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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님의 서재입니다.

돛대 없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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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작품등록일 :
2022.05.27 23:51
최근연재일 :
2022.12.05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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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6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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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불안

DUMMY

당연한 말이지만 그 자리에 있는 인간 대부분은 타카슬이 누구인지 몰랐다. 그들이 하나같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찬호가 물었다.


“타카슬? 타카슬은 갑자기 왜요?”


자치군인들은 나실 호텔을 뒤집어놓은 이 서로만 요원들이 자기들만 아는 뭔가 엄청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타카슬은 어떤 비장의 무기의 이름인가?

기르불이 말했다.


“그럼 얘들은 어쩌려고?”


지원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마치 연설하듯이 사람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저희는 지금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나실 호텔의 4층부터는 기본적인 구조 자체가 달라지고 또 상주하는 적군도 많을 것이기 때문에 진입에 큰 위험이 따를 겁니다.”

“위험한 건 언제나 위험했지 않았나?”

“저희에게는 여러분의 안전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섣불리 진압을 시도하다가 여러분 중에서 사상자가 나온다면 그것이야말로 크나큰 비극일 겁니다. 특히 여기에는 싸울 수 없는 분들도 계시니까요.”


자치군 중에는 미성년자는 물론이요, 임산부와 장애인도 있었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눈치껏 총을 들고 있을 뿐인 외국인도 있었다. 또한 만칼리군이 가한 폭력 떄문에 심한 부상을 입은 자들도 있었다.


“어차피 바깥에서는 터리놀 군대가 나실 호텔에 진입하려고 시도하고 있을 겁니다. 그분들은 저희보다 더 전문적이시고, 무장도 더 강력하고, 숫자도 더 많습니다. 카지노와 호텔 아래층은 그분들께 맡깁시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정말로,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해주셨습니다. 저희가 단지 호텔 위쪽을 사수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터리놀 군대에게는 큰 힘이 될 겁니다.”

“그럼 어쩌시려고요?”

“저는 바깥에 나가서 타카슬을 데려오겠습니다.”

“데려온다고요? 설마 그때처럼 통통 뛰어서······?”


지원은 고개를 저었다.

찬호는 다행히 타카슬이 꼬리를 다리삼아 터리놀 시내를 통통 뛰어서 가로지르는 꼴을 상상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 모습은 찬호에게 아직까지도 다리를 저리게 만드는 트라우마로 남아있었다.


“휴, 그럼 어떻게 하시려고요?”

“타카슬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에 따라 달라지겠죠. 일단 확인부터 하러 가야겠습니다.”

“그럼 저랑 기르불은 어떡할까요?”

“여러분은 여기서 이분들과 함께 농성해주십시오. 이 사람들 대부분이 민간인이기 때문에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겁니다.”


기르불이 불만족스럽게 타닥거렸다.


“뭐야, 혼자 가려고? 나도 데려가는게 낫지 않겠어?”

“기르불, 저와 이 사람들 중 당신이 없을 때 더 위험한 건 어느 쪽이겠습니까?”

“확실히 그건 그렇지.”


기르불과 찬호는 나실 호텔의 5층에 남았다.

찬호는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을 몇 개의 조로 나누고 교대로 경계를 서도록 체계를 만들었다.

기르불은 저격당할 위험이 있는 인간들 대신 창문을 빠르게 돌아다니며 지상의 상황을 확인하고 혹시나 화령이 오지는 않을까 계속 터리놀 화령탑 쪽을 바라보았다.


지상에서는 아수라장이 벌어지고 있었다.

기르불은 인간의 군사학에 밝지 않아서 찬호에게 바깥 상황을 상세히 알리고 그의 해석을 받아냈다.

나실 호텔 주변을 둘러싼 바리케이트와 부산스럽게 오가는 사람들. 즉 바리케이트를 경계로 나실 호텔을 빼앗기 위한 양측의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소란은 나실 호텔에서만 벌어지고 있지 않았으며 저 멀리 시내나 광장에서도 만칼리 군인들이 폭력 사태를 일으키고 있는 것 같았다.


“가나에 주브만칼리 인간들이 이렇게 많았다고? 너희는 경계심이 너무 없는 거 아니냐?”

“그걸 왜 저한테 따져요······. 근데 저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이상할 정도예요.”


###


한편 그때 지원은 검은색 망토를 두르고 건물 벽의 배관을 타고 내려가는 중이었다. 한밤중이었기에 가능한 전략이었다.


