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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그좋아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숫자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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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그좋아
작품등록일 :
2019.04.01 10:01
최근연재일 :
2019.11.1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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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0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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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파일18# 원래 (5)

DUMMY

173

얼굴을 일그러뜨린 박수호가 입을 벌리려다가 다시 다물었다.


1


파란색으로 변하고 있는 그의 머리 위 숫자를 힐끔 바라본 박수호가 멱살 잡은 두 손에 힘을 빼고 축 늘어뜨리더니, 문으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왜 그러지 겁이라도 먹었나?”

강명길의 이죽거리는 음성에 잠시 멈춰선 박수호는 몸은 돌리지 않은 채 굵직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겁은 당신이 먹었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박수호는 다시 앞으로 움직여 문을 열고 나갔다.

혼자 남은 강명길는 입술을 깨문 채 문만 계속 바라보았다.

“제길.”


**

**


삼십 분 뒤.

경찰청 대회의실.

그 안에는 어두운 얼굴로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그들 중 건장한 체격의 사내가 몸을 일으키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왜 잡아두고 있는 겁니까! 지금 불안에 몸을 떠는 여성분도 계시고 인질범들에게 다친 사람도 있는데, 이유라도 말해줘야 기다릴 거 아닙니까!”

사내의 말에 입구에서 의자를 놓고 앉아 있던 명훈 형사가 사내에게 고개를 돌리더니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찬용 경위, 분명 상부에서 명령이 내려왔다고 했을 텐데.”

“하지만 그 이유를 모르지 않습니까.”

“이유라...”

잠시 스마트폰을 바라본 명훈 형사가 다시 고개를 들어 이찬용을 바라보았다.

“박수호 경사가 이곳으로 오면 들을 수 있을 거야.”

박수호라는 말에 이찬용을 비롯한 대다수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진다.

“그는 강명길 청장을 수사 중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인질범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바로 도망친-”

“자네는 보자마자 총질하는 미친놈들의 말을 순순히 들어주는 게 옳다고 보는 건가?”

명훈 형사가 높아진 음성으로 말하자, 이찬용이 조금은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그래도 안에 인질이 있는데, 대치해서 협상이라도-”

“안에 몇 명의 인질범들이 있는지도 모르고, 무기고를 털었다고 생각될 정도로 장비 상태가 좋은 상황에, 전에 터널을 붕괴시킬 정도로 위력 있는 사제 폭탄까지 만든 놈들과 대치를 한다고?”

명훈 형사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하자, 이찬용은 입술을 깨물기만 할 뿐 아무 말도 못했다.

“박수호 다음으로 추리와 상황 판단이 빠른 자네가 그런 생각과 말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 다른 피해자들은 몰라도 일선에서 개미들의 행태를 봐온 자네가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그리고 그가 사람을 버리고 떠날 위인인가! 그 상황에서 이관수라도 살리겠다고 노력한 게 박수호야 그런데 자네는-”

“그만하시죠.”

명훈 형사는 자신의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 서 있는 굳은 얼굴의 박수호를 보고 반색한다.

“입구에 기자들 때문에 힘들 거라며.”

“도깨비에게 방망이 좀 휘둘러 달라고 했습니다.”

그의 말에 명훈 형사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맺혔다.

“도깨비방망이가 매섭기는 하지.”

박수호는 안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노려보는 이.

겁먹은 이.

눈물이 가득한 이.

두려움에 떠는 이.

눈을 감고 있는 이.

팔자 좋게 자는 이.


그들 머리 위에 다양한 색깔과 숫자를 바라보며 박수호가 입을 열었다.

“이 안에 있는 자들이 전부 인질들이었습니까.”

“그래.”

“전부 경찰 공무원이죠?”

“저기 구석에 청소부분들도 계셔. 공익이랑.”

명훈 형사가 가리킨 곳에 있는 사람들을 흘깃 바라본 박수호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 명씩 취조할 겁니다.”

그의 말에 명훈 형사의 얼굴이 굳어진다.

“취조라니?”

“이유는 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들 중에도 제가 온 이유를 아는 자들이 있는 거 같고요.”

박수호의 말에 명훈 형사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설마 했는데... 정말 있다고? 강명길이 불었나.”

“직접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감?”

“예. 감입니다. 물론, 강명길을 수사하기 전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니까. 이관수씨에게 이야기를 들어서 명훈 형사님도 알고 계셨잖아요. 그래서 필사적으로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을 막았다고 들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박수호의 말에 명훈 형사는 머리를 긁적였다.

