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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님의 서재입니다.

돛대 없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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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작품등록일 :
2022.05.27 23:51
최근연재일 :
2022.12.05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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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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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글자수 :
296,472

작성
22.07.03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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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패륜

DUMMY

비록 예상 외의 사건으로 시간을 많이 잡아먹긴 했지만 주브만칼리는 마침내 영생약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바닥에 떨어진 사형수의 목을 다시 몸 위에 올려두자 절단면이 스르륵 붙는 것을 보고, 카추샤 두나는 승리감에 휩싸였다.


그 다음날부터 아루신을 필두로 대대적인 접종이 시작되었다. 15세 이상의 모든 국민들은 영생약을 투여받았다.


노인들은 얼굴에서는 검버섯과 주름이 사라졌다. 병자들은 불치의 병이라 여겨졌던 고통과 영원한 작별을 고했다.


주브만칼리 국민들은 카추샤 두나를 향해 무조건적인 충성을 맹세했다. 체제와 사회에 대해 의심을 품던 일부 지식인들조차 영원한 생명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거리에 뛰쳐나와 연신 카추샤 만세, 만칼리 만세를 외쳐댔다.


비록 진짜 옥토끼처럼 텔레파시를 쓸 수 있다거나 오체가 분시되어도 염력으로 몸의 파편들을 긁어모으는 신기는 부릴 수 없지만, 주브만칼리 국민들은 충분히 강력한 힘을 얻게 되었다.


그럭저럭 머리에 든 게 있는 자들은 이것이 뭘 의미하는지 곧바로 알아챘다.


주브만칼리 정부는 군사력을 비축하기 시작했다.

어린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밥을 먹을 필요도, 병원을 갈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남아돌게 된 식비와 의료비가 전부 국방비로 돌아갔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톱날에 팔다리가 절단되도 다시 회복할 수 있게 되자 국민들은 험하고 위험한 작업들을 마다하지 않았고 만칼리에 봉사하고픈 마음을 모아 열심히 총과 총알, 폭탄을 만들어댔다.


한편 카추샤 두나는 포도주를 마시면서 자신의 집무실에서 전쟁 준비에 한창인 아루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뒤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카추샤가 말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자들은 2명의 일꾼들이었다.


“좋은 저녁입니다. 각하.”


그들이 동시에 힘차게 외쳤다. 카추샤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고, 단지 창문에 비치는 그들의 흐릿한 형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정말 좋은 저녁이다.”

“분부하실 일이 무엇입니까? 미천한 저희이지만, 힘이 닿는대로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별 일 아니다. 그렇게 기합 넣을 필요 없다. 너희 뒤에 있는 그것들 보이지?”


카추샤는 여전히 창문 밖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등 뒤로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지시했다.


그녀의 손가락 끝에는 네흘류 두나와 샤투카 두나의 환하게 웃는 사진이 걸려 있었다. 두 일꾼은 그제야 자신이 위대한 수령님과 대모님의 존안에 뒤통수를 보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나려다가, 카추샤에게 등을 보이게 되자 다시금 몸을 비틀었다. 그들은 옆으로 서는 것을 택했다.


카추샤는 그들의 행동을 보고 들으면서 흐흐 웃었다. 술이 들어가서인지, 기분이 좋아서인지, 그 모든 바보짓거리를 웃으면서 넘길 수 있었다.


“수령님과 대모님의 사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일꾼 중 한 명이 허리를 애매하게 굽힌 채로 물었다. 카추샤가 대답했다.


“그래, 치워.”

“예?”


다른 일꾼이 되물었다. 그들은 기껏 영원히 닳지 않을 고막을 갖게 되었음에도 자신들의 청력을 의심하고 있었다.


카추샤가 다시 대답해주었다.


“치우라고, 창고에 갖다 놓든 버리든 알아서 해.”


그들은 감히 그러지 못했다. 혹시라도, 아주 혹시라도 자신들이 카추샤의 말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면 삼족이 멸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또한 감히 한 번 더 질문을 할 용기를 내지는 못했다.


