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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님의 서재입니다.

돛대 없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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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작품등록일 :
2022.05.27 23:51
최근연재일 :
2022.12.05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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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5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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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인질들

DUMMY

백미령은 죽은 군인과 백주령을 번갈아 바라봤다. 자기 동생이 저항할 수 없는 무방비한 사람을 죽인 것을 본 언니의 첫마디는 이랬다.


“너······너 그런 나쁜 말은 어디서 배웠어?”

“난 알 것 같은데.”


기르불이 말했다. 주령은 미령을 빤히 쳐다보았다.


“언니가······.”

“내, 내가 언제······. 그래도 그런 말은 하면 안 되는 거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나요?”


찬호는 지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찬호 뒤로 다가와 있었다.


“찬호, 잠시 비켜주시겠습니까?”


지원은 침대 위로 올라가 죽은 군인의 얼굴을 잡고 이리저리 돌렸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죽었군요.”

“괜찮겠어? 알아낼 게 많았잖아. 모처럼 살았는데 아깝네.”

“미안해요······.”


미령이 주령의 머리를 손으로 눌러 고개를 숙이게 했다. 지원이 말했다.


“이번 작전은 애초에 전원 사살을 상정했었습니다. 그러니 괜찮습니다. 하지만 주령 씨, 총을 들고 저와 함께 다니는 동안은 제가 여러분의 지도자입니다. 앞으로는 제가 죽이라고 한 사람만 죽이고, 살리라고 한 사람만 살려두십시오. 아시겠습니까?”


하지만 주령은 너무 어렸고, 지원의 말에서 핵심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녀는 대들었다.


“이 사람은 저희 엄마 아빠를 죽인 나쁜놈이에요.”

“그렇습니까? 하지만 이 사람은 무력화되어 있었고, 처벌할 기회는 언제라도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이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이제 이 사람은 더 이상의 처벌을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원은 주령의 나이를 배려하지 않은 어휘를 써가면서 그녀를 논파하려 했다.


“자신에게 자격이 있고 지금 옳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이기고 앞날을 생각해야 결과적으로 더 만족할 만한 성취를 얻을 수 있습니다.”


주령은 입이 댓발이 되어 삐져나왔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라고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찬호가 끼어들었다.


“저, 주령아. 지금은 모든 상황이 다 끝나고 난 다음이었지만, 앞으로는 굉장히 어지럽고 소란스러운 상황이 생길거야. 그런데 그때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지면 네가 위험에 처할거고, 우리가 너를 신경쓰지 못하게 될지도 몰라. 우리한테 가장 중요한 건 너와 미령 씨의 안전이야. 알았지?”


지원과는 달리 친근한 찬호의 어조가 주령을 반쯤이나마 납득시켰다. 주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은 호텔을 내려가기 위해 다시금 무장을 정비했다.

찬호가 몸이 무거워질 정도로 한가득 챙겼던 총알들은 방금 전의 총격전에서 전부 써버리고 말았다. 미령은 자신이 직접 총을 쏘지는 않았지만 탄약이 부족했던 찬호에게 계속해서 지급해줬기 때문에 남은 것이 별로 없었다.


시체들을 뒤지니 꽤 많은 탄약이 나왔다.

미령은 방금 전의 총격전에서 총알이 얼마나 빨리 소진되는지 체감했기 때문에 방탄복 주머니는 물론 바지주머니 안에도 될 수 있는 한 많은 탄약을 쑤셔넣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혹시라도 터리놀 요원들에게 오인사격당하지 않도록 팔에 완장을 차고 터리놀의 일출 문양과 서로만의 반달 문양을 새겨넣었다.


인간들이 준비를 끝마치자 벽에 걸려있던 기르불이 외쳤다.


“자, 이제 내려가자고!”


###


미령과 주령은 늘 모든 상황이 끝난 다음에야 허리를 펴고 이동할 수 있었다.


찬호와 지원과 기르불은 자매에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고 어떻게 돌아갈 것인지를 최대한 정확하게 알려주려 했다. 하지만 총성과 폭발, 비명과 기르불이 화르륵 타오르는 소리만을 듣고 있으면 정신이 계속해서 아득해졌다.