“나야, 네 감이 전부 맞아서 그런 거고. 그래서 저 많은 사람을 전부 네가 수사-”

“제가 직접 할 겁니다. 경찰청에서 적극적으로 신원 조회 및 정보를 전달해 주기로 했고, 이들 주거지에 지구대 인원들을 파견하기로 했습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전부 그들 집에 도착했을 겁니다. 조사하면서 밝혀질 때마다 바로 영장을 발부해 수색이 들어갈 거고요.”

“그렇게까지... 정말 이를 갈았네.”

“경찰청이 점거된 초유의 사태 아닙니까. 이렇게라도 안 하면 오히려 매장당하는 건 경찰과 검찰입니다.”

“음... 하지만 다른 수사관들은 지원을-”

“지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못 믿는 겁니다.”

“하긴... 실질적으로 개미들을 알아내고 붙잡고 돌아다니는 건 검찰청이나 경찰청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들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지?”

“명훈 형사님이 센스 있게 저들 중간에 경찰을 배치하고, 스마트폰을 하지 못하게 감시하게 했으니까, 서로 입을 맞추지는 못했을 겁니다. 그로 인해 상긴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스스로 털어놓게 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저 많은 사람을 언제-”

“그건 간단합니다.”

단상 위로 뛰어 올라간 박수호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다들 주목해주세요!”

짝짝.

손뼉까지 치며 다시 한 번 더 같은 말을 했고, 연이은 그의 고함과 박수 소리에 자고 있던 사람들까지 눈을 뜨고 박수호를 바라보았다.

“여러분이 이 안에 머무르게 된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로 이 안에 살인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박수호의 말에 회의실 내가 술렁거렸다.

“살인자라니?”

“저게 무슨 소리야.”

“난 인질범이지 살인범이 아니라고!”

“몸도 아파 죽겠는데, 지금 살인범 취급하는 거야!”

“맞아! 여기 모두 인질이었어! 그런데 누가-”

박수호는 마지막에 고함을 지르는 사십 대 남성을 바라보았다. 남성은 두터운 겨울옷에도 드러날 정도로 단련된 몸을 가지고 있었는데, 박수호와 눈이 마주친 그가 살짝 움찔했다.

“왜 그렇게 바라보는데.”

“죄송하지만 직위와 직책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난 기동대 부대장이요. 잠시 사건 때문에 경찰서에 파견 근무 중이지.”

“전부 다 인질이었다고 확신하는 이유가 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야 내가 안대를 벗었을 때, 이 안에 있는 사람들 전부를 봤으니까.”

“전부요?”

“처음에 우리들을 발견한 기동대원들에게 물어봐봐. 우린 이곳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어. 아니, 나갈 수 없었어. 모두 바깥에서 문이 잠겨 있었으니까.”

“안대는 언제 푸신 겁니까.”

“우리가 안대를 풀고 나고 나서 삼 분 후에 비상벨 소리가 들려왔고, 그러고 삼 분 뒤에 바로 들어왔지 아마?”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수호에게 다가온 이찬용이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그건 제가 보증합니다.”

“안대를 풀었을 때 빠져나가려는 시도는 안 하셨습니까.”

“그야... 총이 있었으니까요.”

“처음에 붙잡혔을 때 눈이 가려진 겁니까?”

박수호의 질문에 이찬용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 전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이 안에 살인자가 있다는 건 확실하군요.”

박수호의 중얼거림을 들은 이찬용의 눈이 동그래졌다.

“확실하다니?”

“안대를 하고 있었으니, 범인들이 이 안에 슬쩍 끼어도 모르지 않습니까.”

“하지만, 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한 남성이 빠져나가려고 문을 밀어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고, 바깥에서 개짓거리 하지 말라는 고함까지 들려왔습니다. 그것 때문에 비상벨이 울려도 나가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영상을 보니, 정확하게 비상벨이 울렸을 때, 저들이 분신자살을 시도했지 않습니까. 그 시간엔 저희 전부 안대를 풀고 서로를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말에 박수호는 싱긋 웃었다.

흠칫한 이찬용에게 박수호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문이 뭐에 잠겨 있는지는 아시죠?”

“예. 가느다란 철사로 한 번 정도 감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상도 실시간으로 나가기는 했지만, 녹화를 튼 것인지, 아니면 카메라로 찍어서 나가는 건지는 불확실하다는 것도 아십니까?”

“하지만 분명 저희가 본 건 청장실.”

“살짝 그림자 각도가 틀리던데요.”

박수호의 말에 이찬용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림자요?”

“예. 창문 안으로 들어오는 태양 빛에 의한 그림자 각도를 봤을 때, 그 영상은 오전에 찍힌 겁니다. 하지만, 사건이 벌어진 건, 오후였고, 원래대로라면 반대로 향해 있어야 하죠.”

