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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그좋아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숫자를 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추리

저그좋아
작품등록일 :
2019.04.01 10:01
최근연재일 :
2019.11.1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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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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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1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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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파일18# 원래 (9)

DUMMY

177

“이거 작동하는 겁니까?”

박수호의 큰 목소리에 잠시 고개를 들었던 그녀가.

“네. 한 달 정도 보관되는데 왜요? 그것도 필요하세요?”

“아무래도 영수증보다는 영상이 더 확실한 증거라서요.”

“잠시만요. 제가 하나에 꽂히면 그것부터 해서요.”

말하며 다시 고개를 아래로 숙이더니, 박수호가 걸어왔을 때, 그녀가 밝은 얼굴로 작은 글씨가 빼곡하게 적힌 손바닥 크기의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찾았다!”

그녀에게서 낚아채듯이 종이를 가져온 박민훈이 내용을 살펴보았다.

“이거 기록에 있는 날짜와 같다.”

“잘됐군.”

박수호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그녀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저기...”

“제 이름은 정미영이에요.”

“아. 미영님. 동영상 좀.”

그의 말에 살짝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은 그녀가 작게 중얼거리며 몸을 돌렸다.

“영수증도 찾아줬는데...”

그런 그녀의 모습에 박수호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박민훈이 둘의 모습에 피식 웃더니, 정미영이에게 큰 목소리로 말했다.

“영수증 찾아줘서 고맙다. 이왕에 영상도 부탁하고. 그리고 박수호씨 약혼자 있어요.”

“누가 뭐래!”

날카로운 정미영의 목소리에 박민훈의 입가에 미소가 짙어졌는데, 그녀가 자신이 들어간 곳에서 바로 나왔다.

“안에 암호 풀어놨으니까. 확인하세요. 유에스비는 없으니, 알아서 저장해 가시고요.”

살짝 싸늘해진 목소리로 말하는 그에게 박수호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말하고서 박수호는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나중에 밥 한 끼 사마.”

“전에도 그 말 했잖아.”

“이번엔 진짜다. 답도 그때 할 거고.”

그의 말에 정미영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고, 박민훈은 그런 그녀를 뒤로 한 채, 벽에 몸이 붙을 정도로 좁은 쪽방에 들어갔다.

안에는 박수호가 굳은 얼굴로 화면을 보고 있었는데, 박민훈이 멈춰진 영상을 확인하며 말했다.

“그날 장사가 잘됐나 보네. 열 명도 넘는 사람들이 안에 있는데? 특이하게 그들 모두 가방이 있네, 관광 온 것도 아니고-”

“용의자들이다.”

“용의... 자? 저 사람들이 전부?”

“그래.”

“하지만 같은 시간대에 휴대전화 위치는-”

“놓고 가면 되는 거잖아. 대포폰도 있고.”

“빌어먹을 대포폰... 공무원들이 사망자만 제대로 확인해도 사라질 건데.”

“그 공무원 속에 우리도 있다고.”

“그나저나, 예정대로 주변 수색할 거야? 휴대폰도 놓고 다니는 놈들인데, 지원 없이 힘들다는 건 알지?”

“알아. 아는데... 문제는 더 있다.”

“뭐가.”

“여기 있는 가면을 사 간 것이 확인된 이상. 이곳으로 경찰들이 들이닥칠 건 당연한 거잖아. 당분간 기자들에게도 시달릴 거고.”

“으음...”

박민훈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그때.

“괜찮아요.”

정미영이 고개를 들이밀고 밝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는 아주 좋아요.”

“좋다고요? 장사가 하나도 안 될 텐데요?”

“하지만 그것 공식으로 인정되는 거잖아요. 개미들이 산 가면 집! 이라는 타이틀로 장사하면 그 손해는 금방 복구되거든요.”

“아무리 돈이 좋아도. 테러범들 이름 걸고 장사하는 건-”

“그럼. 이대로 굶어 죽으라고! 내 부모님 병원비 니가 전부 대줄 거야!”

“미. 미안하다...”

