술을 깨물었다.

“각오하고 있어요.”

“흠... 문제는 이번 수사를 재조사하려면 담당 검사의 협조가 필요한데, 도와줄지 모르겠어.”

“우선 보고부터 해보고-”

웅웅.

박수호는 자신의 오른 바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화면을 바라보던 박수호가 고개를 들었다.

“잠시 비켜주시겠습니까?”

박수호의 말에 보안 요원은 머뭇거렸다.

“죄송하지만, 이곳은 저희 보안 요원이-”

“이 분이면 됩니다.”

박수호의 말에 보안 요원 두 명이 바깥으로 나가자, 박수호는 스마트폰 화면을 김선애에게 보여주었다.

“경위를 납치한 사람 목격자가 있었던 모양이야. 이게 그 사람이다.”

“음? 누구랑 닮은 거 같은데요?”

흑색 연필로 그려진, 동글동글한 얼굴과 순한 눈매, 약간 퍼진 몸매의 용의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박수호는,

“왜 그러세요?”

김선애의 질문에도 말없이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일단, 급조된 개미 수사대에 강우호 자살 사건을 보고하자.”

“하지만, 이건 이신후 팀장님과 명훈 형사님밖에 모르는데, 다른 형사들이 딴지라도 걸면-”

“말해도 될 거 같아. 그리고 협조도 받아낼 수 있을 거 같고.”

단호하게 말한 박수호가 전화를 걸었다.

“팀장님. 네. 확실히 자살이 아닌 타살로 의심될 만한 단서들이 나왔습니다. 강남서 서장님에겐 아직 말을 못했습니다. 거기와 연줄이 있는 지청장님에게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 전부 다 말해봤자 아니면 골치 아프니까, 우연히 발견된 사건인데, 흉악한 범죄자를 공표하면 개미들이 움직이지 않을까라고 전해주십시오. 네. 미끼죠. 부탁드립니다.”

통화를 마친 박수호에게 김선애개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범인이 아이들이면...”

“남을 죽였으면, 자신도 죽임당할 수 있다는 걸 알아야지. 안 그래?”

싸늘하게 말하고 박수호는 문을 바라보며 크게 외쳤다.

“들어오셔도 됩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보안요원이 들어오더니, 자신들의 책상과 화면을 바라보는 것을 보며, 쓰게 웃은 박수호가 손을 내밀었다.

“협조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우리 병원은 언제든지 협조하겠다고 전해달라고 원장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다행이군요. 그럼.”

“수고하세요.”

바깥으로 나온 두 사람.

둘 중 김선애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이제 어디로 갈까요?”

“학교로 간다.”

“가서 아이들을 보고 싶으신 거군요.”

“그래. 전부 같은 고등학교에 있어서, 전화해 보니까, 지금 그 아이들 전부 야자 수업 때문에 학교에 있다니까 가봐야지.”

“그렇게 쉽게 위치를 알 수 있나요?”

“당연히. 임우범의 부모 회사 직원 흉내를 냈지. 그리고 비슷한 직급의 두 사람과도 친한 거 같으니, 같이 물어봤고.”

“저는 그런 생각은 꿈에도-”

“우리 의원님이 그런 식으로 위치 파악한다고 조카가 투덜거리더라고.”

박수호의 말에 김선애가 쓰게 웃었다.

“아직... 관계 회복 안 하신 거예요?”

“평생 회복할 생각 없으니 잔소리는 그만.”

“이럴 때는 반말을 하고 싶지만-”

“난 네 상관이고, 넌 내 부하야-”

“어으... 닭살. 되지도 않는 드라마 대사 흉내 내지 말고...”

대화하면서 두 사람이 엘리베이터 앞으로 걸어갔고, 복도에서 사라졌다.


**

피해자 사망 시작(PM08:27~PM08:29)

병원 7층 복도에서 발견된 용의자 목록.

1. 임우범 – PM08:25~PM09:12 교복 차림의 그가 안으로 뛰어갔다가, 나갈 땐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걸어서 바깥으로 나왔다.

2. 김잔디 – PM08:07~PM08:36 드레스복 차림의 그녀가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가, 마지막엔 천천히 바깥으로 나왔다.

3. 이남호 – PM07:55~PM09:01 교복 차림의 그가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가. 나갈 땐 이곳저곳에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면서 나왔다.

**


한 시간 뒤.

