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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님의 서재입니다.

돛대 없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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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작품등록일 :
2022.05.27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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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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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04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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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터리놀, 유흥과 죄악의 도시

DUMMY

“나실 호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들이 일제히 외치며 허리를 숙였다.


찬호는 얼굴을 이상하게 찡그리며 입을 가렸다.


그는 신음을 내면서 마차에서 내리길 거부했다. 그는 이곳저곳이 헤진 망토를 단단히 부여잡았는데, 그 안에는 더러운 속옷 한 장만 걸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와 부끄러움을 탄다는 게 새삼스러웠지만, 그에게 있어서 생사고락을 같이한 지원이나 성별의 개념이 없는 기르불, 사람이 아닌 타카슬, 몇 억 살이나 먹었을 옥토끼들, 남자들뿐이었던 경비대에게 알몸을 보이는 것과 생판 처음 보는 호텔 직원들 앞에서 망토 한 장만 걸친 채 걸어가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아, 아니 왜 이런 짓을······?”


찬호의 중얼거림에 지원이 대답했다.


“터리놀, 유흥도시이기 때문입니다.”


너겨가 마차에서 내렸고, 그는 지원과 찬호와 기르불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원은 그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렸다.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레드카펫 위를 걸어갔다.


중간 즈음에서 지원은 뒤를 돌아봤다. 찬호가 너겨의 옆에서 기르불의 램프로 벌게진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숙이고 걸어오고 있었다.


지원은 가만히 그를 기다렸다. 찬호는 계속 걷다가 지원의 발을 보고는 멈췄다.


지원이 너겨에게 물었다.


“엿비 씨, 스위트룸을 예약하셨습니까?”

“네, 어떻게 아셨습니까? 나실 호텔에 4개 밖에 없는 가장 좋은 방입니다.”


가장 좋은 방이 4개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원은 너겨가 거짓말을 했음을 알았지만 지적하지 않고 감사 인사만을 올렸다. 그녀는 찬호의 옆에서 그를 에스코트하며 말했다.


“터리놀은 유흥도시입니다. 이 도시에서 움직이는 돈의 절반은 쾌락에 대한 대가입니다. 터리놀의 호텔은 숙박객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지불했는지에 따라 지방의 지주에서부터 귀족, 심지어는 왕과 같은 대우를 해주기도 합니다. 이 사람들이 저희에게 허리를 숙인 각도를 보면 저희를 만나려고 하는 그 사람이 저희를 위해 지불한 돈이 얼마나 되는 지 알 수 있습니다.”


너겨가 말했다.


“터리놀에 와 보신 적이 있습니까? 잘 아시는군요.”

“오래 전에 선생님이 한 번 데리고 와 주셨습니다.”

“이곳으로 수학여행을 오셨던 겁니까?”


터리놀은 유흥도시이다. 동시에 도박과 매춘, 술과 마약이 양지에서 행해지는 죄악의 도시이기도 하다. 이런 곳에 수학여행을 오는 학교는 너겨조차도 본 적이 없었다. 터리놀의 학교들조차 수학여행은 벌서라 같은 곳으로 간다.


지원은 너겨의 혼란을 배려해 해명을 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범죄자를 운송하는 경찰처럼 찬호의 얼굴을 가리고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호텔리어 한 명이 일행을 맞이했다. 그 호텔리어는 너겨와 함께 일행을 엘레베이터로 안내했고 호텔의 가장 높은 층수를 눌렀다.


지원은 아마도 이 엘레베이터로 갈 수 없는 더 높은 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층에는 아마도 방이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웬만한 사람들은 평생 그 층의 존재조차 모르고 살아갈 것이다.


터리놀. 유흥과 죄악, 그리고 쾌락의 도시.


제아무리 떵떵거리면서 사는 사람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다. 다른 사람과는 차별화되고 싶고, 특별한 대우를 받고 싶어한다.


“나실 호텔에 4개밖에 없는 가장 좋은 방입니다.”


호텔리어가 엘레베이터 안에서 나실 호텔에 대해 설명하면서 일행의 숙소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아마 허영심의 극치를 달리는 그런 인간들은 자신이 묶는 방과 같은 종류의 방이 3개나 더 있다는 사실에 수치심마저 느낄 것이다. 그런 인간들을 위해 나실 호텔을 포함한 모든 터리놀 호텔은 ‘가장 좋은 방’을 단 1개만 만든다.


호텔리어와 너겨는 일행을 지정된 방 앞까지 데려왔다. 그들은 열쇠 3개를 건네고는 다시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방안에 들어간 후 지원은 찬호에게 먼저 욕실을 이용하라고 양보했다. 찬호는 그것을 거절하지 않고 먼저 욕실로 들어갔다.


지원은 기르불을 벽난로에 옮겼다.

기르불은 정말 오랜만에 대나무나 램프용 기름이 아닌 땔감을 마음껏 태우면서 몸을 부풀렸다.


지원은 의자에 앉아 기르불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생각을 이어갔다.


도박, 매춘, 마약, 술 그리고 허영심······모두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다.


누군가는 ‘사람이 어떻게 술 없이 살 수 있겠냐’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지원은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도저히 그것들이 쌀과 떡보다 더 필수적인 것들이라고 인정해줄 수 없었다.


하지만 지원을 바보로 만들기라도 하는 듯, 도박, 매춘, 마약, 술, 허영심으로 돌아가는 터리놀은 가나에서 가장 많은 돈이 오고가는 도시였다. 즉 인간들은 농업도시 나호나 화합도시 서로만보다도 터리놀의 가치를 더 높게 매겼다는 의미였다.