“하여간. 못난-”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대줄 수 있다. 그러니 그 짓은 하지 마.”

박민훈의 말에 정미영의 얼굴이 살짝 굳어지더니 붉게 달아올랐다. 박민훈의 눈과 마주친 정미영의 얼굴이 사라졌다.

“테러범들 이름 안 걸 거니까. 내 걱정하지 말고 불러.”

“고맙다.”

“고맙긴. 그 자식들 때문에 피해 본 일반인들도 있잖아. 억울한 사정을 알겠지만, 벌어서 가족들 건사하기도 바쁜 일반인들에게까지 관심을 주지 않았다는 핑계로 건드렸다는 건 아기들이나 하는 짓이잖아. 사람마다 각자 사정이 다 있는데 말이야.”

그녀가 말하는 사이, 두 사람은 바깥으로 나왔고, 박수호가 권총 모양의 장신구를 품에 집어넣으며 입을 열었다.

“정미영님 말이 맞습니다. 저를 괴롭히는 아이들 편을 들어준 반 친구들이 미웠지만, 나중에 만났을 때, 그들에게 놈들이 협박했고, 놈들이 너무 무서워서 그랬다는 말에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용서를 비는데, 오히려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직접과 간접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그들도 피해자인데 말이죠. 그래서 저는 절대 개미들을 용서할 수 없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박수호님도 저와 똑같은 케이스 아니에요.”

“네?”

“학폭이요. 학폭.”

굳어있던 박민훈의 얼굴이 그녀 입에서 나온 학폭이란 단어에 눈을 살짝 감는다.

그의 눈치를 살짝 살핀 박수호가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

“예. 맞습니다.”

“김명호에게 세 번이나 죽을 뻔했잖아요. 저라면 그가 쓰러졌을 때 구해주지 않았을 거 같아요. 어째서 그를 구하신 거죠?”

그녀의 질문에 대한 답은 곧바로 나왔다.

“전 그가 아닙니다.”

“그가... 아니라고요?”

“네. 이미 여러 사람에게 말했지만, 전 그가 아닙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그게 아니라 사과를 듣고 싶었던 건 아니고요?”

그녀의 말에 박수호의 눈이 가늘어지자, 그녀가 어색한 미소로 다급하게 말했다.

“제 말뜻은, 민훈이가 사과한 이후로, 경찰 일과 관련된 상담도 해주시고, 일도 조금씩 도와주셨잖아요. 그래서-”

말하는 사이 굳은 표정을 푼 박수호가 몸을 돌렸다.

“죄송하지만, 수사하러 가야겠습니다.”

“아! 그러셔야죠.”

“혹 나중에 기자들이 귀찮게 굴면 제 이름을 대시면 알아서 물러날 겁니다.”

박수호의 말에 정미영이 살짝 자신의 팔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뭔가. 믿음직스러우면서도 으스스한 말이네요.”

“그럼.”

살짝 고개를 숙인 박수호가 물러가고, 말없이 박민훈이 따라나섰다.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박민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다.”

“뭐가.”

“남이 자기 과거 일 말하는 거 좋아하지 않잖아.”

“그녀가 아니라 함부로 떠벌리고 다닌 기자들 잘못이지. 그리고 그 틈을 이용해 과거를 공개한 우리 의원님 잘못이고.”

“의원?”

“내 형님 말이야.”

“아... 박진남 의원을 말하는 거였나. 그분 요즘 건강이 좋지 않다고 그러던데.”

“쇼니까 걱정하지 마.”

“쇼?”

“응. 상대 의원이 나와 자신과 짜고 대표 의원을 공격한 거 아니냐고 대표 회의에서 발언하는 말에 상처 입은 연기를 하는 중이야. 그래야 내년 총선에 승리하고 그걸 발판으로 대선까지 노리려고 욕심부리고 있는 중이지.”

그의 말에 쓴웃음을 지은 박민훈이 벌어진 코트를 여미며 말했다.

“전에 이명석님에게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대선이라...”

“하지만 그는 절대 대통령이 되지 못해.”

“어째서.”