카추샤는 포도주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꾼 2명은 몸을 움찔거렸다.


카추샤는 유례없을 인내심과 자비심을 발휘하여, 자신이 직접 네흘류와 샤투카의 사진을 벽에서 떼어버렸다. 그녀는 그것들을 일꾼에게 던졌다.


“가지고 나가.”


그녀는 다시금 책상 앞 의자로 돌아갔고, 창문으로 몸을 돌려 책상 위에 올려둔 포도주를 들고 홀짝거리기 시작했다.


카추샤가 벙찐 일꾼들에게 손짓으로 나가라고 신호했다.


두 명은 허겁지겁 밖으로 나갔다.


그들은 자신들이 카추샤의 집무실에서 벌인 추태와 무례에 대한 벌이 내려질 것이라며 두려워했지만, 아무런 일도 없었다. 왜냐하면 카추샤는 그들의 행동에 화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모든 국민들에게 영생을 선물했다. 역사상 그 어떤 위대한 지도자도 이루어내지 못한 업적이었다. 국민들은 이제 네흘류와 샤투카의 딸 카추샤가 아닌, 주브만칼리의 수장 카추샤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이제 그녀가 대놓고 자신의 부모를 모욕해도 그 누구도 정통성 따위를 들먹이지 않을 것이다. 카추샤는 정통성 그 자체가 되었다.

하지만 두 일꾼들의 행동에서 나오듯 어린시절부터 각인된 수령님과 대모님에 대한 존경은 쉽게 버릴 수 없는 법이었다.


카추샤는 그 각인된 존경심을 하나하나 뿌리뽑는 것도 즐겁겠다고 생각했다.


####


터리놀 해안 경비대에게 주지원, 유찬호, 기르불에 대한 석방 명령서가 내려왔다.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그들의 구속을 풀고 경비대 유치장 밖으로 내쫒았다.


하지만 경비대 유치장 앞에는, 웬 모자와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가 마차를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지원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말했다.


“주지원, 유찬호, 그리고 기르불 왕제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을 만나고 싶어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마차에 타십시오. 모시겠습니다.”


마차 안은 생각보다 넓었다. 지원과 찬호는 같은 방향에 서로 붙어서 앉았고 양복의 남자는 그 맞은편에 앉았다. 기르불의 램프는 찬호의 무릎 위에 놓여졌다.


마차 밖에서 마부가 4마리의 말에게 출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다그닥다그닥 소리와 함께 마차가 굴러갔다.


지원은 할 일이 없어서 양복 남자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웃고 있었지만, 입 주변이 경직된 것이 어딘가 불편해보였다. 지원은 그 원인을 알아채고는 남자를 배려해서 먼저 말했다.


“부끄럽게도 저희는 지금 위생 상태가 좋지 못합니다. 저희를 만나고 싶어하신다는 그 분을 뵙기 전에 몸단장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양복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위해 호텔에 숙소를 준비해놓았습니다. 일단 그곳에서 쉬시고 저녁을 드신 다음, 밤 9시쯤 숙소에서 나와 그 분과 만나시면 될 것입니다.”


‘그 분’이 누구인지 양복 남자는 언급을 회피했다. 하지만 터리놀 해안 경비대의 정문 앞에 마차를 세울 수 있다는 점과 마차 천장에 새겨진 일출을 형상화한 모습의 터리놀 상징을 보아 ‘그 분’이 어떤 사람인지는 지사리 보듯 뻔했다.


찬호는 지원과 양복 남자의 대화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마차 창문에 얼굴과 기르불의 램프를 내밀고 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아······. 도시 냄새. 사람 냄새. 진짜로 가나에 돌아왔네요······.”


찬호가 아련하게 중얼거렸다. 지원이 대꾸했다.


“지금 풍기는 건 사람 냄새가 아니라 대마 냄새입니다. 터리놀은 대마가 합법이니까요.”