지원은 찬호가 욕실에 들어가있는 동안 계속 생각을 했지만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세상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살해당하고, 강간당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것들을 모두 무시하고 유흥에 그 많은 돈을 쓸 수 있을까.


자신의 가족이 죽어가는 동안 터리놀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항락에 빠져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지원은 슬퍼졌다.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그녀는 단지 자신의 가족도 주브만칼리만 아니었다면 잠깐의 항락을 즐기러 이 도시에 관광을 오지 않았을까 하는 망상에 빠졌다.

굳이 매춘이나 마약같은 음성적인 것들이 아니어도, 가나 최대의 백화점인 터리놀 백화점이나, 화려한 행진쇼, 불꽃놀이, 주기적으로 열리는 각종 행사와 공연이 있으니까.


그녀가 가만히 이루어질 수 없는 망상에 빠져있는 동안, 찬호는 욕조에서 목욕을 하다가 깜빡 잠들고 말았다.

기르불은 모처럼 연료가 부족하지 않은 환경에서 나른하게 단잠을 잤다.

지원 또한 안락의자에서 기르불의 건조한 온기를 느끼며 눈을 감았다.


너겨 엿비와 약속한 시간까지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렇게 잠을 잤다. 덕분에 너겨가 돌아왔을 때, 그들은 한 명은 쫄딱 젖고 손끝이 퉁퉁 불어 있었고, 한 명은 여전히 때가 끼고 악취가 나는,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였다.


일행은 너겨에게 사죄하며 부디 약속 시간을 조금만 늦춰 달라고 사정할 수 밖에 없었다.


####


일행은 원래 ‘그 분’을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1시간이나 늦게 출발했다.


너겨 엿비는 일행을 호텔 아래층으로 연결되는 카지노로 데려갔다.

나실 호텔은 과연 터리놀을 대표하는 호텔이라는 게 납득될 정도로 크고 호화로웠지만, 카지노에 들어서자 나실 호텔은 그저 여인숙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기둥은 휘황찬란한 황금색에, 보는 사람이 다 아까울 정도로 밝은 조명, 맛있어보이는 간식과 음료수를 들고다니며 이용객들에게 나누어주고 있는 카지노 직원들은 이용객들로 하여금 이곳에 들어오는 순간 자신이 마치 이 공간에 걸맞는 고귀한 사람이라도 된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찬호는 초록색 책상에 둘러앉아 칩을 분배받거나 슬롯머신을 멍하니 들여다보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 사이에 감도는 시커먼 갈망과 광기를 느낄 수 있었다.


장소와 사람의 괴리가 소름돋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기르불은 인간들의 도박을 흥미롭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인간들이 왕제에게 보여주는 자신들의 정제된 모습과는 달리, 사전 검열을 거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욕망이 눈앞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그는 램프 속에서 안전하고 눈에 띄지 않게 인간들을 관광했다.


두 사람은 지원이 이런 광경에 별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지원은 카지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찬호가 그 의외성에 대해 말을 걸려고 했을 때, 덩치 큰 남자들이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검은 정장과 선글라스를 쓴 정말로 전형적인 ‘어깨 형님’들이었다. 그들이 너겨 엿비와 일행을 감쌌다.


어깨 형님들과 너겨 엿비는 평범한 사람들이 들어오기는 커녕 기웃거리지도 못할 깊은 곳까지 일행을 인도했다. 마침내 거대하고 여러 보석과 문양이 박힌 문 앞에서 그들은 멈춰섰다.


“너겨 엿비입니다. 서로만의 대사분들을 모시고 왔습니다.”


문이 열렸다.


커다란 정사각형의 방 중앙에 손님을 접대하는 용도로 추정되는 테이블과 소파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일출을 형상화한 터리놀의 문양이 그려진 벽 앞에 사무용 책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책상에는 이 방, 나실 호텔과 카지노 그리고 터리놀의 주인이 앉아서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고했다. 어서 오십시오, 대사님들. 저는 나실 호텔의 장, 누리 나토샤온이라고 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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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저격 22.09.10 31 1 11쪽
60 개전 연설 22.09.06 34 1 10쪽
59 생명줄 22.09.04 32 1 10쪽
58 단둘이 22.09.02 27 1 9쪽
57 나실 호텔의 최상층 22.08.30 19 1 9쪽
56 대장과의 합류 22.08.27 24 1 10쪽
55 분산되는 일행 22.08.23 31 1 11쪽
54 함필규 22.08.21 15 1 10쪽
53 첫 살인 22.08.16 17 1 9쪽
52 너겨 엿비 22.08.14 15 1 9쪽
51 지사리의 보증 22.08.12 14 1 10쪽
50 단군 하비나 +2 22.08.10 30 1 10쪽
49 불안 22.08.06 18 2 11쪽
48 인질들 22.08.05 17 1 9쪽
47 몰살 22.08.03 18 1 12쪽
46 기다림 22.07.31 20 1 10쪽
45 블러핑 22.07.28 22 1 9쪽
44 만칼리의 추억 22.07.26 23 1 11쪽
43 스위트룸 22.07.23 22 1 9쪽
42 모함 +2 22.07.21 29 1 11쪽
41 감금 +1 22.07.09 40 2 13쪽
40 진술 +2 22.07.06 39 2 9쪽
» 터리놀, 유흥과 죄악의 도시 22.07.04 27 2 9쪽
38 패륜 +2 22.07.03 29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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