“내가 다 까버릴 거거든.”

“음...”

“병원 간 건 상대 의원뿐만 아니라 내게도 투정 부리고 있는 거다. 이만 과거 일 묻고 넘어가자는 식으로 말이야.”

“김명호도 구해준 너잖아. 어째서 그는-”

“김명호. 그리고 그. 그 둘의 공통점이 뭔 줄 알아?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거다. 차이점은 김명호는 죽었다는 거고, 그는 살아 있다는 거다.”

박민훈의 얼굴이 굳어진 가운데, 박수호가 카메라가 있는 곳을 보고 그곳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하고 수사에 집중하자고.”

“알았다.”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입을 다물고는 빠르게 앞으로 걸어갔다.


**

이태원 골목 살인사건.

2019.02.14.

이태원역 근처 XX빌딩 뒤편에서 경비원이 시체를 발견한다.

피해자는 김중앙(71)로 빌딩에서 근무하는 다른 경비원이었다.

사인은 열 군데가 넘는 복부 자상에 의한 과다출혈이며, 입에는 재갈이 물려 있어 주위에 도움을 알리지 못한 것으로 추정 중이다.

범인은 복부에 자상의 흉터가 살짝 다른 방향으로 난 것을 보고 단독 또는 최대 두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갑에 돈과 카드가 없어 처음에는 강도 살인 사건으로 처리했으나, 박수호에 의해 다시 재조사를 시작해 그가 과거에 14살의 어린 중학생을 성폭행하고, 출소하고 난 다음 다시 초등학생을 성폭행해 이십 년을 살다 나온 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강도 살인이 아닌 보복으로 판단 주변인들을 탐문 중이다.

**


하루 뒤.

AM11:32

이신후는 피곤이 가득한 얼굴로 박수호를 바라보았다.

“사건 해결하라고 보냈는데, 다른 사건을 물고 오면 어떡해.”

“죄송합니다. 원래는 그곳에서 맡아달라고 요청했는데, 그곳에서 개미 사건은 서울수사지원팀이 맡아야 한다고 떠넘기던데요.”

“아니 그래도 저곳에서 맡아야지. 가뜩이나 용의자 전원이 연관되었다는 증거만 얻은 상황에서 뭘.”

목소리가 점점 올라가다가 이신후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알았다. 개미 사건은 우리가 전담하기로 했으니, 우리가 해야지. 그래서 그곳 사건 용의자가 누군지는 특정할 수 있어?”

“네. 과거 조사해보니 연관된 사람이 다섯 명 있었습니다.”

“다섯 명? 누군데?”

“이십 년 전 성폭행당한 피해자의 큰오빠가 김지환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혜민씨는 이십 년 전 성폭행 피해자의 친한 친구 사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습니다. 목격자로 진술까지 했더군요. 그리고 김안범도 그가 사는 집 바로 아래층에 사는데 층간 소음이 너무 심해서 싸웠다는 증언도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김이삭은 앞집에 살고 있었는데, 한 달 전 쓰레기 문제로 그에게 뺨과 침을 맞는 등 모욕적인 언사를 들은 적이 있었고, 박송희는 그곳 지구대에서 근무하다가 성희롱에 가까운 폭언과 성추행을 당했다며 고소까지 한 적도 있었습니다.”

“결국, 대장 김지환과 그의 연인이자 참모인 이혜민, 행동대장 김안범, 그리고 수하들까지 모두 그자를 죽일만한 동기가 있었다?”

“예. 그리고 그들이 모인 곳이 그 빌딩에 위치한 폐업한 회사 사무실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 지문과 일치하는 것은 확인했고, 주변 카메라 영상도 확보해놨습니다.”

“그들 전부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단독?”

“그건... 조사해봐야 알 거 같습니다.”

“그렇지... 일단 자러 가야 할 거 아니야. 그럼 그들 부르는 건 오후 세 시쯤-”

“지금 불러 주십시오.”

그의 말에 이신후는 눈살을 찌푸린다.

