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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님의 서재입니다.

돛대 없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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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작품등록일 :
2022.05.27 23:51
최근연재일 :
2022.12.05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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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10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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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단군 하비나

DUMMY

네 형제의 배 이야기는 가나 대륙 서부의 동화이다.


하지만 그와 비슷한 이야기는 가나 대륙 전체에 걸쳐서 전해진다.

학자들은 이것이 ‘계모에게 학대받는 딸’이나 ‘태양과 달의 남매관계’, ‘여주인공이 서두르다가 잃어버린 신발로 여주인공을 찾아내는 남주인공’와 같이 전혀 연관이 없는 문화권에 비슷한 클리셰가 전래되는 현상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미령은 찬호가 말해주는 네 형제와 그들의 배 이야기를 전부 듣고는 그의 허벅지 위에 머리를 기대 누운채 말했다.


“벌서라에는 네 형제의 '집' 이야기가 있어요.”

“맞다, 생각해보니 벌서라처럼 내륙 지역은 바다와 접해있지 않으니까 배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겠네요.”

“서로만에 다른 전래동화는 없나요?”

“제가 서로만 출신이 아니라서 서로만 동화는 잘 모르겠어요.”


찬호는 몸을 뒤로 젖혀 편하게 누웠다. 허리와 척추에 가해지던 중력이 사라지자 몸 전체에 혈액이 도는 듯한 따듯하고 편안한 전율이 퍼졌다.

미령은 몸을 다시 일으켜세웠다가 찬호의 옆에 나란히 누웠다.


“서로만 요원이신데 서로만 출신이 아니라고요?”

“네. 사분이라고 아시나요? 서부 해안에 있는 어업으로 먹고사는 도시에요. 전 거기서 왔어요.”

“외지인한테 요원 자리를 주나요?”

“돛대 없는 배는 그런 거에 연연하지 않았어요.”


돛대 없는 배는 지사리와 공존하는 길을 열어준 옥토끼와 공존하는 기업으로, 다종족 인류 시대의 선도를 달리는 비밀스러운 기업이기 때문에 많은 음모론과 동경의 대상이 된다. 미령은 문득 돛대 없는 배에 흥미가 생겼다.


“돛대 없는 배 건물 안에 들어가 본 적 있나요? 정말로······그······지하 실험실이 있나요?”

“지하 실험실이요? 거기에는 제빵실밖에 없어요.”


찬호는 돛대 없는 배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옥토끼들, 그리고 그들을 도와주는 인간들.

돛대 없는 배는 철저하게 옥토끼를 중심으로 돌아가며 인간은 그들을 보조해주는 역할일 뿐이었다.


옥토끼들은 영원의 삶을 사는 자들이라 다른 생명의 삶을 빼앗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게다가 본인들이 고통을 받는 것도 싫어하기 때문에 ‘실험’ 비스무리한 행동은 입에도 올릴 수 없었다.


“역시 다 음모론이었나보네요.”

“제 생각에 100% 음모론이기만 한 건 아닐 거예요. 아마 어딘가의 도시에서는 소방 전쟁 이후에 서로만으로 돌아오지 못한 옥토끼를 가둬두고 음모론에 나오는 실험을 하고 있겠죠. 주브만칼리가 그랬던 것처럼요.”

“주브만칼리요? 잠깐, 제가 들으면 안 될 내용 같은데요.”

“어차피 미령 씨도 아시게 될 정보였어요. 저희 작전은 벌서라와 터리놀이 공동으로 지원했었거든요. 그러니 벌서라의 부시장이신 미령 씨 아버님도 우선적으로 저와 지원과 기르불이 알아낸 정보를 전달받게 되셨을거고, 주브만칼리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서로만과 엮인 게 없으니 머지않아 일반인에게도 주브만칼리가 옥토끼로 헛짓거리를 했다는 게 알려졌겠죠.”


찬호는 지원과 기르불과 츠카, 루니, 타카슬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나는대로 계속 이야기했다. 물에 빠져 죽었어야 했을 죽목 부대가 츠카 덕분에 살았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이 너무 자기 할 말만 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찬호는 미령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미령은 어느새 찬호의 어깨뼈와 가슴근육 사이 오목한 공간에 머리를 알맞게 뉘인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피곤했을텐데 괜히 떠들어서 방해를 했네.’