제아무리 터리놀과 만칼리 반군들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다고 해도 경계가 느슨한 구간은 있었다. 특히나 나실 호텔은 산을 등지고 위치한 만큼 수풀 사이로 몸을 숨기면서 포위망을 뚫을 수 있었다.


물론 완벽한 잠행은 불가능했다. 지원은 손전등이나 램프를 든 채 숲을 순찰하는 터리놀 반군 10명 정도를 어둠 속에서 죽여야 했다. 그들이 목에서 흘리는 피와 입에서 내지르는 비명은 밤의 색채 속에 녹아들어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했다.


지원은 나실 호텔 뒷산의 산림과 도시의 경계에 처진 바리케이트 너머를 바라보았다. 터리놀 군대와 경찰이 총을 들고 바쁘게 오가며 뭔가를 논의하고, 서로에게 고함을 치고 있었다.


“인질 확인했어?! VIP는 어디 계셔?”

“저 새끼들 대체 원하는 게 뭐야!”


인질이 어디있는지, 만칼리군의 목적이 무엇인지 지원은 알고 있었고 터리놀 쪽에 진술해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전에 공작대의 책임자로서 타카슬의 안전을 우선적으로 확인해야만 했다.


지원은 터리놀 군대의 시선을 피해 바리케이트를 넘을 수 있을 감시가 허술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만칼리군과 달리 터리놀군은 건드리면 뒷감당이 안 될 것이다. 싸우지 않고, 싸우더라도 골절 정도로 끝낼 수 있을 경로가 필요했다.


그런데 지원은 경계를 찬찬히 관찰하면서, 터리놀군의 숫자가 지나치게 적다는 점을 알아챘다. 물론 도시 곳곳에서 소요가 일어나고 있고, 그곳에 진압 병력이 분산되기야 하겠지만······.


지원은 생각보다 너무나 손쉽게 바리케이트를 넘었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았다. 그녀는 감시의 시선을 피해 검은 망토를 흩날리면서 터리놀 시내를 향해 달렸다.


###


비가 추적추적 오기 시작했다.

적도 부근에 위치한 해안 지역인 터리놀의 공기는 피부를 무슨 셀로판 테이프로 도배한 것처럼 끈적거리게 만들었다. 불쾌지수가 하늘을 찔렀다.


안 그래도 극한 상황에 신경이 곤두서있던 자치군인들을 위로해주기 위해 미령은 호텔방안을 싹 흝어보며 커피나 사탕, 과자, 술, 담배 같은 것들을 긁어모아 분배했다.


미령은 찬호에게도 기호품을 나눠주려고 그가 들어간 방의 문을 열었다.


찬호는 방을 한치앞도 보이지 않도록 어둡게 만들어놓고 있었다.


“아, 문 조금만 여세요. 빛이 비추면 안 돼요.”


찬호에게 다가가자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였다. 그는 커튼을 아주 조금만 젖힌 채 눈을 갖대다고 바깥 상황을 관찰하고 있었다. 빛이 비춰져서 그림자 때문에 위치가 발각나면 저격당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방을 어둡게 해놓았던 것이다.


“먹을 걸 좀 가져왔어요. 혹시 담배 피시나요?”

“네? 아니요, 전 안 피워요.”

“그럼······혹시 못 드시는 과자 같은 건 있으신가요? 알레르기 같은 거요.”

“알레르기 같은 건 없지만, 과자는 달수록 좋죠.”


찬호는 창가 옆 침대 위에 앉아 미령이 가져온 버터 과자를 까먹었다. 미령은 찬호의 옆에 앉았다. 그녀는 찬호를 위해 오렌지주스 하나의 뚜껑을 열어주었다. 찬호는 그걸 받아서 홀짝홀짝 마셨다.


“오, 감사해요.”

“몇 명은 술을 가져가서 조금씩 마시더라고요. 남부 지방 분들이셨는데······. 기르불 님이 술을 마시게 해도 괜찮을지 물어보고 오라고 하셨어요.”

“뭐 그쪽 분들은 술을 많이 마시니까요. 지금 상황에서는 스트레스 때문에 내부 분열이 일어나는 게 더 문제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풀어줘야 해요.”


찬호는 몸을 침대 위에 눕혔다. 누워서도 계속 과자를 삼키고 음료수를 입안에 흘려보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뭐하고 있나요?”

“주령이랑 다른 어린아이들을 안쪽 방에 다같이 재워뒀어요. 그리고 방을 돌아다니면서 쓸만한 물건들을 중앙 로비 쪽에 모아두고 있어요.”

