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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님의 서재입니다.

돛대 없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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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작품등록일 :
2022.05.27 23:51
최근연재일 :
2022.12.05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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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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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6,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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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9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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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달빛 아래 야반도주

DUMMY

명죽림의 간첩들이 간절하게 소망하는 바가 무색하게도, 그들로부터 약 700km 떨어진 곳, 주브만칼리의 중심, 영보교의 심장, 아루신에서는 통탄할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베카린 윈스반은 하염 강 중류의 어느 수면을 퉁퉁 두드렸다. 무성한 수풀과 잡초, 그리고 그 속에 사는 벌레들이 그녀의 뺨과 귓가를 문질렀다.

하지만 그녀는 그걸 신경쓸 수 없었다.


베카린이 몇 번 더 수면을 두드리자, 새까만 물 아래에서 회색 덩어리가 슬그머니 올라왔다.


마치 돌고래와 상어를 적당히 섞어서 덩치를 불린 것 같은 모양의 생명체였다. 사람들은 ‘무괴’라고 부른다.

무괴가 주둥이를 베카린에게 들이댔다. 그녀는 불안한 듯이 주변을 경계하며 그것을 밀어냈다.


베카린은 헐떡이면서 말했다.


“타카슬, 이럴 시간 없어. 잘 들어.”


타카슬은 베카린이 무괴에게 붙여준 이름이었다.

베카린은 타카슬이 인간 말을 할 줄 모르지만, 알아들을 수는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 할 말만 했다.


“어른들이 굉장히 많이 화나 있거든? 어디로든 일단 튀어야 해.”


타카슬은 베카린의 어조와 표정을 보고 그녀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는 몰랐다. 다만 그녀는 자신에게 계속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었다.


베카린은 발 옆에 내려놓았던 휜색 보따리를 집어 들었다. 무언가를 둘둘 말고 있었는데, 그 내용물을 풀어놓지도 않고 타카슬의 주둥이에 메었다. 타카슬의 주둥이는 보따리에 비해 너무 두꺼워 기다란 노끈으로 매듭을 이어야 했다.


보따리를 메준 다음에는 가방끈에 긴 노끈을 연결했다. 그러자 엉성한 고삐처럼 보이는 게 만들어졌다.


“됐어.”


강가에 무성한 수풀이 일상적인 소음을 만들어냈다. 베카린은 소리가 날 때마다 발작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타카슬은 슬슬 상황이 뭔가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다.


“후우······. 좋아. 타카슬, 저쪽으로 가자. 저쪽으로. 할 수 있지?”


베카린은 손가락으로 강물이 흐르는 방향, 하염 강의 하류 쪽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팔을 굽혀서 앞뒤로 흔들었다. 타카슬은 그게 무슨 뜻일까 생각해보았고, 어렴풋이 알아들었다.


타카슬은 주둥이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베카린은 뜻을 이해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주변을 둘러본 다음, 가방끈을 단단히 조이고, 타카슬의 등 위에 올라탔다. 머리 위에 있는 숨구멍을 막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양손으로 고삐를 붙잡았다.


타카슬은 이 상황에 의아해했지만, 한편으로는 다 이유가 있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물가를 떠났다. 그는 가슴지느러미로 강변을 슬그머니 밀어, 베카린과 함께 강 한가운데로 나아갔다.


타카슬이 가볍게 꼬리를 한 번 흔들기만 해도 거의 10m를 전진할 수 있었다. 베카린은 너무나 가볍게 이 정도 속도를 내는 그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단하네. 누가 무괴 아니랄까 봐. 이 속도로 그대로 바다까지 가자. 가서······, 어떻게든 되겠지.”


베카린이 중얼거렸다.


“뭐라는 거지.”


타카슬도 중얼거렸다. 무괴의 목소리는 초음파여서 베카린은 들을 수 없었다.


어쨌든 타카슬은 그녀의 말대로 빠르게 하류를 향해 헤엄쳤다. 베카린을 위해 수면에서 움직이기는 했지만, 근본이 물짐승이었던지라 가끔식 잠수도 했다. 그러다가 숨이 찬 베카린이 두개골을 두드리면 다시 수면으로 올라갔다.

사실 10시간 이상 숨을 참을 수 있는 무괴의 입장에서는 잠수도 아니라 그냥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에 불과했다.


한 시간이 지나자 베카린은 타카슬을 몰아 적당한 강변으로 올라갔다.

해가 저물기 시작했고, 곧 달이 뜰 시간이었다. 무괴는 달빛을 싫어한다. 게다가 물속에 오래 있으니 체온이 낮아졌다.


