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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님의 서재입니다.

돛대 없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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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작품등록일 :
2022.05.27 23:51
최근연재일 :
2022.12.05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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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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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6,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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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26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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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만칼리의 추억

DUMMY

“얘가 살인자로 보이지는 않는데.”


기르불이 말했다. 지원과 찬호도 눈빛을 교환하며 그 말에 동의한다는 의견을 나눴다.


일행을 공격한 여자는······사실 공격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도 부끄러울 정도였다.


여자가 입고 있는 건 방탄복이나 군복이 아니라 화려한 원피스였고, 머리는 치렁치렁 길고 파마가 되어있었으며, 찬호가 던져버렸던 식칼 이외에 다른 무기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자신을 도울 동료를 데려온 것도 아니었다.


“이름이 뭐지?”


지원이 식칼을 여자의 목 뒤에 겨누며 물었다. 여자가 답했다.


“백미령. 저······전 여기 투숙객이에요.”

“투숙객······. 저 안에 있는 두 사람과는 무슨 관계지?”


백미령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녀는 울부짖으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그 시발년들이! 개좆같은 새끼들! 우리 엄······엄마아빠를 죽였다고! 아아악!”

“가족관계가 맞는 것 같아요. 이것 보세요.”


찬호는 방 안의 어딘가에서 사진들을 가져왔다.


사진들에는 백미령과 그 가족들이 터리놀 및 가나 동부 지역을 여행하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지원은 그 중 하나, 해변가로 보이는 곳에서 가족이 수영복 차림으로 모여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보면서 말했다.


“이 사진에는 5명이 있군요. 안에는 2명 밖에 없지 않았습니까?”


이때 기르불이 조용하게 말했다.


“찬호, 총 겨누지 말고 뒤 돌아봐.”


찬호는 뒤를 돌아보았고, 거기에는 머리가 찬호의 배꼽에도 닿지 않을 정도로 키가 작은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지원은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5명 중 유일하게 튜브를 끼고 있는 아이가 한 명 있었다.


“백미령씨, 오해가 있던 것 같습니다. 저희는 당신의 부모님을 습격한 사람들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을 도울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지원은 백미령의 등 뒤에서 내려오며 찬호에게 손짓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찬호는 여자아이에게 다가갔다. 그 아이는 겁을 먹었지만, 찬호가 친절하게 말을 걸자 또박또박 다 대답해주었다.


“잠시만 비켜줄래?”

“네.”


이 방의 벽에는 옷장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옷장치고는 아주 넓어 안에서 사람이 널브러져 잘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찬호는 그 옷장을 안과 밖에서 각각 닫아보았다. 안에서는 바깥이 잘 보였지만, 바깥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았으며 주변의 검은색 벽과 분간이 되지 않았다.


“이 안에 숨어있었니?”


여자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찬호는 그녀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무서웠을 텐데 얌전히 있었구나. 정말 고마워. 이름이 어떻게 되니?”

“백주령이에요.”

“그래, 주령아. 일단 저기 가서 잠깐 앉아 있자.”


주령에게 흥분한 언니의 모습을 보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찬호는 그녀를 사무실 안의 작은 소파에 앉혔다. 그는 기르불을 소파 앞 테이블에 놔두고 주령을 위해 물을 한 컵 뜨러 거실로 나갔다.


거실에서는 지원이 미령을 계속해서 타이르며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가족 중 나머지 한 분은 어디있는지 아십니까?”

“그······그 새끼들이 데려갔어요.”


미령은 훅훅 숨을 몰아쉬면서 계속 옷으로 눈가를 문지르며 눈물을 닦았다. 그 덕에 그녀의 눈 주변 살갗이 벌겋게 짓물러 있었다.


지원은 눈짓으로 자신에게도 물을 가져다 달라고 찬호에게 요청하면서 질문을 이었다.


“저희는 서로만의 요원들입니다. 이 옆 방에서 투숙하고 있다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아 나왔습니다. 저희도 지금 상황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미령은 찬호가 가져온 물을 마시고는 조금 더 진정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희 오빠는 혼자서 카지노를 구경하러 아래층에 갔었어요. 나머지 가족들은 피곤해서 방에서 쉬고 있었는데······. 저기에 옷장이 있는 걸 발견했고 오빠가 오면 놀래켜주려고 주령이랑같이 숨었어요. 그런데 저희 오빠가 방에 돌어왔을 때 웬 고함소리가 들리더라고요.”