“너 폭발 후유증으로 약을 달고 다니잖아. 의사 선생님이 무리하면 큰일 난다고 했는데, 자꾸 무리할 거야.”

“이 사건 범인만 추리면 이번 살인 사건까지 한꺼번에 해결될 겁니다. 그러니.”

“안 돼. 그들 취조는 우리가 할 거니까. 넌 자고 와.”

“하지만.”

“네 실력이 뛰어난 건 나도 잘 알아. 하지만 다른 이들도 실력 있는 형사라는 걸 잊지 마.”

그의 말에 박수호는 다급하게 말했다.

“제가 다른 이들을 못 믿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건-”

“잘 알아. 그래서 더더욱 다른 이들에게 맡기고 넌 쉬라는 거다. 그럼 너는 쉬는 것으로 알고 그들에게 대한 취조는 우리들이 하도록 하지. 그 뒤 결과물을 보고 보강 수사 여부는 네가 결정하고. 그럼 되는 거잖아.”

“알겠습니다.”

“그럼 푹 쉬고.”

“네...”

박수호는 힘없이 몸을 돌렸다.


**

[김지환 취조 기록.][박민훈 취조]

박)그러니까. 다들 같이 회의를 하고 있었다는 겁니까?

김)예.

박)중간에 빠진 사람들이 누군지 기억은 나시고요?

김)화장실 간다면서 빠진 사람들은 있었습니다.

박)누군지 말씀해보세요.

김)거의 대부분 화장실 간다면서 빠졌습니다.

박)유독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 사람이 있을 거 아닙니까?

김)혜민씨와 김안범, 그리고 박송희가 오랜 시간 있었습니다.

박)옷차림이 바뀐 사람은?

김)같이 저녁을 먹다가 김치가 튼 봉지를 이혜민 씨에게 엎지른 적이 있습니다. 그게 사람들의 눈에 뜨일까 걱정되어서 만나기 전 입었던 옷으로 갈아입었다고 했습니다.

박)옷을 갈아입었다고요? 미리 준비한 겁니까?

김)예. 회의를 통해 만나기전 일상복과 그 후에 옷은 바꿔 입기로 약속한 상황입니다. 이혜민은 확실한 것이, 제가 사준 코트 색은 하얀색이었는데, 그녀는 그날 분홍색 코트를 입고 왔더라고요. 솔직히 지금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이혜민님 말고 갈아입은 사람은 없고요.

김)솔직히 제 옆에 앉았던 그녀를 제외하고는 잘 모릅니다.

박)그 이유가 뭐죠?

김)망해버린 사업체 사무실을 빌린 곳이라, 혹시 근처에 숨어서 대기하고 있던 채무자들이 들이닥치면 곤란해지기 때문에 불을 켜지 않았습니다. 주변이 어두워서 전등으로 의지해야 움직일 수 있을 정도였는데, 전등도 밝은 전등은 쓰지 못했습니다.

박)결국 다녀온 사람들 옷을 확인한 건 아니시군요.

김)그런데 박수호씨는-

박)밤샘 수사로 쉬고 있습니다. 왜요? 그에게 따로 할 말이라도 있는 겁니까?

김)아닙니다. 저는 단지 궁금해서 물어봤습니다.


[이혜민 취조 기록][명훈 취조]

명)옷을 갈아입지 않았다는 거죠?

이)네. 바깥에 켜지지 않았던 네온사인이 나왔을 때는 켜져 있어서 옷이 바뀐 것으로 생각했나 보네요.

명)사무실에서 대화한 내용은 테러 내용이었습니까?

이)아무래도 서로 얼굴을 맞댄 상황에서 계획을 말해야 신뢰성이 올라간다고 생각해서요. 솔직히 문자로 이렇게 중요한 계획을 말한다? 그걸 누가 믿겠어요.

명)전부가 모인 건 아니지 않습니까.

이)나머지는 다들 비리를 저지른 더러운 것들이라 저희 명령을 거부할 수 없어요.

명)그래서 제일 중요한 병정급 인사들과 자발적으로 참여한 개미들과는 따로 만났다?