찬호는 슬그머니 자신의 머리와 기르불을 마차 안으로 집어넣고 창문을 닫았다. 기르불이 항의했다.


“야, 모처럼 관광하고 있었는데! 나한테는 주브만칼리나 가나나 똑같이 지상이란 말이야. 코카인? 뭐 그런 것도 한 놈이 대마가 뭐 어떻다고.”


양복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찬호를 쳐다보았다. 찬호가 손사레치며 변명했다.


“아니, 아니, 누가 들으면 제가 약쟁이인 줄 알겠어요.”


하지만 양복 남자가 놀란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지원이 그를 대신해 기르불의 말실수를 짚어주었다.


“기르불, 저희가 주브만칼리에 갖다온 건 기밀입니다. 말 했지 않았나요?”

“응? 이 인간은 이미 알고 있는 거 아니었어?”

“모르셨던 것 같습니다.”


일순간 마차 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양복 남자는 이후의 일정을 계속해서 일행에게 설명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지원이 또다시 그를 위해 말했다.


“저희를 마중오실 정도면, 듣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을 줄 아는 분이실 테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선생님,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양복 남자가 대답했다.


“너겨 엿비입니다. 너겨가 이름이고, 엿비가 성입니다.”

“네, 엿비 씨. 저희와 함께 터리놀에 들어왔던 옥토끼 두 명에 대해 아시는 것 있으십니까?”

“아······그 부분은 제가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이후 일행은 숙소에 도착할 동안 너겨의 자세한 설명을 경청했다.

너겨는 그들이 묵을 호텔이 고급지고 비싸며, ‘그 분’이 일행을 위해 그중에서도 특별히 좋은 방을 급히 예약해놓았다고 말했다.


잠시 후, 그들은 너겨가 말한 호텔에 도착했다.

정말로 으리으리하게 커다란 호텔이었다. 호텔의 앞에 마차가 서자 수많은 직원들이 레드카펫을 깔고 그 옆에 서서 두 손을 공손하게 모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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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14 경훈이의돌
    작성일
    22.07.04 22:48
    No. 1

    이름이 너겨 엿비...?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6 훙냐
    작성일
    22.07.05 22:17
    No. 2

    네, 같은 가나 대륙이라도 지역에 따라 문화가 다릅니다. 이름이 주인공 일행과는 조금 다른 것도 그 때문입니다. 주인공 두 인간은 가나 서부 출신, 터리놀은 동부 지역입니다. 40화에 관련 내용이 나올 겁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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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신의 이름으로 22.09.15 23 1 9쪽
61 저격 22.09.10 31 1 11쪽
60 개전 연설 22.09.06 34 1 10쪽
59 생명줄 22.09.04 32 1 10쪽
58 단둘이 22.09.02 28 1 9쪽
57 나실 호텔의 최상층 22.08.30 19 1 9쪽
56 대장과의 합류 22.08.27 24 1 10쪽
55 분산되는 일행 22.08.23 31 1 11쪽
54 함필규 22.08.21 15 1 10쪽
53 첫 살인 22.08.16 18 1 9쪽
52 너겨 엿비 22.08.14 15 1 9쪽
51 지사리의 보증 22.08.12 15 1 10쪽
50 단군 하비나 +2 22.08.10 30 1 10쪽
49 불안 22.08.06 18 2 11쪽
48 인질들 22.08.05 17 1 9쪽
47 몰살 22.08.03 19 1 12쪽
46 기다림 22.07.31 20 1 10쪽
45 블러핑 22.07.28 22 1 9쪽
44 만칼리의 추억 22.07.26 23 1 11쪽
43 스위트룸 22.07.23 23 1 9쪽
42 모함 +2 22.07.21 29 1 11쪽
41 감금 +1 22.07.09 40 2 13쪽
40 진술 +2 22.07.06 39 2 9쪽
39 터리놀, 유흥과 죄악의 도시 22.07.04 27 2 9쪽
» 패륜 +2 22.07.03 30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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