찬호는 미안함을 느끼며 몸을 비틀어 그녀를 이불 위에 반듯이 눕히려 했다. 그때 미령이 말했다.


“저 안 자요. 그냥 이대로 있어줘요.”


찬호는 순식간에 공기가 후덥지근해지는 걸 느꼈다.

방문 밖에서는 치밀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고 창문 밖에서는 절박함이 부딫히고 있었는데 미령과 함께 있는 지금의 공간과 시간은 외부의 위기에서 분리되어 있는 것 같았다.


찬호는 마음놓고 이 상황에 푹 빠져들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지만, 동시에 이런 위급상황에 뭘 하는 건가 라는 죄책감이 들었다. 꼴사납게 안절부절못해하면서 찬호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때 문이 쾅쾅쾅 두드려지는 소리가 방안 가득 울려퍼졌다.


“부대장님! 부대장님! 나와보세요, 화령이 도착했어요!”


자치군의 부대장, 자리를 떠난 지원 대장의 대리인 찬호는 허겁지겁 밖으로 나갔다. 문 밖에서는 총과 방탄복으로 무장한 모습이 정말로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그를 맞이했다.


“화령이요?”

“네, 네, 창문을 통과해서······. 지금은 로비에 있어요.”


###


터리놀 호텔의 각 층마다 있는 로비에는 소파와 식탁, 간편한 조리기구와 식재료 등이 구비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자치군들이 쓸만한 물품을 모아서 쌓아놓은 창고처럼 쓰고 있었다.


어지럽게 흩어져있는 물품들을 한쪽으로 밀어놓고 공간을 만들어 사람들이 거기에 모여 있었다. 한쪽 벽에 어디선가 구해온 램프를 걸어놓고 거기에 화령으로 온 지사리를 넣어둔 채 로비 바닥에 앉아있었다.


“어어, 오셨네.”

“휴식 중인 사람 아니시면 다 나가서 일들 보세요. 이따가 전달해드릴게요.”


로비 근처에서 얼쩡거리던 사람들이 물러갔다. 휴식 차례이던 사람들은 자리에 여유를 가지고 떨어져 앉을 수 있게 되었다.


“저 인간이 너희의 지도자인가?”


화령이 말했다. 찬호는 램프 앞에 섰다.


“네, 정확히는 지도자 대리요. 저희 대장은 따로 있는데 지금은 여기 없어요.”

“시간이 별로 없는데, 기록하기 위한 준비물을 가져와. 기르불이 오는데로 바로 시작하지.”

“기르불? 기르불은 정찰하는 것만으로도 바빠요. 만칼리군이 언제 어디로 잠입을 시도할지 몰라요. 혹시나 해서 기르불을 화령으로 보내는 것도 못하고 있었는데······.”

“괜찮아. 내가 보증하지. 그 애를 데려와.”


그 화령이 어떤 지사리이길래 ‘보증’을 한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찬호는 일단 기르불을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잠시 후, 기르불이 도착했다. 인간들은 기르불과 그 화령의 차이점조차 알아볼 수 없었지만 기르불은 화령을 보자마자 그를 알아봤다.


“단군? 단군께서 왜 여기에?”


찬호는 기르불이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을 처음 들었다. 다른 인간들은 기르불과 지낸 시간이 길지 않아서 감흥이 없었지만, 찬호는 옥토끼에게도 반말을 까는 기르불이 저자세로 나온 것에 적잖이 놀랐다.


“기르불, 아는 지사리에요?”

“음······그래, 인간 말로 하면······지사리들의 종교적 지도자야. 하비나 단군이셔. 근데 당신이 왜 화령으로 직접 오셨습니까? 아니, 그전에 지상에 올라오셔도 되는 겁니까?”


하비나는 여유롭게 말했다.


“내가 단군인데 누가 날 막겠나? 근데 놀랐을 때도 인간 말이 먼저 튀어나오다니 지상에 꽤 익숙해졌나봐. 지사리 말은 기억하나?”


기르불은 그 뒤 곧바로 지사리 언어로 대답했다. 마치 불꽃이 요란하게 타닥거리는 소리 같아서 제대로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찬호는 간신히 그들이 기르불의 지상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곧 다시 인간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됐어. 기르불도 왔으니 이야기를 시작하자고. 2가지 이야기가 있다. 내가 서로만 공작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와 저 밑의 터리놀 인간들이 생존자 전체에게 전달하려고 하는 이야기야.”