“곧 달이 뜨겠지? 내일 아침에 움직이자. 너는 물 아래에서 자고 있어.”


베카린은 하늘을 가리키고 강을 가리킨 다음에 양손을 모아 뺨 옆에 붙여 고개를 기울였다. 타카슬은 대충 알아듣고는 강바닥으로 내려갔다. 베카린은 타카슬에게 메어둔 보따리와 자신의 가방을 들고 수풀 사이로 들어갔다.


풀이 아주 무성하게 자라 베카린이 일어서면 눈 바로 아래에 올 정도였다. 베카린은 손으로 풀들을 뜯어내어 자리를 만들고 그것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그녀는 세차게 이를 부딪치며 가방을 뒤졌다. 젖은 가방 안, 그나마 덜 젖은 주머니 속, 조금 더 덜 젖은 두루마리 안에 라이터가 들어있었다.


베카린은 모은 풀에 대고 라이터를 켰다. 불꽃이 일었고 풀이 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불은 불꽃에 직접 닿은 곳에만 붙었고, 커지지 않고 금방 수그러들었다.


‘물이 묻어서 그런가?’


베카린은 땅바닥에 손을 닦고 머리카락과 옷을 쥐어짰다. 그럼에도 불은 잘 붙지 않았다. 풀 안에 있는 수분 때문이었지만, 14살짜리 여자애는 원인을 추리하기에 너무 어렸다.


그 짓을 몇 번 더 하고 손에 화상을 입고 나서야 베카린은 불붙이기를 포기했다.


대신 그녀는 보따리를 집어 들었다. 그녀가 보따리를 풀자, 안쪽에서 하얀색 덩어리가 굴러떨어졌다.


그것은 토끼 같은 귀에 토끼 같은 꼬리를 달고 있고 토끼 발에 토끼 모양의 주둥이도 가지고 있는, 하지만 토끼는 아닌 생명체였다.


베카린이 양손으로 안기에 조금 버거운 덩치였는데, 그녀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그것을 안아 들었다. 따끈따끈한 그 생명체의 체온이 베카린의 가슴과 배에 전해졌다.


베카린은 하늘을 보았다. 석양이 지고 있었고 곧 달이 뜰 것이다. 그녀는 달이 뜨는 방향을 기억하고는 그곳을 향해 앉았다. 달빛을 쬐기 위해서였다.


전해지길, 베카린이 태어나기도 이전, 그녀의 조부모가 청년이었을 때, 달에서 땅 위로 옥토끼들이 내려왔다. 그들이 말하길 자신은 인간과 지사리 사이의 소방 전쟁을 끝내기 위해 강림했다고 한다.


베카린에게는 아무렴 상관없는 이야기였지만, 거기에서 연상되는 것이 있었다.


‘달에서 왔다고 하니 달빛을 보면 회복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까?’


어느 옥토끼가 들으면 편견이라고 일갈했을 테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주변에 있는 유일한 옥토끼, 츠카는 기절해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달이 떠도 츠카는 깨어나지 않았다.


물을 너무 먹어서 그런 걸까? 그건 아니겠지.


옥토끼는 불로불사의 존재이다. 베카린의 부모는 츠카에게 별의별 괴상한 고문을 가했고 그중에는 포르말린에 24시간 절이는 것도 있었다. 그래도 멀쩡했는데 물 좀 먹었다고 죽을 리는 없었다.


아무래도 오늘의 실험에서 주입한 약물이 뭔가 문제를 일으킨 것 같았다. 베카린은 그게 뭔지도 몰랐고, 애초에 오늘 실험이 약물을 주사하는 실험이었는지도 몰랐지만, 상관없었다. 옥토끼는 죽지 않는다. 그리고 죽지만 않았다면 괜찮다.


왜냐하면, 그들은 곧 가나 대륙으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옥토끼는 대부분 주브만칼리 대륙이 아닌 가나 대륙으로 강림했다. 소방 전쟁이 주로 그쪽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현재 가나 대륙은 옥토끼와 인간이 공존하고 있다고 한다. 옥토끼들이 서로 모여 만든 단체도 있다고 한다. 거기에 츠카를 데려다주면 무언가 고칠 방법이 있을 것이다.


베카린은 천으로 이목구비를 감싸고 수풀 위에 누웠다. 달이 질 때까지 잠자는 것 말고는 할 일도 없었다.


