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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님의 서재입니다.

돛대 없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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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작품등록일 :
2022.05.27 23:51
최근연재일 :
2022.12.05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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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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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28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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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핑

DUMMY

찬호와 미령은 바보같은 표정으로 지원을 바라보았다. 미령은 지원이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알아듣지 못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만칼리어를 배워둘 생각을 하지 않을테니 당연했다.


반면 군인들은 동공이 흔들렸다. 그들이 만칼리어로 말했다.


“동지라고?”

“제군들은 언제부터 가나에 투입되었나?”


지원이 여유롭게 말했다. 그녀는 수개월간 함께 지냈던 찬호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군인들 중 한 명은 의심을 풀지 않았다. 그가 총부리를 들이댔다.


“누렁이 주제에, 그런 병신 같은 말투로 혁명전사를 사칭해?”


지원은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고 그 군인을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지금 수령님을 위해 헌신하는 여전사에게 총을 겨눈 건가? 난 자네들이 집구석에서 편하게 배나 긁고 있을 나이대부터 전장에 뛰어들었다! 어디서 불경한 의심을 가지는 거냐.”


그 군인은 눈빛이 흔들리더니만, 결국 총을 내려버렸다.


지원은 다시금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래, 사실 자네들이 의심을 가질만 하지. 애초에 내가 이른 나이에 이곳에 투입된 이유부터가 남들과 다른 외모 때문이었고, 또 고향의 언어도 오랜 타지 생활에 가물가물해졌으니까. 그러니 너희의 무례는 없던 셈으로 해주겠다. 내 손을 묶은 이것을 풀어준다면 말이야.”

“······감사합니다.”


군인이 말했다. 그들은 지원의 손목을 묶어두었던 밧줄을 풀었다.


지원은 밧줄의 자국이 남은 손목을 쓰다듬으면서 비상계단의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사람이 꽤 많아보였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일행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단단히 무장해있었다.


지원은 긴장한 티를 내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넉살좋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부터는 뜻을 함께하게 될 테니, 자신을 너무 질책하지 말도록 해. 내 이름은 베카린 윈스반. 가나 대륙에서의 이름은 박명월이라고 하네.”


찬호는 박명월이라는 이름을 어디서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너무 오래전이라 잘 기억나지 않았다. 어디서 봤더라?


군인 중 한 명이 지원의 악수를 받았다.


“대장 코커드 소데라입니다. 윈스반 가문 출신이신가요?”

“그렇다네. 자네 휘하에는 몇 명의 병력이 있나?”

“예. 소총병 4명, 폭탄병 2명, 기관총병 2명, 부분대장 1명과 분대장인 저까지 총 10명입니다.”

“저들인가? 잘 훈련된 부하들을 두고 있군.”


지원은 계단 아래쪽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군인들을 보면서 물었다. 코커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런데 저 사람들은······?”


코커드가 찬호와 미령과 주령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하지, 잠시 아래로 내려가봐도 되겠나? 걱정말게. 멀리 가지 않겠네. 바깥 상황을 보고 싶어서 그래.”


지원은 일행을 위쪽에 놔두고 유유히 계단 밑을 내려갔다. 그녀는 군인들의 어깨, 등, 배, 허벅지를 격려하듯 툭툭 치면서 지나갔다.


미령은 당황해서 지원에게 말을 걸려고 했지만, 찬호가 제지했다. 그는 지원과 지원이 숨겨둔 기르불을 믿었다.


군인들은 비상계단의 1층을 사이에 두고 위쪽과 아래쪽 그리고 1층 로비 방향을 향해 경계를 서고 있었다. 1개의 분대가 비상계단을 맡고 있는 것이었다. 지원은 비상계단에서 1층 로비로 나가는 출입구 너머로, 1층 로비에 만칼리의 군인 몇 명이 고함을 지르며 왔다갔다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밖은 꽤나 소란스럽군.”


지원은 1층 로비로 향하는 출입구를 닫았다.


코커드를 포함한 군인들이 지원에게 말했다.


“선배님, 죄송하지만 문은 닫으시면 안 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원은 질문을 던졌다.


“스위트룸 앞에 서있던 경비원은 누가 죽였지? 한 번에 경동맥을 맞췄더군. 실력이 엄청나던데. 그런 사격 실력을 발휘한 전사라면 마땅히 포상을 받아야지. 내 권한으로 윗선에 포상을 요청해보겠네. 자, 누가 죽였지?”


군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말했다.


“말씀은 감사합니다, 선배님. 하지만 스위트룸 층에서 작전을 수행한 팀은 저희가 아닙니다. 저희는 그저 이곳을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그럼 그 사람은 저 밖에 있나?”

“아마 그럴 겁니다. 그분들은 복면을 쓰고 계셔서 저희도 누구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 알겠네.”


그리고 지원은 만칼리어를 포기하고, 가나 서부 언어로 말했다.


“기르불, 이들은 몸에 어떤 방비도 없습니다. 일단 양손과 들고 있는 무기만 태워주십시오.”


그 말과 함께 지원은 자신의 앞에 있는 두 사람의 팔을 잡고 가슴 쪽으로 강하게 밀어붙였다.


기르불은 계단 뒤 램프에서 튀어나와 지원의 말대로 군인들의 사이를 오가며 그들의 손을 지져버렸다.