“서로만 공작대? 기밀인가요?”

“기밀이긴 한데 다른 인간들이 들어도 상관없어. 살려고 발버둥치는 여기 인간들은 들을 자격이 있지.”

“그럼 일단 터리놀에서 보낸 것부터 해주세요. 급한 전갈일테니까.”

“좋아.”


찬호는 하비나가 든 램프를 벽에서 내려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리고는 램프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램프 내부는 뜨겁게 달궈져 있었기 때문에 단열재가 덧붙여지지 않은 부분을 만지지 않기 위해 셔츠의 끄트머리로 손을 감싸야만 했다.


마침내 하비나를 받히고 있던 램프의 아랫부분만이 남았고, 하비나는 춥고 습한 바깥 환경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허나 그는 불쾌한 티를 내지 않고 가만히 타오르기만 했다. 하비나는 지산의 기억 속을 뒤지면서 몸을 부풀듯이 변형시켰다.

지사리의 완전에 가까운 기억력을 그는 재현하고 있었다.


하비나의 몸의 질감이 단단하게 변했다. 부정형으로 타오르던 불꽃의 형상이 조금씩 매끄럽고 형태가 잡혀가면서, 이윽고 한 인간의 모습이 되었다.


기르불이 감탄을 내뱉었다.


“세상에······구현술은 대체 언제 배우신 겁니까?”

“할일이 없어서 익혀뒀지. 꽤 재밌기도 했고.”


마치 1인극을 보는 것 같았다. 하비나가 만들어낸 인간의 형상에서 그의 목소리가 나왔다.


“생존자 여러분. 저는 나실 호텔의 비서실장인 너겨 엿비입니다. 저희는 방금전 여러분이 폭동 세력을 몰아내고 호텔의 위층을 점거하였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곧 터리놀의 군인들이 여러분을 구출하고 폭동 세력을 진압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여러분의 정확한 상황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너겨 엿비의 형상의 배꼽에 단정히 포갠 두 손과 호흡할 때마다 미세하게 들썩이는 상체가 마치 눈앞에 피부색이 빨간색일 뿐인 인간이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 화령 편으로 여러분이 몇 명인지, 부상자와 비전투인원은 얼마나 되는지, 물자에 여유가 얼마나 되는지를 상세하게 전달해주십시오. 그리고 진입 전 피아식별을 위해 모두 머리와 팔에 터리놀의 시장이 새겨진 띠를 둘러주셔야 합니다. 터리놀과 나실 호텔은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전령이 끝났다. 너겨 엿비가 곧 불꽃으로 바뀌었다.


“유찬호, 나한테 손 흔들어봤자 별 의미 없다.”


하비나가 말했다. 찬호는 너겨 엿비가 사라지자 본능적으로 손을 흔들어버렸다. 지사리에게는 의미없는 행동이었기에 그는 손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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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저격 22.09.10 31 1 11쪽
60 개전 연설 22.09.06 33 1 10쪽
59 생명줄 22.09.04 32 1 10쪽
58 단둘이 22.09.02 27 1 9쪽
57 나실 호텔의 최상층 22.08.30 19 1 9쪽
56 대장과의 합류 22.08.27 24 1 10쪽
55 분산되는 일행 22.08.23 31 1 11쪽
54 함필규 22.08.21 15 1 10쪽
53 첫 살인 22.08.16 17 1 9쪽
52 너겨 엿비 22.08.14 15 1 9쪽
51 지사리의 보증 22.08.12 14 1 10쪽
» 단군 하비나 +2 22.08.10 30 1 10쪽
49 불안 22.08.06 18 2 11쪽
48 인질들 22.08.05 17 1 9쪽
47 몰살 22.08.03 18 1 12쪽
46 기다림 22.07.31 20 1 10쪽
45 블러핑 22.07.28 21 1 9쪽
44 만칼리의 추억 22.07.26 23 1 11쪽
43 스위트룸 22.07.23 22 1 9쪽
42 모함 +2 22.07.21 29 1 11쪽
41 감금 +1 22.07.09 39 2 13쪽
40 진술 +2 22.07.06 39 2 9쪽
39 터리놀, 유흥과 죄악의 도시 22.07.04 26 2 9쪽
38 패륜 +2 22.07.03 29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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