가슴을 통해서 츠카의 고동이 느껴졌다. 이 고동은 그녀와는 달리 영원토록 이어질 것이다. 천 년 전에도, 만 년 전에도 이 심장은 뛰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도 깊이 있는 심장을 가진 생명체들. 베카린은 그녀의 부모가 이 심장을 짓밟은 이유를 제대로 알 수 없었다. 그들은 무엇도 알려주지 않고, 그저 납득만 요구했다.


배에 닿은 부분에서 츠카의 고동이 느껴졌다. 그 고동은 묘하게 베카린과 공명하는 것 같았다.


잠시 기다리자, 고동이 빨라졌다. 좋은 징조이다. 그의 몸이 조금씩 회복되는 것 같았다.


고동이 더 빨라졌다. 베카린은 그를 껴안고 있는 팔을 조금 풀었다.


고동이 격해졌다. 츠카가 발작을 일으켰다.


츠카는 태동하는 태아처럼 베카린의 배와 가슴을 찼다. 베카린은 깜짝 놀라 일어났다.

그녀는 머리를 둘둘 말았던 천을 풀어서 츠카를 보았다. 츠카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다만 꿈틀거리며 앞발로 베카린의 옷자락을 꽉 잡고 있었다.


스산한 바람이 강가의 수풀들을 마구잡이로 흐트러뜨렸다. 그리고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소리의 혼란이 베카린을 옥죄었다. 그녀는 츠카를 꽉 껴안았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었다.

츠카가 그녀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들려서는 안되는 소리가 들렸다.


베카린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강가로 달려갔다. 하늘에는 환한 보름달이 태양처럼 빛나고 있었다. 타카슬에게 도움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숨어야 할 것 같았다.


그녀는 물가에 더 가깝고 더 풍성한 수풀 속에 납작 엎드렸다. 그녀는 풀이 최대한 두텁게 보이도록 자신의 위에 수풀을 재정렬했다.


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풀이 눌려 있다. 분명히 이 근처에 있어.”


베카린은 숨을 죽였다. 그녀는 꿈틀거리는 츠카를 짓누르며 머리를 진흙 바닥에 최대한 눌렀다.


“그 시발년 때문에 이게 뭔 개짓거리야.”

“걔 못 잡으면 우리 싹 다 죽는다. 꼼꼼히 흩어봐.”

“악! 뱀이야, 뱀!”

“그냥 밟아 버려요!”


대체 얼마나 잤길래, 언제 저렇게 많은 사람이 강변에 모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 모두가 베카린을 찾아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수풀을 밟는 소리와 함께 풀이 파헤쳐지고 헤집어지는 소리도 들렸다. 어른들은 뭔가를 수풀 속에서 찾을 때 저렇게 기다란 막대기로 풀 속을 이리저리 휘두르곤 했다.


베카린은 그들이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기를 기도했다.

그들 중 한 명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수풀이 범해지고 찢겨나가는 끔찍한 소리가 커졌다. 수많은 벌레와 들짐승들과 베카린과 츠카의 보금자리가 유린당하고 있었다. 그녀는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내 어른 중 한 명의 막대기가 베카린의 머리를 건드렸다.

베카린은 번개처럼 일어나 그자에게 진흙을 던졌다. 진흙더미는 멋지게 눈에 명중했다. 그가 주춤하는 사이, 베카린은 주저 없이 강으로 뛰어들었다.


“아아악!”


그의 비명을 들은 일보 직후에 수면이 베카린의 귀를 덮었다. 그녀는 강바닥으로 계속해서 내려갔다. 눈은 감고 있어야 했고, 숨은 막혔으며 물이 꼬르륵거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지만 믿는 바가 있었다.


그때 타카슬은 의아해하면서 물 위를 향해 올라가는 중이었다.


베카린의 신호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자연에서는 만들어질 수 없는 리듬이 수면 위에서 3번이나 반복되었다. 하지만 그녀가 달밤에 타카슬을 불러낼 리 없었다. 불러낸다고 해도 그가 수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타카슬은 바닥과 수면의 중간에서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고 고민했다. 그러다가 그는 베카린의 발버둥 소리를 듣게 되었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다가가자, 과연 그녀가 힘겹게 몸을 꿈틀대고 있었다.


그는 주둥이로 베카린을 툭 건드렸다. 대충 ‘여기서 뭐 하냐?’라는 의미였다. 그러자 그녀는 서둘러 타카슬에게 팔을 뻗었다. 베카린은 숨이 막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츠카를 감싸던 보자기가 물속에서 하늘하늘 흔들리며 타카슬의 주둥이를 감쌌다.