찬호와 미령, 주령 자매와 가장 가까이에 있던 군인들이 제일 먼저 기르불의 표적이 되었다. 그들이 손이 불살라지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자 아래쪽에 있던, 지원과 가까운 군인들은 상황을 파악하고는 지원을 쏘려 들었다.


하지만 지원이 팔을 붙잡고 있는 탓에, 그리고 중간에 있는 군인들은 동료들에 의해 가로막혀져 있는 탓에 지원을 바로 쏘지 못했다. 물론 지원 혼자서 건장한 남성 두 명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힘씨름하는 사이 기르불은 위쪽에 있는 군인들을 다 무력화시키고 다가왔다.


군인들은 손의 격통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지원은 그들의 배 위를 넘어가며 찬호와 미령과 주령에게 다가가 그들의 속박을 풀어주었다.


“괜찮으십니까?”


지원은 미령과 주령에게 물었다. 특히 주령과 눈을 마주쳤다. 주령처럼 어린 아이가 계단을 가득 채우며 울려퍼지는 비명소리를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그 둘은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찬호가 손목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방금 그거 바깥에 들리지 않았을까요?”

“괜찮습니다. 터리놀에 있는 고급 호텔들은 모든 구역에 강박적으로 방음 처리를 해놓습니다. 설령 바깥에 소리가 새어나갔다 하더라도 어차피 바깥도 고함과 비명 소리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몸에 지사리에 대한 어떤 방비도 갖추고 있지 않았습니다. 저희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다는 거지요. 스위트룸으로 향하는 곳을 담당하는 놈들도 이 지경이니 다른 이들도 기르불이 손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바깥 상황은 어떤데요?”

“이들과 같은 완장을 찬 군인들이 돌아다니던데······자세한 건 지금부터 물어봐야겠지요. 찬호, 좀 도와주십시오.”


지원과 찬호는 군인들로부터 밧줄을 강탈해 계단 난간에 그들의 발을 묶었다. 저항하는 놈들도 있었지만 기르불의 램프를 들고와 배 위에 얹어주니 잠잠해졌다.

찬호가 그들에게 친절하게 말했다.


“손이 완전히 익었네요. 상황이 다 정리되면 손을 자르셔야 할 거예요. 안그러면 팔까지 썩어들어가요.”


진심어린 걱정으로 하는 말이었지만, 군인들은 그렇게 들을 수 없었다.


어차피 손을 움직이지는 못할 테니 손을 묶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러기에는 밧줄이 모자랐다.

그들을 전부 묶어두자 기르불이 태연하게 군인들 중 한 명의 배 위에서 말했다.


“또 살려둬도 괜찮겠어? 뭐 살려두는 건 뭐라하지 않겠지만 어디 숨겨놔야 할 것 같은데.”


찬호가 주령을 한 번 보고 기르불에게 항의했다.


“기르불! 무슨 애가 듣고 있는데 그런 말을······.”

“나중에 얘네들이 다른 인간들한테 우리에 대해 불어서 저 애가 위험해지면 어쩔래?”


지원은 찬호와 기르불, 미령과 주령을 찬찬히 둘러보다가 코커드 소데라 앞에 쭈그려앉아서 나지막이 물었다.


“그럴 겁니까?”

“뭐?”

“저희와 만난 사실을 다른 자들에게 알릴 겁니까?”


코커드는 지원의 눈앞에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가 간신히 입밖으로 꺼낸 것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었다.


“너······너, 그리고 너희들, 뭐하는 놈들이야.”

“소데라 씨. 저는 그걸 묻지 않았습니다. 저는 당신을 살려둘지 말지를 결정하고 있고, 당신에게 선택권을 주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당신이 저희에 대해 아는 게 조금이라도 더 많아질수록, 당신을 살려둘 수 없는 이유만 늘어납니다.”

“우리가 죽는 걸 두려워할 것 같아?”

“당신을 살려둬야 할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당신은 가나에서 주브만칼리 내부의 사정에 대해 조금이라도 진술할 수 있는 증인이고, 또 제 뒤에는 중등교육을 받을 나이도 되지 않은 여자아이가 두 눈을 부라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당신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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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저격 22.09.10 31 1 11쪽
60 개전 연설 22.09.06 34 1 10쪽
59 생명줄 22.09.04 32 1 10쪽
58 단둘이 22.09.02 27 1 9쪽
57 나실 호텔의 최상층 22.08.30 19 1 9쪽
56 대장과의 합류 22.08.27 24 1 10쪽
55 분산되는 일행 22.08.23 31 1 11쪽
54 함필규 22.08.21 15 1 10쪽
53 첫 살인 22.08.16 17 1 9쪽
52 너겨 엿비 22.08.14 15 1 9쪽
51 지사리의 보증 22.08.12 14 1 10쪽
50 단군 하비나 +2 22.08.10 30 1 10쪽
49 불안 22.08.06 18 2 11쪽
48 인질들 22.08.05 17 1 9쪽
47 몰살 22.08.03 18 1 12쪽
46 기다림 22.07.31 20 1 10쪽
» 블러핑 22.07.28 22 1 9쪽
44 만칼리의 추억 22.07.26 23 1 11쪽
43 스위트룸 22.07.23 22 1 9쪽
42 모함 +2 22.07.21 29 1 11쪽
41 감금 +1 22.07.09 39 2 13쪽
40 진술 +2 22.07.06 39 2 9쪽
39 터리놀, 유흥과 죄악의 도시 22.07.04 26 2 9쪽
38 패륜 +2 22.07.03 29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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