미령은 지원의 손을 아플 정도로 강하게 쥐고 떨었다.


“이상한 사람들이 마구 화를 내면서 큰 기관총을 들고 쳐들어왔어요. 저희가 옷장 밖으로 나가기도 전에 총질을 했고, 방에서 목욕하고 있던 엄마아빠를······.”


미령은 지원의 단련된 악력으로도 되받아치기 힘들 정도로 손에 힘을 쥐었다. 그녀는 이를 꽉 악물고 있었다.


“이를 강하게 악물면 바스라질 겁니다. 진정하시고 계속 이야기해 주세요. 그러면 저희가 복수를 도와드릴 수 있을 겁니다.”

“······고마워요. 꼭 그랬으면 좋겠어요. 안방에서 엄마랑 아빠가 비명을 지르는데 저는 아무것도 못했어요. 함부로 나갔다가 주령이도 죽게 만들 수가 없었어요.”

“잘하셨습니다. 결코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면 오빠분은 아직 살아계십니까?”


미령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나갈 때는 살아있었거든요. 머리채를 잡고 데리고 나가던데······. 오빠는 똑똑하지 않아서 그 새끼들이 답답하다고 죽이면 어떡하죠?”

“괜찮습니다. 인질로 데리고 나간 거라면 죽이지는 않을 겁니다. 뭔가 목적이 있는 놈들일 테니까요. 오빠분의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백하령이에요. 성이 백, 이름이 하령. 나이는 20살이고 키는 이정도에요.”


이때 기르불이 사무실에서 몸의 일부를 내밀어 말했다.


“바깥 복도도 한 번 돌아보고 왔어. 이 층에는 우리 말고 아무도 없어.”


지원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령을 일으켜 세웠다.


“여기서 나갑시다. 1층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지원과 찬호는 미령과 주령에게 자신의 방탄복을 입혀주었다. 주령에게 방탄복은 너무 커서 하나의 원피스처럼도 보였다.


미령은 주령은 몰라도 자신은 방탄복을 입을 수 없다면서 계속 사양했다. 하지만 지원은 놈들이 부잣집 아가씨인 미령과 주령을 공격하려 할 테니 당신이 방탄복을 입고 있는 게 나을 거라면서 안심시켰다.


대신 그녀와 찬호는 백미령의 가족들의 옷을 빌려서 아주 두껍게 껴입었다.

투숙하는 내내 옷장의 존재를 몰랐다더니만 과연 그럴만했다. 스위트룸은 너무 넓었고 단순히 외투나 모자 같은 것을 걸어놓는 용도의 가구조차도 과장 없이 수십 개나 되었다.

미령은 방 곳곳에서 그런 가구에 걸려 있던 백화점 냄새가 빠지지 않은 빳빳한 옷들을 한가득 가져왔다.


1층으로 내려가는데 엘레베이터를 이용할 수는 없었다. 만일 중간에 누군가 엘레베이터를 멈춰세운다면, 그리고 그 누군가가 살인자들이라면 꼼짝없이 죽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비상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계단은 아래쪽을 조금이나마 보면서 내려갈 수 있기에, 기르불이 램프 밖으로 나와 적극적으로 앞장설 수 있었다. 기르불은 반 층 정도 밑까지 몸을 늘려 앞쪽 방향의 안전을 확인했다. 찬호는 총을 들고 그 앞을 따랐고, 그 뒤에 백미령이, 가장 후방에는 지원이 백주령을 안아들고 뒤따랐다.


스위트룸층은 일반 투숙객이 함부로 접근할 수 없도록 따로 분리된 비상계단과 연결되어 있었다. 때문에 적들을 한층한층 청소하면서 내려갈 필요가 없었다. 일행은 단숨에 1층 근처까지 당도했다.


이때 기르불이 신호를 보냈다.


“멈춰.”


기르불은 램프 속으로 빠르게 몸을 집어넣었다. 아래쪽에서 고함이 들렸다.


“누구냐!”


일행은 계단 뒤로 몸을 숨겼다. 고함을 친 그 사람은 계속해서 크고 위협적으로 말했다.


“움직이지 마라! 암구어 확인, 천둥!”


찬호는 얼굴을 찡그리고 지원 쪽을 바라보았다. 아래쪽에서는 피아 식별을 위해 암구어를 요구하고 있었다.