베카린은 미끄러지는 천을 두 손으로 잡고 타카슬의 두 눈을 가렸다. 그리고는 배와 양다리를 그의 등에 밀착시켜 타카슬을 조종할 준비를 했다.


그녀는 주둥이를 안은 채 위로 끌어올렸다. 타카슬은 인간이 물 속에서 오래 못 버틴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것이 수면 위로 올라가자는 의미임을 바로 알아들었다. 몹시 마음에 안 드는 지시였긴 했지만, 그녀가 그러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타카슬은 베카린이 아주 급박하게 자신의 주둥이를 조이고 있는 것과 물 위에서 굉장히 소란스러운 소음이 전해지는 것을 종합해 상황을 대충 판단했다. 그는 정말 마지못해 하면서, 눈을 꽉 감고 위로 올라갔다.


베카린은 수면이 코 아래로 내려가자마자 모든 걸 빨아들일 기세로 숨을 쉬었다. 어찌나 요란하게 숨을 몰아쉬었는지, 어른들이 시끄럽게 요동치는 강 물결 사이로 곧바로 그녀를 찾아버렸을 정도였다.


“저기 있다!”


모든 눈빛과 손가락이 베카린에게 집중되었다. 그녀는 여전히 숨차하면서 악에 찬 눈빛으로 그 삿대질들을 받아쳐냈다.


그녀는 생각했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는 50m가 넘는다. 어른들이 들고 있는 작대기를 던진다고 해도 닿을락 말락 할 거리이다. 무엇보다도 타카슬이 있다.


타카슬이 그녀를 도와줄 것이다. 핏덩이 시절부터 지금처럼 거대해지기까지 3년 동안 어른들 몰래 키워온 동생 같은 아이다. 타카슬은 그녀를 잘 따랐다. 무괴가 지켜준다면야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베카린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이 있었다.


첫째로, 어른들은 이미 타카슬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다만 모르는 척했을 뿐이었다.


둘째로, 수많은 전설과 역사책에서 말하는 것과 달리 무괴는 달빛을 그렇게까지 싫어하지 않는다. 그들은 달빛을 무서워한다.


셋째로, 무괴의 힘과 맷집은 아주 강력하지만, 여느 물짐승이 그렇듯 등 뒤로 지느러미를 뻗을 수는 없으며, 따라서 등 뒤에 올라탄 베카린을 철저히 보호할 수는 없었다.


14살짜리 여자아이의 한계였다. 자신이 누구든지 기만할 수 있고, 모든 사물을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 나이였다. 그녀는 어른들이 기묘한 쇳덩이를 자신에게 겨눌 때조차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 쇳덩이가 달빛을 받아 반짝일 때, 베카린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하지만 자신의 직감을 검토하느라 최후의 기회를 모두 소진하고 말았다.


어른들은 일제히 작살을 발사했다.


소름끼치는 작동음이 들리자마자 베카린은 본능적으로 머리를 감쌌다. 그러자 옆구리가 활짝 비었다. 검은색 작살이 그 옆구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빗장뼈가 부수어지며 폐가 뚫렸다.


베카린은 인생 최후의 단말마를 내질렀다.


즉사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녀가 곧바로 물에 빠졌기에, 그리고 폐에서 계속 바람이 새어나갔기에 그 이후에는 비명을 지를 기회가 없었다.


10개 정도의 작살이 수면 위로 내리꽂혔다. 그것들은 무괴의 근육은 뚫지 못했지만, 피부에는 상처를 줄 수 있었다. 따금한 수준이었지만 달빛에 긴장해 있던 타카슬을 놀라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타카슬은 몸을 잔뜩 뒤틀었다. 물짐승만이 들을 수 있는 고함이 온 강물을 가득 채웠다. 그는 뒤늦게 베카린을 떠올리고는 그녀를 찾으려고 했다.


다행히 베카린의 물장구 소리와 그 파동을 감지하여 금세 그녀를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타카슬은 그것이 베카린이라는 걸 바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녀에게서부터 뿜어지는 강렬한 피 냄새가 타카슬의 판단력을 흐렸다. 그는 여태껏 인간의 피 냄새를 맡아본 적이 없었다. 모든 감각이 그것이 베카린이라는 걸 증명해주었지만 후각만은 인간 여자아이를 낯설어했다.


