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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님의 서재입니다.

돛대 없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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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작품등록일 :
2022.05.27 23:51
최근연재일 :
2022.12.05 15:08
연재수 :
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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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
추천수 :
208
글자수 :
296,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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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02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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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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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단둘이

DUMMY

지원은 루니와 함께 VIP룸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창문에 총을 내밀고 저격을 하고 있던 놈은 환청 때문에 총에서 손을 때고 귀를 감싸고 있었다. 그 덕에 지원은 굳이 루니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그의 목에 평화를 꽂아넣을 수 있었다.


‘평화’는 만칼리군에게서 빼앗은 평범한 군용칼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사용감이 좋았다. 평화는 세상에 존재하는 칼 중에 가장 날카롭고, 단단하고, 지원의 손에 익은 칼이었다.


파괴된 피부와 근육 조직이 오그라들어 평화를 꽉 옭아매었다. 하지만 평화를 목에서 뽑을 때는 어떠한 저항감도 느낄 수 없었다.


그건 칼에 찔린 사람 또한 마찬가지였다. 청각을 방해하는 환청에 더해져 그들은 어떤 현실감도 고통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고, 상황을 알아챌 즈음에는 과다출혈로 쓰러진 이후였다.


하지만 놈들은 총을 가지고 있었으며, VIP룸의 구조는 지원이 잘 알지 못했다. 게다가 벽난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놈들은 환청에서 조금 일찍 벗어났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루니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옥토끼가 있다! 다가가지 마!”

<3명이다.>


지원을 발견한 사람은 3명이었다.

지원은 입이 아닌, 텔레파시로 순식간에 루니에게 명령을 내렸다. 루니는 명령대로, 저격총이 창문에 거치되어 있어 권총을 뽑아든 저격수에게 다가갔다. 권총은 루니의 몸에 막혔으며, 그 저격수는 곧 루니에게 살해당했다.


나머지 둘은 저격수가 아니라 저격수를 호위하는 걸 맡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소총을 들고 있었는데, 소총은 강력해서 루니가 몸으로 막아낼 수 없었다. 그래서 지원은 그들이 소총의 총구를 자신에게 겨누기 전에, 가까이 있는 한 명의 눈에 평화를 던지고는 그의 뒤로 다가갔다.


“아악!”

“사네즈! 젠장!”


눈에 평화가 꽂히자 사네즈라는 그 병사는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래서 지원이 눈에서 평화를 뽑아 양 어깨를 찌르는 거에 저항하지 못했다.


나머지 하나는 아무래도 사네즈를 살리는 게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곧바로 총을 쏘았다.

소총탄은 사네즈의 방탄복의 배 부분을 뚫어버렸다. 하지만 사네즈의 장기들을 가로지른 다음, 등 쪽의 방탄복도 뚫은 뒤에는 총알의 위력이 많이 떨어진 이후였다. 결국 지원의 방탄복을 뚫지는 못했다.


지원은 등 뒤에서 조용히 섬광탄의 안전핀을 뽑고 던졌다. 그리고는 사네즈를 앞으로 떠밀고 곧바로 뒤로 돌아 몸을 웅크리고 손가락을 귓구멍에 넣고 눈을 감았다.


엄청난 굉음과 빛과 열이 터져나왔다. 사네즈의 시체를 방패로 썼음에도 이명이 들릴 정도였다.


섬광탄의 빛을 직격당한 상대는 일시적으로 장님이 되었고, 굉음은 고막을 손상시킨 것도 모자라 반고리관과 자율 신경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는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면서 털썩 넘어졌다.


루니가 시체를 뒤로하고 걸어나왔다.


<아, 미쳤네······. 섬광탄을 쓸 필요가 있었어? 그냥 총을 쓰면 될 걸.>

<권총탄은 방탄복에 막힐 우려가 있어서요. 찬호라면 팔다리나 머리를 맞출 수 있었겠지만, 저는 그 정도로 사격 실력이 좋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안전한 방법을 썼어요. 어차피 아저씨가 주변 상황을 저한테 알려주실 거 아닌가요?>


지원은 이명이 심했기에 텔레파시로 루니와 대화했다.