지원이 찬호에게 말했다.


“사실대로 다 말하십시오. 어느쪽이든 저희를 바로 죽이려 하지는 않을 겁니다.”


찬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지 않으려는 것처럼 목청높여 말했다.


“저희는 스위트룸을 이용하던 투숙객들이에요! 군인이 아닙니다!”


밑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동료로 추정되는 목소리들이 여러 개 있었다. 다시금 고함 소리가 들렸다.


“손 들고 무릎으로 기어서 천천히 나와! 팔꿈치가 귀 아래로 내려오면 쏘겠다!”


지원은 총과 기르불을 자신에게 맡기라고 손짓했다. 찬호는 불안한 얼굴로 그녀에게 총과 램프를 건넸다. 그리고는 요구대로 손을 올리고 무릎으로 엉기적엉기적 기어나갔다.


항복의 의사를 내비치면서 계단을 내려가는 건 힘든 일이었다. 그는 계단 위에 엎드린 채 미끄러져 내려가야 했다. 제아무리 옷을 두껍게 입었어도, 계단 모서리들이 찬호의 몸무게 그대로 그의 복부를 압박했다.


찬호가 군인들 앞까지 내려오자 그들은 찬호의 손을 뒤로 묶었다. 찬호는 이들이 자신들에게 호의적인, 최소한 나실 호텔의 보안 요원들은 아님을 알아챘다. 나실 호텔의 직원들이 스위트룸 이용자를 ‘거칠게’ 대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미 상대의 손아귀에 떨어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미령과 주령, 그리고 지원까지 그런 식으로 밑으로 내려왔다. 군인들은 주령은 배로 계단을 미끄러져 내려오지 않아도 되도록 배려해주었다.


그들 역시 군인들이 자신들을 속박하자 이들이 자신들을 보호하는 사람들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었다.


찬호는 지원까지 무기를 내려놓고 군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자 당황했지만, 곧 그녀가 기르불을 계단 뒤에 숨겨두었음을 눈치챘다.


한편 지원은 군인들을 위아래로 흝어보며 그들을 파악했다.


그녀가 말했다.


“찬호, 이들의 완장을 보십시오.”


군인들은 지원을 바라보았다. 찬호는 당황하면서도 시선은 자연스레 그들의 팔뚝으로 갔다. 팔뚝에 찬 완장에는 3개의 삼각형이 모인 어떤 상징이 그려져 있었다.

어두운 비상계단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었다.


“대화하지 마라.”


군인들이 말했다.

하지만 지원은 계속 말했다.


“만칼리 삼각형입니다. 기억하십니까?”


군인들은 지원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들 중 하나가 지원의 뺨을 찰싹 때렸다.


“귀가 먹었나? 말하지 말라고.”


귀에 이명이 들렸고, 뺨은 얼얼했다.

하지만 지원은 기죽지 않고 말했다. 그것도 만칼리 어로, 군인들의 눈을 똑똑히 쳐다보면서, 입가에는 약간의 웃음마저 머금고.


“······수령님의 유일적령도강령을 위하여.”


군인들은 꽤나 적잖이 당황한 듯했다. 지원은 결정타를 날렸다.


“이곳에서 동지를 만나니 반갑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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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개전 연설 22.09.06 34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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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단둘이 22.09.02 28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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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대장과의 합류 22.08.27 24 1 10쪽
55 분산되는 일행 22.08.23 3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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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너겨 엿비 22.08.14 15 1 9쪽
51 지사리의 보증 22.08.12 15 1 10쪽
50 단군 하비나 +2 22.08.10 30 1 10쪽
49 불안 22.08.06 18 2 11쪽
48 인질들 22.08.05 17 1 9쪽
47 몰살 22.08.03 19 1 12쪽
46 기다림 22.07.31 20 1 10쪽
45 블러핑 22.07.28 22 1 9쪽
» 만칼리의 추억 22.07.26 24 1 11쪽
43 스위트룸 22.07.23 23 1 9쪽
42 모함 +2 22.07.21 29 1 11쪽
41 감금 +1 22.07.09 40 2 13쪽
40 진술 +2 22.07.06 39 2 9쪽
39 터리놀, 유흥과 죄악의 도시 22.07.04 27 2 9쪽
38 패륜 +2 22.07.03 30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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