타카슬은 패닉에 빠진 채 주둥이로 베카린을 툭툭 건드렸다. 그녀는 이미 발버둥을 그만두고 제자리에서 경련하고 있었다. 타카슬의 머릿속은 그녀를 물 밖으로 밀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그가 굳이 그러지 않아도 베카린은 저절로 둥실 떠올랐다. 인간의 몸은 물보다 가벼우니 당연하다. 하지만 얼굴 앞면은 여전히 물 아래에 있었다. 저래서는 숨을 쉴 수 없다.


작살은 계속 날아왔다. 베카린의 몸에 작살이 하나둘 꽂혔다. 그중 하나가 척추와 뱃가죽을 동시에 관통했다. 그러자 그녀의 옷 아래에서 새로운 냄새가 피어올랐다.


옷이 투두둑 찢어지며 베카린의 맨가슴이 드러났다.


그리고 물속에서 휘날리는 그녀의 머리카락과 짙은 핏물과 옷자락이 흩날리는데, 그 한가운데에 츠카가 부유하며 천천히 떨어져 나왔다.


츠카는 몸을 둥글게 말고 있었다. 작살은 베카린과 츠카를 동시에 꿰뚫었던 모양이었다. 츠카의 피와 베카린의 피가 유려한 선을 이루며 둘을 탯줄처럼 연결했다. 하지만 점차 얇아지고, 끊어지고 있었다.


타카슬의 눈을 감싸고 있던 천이 완전히 풀렸다. 동시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눈이 떠졌다. 그는 확인하고 싶었다.


찬란한 달빛이 일렁이는 수면을 다각형의 보석으로 만들었다. 타카슬은 완전히 얼어붙었다. 베카린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에 빨려가고픈 충동이 솟구쳤다. 그 충동은 단순한 달빛 공포증 때문이 아니었다. 더 깊은 곳에서, 어쩐지 맥락 없이, 만들어진 것 같았다.


츠카가 계속 부유하며 타카슬에게로 다가왔다. 타카슬은 그것이 토끼 모양이지만, 피 냄새를 통해 토끼는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츠카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도 금방 눈치챘다. 그리고 그의 출혈이 그쳤음도 냄새로 알았다.


왜 살아있지? 저렇게 작은 동물이 저만한 피를 흘렸으면서 어떻게?


그때 츠카가 눈을 떴다.


<나를 쥐어.>


소리가 울렸다. 아니, 소리일까? 그것은 다시 들렸다.


<네가 타카슬이구나. 나는 츠카라고 해. 입으로든 지느러미로든 나를 잡아줘. 도움이 될 거야.>


타카슬은 그래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근육의 긴장이 풀리질 않았다. 그때 비슷한 종류의 다른 소리가 들렸다.


<타카슬, 서둘러. 츠카를 데리고 가.>


베카린이 떠오르는 목소리였다. 인간이 물속에서 말할 수 있었던가? 그러나 그 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나는······이제 죽을 거야. 어른들이 날 죽였어. 타카슬······, 츠카를 데리고 가. 저 사람들은 츠카를 원하고 있어. 난 저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지 않아.>


부정할 수 없이 그것은 베카린에게서 나오는 소리였다.


타카슬은 단 한 번도 베카린이 하는 말을 알아들은 적이 없었다. 기본적인 의사소통이야 가능했지만 정밀한 수준의 대화는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그녀의 모든 발언은 타카슬의 뇌리에 똑똑히 박혔다.


“어떻게 말하는 거야?”


타카슬이 쥐어짜듯 말했다. 베카린이 대답했다.


<말하는 게 아니야. 전하는 거야. 곧 알게 될 거야. 시간이 없어. 내 말을 들어. 츠카를 데리고 가.>


츠카가 머리가 타카슬의 주둥이에 닿았다. 타카슬은 무괴의 형편없는 시각으로도 그의 눈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츠카는 가물치나 배스 같은 포식자의 눈이 아닌, 피식자의 동그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 동그란 안광이 타카슬의 눈을 꿰뚫을 것만 같았다.


<가자.>

“베카린이 죽을 텐데?”

<그러니까 가라고. 복수하고 싶지 않아? 지체하면 다 죽어.>


이대로면 전부 죽고, 모든 게 물거품이 된다.


베카린이 츠카를 데리고 뛰쳐나온 일도, 그녀의 부모가 쏜 작살에 살해당한 일도.


이해할 수 없는 교리를 받아들이는 척하며 마음에 병들어갔던 14년의 시간과.