이)네. 그들은 제가 컨트롤할 수 없으니까요. 왕께서 제게 직접 지침을 내리기도 했고요.

명)다른 사람 중 옷을 갈아입은 자들이 누군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이)안에 있었을 때는 어두워서 확인할 수 없었어요. 대신 건물 바깥으로 나왔을 때는 기억나는데, 김안범님 외투가 바뀌었어요. 아! 박송희님 옷도 바뀌었어요. 정확히는 바지가 아닌 치마로 바뀌었고. 그리고 김이삭님 옷도 외투는 같지만, 속에 입은 셔츠 색이 바뀌었더라고요.

명)관찰력이 뛰어나시군요.

이)관찰력이 없다면 제 직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으니까, 직업병이라고도 볼 수 있죠. 그런데 이런 건 왜 물어보시는 거예요?

명)주범이 누군지 서로 인정하지 않아서입니다.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전부가 주범으로 될 거 같군요.

이)살인 사건은 정말로 저희가 계획한 게 아니에요. 혹, 어떤 옷을 입은 사람이 살인을 계획했다는 제보가 있었다면, 저와 똑같은 코트를 걸쳤던 박송희님도 있었다는 점을 말해주고 싶네요.


[김안범 취조 일지][이신후 취조]

이)그러니까 외투를 갈아입었다는 겁니까.

김)예. 최대한 자주 평범한 민무늬 옷과 외투로 갈아입어야 사람을 특정해 기억할 수 없다고 김지환님이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나가기 전 화장실에 들러 갈아입었습니다.

이)중간에 오래 자리를 비운 사람이 누군지는 아십니까?

김)어두워서 정확히는 모르고, 이혜민님과 김지환 대장님, 그리고 박송희님? 아! 그리고 마지막에 김이삭님이 오래 자리를 비웠습니다.

이)김안범씨도 자리를 오래 비웠다고 들었는데요.

김)제가 버섯을 먹으면 설사하는데, 그날도 그래서 고생했던 거로 기억합니다. 제 기억엔 저보다는 다른 분들이 더 오래 비웠습니다. 특히 김이삭님은 정말 오래 비웠어요.

이)자리 비운 시간은 어떻게 되죠?

김)휴대폰도 꺼놓아서 잘은 모르지만, 이혜민님이 처음 그다음에 저, 그리고 박송희님이 나가셨고, 김지환님과 김이삭님은 거의 연달아 나갔습니다.

이)회의를 마치고 나왔을 때, 옷차림이 많이 바뀐 사람은 기억합니까?

김)그게... 제가 옷을 잘 몰라서... 그리고 어두운 곳에 있다가 밝은 네온사인 앞으로 나오니까, 다 달라 보여서... 그런데 옷이나 자리 비운 시간은 왜 물어보시는 겁니까?

이)서로의 진술 내용을 통해 주범을 가리기는 과정일 뿐입니다.

김)아직... 김지환님이 인정 안 하신 겁니까? 저는 절대로 살인을 계획하지 않았습니다. 그날도 인질 틈에 섞이는 계획을 완성하고 만족한 상황에서 나왔습니다. 살인이 끼어 있었다면 절대 찬성하지 않았을 겁니다. 정말입니다.


[박송희 취조 일지][이명석 취조]

이)그러니까 박송희님이 기억하기로는 제일 오래 자리를 비운 건 이혜민님이다?

박)예... 이혜민님 다음으로 오래 비운 분이 지환님이에요. 김이삭님이 돌아오고 나서야 김지환님이 돌아왔으니까 확실해요.

이)두 사람을 제외하고 겹쳐서 나간 사람은 없다는 것도?

박)예. 확실해요. 제 기억력이 좋아서 그런 걸 놓칠 리 없어요.

이)휴대폰도 꺼둘 정도로 조심스러운 마당에 그렇게 중간에 혼자 나가게 둬도 괜찮나? 저라면 배신자가 있을까 봐 두려울 텐데.

박)얼굴까지 서로 마주 보고 집 위치까지 공유한 마당에 오히려 배신이 두려운 게 아닐까요?

