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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님의 서재입니다.

돛대 없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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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작품등록일 :
2022.05.27 23:51
최근연재일 :
2022.12.05 15:08
연재수 :
64 회
조회수 :
1,919
추천수 :
208
글자수 :
296,472

작성
22.07.06 01:20
조회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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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9쪽

진술

DUMMY

자신을 누리 나토샤온이라고 소개하는 40대쯤 되어보이는 여자는 책상에서 일어서 손짓으로 소파를 가리켰다.


“앉으세요. 차를 내오겠습니다. 특별히 원하는 차가 있으신가요? 웬만한 것들은 전부 드릴 수 있습니다.”


지원과 찬호는 각자 맞은편 소파에 앉았고, 기르불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누리 나토샤온은 상석에 앉았다.


지원이 말했다.


“저희는 차 같은 것을 잘 모르니 아무거나 내오셔도 괜찮습니다.”

“그럼 홍차는 어떤가요? 어제 막 들어온 최상품이 있는데.”

“그걸로 부탁드립니다.”


어느새 너겨 엿비와 어깨 형님들은 전부 방 밖으로 나가 있었다.


누리는 기르불에게도 물었다.


“기르불 왕제님, 저희가 나호에서 수입해온 사과나무가 있는데, 맛보시겠어요?”

“좋지. 하지만 여기서는 됐고, 숙소 안에다가 갖다놔줘. 나중에 태워볼게.”

“하지만 손님 앞에 아무것도 두지 않는 건 제 마음이 편치 않아서 말이지요······. 왕제님 말대로 사과나무는 방에 올려다두는 것으로 하고, 여기서는 다른 것을 드셔보시는 건 어떤가요? 향유고래기름이 있는데 많은 지사리 분들이 좋아해주셨어요.”

“그럼 그걸로 줘. 고마워.”


누리는 테이블 위에 놓아둔 종을 흔들어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시종을 불렀다. 그녀는 시종에게 홍차와 향유고래기름을 가져오고, 사과나무를 일행의 숙소 벽난로 안에 놓아두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그녀는 가나 동부 언어로 시종의 귓가에 무어라 속삭였다.


시종이 나갔다. 누리는 다시금 일행과 대화를 시작했다.


“터리놀에 오신 소감은 어떠신가요? 관광을 좀 하시라고 약속 시간을 늦게 잡았는데.”


지원은 찬호를 바라보았다. 그가 대답했다.


“아, 저희가 배 위에서 생활하다가 모처럼 깨끗하고 좋은 방에서 묵게 돼서요. 그게······너무 지쳐서 그만 깜박 잠들어 버렸어요. 그래서 약속시간에도 늦고 저녁도 못 먹었어요. 정말 죄송해요.”


찬호가 허리를 깊숙히 숙였다. 누리는 그를 서둘러 만류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머리 숙이지 마세요. 당연히 피곤하셨겠지요. 그걸 고려 못한 저희 잘못입니다.”


찬호는 누리의 얼굴에서 당황하는 표정을 읽었다. 그는 그녀가 왜 이렇게 동요하는 건지 알 수 없었고, 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설명해주었다.


“찬호, 터리놀 같은 동부 문화권에서는 오로지 신 앞에서만 머리를 숙입니다. 서부식 예법은 이쪽 사람들에게 오히려 실례가 될 수 있습니다.”


찬호는 입을 떡 벌렸다.


“아아. 맞다.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호텔 앞에서 저희를 맞이해 준 사람들도 허리 숙여서 인사하길래 요즘은 그런 거 별로 신경 안 쓰는 줄 알았죠.”


그때 기르불이 재밌다는 듯 말했다.


“일부러 서부식에 맞게 우리에 대한 접대를 준비한 거구나?”


누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듣기로는 주지원과 유찬호 두 분은 서부 지역이 고향이라고 돛대 없는 배에서 그러더군요.”

“저와 찬호가 한 팀이 된 것도 가까운 지방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저희에게 신경을 많이 써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그럼 여러분은 어떻게 공작대를 결성하시게 된 건가요?”


자연스럽게, 하지만 갑자기 민감한 질문이 들어왔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침체됐다.


지원은 눈알을 굴려 방 안을 한 번 쓱 돌아보았다. 확실히 수행원들이나 이야기를 엿듣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으며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서로의 눈치를 보는 일행과 누리 나토샤온 뿐이었다.


하지만 누리가 자신의 안전을 위해 대기시켜 놓았을 사람들이 지원에게 쉽게 발각될 정도로 허접할 리 없었다. 아마 최소 3명이 어딘가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지원은 입을 뗐다.


“그 건을 포함해서, 이제부터 저희가 결성하게 된 경위와 주브만칼리에서 있었던 일들을 모두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엿들으면 곤란한 내용들입니다. 나토샤온 회장님, 저희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신뢰할 수 있는 분들입니까?”


누리 나토샤온은 미소를 유지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편히 말씀하세요.”

“저희가 이야기한 것들을 서로만과 벌서라에 1급 기밀 사항으로 전달해주십시오. 빠를수록 좋습니다. 괜찮습니까?”

“그럼 서기를 불러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누리가 종을 흔들어 다시 시종을 불렀다. 그 시종은 누리의 지시를 받고 미리 주문했던 홍차와 향유고래기름, 그리고 안경을 쓴 서기 한 명을 불러왔다.


서기는 작은 책상과 타자기를 가져왔다. 그녀는 일행과 누리를 향해서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타자기 위에 손을 얹고 기다렸다.


“드시면서 합시다. 지금부터 기록해.”


누리가 서기에게 말하자, 서기는 타자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지원이 홍차를 한 잔 마시고 진술을 시작했다.