창문이 검게 물들고 있을 때, 박수호와 김선애는 고등학교 안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의외로 학교에서 협조를 잘해 주네요.”

“자신들의 학교에 있을 때 벌어진 사건이 아니잖아. 걸려도 중학교 책임이지 자신들은 아니야. 오히려 의혹을 빨리 털어버리고 조치하는 게 그들에게도 좋아.”

“이럴 때 보면, 좀 극성맞은 인터넷 문화가 나쁜 것만은 아닌 거 같아요.”

“사용하는 사람이 문제지, 어디 도구가 문제인 거 봤어?”

“사람...”

말을 흐리는 김선애가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을 때, 문이 열리더니, 굳은 얼굴의 키 큰 남자아이와 두꺼운 안경을 쓴 삼십 대 후반의 남성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아이가 고개를 숙여 공손하게 인사하는 사이, 두 개의 의자 중 한 곳에 앉은 남성이 뿌옇게 서리가 낀 안경을 닦으며 말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저는 이 얘 담임. 김강올입니다. 경찰 조사를 받는다는 사실을 숨기고 빼 오려니까, 담당 교과 선생이 캐물어서요. 진땀 좀 뺏습니다.”

“아닙니다. 임우범 학생 저기 앉으시죠.”

박수호의 말에 공손한 자세로 서 있던 임우범이 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1


노란색.

“우리가 경찰이라는 건 알고 있지요?”

“예.”

“그 이유도 당연히 알고 있을 겁니다.”

박수호의 말에 움찔한 임우범이 살짝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예전에... 피시방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그러는 거죠? 저는 그때 벌을 달게 받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저는 별로 세 개 때리지-”

대화하는 와중에 태블릿을 조작하던 김선애가 화면을 터치하자, 중간에 악의가 가득 찬 외침이 그 안에서 터져 나왔다.


[죽어! 미친 새끼가 어디서 우리에게 돈 없다고 핑계 대면서, 창피를 주려고 지랄이야! 당장 돈 안 내놔! 안 그럼 죽여 버리겠어!]


임우범과 담임 김강올의 얼굴이 굳어졌고, 그 둘, 정확히는 임우범을 향해 김선애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임우범 학생, 폭언도 폭행입니다. 그리고 학생은 지금 살인 혐의로 이 안에 들어온 거예요.”

“사. 살인이요?”

말을 더듬으며 눈을 끔뻑거리는 임우범 대신 옆에 있던 김강올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죄송하지만, 그런 말씀은 없었지 않습니까! 살인 사건은 제가 감당할만한-”

“혐의가 있는 아이만 데려가려고 조용히 끝내려고 하는 겁니다. 만약 이 아이들의 미래를 배려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경찰차를 불러서 데려가거나, 집으로 돌려보낸 다음 그곳에서 수갑을 채우면 될 일. 하지만, 최대한 소문 없이 해결하기 위해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 저희를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박수호의 대답을 들은 김강올이 입을 다물자, 그가 이번엔 임우범을 바라보며 말했다.

“공교롭게도 재조사에서 너희가 지속해서 괴롭히고 있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박수호의 말에 임우범은 몸을 움찔했다.


1


파란색.

“너희들의 폭행행위는 확실하게 입증되었지만, 피해자가 죽으면서 그 증거들은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말이다. 그 당시 담당 경찰의 어머니 통장으로 네 부모의 돈이 입금되었다는 사실이 지금 확인되었고, 무엇보다 네가 자살한 아이가 있었던 옥상 바로 아래에 위치한 칠 층 복도를 돌아다닌 증거 영상이 그 경찰 노트북에서 발견되었다. 김선애 경정.”

박수호의 말에 김선애가 태블릿을 조작해, 두 사람이 보기 편하도록 돌렸다.

복도에서 자신이 돌아다니는 것을 본 임우범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저. 저는... 그. 그. 그...”

심각해 보일 정도로 덜덜 떠는 모습에 김강올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한다.

“일단, 아이부터 진정시키고-”


1


푸른색.

아이 머리 위 숫자를 바라본 박수호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통화 기록도 있었던 걸 보면, 피해자가 협박했겠지? 당장 오지 않으면 이 녹취 파일과 영상들을 공개해 버리겠다고 말이야. 만약 그게 공개되면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네 부모님 사업이 쫄딱 망하는 건 시간문제지. 아마 약속 시각은 여덟 시? 맞나?”