이)모임을 마치고 나와서 옷이 바뀐 사람들이 누군지는 기억하십니까?

박)솔직히 기억이 잘 안 나요. 모임 마지막까지도 완벽한 계획을 짜기 위해서 서로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다가 나온 상황이라 살짝 정신이 멍했거든요. 아! 한 명은 기억났어요.

이)누굽니까?

박)이혜민님이요. 그분 코트가 저랑 같은 거였는데, 그날은 조금 붉어 보였어요.

이)붉어 보였다?

박)예. 아마 만날 때 저랑 같은 하얀색 코트라서 살짝 불쾌하셨나 봐요.

이)박송희님은 갈아입지 않았습니까?

박)저도 갈아입었죠. 다른 사람들은 비슷하게 바꿨지만, 저는 많이 불안해서 치마로 갈아입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이)손이나 다른 부위를 다친 사람은?

박)다들 추운 날씨라서 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장갑을 낀 분들이 있는 날이라 잘 모르겠네요.


[김이삭 취조 일지][박민훈 취조]

박)김지환님과 같은 화장실을 쓰진 않았다?

김)정확히는 같은 층의 화장실 문이 잠겨 있어서, 일 층 상가 분에게 화장실 열쇠를 빌렸습니다. 그거 때문에 살짝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박)옷은 언제 갈아입은 겁니까?

김)옷이라면... 아! 셔츠요. 이혜민님 옷에 김치를 담은 봉지? 통? 아무튼 그게 쏟아졌는데, 그때 제 셔츠에도 국물이 튀어서요. 젓갈을 듬뿍 넣은 김치라는 말이 맞는지, 냄새가 너무 심해서 갈아입었습니다.

박)다른사람 중에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까?

김)이상한 행동이요? 애초에 서로 만날 때부터 어색한 사이여서... 김안범 형은 맞은편에 사는 사람이라 잘 알지만 다른 분들과는 친분이 없어서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경찰청에 벌어진 살인 사건 때문에 수사하시는 건 맞죠?

박)그렇습니다만. 왜 그러십니까?

김)옷이나 계획 세웠을 때 자리 비운 걸 물어보셔서... 조금 생뚱맞잖아요.

박)아직 주범을 인정한 사람이 나오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 혹시 주범-

김)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저는 정말 단순하게 저를 폭행한 아이가 경찰관이 되어서 그런 겁니다. 그런 인성 쓰레기들이 공권력을 휘두르는 경찰관이라니, 더러운 세상 아닙니까? 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박)...(침묵)

김)만약 제가 살인했다면 제 앞집에 사는 나이 드신 분이 있는데, 그분이면 모를까...

박)그자가 어떤 짓을 심한 짓을 했나보죠?

김)죽일 정도는 아니지만... 제가 버리지도 않은 쓰레긴데, 저보고 뒤집어씌우고 욕하고 침을 뱉었거든요. 거기에 뺨까지 맞았을 때, 얼마나 황당하던지... 사과도 불성실하게 해서 합의 안 하려다가 그분 자식들이 제 근무지까지 찾아오는 통에 어쩔 수 없이 했다니까요. 제 근무지를 어떻게 알았냐니까 합의하려는 변호사를 따라 온 것뿐이라고 하고... 결국 그들이 같이 온 덩치들이 너무 무서워서 억지로 합의한 다음에, 경찰에게 따지니까 합의를 목적으로 변호사가 집 주소를 알려달라고 하면 알려줘야 하는 게 법이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더라고요. 그리고 그때 저를 괴롭힌 놈들이 경찰관이 되었다는 소식까지 들어서... 개미가 된 겁니다. 그러니까-

박)알았으니, 진정하세요.


**

**


PM06:12

머리에 까치집이 듬성듬성 보이고 흐트러진 차림을 한 박수호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뚱한 얼굴로 그는 이신후에게 걸어왔다.

“깨워주신다면서요.”

“미안. 열 명에 대한 취조를 하다 보니까. 이렇게 됐다. 자. 봐봐. 사건과 관련된 내용만 추려 놓은 거니 한번 봐라.”