피도 안 마른 꼬맹이의 머리를 쥐어짜 강바닥에 무괴를 숨기며 기른 3년의 시간까지도. 모두 아무 소용도 없고 어떤 결과도 도출하지 못한 허상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저 아이는 그걸 받아들일 수 없어. 나도 그걸 원하지 않아. 너는?>


머릿속으로 온갖 마구잡이의 무언가가 들어왔고, 그 순간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타카슬은 입을 벌려 츠카를 물었다. 그는 츠카를 입에 머금고 베카린에게로 다가갔다. 모든 집중력이 그녀가 만들어내는 그림자에 쏠렸다.

저편으로 넘어가는 마지막 의식이 흘러나왔다.


<마지막······. 타카슬······윈스반······.>


타카슬은 곧바로 뒤돌아 헤엄쳐 갔다. 그의 엄청난 꼬리 힘이 온 강 너비에 퍼지는 물보라를 일으켰다.


“이봐! 저기 그놈이다! 그 무괴야!”


쨍쨍한 보름달 아래에서 그것은 참 잘 보였다. 어른들은 일제히 소리치며 타카슬을 향해 작살을 겨누었다. 그때 기괴한 일이 일어났다.


베카린이 물 위로 떠올랐다. 일반적인 익사체와는 조금 달랐다.


그녀의 몸은 허공으로 둥실 떠오르고 있었다. 몸을 웅크린 채 등만 물 밖으로 내밀었던 그 자세 그대로였다. 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주렁주렁 늘어뜨리고 허공에 힘없이 늘어진 그 모습은 너무 기괴해 보였다.


어른들은 그 광경에 순간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하지만 압도되지는 않았다.


“옥토끼가 한 일이야! 한눈팔지 마라!”


그때 시체가 그들에게로 휙 날아들었다.

40kg이 훨씬 넘는 무게였으니, 가장 힘이 센 사람조차도 버텨낼 수 없었다. 그들은 일제히 넘어지거나, 휘청거렸다. 타카슬을 향하던 조준이 완전히 흐트러졌다. 심지어는 서로에게 작살을 맞춰버리는 일도 일어났다.


결국 그들은 타카슬이 저 멀리까지 도망칠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놓쳤어!”


어른들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분통을 터뜨리거나, 작살에 맞아 고통스러워하거나, 넘어졌을 때 부딪힌 부분을 문질렀다. 그들 한가운데에는 베카린의 시체가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있었다.


그리고 곧 그 시체는 야생에서나 볼 법한 고깃덩이로 분해되었다. 어른들은 분풀이로 베카린을 찢고, 뭉개고, 부수었다. 모두 그녀와 매일같이 얼굴을 보며 살던 사람들이었지만, 이미 그들에게 베카린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주브만칼리의 반동분자였고, 영보교의 배교자였고, 윈스반 가문을 패가망신시킬 패륜아였다.


하지만 그들의 시체 훼손은 허공을 향한 발길질이었다. 베카린은 이미 죽었으니 고통을 느끼지 않으며, 츠카와 타카슬은 도망친 데다가 카추샤는 이미 윈스반 가문에게 실망했다.

어떻게 보면 베카린이 이긴 셈이었다.


작가의말

여기까지 프롤로그입니다. 다음화부터는 4000자 정도의 분량으로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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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저격 22.09.10 31 1 11쪽
60 개전 연설 22.09.06 35 1 10쪽
59 생명줄 22.09.04 33 1 10쪽
58 단둘이 22.09.02 28 1 9쪽
57 나실 호텔의 최상층 22.08.30 20 1 9쪽
56 대장과의 합류 22.08.27 24 1 10쪽
55 분산되는 일행 22.08.23 33 1 11쪽
54 함필규 22.08.21 15 1 10쪽
53 첫 살인 22.08.16 19 1 9쪽
52 너겨 엿비 22.08.14 15 1 9쪽
51 지사리의 보증 22.08.12 15 1 10쪽
50 단군 하비나 +2 22.08.10 30 1 10쪽
49 불안 22.08.06 19 2 11쪽
48 인질들 22.08.05 18 1 9쪽
47 몰살 22.08.03 19 1 12쪽
46 기다림 22.07.31 20 1 10쪽
45 블러핑 22.07.28 23 1 9쪽
44 만칼리의 추억 22.07.26 24 1 11쪽
43 스위트룸 22.07.23 23 1 9쪽
42 모함 +2 22.07.21 30 1 11쪽
41 감금 +1 22.07.09 40 2 13쪽
40 진술 +2 22.07.06 40 2 9쪽
39 터리놀, 유흥과 죄악의 도시 22.07.04 27 2 9쪽
38 패륜 +2 22.07.03 30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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