루니는 지원이 총을 쓰지 않았던 이유가 그게 합리적이기 때문만은 아님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따져들 때가 아니었다.


그는 순식간에 배의 총상과 손상된 감각기관을 복구시키고는 텔레파시를 펼쳐 바깥을 정찰했다.


<물론 그러긴 할테지만. 바깥에서 4명이 문에 총을 겨누고 있다. 문으로 그냥 나가는 건 힘들 것 같은데.>

<아무래도 한 방에 4명씩 배정한 것 같네요. 아저씨, 귀 막으세요.>


루니가 잘리지 않은 귀를 접어 앞발로 눌렀다.


지원은 허리에서 낡은 단소를 꺼냈다. 낮고 단조로운 목관악기 소리가 문 너머로 흘러나갔다.


<그거 챙겨왔었네?>


끔직한 연주를 들은 문 밖의 인간들은 정신이 나가 문을 향해 총을 쏘아댔다. 강력한 소총탄에 문이 금방 걸레짝이 되었다. 하지만 지원과 츠카는 이미 문 옆에 몸을 숨긴 이후였다.


바깥 군인들 중 하나가 부서진 문짝 틈새로 수류탄을 던져넣었다. 그 부질없는 노력은 루니의 염력에 의해 튕겨져 나가면서, 오히려 자폭이 되었다.


지원과 루니는 문을 열고 걸어나갔다.


섬광탄 덕분에 지원은 거의 귀머거리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루니가 옆에서 무슨 짓을 하든 상관하지 않고 평온하게 단소나 불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루니는 지원이 피리를 통해 내뿜는 환청에 괴로워하는 인간들을 편하게 만들어주며 동시에 지원을 수호했다.

그는 책상이나 의자 등을 부숴서 자신들의 주변을 공전시켰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간신히 정신을 차려 총을 겨눴을 때 그쪽을 향해 있는 힘껏 날렸다.


무거운 가구와 군인들이 가져다놓은 정체불명의 짐이 방 주인들의 머리 위로 쇄도할 때마다 비명과 피가 흩뿌려졌다. 지원은 그걸 듣지 못했다.


<오, 지원아, 이거 좋다?>


루니는 심지어 어느새 지원의 허리춤에서 평화를 슬쩍 빼내 그걸 허공에 휘두르고 있었다. 평화는 허공에서 유려한 곡선을 그리다가 저항하는 자들의 팔다리를 슥슥 긋고는 다시 공전 궤도로 돌아왔다.


<전의를 잃은 사람은 공격하지 말고, 덤비더라도 총을 들지 않았으면 적당히 팔다리만 그으세요.>

<그래, 그래. 내가 이 지경이 됐어도 옥토끼인데 닥치고 죽이지는 않아. 아, 옛날 생각나네. 옥희랑도 이렇게 싸웠지. 살생을 정당화하는 방법을 알려준 게 걔였어.>

<아저씨, 집중하세요.>

<단둘이 있는게 얼마만이냐. 너는 또 네 삶을 살려고 멀리 떠날 테고, 기껏 할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왔다 싶으면 다 늙어서 죽기 직전일 텐데.>


지원은 환청을 퍼뜨리는데 집중했다.


이윽고 그들은 방 하나만을 남겨놓았다.

뒤로는 시체들과 움직일 수 없는 부상자를 놓아두고, 지원은 계속해서 연주를 했고 루니는 텔레파시로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뭐야? 여긴 5명이네? 잠깐만.>


루니가 멈춰달라고 했기에 지원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문 옆에 기대어 루니를 기다렸다.


루니는 텔레파시의 정확한 파장을 잡기 위해 집중을 하고 있었다. 지원은 연주를 멈추지 않았고, 그래서 루니가 뭘 하는지 참견하지 않았다. 짐작건데 이상한 감정의 불순물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루니가 문에 직접적으로 귀를 가져다대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을 막지 못했다.