이신후가 내민 서류를 받은 박수호는 서류를 바라보았고, 점점 커지는 그의 눈동자가 빛을 반짝였을 때, 그의 입에서 살짝 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역시. 그들이 범인인가.”

“뭐야? 벌써 찾았어?”

“네. 한 명이 일을 벌이고 다른 한 명이 그것을 알고 다른 이에게 죄를 떠넘기려고 하는 거 같은데요.”

“범인 한 명은 알겠는데, 다른 한 명은 누군데?”

“우선 범인의 말부터 들어봐야겠어요. 사건 현장 근처에 있던 과도에서 나온 혈흔과 대조하고 압박하면-”

명훈 형사가 걸어오더니 그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이미 감식반에 넘겼고, 범인도 자백했다. 이건 진술서.”

안에 내용을 살펴보며 박수호가 중얼거렸다.

“범행한 건 사실이지만 경찰청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과는 연관이 없다?”

“그래. 경비원을 죽인 건 자신이지만, 다른 사람과는 연관 관계가 없고 경찰청 살인 사건도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그랬다.”

“이 사건에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을 찌를 만한 송곳을 가진 사람과 만나야겠네요. 아마 그 사람이면 경찰청에서 사람들을 죽인 자들이 누군지 말해줄 겁니다. 운 좋으면 증거까지 주겠죠.”

박수호의 말에 사무실 내 모든 사람이 그를 바라보았고, 박민훈이 굳은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그게 누구지?”

그의 질문에 박수호는 자신의 눈을 비비며 말했다.


작가의말

비가 많이 오는 날이네요. 

날이 많이 추우니 다들 옷 챙겨 입고 주무세요.

오늘도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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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18# 원래 (9) 19.11.15 152 4 22쪽
180 파일18# 원래 (8) +1 19.11.13 167 8 16쪽
179 파일18# 원래 (7) +1 19.11.11 166 5 13쪽
178 파일18# 원래 (6) +1 19.11.08 177 6 24쪽
177 파일18# 원래 (5) +1 19.11.06 168 7 12쪽
176 파일18# 원래 (4) +1 19.11.03 171 8 18쪽
175 파일18# 원래 (3) 19.11.02 181 7 13쪽
174 파일18# 원래 (2) +1 19.10.30 186 8 11쪽
173 파일18# 원래 (1) +1 19.10.28 210 9 11쪽
172 파일17# 변해야 산다.(3) +2 19.10.26 174 7 15쪽
171 파일17# 변해야 산다.(2) +3 19.10.21 210 8 13쪽
170 파일17# 변해야 산다.(1) +1 19.10.19 192 9 11쪽
169 파일16# 여왕개미.(6) +2 19.10.17 196 9 16쪽
168 파일16# 여왕개미.(5) +4 19.10.15 204 9 15쪽
167 파일16# 여왕개미.(4) +1 19.10.13 204 8 14쪽
166 파일16# 여왕개미.(3) +2 19.10.11 194 9 11쪽
165 파일16# 여왕개미.(2) +1 19.10.09 199 9 14쪽
164 파일16# 여왕개미.(1) +1 19.10.07 201 8 16쪽
163 파일15# 허수아비 안에 사람은 없다.(4) +2 19.10.06 201 10 19쪽
162 파일15# 허수아비 안에 사람은 없다.(3) +1 19.10.05 207 9 12쪽
161 파일15# 허수아비 안에 사람은 없다.(2) +1 19.10.04 203 8 14쪽
160 파일15# 허수아비 안에 사람은 없다.(1) +1 19.10.03 210 8 15쪽
159 파일14# 사미용두 (5) +1 19.10.02 212 8 18쪽
158 파일14# 사미용두 (4) +1 19.10.01 215 6 20쪽
157 파일14# 사미용두 (3) +1 19.09.29 232 9 13쪽
156 파일14# 사미용두 (2) +3 19.09.28 221 8 13쪽
155 파일14# 사미용두 (1) +1 19.09.26 246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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