“그렇다면... 정말로 이 안에 그들이 있다는 겁니까?”

“예. 그리고 그건 당신도 포함됩니다.”

“저를 아시지-”

박수호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우희진님이 제게 큰 가르침을 주셨죠. 어떤 가르침인지는 당신도 아실 겁니다.”

“음...”

이찬용이 입을 다문 가운데, 다시 사람들을 바라보며 박수호가 오른손을 들어 올리면서 큰 목소리로 외쳤다.

“다들 주목해 주세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자신이 개미인 분들은 저처럼 손을 들어주세요.”

그의 말에 모두 얼굴을 굳힌 채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아무도 드는 이가 없자, 박수호가 머리 위로 올린 오른손을 주먹 쥐더니, 검지 하나를 세우며 말했다.

“자수할 기회는 단 한 번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살인죄, 최소 살인 방조 및 방관 죄를 뒤집어쓸 겁니다.”

그의 말에 그들 머리 위 숫자의 색깔이 변하기 시작했고, 박수호는 파란색 또는 붉은색으로 변하는 이들을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

“만약 자신이 개미 일원이지만, 절대로 살인과 연관된 짓을 하지 않았다면, 이 마지막 기회. 절대 놓치지 않길 바랍니다. 아! 그리고 살인했다면 지금 인정해도 자수로 인정합니다. 자수하고 안 하고의 차이. 그 누구보다 경찰과 검찰과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시는 여러분이 잘 아실 겁니다. 자! 그럼 셋에 주변 눈치 보지 말고 손을 들어 올리세요. 하나. 둘. 셋.”

그의 말이 끝나고.

“헉!”

“뭐. 뭐야!”

“당신이 개미였어!”

“무. 무슨...”

“미친 새끼들아!”

“너희들 때문에 오늘 아버지 생신상도 못 차려드리게 생겼잖아!”

“더러운 새끼들!”

손을 든 자들에게 달려 들거나, 손가락질, 욕설과 비난을 하는 사람들로 장내가 소란스럽게 변한 가운데, 그들의 모습을 얼빠진 얼굴로 바라보는 이찬용에게 박수호가 상체를 숙여 작게 소곤거렸다.

“그래서. 문을 밀은 사람이 누굽니까?”

“네?”

“맨 처음 문을 민 사람이 누구냐고요.”

그의 말에 이찬용은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고, 그곳엔 박수호에게 가장 큰 목소리로 고함을 지르고 대화까지 했던 기동대 부대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십 대 사내가 우두커니 있었다.


1


검푸른 색의 숫자 아래 선 자와 눈이 마주친 박수호가 싱긋 웃었다.

“원래. 제일 구린 놈의 목소리가 제일 큰 법 아니겠습니까.”


작가의말

매번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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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파일18# 원래 (10) +3 19.11.17 151 1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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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파일18# 원래 (4) +1 19.11.03 171 8 18쪽
175 파일18# 원래 (3) 19.11.02 181 7 13쪽
174 파일18# 원래 (2) +1 19.10.30 186 8 11쪽
173 파일18# 원래 (1) +1 19.10.28 210 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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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파일17# 변해야 산다.(2) +3 19.10.21 210 8 13쪽
170 파일17# 변해야 산다.(1) +1 19.10.19 192 9 11쪽
169 파일16# 여왕개미.(6) +2 19.10.17 196 9 16쪽
168 파일16# 여왕개미.(5) +4 19.10.15 204 9 15쪽
167 파일16# 여왕개미.(4) +1 19.10.13 204 8 14쪽
166 파일16# 여왕개미.(3) +2 19.10.11 194 9 11쪽
165 파일16# 여왕개미.(2) +1 19.10.09 199 9 14쪽
164 파일16# 여왕개미.(1) +1 19.10.07 201 8 16쪽
163 파일15# 허수아비 안에 사람은 없다.(4) +2 19.10.06 201 10 19쪽
162 파일15# 허수아비 안에 사람은 없다.(3) +1 19.10.05 207 9 12쪽
161 파일15# 허수아비 안에 사람은 없다.(2) +1 19.10.04 203 8 14쪽
160 파일15# 허수아비 안에 사람은 없다.(1) +1 19.10.03 210 8 15쪽
159 파일14# 사미용두 (5) +1 19.10.02 212 8 18쪽
158 파일14# 사미용두 (4) +1 19.10.01 215 6 20쪽
157 파일14# 사미용두 (3) +1 19.09.29 232 9 13쪽
156 파일14# 사미용두 (2) +3 19.09.28 221 8 13쪽
155 파일14# 사미용두 (1) +1 19.09.26 246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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