“제 이름은 주지원이고, 가나 대륙 서부에 있는 어업도시 사분 근처의 외진 산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분 1부대’의 유이한 생존자입니다.”


누리의 얼굴에서 줄곧 유지하고 있던 미소가 사라졌다. 그녀는 눈에 띄게 동요하는 것 같았다. 자신은 오로지 기록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도도한 표정을 짓고 있던 서기도 힐끗 지원 쪽으로 눈길을 향했다.


“돛대 없는 배는 저와, 당시 사분 1부대에서 감금하고 있던 옥토끼인 요에를 구출하는데 성공했지만, 저를 제외한 나머지 피해자들은 사분 1부대가 전부 처형했습니다. 사분 1부대의 부대장은 돛대 없는 배에 붙잡히거나 사살되는 대신 자살하는 걸 선택했습니다. 저는 그걸 보고 해소할 수 없는 복수심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때 돛대 없는 배의 이사 자리에 있었던 김옥희 선생님께서 저를 받아주셨습니다.”


기르불과 찬호는 아는 이야기였다. 공작대는 결성되기 전에 서로의 성격과 과거사를 달달 외우고 나서야 대면한다. 대화 중 팀원의 역린을 건드려 감정적 이유로 작전이 망가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조용히 홍차를 홀짝거리고, 향유고래기름의 연기를 되태우면서 지원의 말을 경청했다.


“선생님의 후원으로 준비를 마치고 저는 4년 전 처음으로 주브만칼리 대륙으로 잠입했습니다. 여러 일이 있었지만, 주브만칼리를 감싸고 있던 명죽림과 하염 강, 우리타 산맥의 환경에 적응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번 작전은 제가 돛대 없는 배에 제안한 것이고, 동시에 제가 돛대 없는 배의 정식 일원이 될 수 있는 입단 시험이기도 합니다.”


누리는 턱을 괸 채 손가락으로 입술을 감싼 자세로 지원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사분 1부대 사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어요. 정말 유감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작대 일원들의 정확한 신원에 대해서는 서로만과 벌서라만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 지원 씨가 그런 대단한 분이실 줄은 몰랐어요. 이 작전을 지원 씨가 직접 제안했다고요?”

“예. 하지만 주브만칼리는 위험하니, 팀원이 지나치게 많으면 제가 모든 사람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저는 돛대 없는 배의 사장인 강계에게 최소한의 고급 인력을 요구했고, 그분은 유찬호와 기르불을 저에게 붙여주셨습니다.”


누리가 턱과 입술에서 손을 떼고 말했다.


“기르불은 지사리의 왕제님이신데, 무슨 경위로 인간들의 공작 작전에 참여하게 되신 거죠?”


기르불이 대답했다.


“별 거 없어. 옥토끼들이 부탁했으니까. 그리고 주브만칼리 대륙을 구경해본 지사리는 없었거든. 지사리 한 명을 보내서 대충 어떤 곳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었어. 나중에 주브만칼리 쪽에서 문제가 되면 뭐, 금이나 순철 같은 걸 좀 쥐여줘서 달래면 되겠다 싶었지.”

“그렇다고 해서 왕제를 보낼 필요까지는······.”

“우리의 왕제는 너희의 왕자와는 달라. 신경쓰지 마.”


기르불이 일축했다.


지원이 말했다.


“제가 사분 1부대를 언급한 이유는 제가 공작대가 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저지른 짓거리가 현재 주브만칼리의 작당과 아주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제부터가 진짜 본론이었다. 누리 나토샤온이 그녀 개인으로서는 공작대의 옛날 이야기에 관심이 있었을지는 몰라도, 터리놀의 주인으로서는 주브만칼리에 대한 정보를 더 원했다.


지원이 찻잔에 남은 홍차를 싹 다 들이키고 난 다음 말을 이었다.


“사분 1부대가 요에와 사분 주변 마을의 주민들에게 생체 실험을 자행했던 걸 기억하실 겁니다. 주브만칼리는 본토에서도 그 짓거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츠카라고 하는 옥토끼를 억류하고, 고문하면서 옥토끼의 능력을 인간에게 옮기려고 시도했습니다.”


누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나 대륙의 각 도시의 지도자들은 어느 정도 짐작해왔던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성공했습니다.”


지원이 담담하게 말하자, 누리의 눈 주변 근육이 완전히 굳어버렸다. 서기는 저도 모르게 기록을 멈추고 경악한 얼굴로 일행과 누리를 바라보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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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34 시접
    작성일
    22.07.07 00:22
    No. 1

    제목 돌아왔네요
    작가님 생각은 어떠신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나름 헤비한 글에 가벼운 제목을 다는 게 크게 의미가 있을까 싶기는 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6 훙냐
    작성일
    22.07.07 21:16
    No. 2

    재미있으면서도 좀 있어보이는 제목을 짓고 싶었는데, 작명 센스가 엉망이어서 잘 안 됐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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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단군 하비나 +2 22.08.10 30 1 10쪽
49 불안 22.08.06 19 2 11쪽
48 인질들 22.08.05 17 1 9쪽
47 몰살 22.08.03 19 1 12쪽
46 기다림 22.07.31 20 1 10쪽
45 블러핑 22.07.28 22 1 9쪽
44 만칼리의 추억 22.07.26 24 1 11쪽
43 스위트룸 22.07.23 23 1 9쪽
42 모함 +2 22.07.21 29 1 11쪽
41 감금 +1 22.07.09 40 2 13쪽
» 진술 +2 22.07.06 40 2 9쪽
39 터리놀, 유흥과 죄악의 도시 22.07.04 27 2 9쪽
38 패륜 +2 22.07.03 30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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