박수호의 말이 진행될수록 몸이 진정되었지만, 반비례로 이마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눈과 입을 크게 뜬 임우범의 입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그러지 않고서야. 포식자처럼 녀석을 괴롭히고 구타하던 놈이, 고양이 앞에 놓인 쥐새끼 같은 표정으로 복도를 돌아다니지 않았겠지. 그래서? 피해자와 만나 무슨 말을 나눴지?”

“마. 만나지 못했어요.”

“만나지 못했다고?”

“네...”

“다른 친구들은?”

“다른 친구들이요?”


1


푸른색.

반문하는 임우범의 얼굴을 바라보던 박수호에게 임우범이 말을 이었다.

“저. 저는 복도 끝에 있는 방에 기다리고 있으라고 해서, 기다리다가 부모님의 재촉에 나왔어요. 저. 정말입니다.”

“하지만, 협박 내용을 들었으면 그렇게 쉽게 나가지 못했을 텐데.”

“그래서 나가면서도 찾았는데... 찾질 못했어요. 그러고 나서 다음 날에 죽었다는 소리를 들은 거예요. 저. 저는 정말로 죽이지 않았어요. 정. 말. 이에요! 믿어주세요!”

이제는 눈물까지 흘리며 말하는 모습에도 김선애와 박수호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박수호가 손을 뻗어 태블릿을 조작했다.


[믿. 믿어줘! 나는 아니야. 그런 뜻이 아니라-]

[닥쳐! 시발 새끼야! 내가 그런 거면, 그런 거지. 비루먹은 망아지 새끼도 아니고! 아 시발! 꼰대 새끼 말투를 내가 쓰네. 안 되겠다. 너 더 맞자!]

[아악! 미. 미안. 악!]


동영상에서 피해자의 비명이 들려올 때마다, 임우범의 몸이 크게 부들거렸다.


1


검푸른색.

툭.

영상을 멈춘 박수호가 시퍼렇게 얼어붙은 얼굴로 앉아있는 김강울을 바라보며 말했다.

“취조 끝났습니다.”

“예?”

“취조 끝났으니, 데려가고 다른 아이 부르시라고요.”

“네! 아. 알겠습니다. 이. 임.”

김강울이 아이의 어깨로 손을 뻗다가 멈칫하자, 한숨을 내쉰 김선애가 자리에서 일어나, 임우범의 어깨를 붙잡았다.

“일어나!”

“죄. 죄송.”

“사과는 아이 장례식장에 가서 했어야지! 일단 선생과 같이 교무실로 가 있어! 선생님.”

“네!”

화들짝 놀란 그에게 김선애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같이 가셔야죠.”

“네! 가. 갑시다.”

그렇게 세 사람이 나가자 박수호는 관자놀이 부근을 주물렀다.

“음...”

웅웅.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낸 박수호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예. 이명석 경정님, 지금은 가능합니다. 제가 의심된다고 하는 곳은 가보셨습니까? 찾았다고요!”

상체를 바로 세우며 외친 그.

“혹시 다른 사람의 흔적은 없었습니까? 피해자 옷에서 한 사람의 지문을 발견했다고요?! 지문 데이터 이신후 아저씨에게 줄 수 있습니까? 역시 눈치 빠르시네요. 추측대로 범죄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네. 나중에 확인되면 바로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피해자는. 음... 죽었다고요.”

박수호의 눈빛이 사납게 반짝였다.

“알겠습니다. 확인되는 순간 바로 전해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공범이 있을 수 있으니, 주변 카메라나 이동한 차량 블랙박스 확보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옙. 수고하십쇼.”

통화를 마친 박수호가 주먹 쥔 왼손을 들어 올렸다.

쾅.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친 그의 앞으로 세 사람이 나타났다.

김선애와 평범한 체구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생긴 남학생 그리고 김강울이었고, 그들은 박수호의 사나운 눈빛과 마주치자, 동시에 몸을 움찔했다.

“들어와.”

박수호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세 사람 모두 말없이 자리에 앉은 가운데, 두 번째 용의자 취조가 시작되었다.


작가의말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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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파일14# 사미용두 (5) +1 19.10.02 213 8 18쪽
» 파일14# 사미용두 (4) +1 19.10.01 216 6 20쪽
157 파일14# 사미용두 (3) +1 19.09.29 232 9 13쪽
156 파일14# 사미용두 (2) +3 19.09.28 221 8 13쪽
155 파일14# 사미용두 (1) +1 19.09.26 246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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