문이 뻥 소리와 함께 폭파되었고, 루니는 저 멀리 뒤쪽으로 날아갔다.


허공에서 맴돌던 가구 조각들과 평화가 땅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지원은 허리를 숙여 평화를 줍고는 곧바로 거실의 탁자 뒤로 몸을 피했다.


그때 방금까지 지원이 있던 자리로 수류탄이 데굴데굴 굴러왔다. 수류탄의 폭압이 주위에 먼지를 일으켰고 파편이 벽과 천장과 가구에 박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저항하지 말고 투항해라!”


지원이 외쳤다. 안쪽에서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이쪽에는 인질이 있다! 조금이라도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면 죽여버릴테니까 그런 줄 알아!”

“쓸데없는 저항을······.”


루니의 염력이 멈췄고, 텔레파시도 되지 않았다. 아저씨의 회복에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았다.


지원은 군인들을 자극해 정보를 얻어내보려했다.


“인질이 있다면 목소리를 들려줘봐! 머뭇거리면 방금 그 환청을 다시 듣게 될 거다!”


군인들은 초조해했다.

그들은 비록 허세를 부리기는 했지만 상황의 주도권이 자신들에게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방금 전의 그 환청을 다시 듣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은 급히 인질의 팔을 잡아서 부서뜨릴 정도로 강하게 조였다.


“아아아악!”


웬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지원은 상황이 복잡해졌음을 깨닫고는 혀를 찼다.


“이봐요! 괜찮으십니까?”


군인들과 인질로 잡힌 여자는 지원과 벽을 사이에 두었고 직접 얼굴을 보지 못했다. 지원은 서둘러 루니가 정신을 차리길 바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소통했다.


인질은 힘들어하면서 대답했다.


“아니요, 안 괜찮아요! 아앗!”

“너희가 지금부터 그분한테 한 짓은 똑같이 되돌려주겠다! 당장 인질의 구속을 풀고 밖으로 내보내!”

“우선 우리가 나갈 퇴로를 확보해둬라! 인질과 함께 나갈거다!”

“하······됐어. 관두자.”


지원은 연막탄을 뽑아 벽에 던졌다.

연막탄은 환상적인 각도로 튕겨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총소리가 빗발쳤다.


그러나 그 총소리는 인질을 죽이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들은 지원과 루니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문을 향해 총을 쏘아 탄막을 만들고 있었다. 지원은 그들이 절대로 인질을 죽이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았다.


작가의말

터리놀 에피가 끝나면, 하나의 큰 에피소드만 남아 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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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신의 이름으로 22.09.15 22 1 9쪽
61 저격 22.09.10 31 1 11쪽
60 개전 연설 22.09.06 34 1 10쪽
59 생명줄 22.09.04 32 1 10쪽
» 단둘이 22.09.02 28 1 9쪽
57 나실 호텔의 최상층 22.08.30 19 1 9쪽
56 대장과의 합류 22.08.27 24 1 10쪽
55 분산되는 일행 22.08.23 31 1 11쪽
54 함필규 22.08.21 15 1 10쪽
53 첫 살인 22.08.16 17 1 9쪽
52 너겨 엿비 22.08.14 15 1 9쪽
51 지사리의 보증 22.08.12 14 1 10쪽
50 단군 하비나 +2 22.08.10 30 1 10쪽
49 불안 22.08.06 18 2 11쪽
48 인질들 22.08.05 17 1 9쪽
47 몰살 22.08.03 18 1 12쪽
46 기다림 22.07.31 20 1 10쪽
45 블러핑 22.07.28 22 1 9쪽
44 만칼리의 추억 22.07.26 23 1 11쪽
43 스위트룸 22.07.23 22 1 9쪽
42 모함 +2 22.07.21 29 1 11쪽
41 감금 +1 22.07.09 40 2 13쪽
40 진술 +2 22.07.06 39 2 9쪽
39 터리놀, 유흥과 죄악의 도시 22.07.04 27 2 9쪽
38 패륜 +2 22.07.03 29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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