“기르불은요?”

“순찰하시는 분들이 교대로 들고 다니면서 창문 밖이나 계단을 둘러보고 계세요.”


그 다음부터는 침묵이 이어졌다. 미령은 찬호에게 전달할 것을 다 전달했음에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미령은 망설이면서 그에게 개인적인 말을 건넸다.


“서로만 요원이라고 하셨죠?”

“네? 네······정확히는 돛대 없는 배 요원이에요.”

“서로만 요원분들이 왜 여기에 계시는 건가요? 그리고 이렇게 총을 들고 저희를 구해주시고······. 물론 저희야 감사하지만,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찬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미령은 자신이 민감한 질문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대답하기 곤란한가요?”

“아니요. 뭐, 원칙적으로는 기밀이긴 하지만, 미령 씨도 들으셨죠? 만칼리 쪽에서 곧 침공하려 한다는 거요. 그게 정말이라면 곤란이고 뭐고······.”

“정말 전쟁이 시작된다는 말인가요?”

“지금 상황을 보면, 뭐가 시작되도 이상하지 않잖아요.”


미령은 전쟁이라는 단어가 가진 무게를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불안에 떨었다.


찬호와 지원과 기르불 뒤에 숨어있기만 했던 지난 몇 시간조차 그렇게 끔직했는데, 전쟁이 시작된다면 숨어있는 것조차 버거워질 것이다.


백미령의 가족은 벌서라 부시장의 퇴임을 기념하여 관광을 하러 터리놀에 왔다. 그들은 터리놀의 사람들을 만나고 온갖 곳을 돌아다니며 추억을 만들었다. 하지만 전쟁의 불길은 그들이 추억을 쌓은 장소들을 무너뜨리고, 여행을 하며 만났던 사람들을 죽일 것이다.


가장 두려운 것은 함께 희로애락을 나눴던,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생생히 살아있던 혈육이 죽어버리고 다시는 이야기를 나눌 수 없게 되버리는 것이었다.


미령이 불안함에 들고 있는 과자바구니를 쥐어뜯고 있을 때, 찬호가 어느새 일어서 그녀의 등에 손을 얹었다.


미령은 그의 손을 떨쳐내지 않았고 오히려 그에게 기댔다.


“찬호 씨······이야기 좀 해주세요. 아무거나.”


찬호는 난데없는 요구에 잠깐 머뭇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어깨에 실리는 미령의 머리의 무게감에 곧 빠르게 머리를 굴려 적절한 이야깃거리를 찾기 시작했고, 이내 떠오른 것이 하나 있었다.


“······옛날에······어······한 어부가 있었어요. 어부한테는 네 명의 아들이 있었고, 어부는 죽으면서 아들들에게 각각 배를 한 척씩, 그리고 빚을 조금씩 물려줬다고 해요. 형제들은 빚을 갚기 위해서 배의 일부분을 처분하기로 했대요. 첫째는······.”


작가의말

판타지에 나오는 작중동화는 비빔밥의 계란후라이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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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신의 이름으로 22.09.15 23 1 9쪽
61 저격 22.09.10 31 1 11쪽
60 개전 연설 22.09.06 35 1 10쪽
59 생명줄 22.09.04 32 1 10쪽
58 단둘이 22.09.02 28 1 9쪽
57 나실 호텔의 최상층 22.08.30 19 1 9쪽
56 대장과의 합류 22.08.27 24 1 10쪽
55 분산되는 일행 22.08.23 31 1 11쪽
54 함필규 22.08.21 15 1 10쪽
53 첫 살인 22.08.16 18 1 9쪽
52 너겨 엿비 22.08.14 15 1 9쪽
51 지사리의 보증 22.08.12 15 1 10쪽
50 단군 하비나 +2 22.08.10 30 1 10쪽
» 불안 22.08.06 19 2 11쪽
48 인질들 22.08.05 17 1 9쪽
47 몰살 22.08.03 19 1 12쪽
46 기다림 22.07.31 20 1 10쪽
45 블러핑 22.07.28 22 1 9쪽
44 만칼리의 추억 22.07.26 24 1 11쪽
43 스위트룸 22.07.23 23 1 9쪽
42 모함 +2 22.07.21 29 1 11쪽
41 감금 +1 22.07.09 40 2 13쪽
40 진술 +2 22.07.06 39 2 9쪽
39 터리놀, 유흥과 죄악의 도시 22.07.04 27 2 9쪽
38 패륜 +2 22.07.03 30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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