3번째 층을 ‘청소’하고 나서야 미령은 찬호에게 총알을 계속 건네주고 주령의 손을 꼭 붙잡고 있는 것만이 저 셋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모든 것임을 알아챘다. 미령은 그 기대에 충실히 부응해주기로 했다.


엘레베이터 상부에 올라타 뚜껑을 열고 그 안에 수류탄을 집어넣는다거나, 만칼리어로 도와달라고 소리쳐서 군인 중 몇몇을 유인하는 등 기예를 펼치면서 일행은 조금씩 호텔을 내려갔다.


5번째 층에서 그들은 인질들을 만났다. 정면돌파하면 인질들이 살해당할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기르불이 미리 위층 창문을 통해 아래쪽으로 내려가 층을 쭉 둘러보았기 때문에 그에 맞는 작전을 세울 수 있었다.


지원이 커튼을 찢어 밧줄처럼 만든 다음 창문 밖으로 나가 벽을 타고 내려간 후, 기르불이 창문을 녹여 파손시켰다. 그렇게 지원과 기르불이 곧바로 인질들이 모여있는 방 안에 들어갈 수 있었으며, 인질들을 지키던 군인을 사살하고 방을 점거했다. 그리고 찬호와 미령, 주령이 정면에서, 지원은 안쪽에서 층을 지키고 있던 군인들을 살해했다.


“괜찮으신가요?”

“네,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은 영웅이세요! 영웅!”

“에이, 뭘요······.”


인질이었던 사람들은 일행을 조금이라도 더 칭찬하고 감사함을 표시하려고 했던 말을 계속 반복했다. 찬호는 헤실헤실 웃으면서도 그들의 칭찬을 하나하나 다 받아냈다.


지원은 찬호가 인질들을 상대하는 동안 그의 등 뒤에서 인질들의 처우를 고민했다.

사실, 각 층마다 있었던 병력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5명이 안 되었으며 그 정도는 기르불과 찬호, 심지어 어째선지 총을 좀처럼 홀더에서 뽑으려들지 않는 지원조차도 혼자서 처리가 가능했다. 진짜 문제는 아래쪽에서 총성을 듣고 계단으로 올라오는 군인들이었다.


그래서 지원은 풀려난 인질들을 소총으로 무장시켜 계단을 지키도록 지시했다.


“괜찮을까?”


기르불이 물었다. 지원이 대답했다.


“민간인들이 전시에 자치 군대를 꾸리는 건 일반적인 일입니다.”

“내 말은, 저 인간들이 방해가 되지는 않겠냐고.”

“글쎄요······. 미령 씨와 주령 씨도 꽤 잘하고 계시니 믿어봅시다.”


밑에서 올라오는 적들을 억제하기 위해 찬호가 언제나 계단을 사용해줘야 했지만 계단을 수비해주는 아군이 생기니 여러 경로를 사용할 수 있었다. 6번째 층부터는 찬호는 승강기의 끈을 끊어버리고 추락시킨 뒤 승강기가 지나다녔던 공간을 타고 밑으로 내려갔으며 지원과 기르불은 창문을 통해 내려갔다. 미령과 주령은 미성년자인만큼 자치군대의 후방에서 보호를 받았다.


지원과 찬호와 기르불이 층을 청소하고, 자치군대가 그 층을 점거한 뒤 후방을 엄호하면서 작전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그들은 나실 호텔의 5층까지 나아갔고 중간중간 인질들을 구출하며 세를 불렸다.


한편, 5층까지는 객실이었기 때문에 건물의 구조가 똑같았지만, 4층부터는 식당과 휴게실, 영화관 등이 있었기 때문에 작전을 다시 모의할 필요가 있었다. 지원과 찬호와 기르불은 자신들이 구한 인질이었던 사람들 앞에 앉아 앞으로 어떻게 할지 토의했다.


“여러분 중에 아래층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시는 분?”


그들 중 몇몇이 손을 들고 말했다.


“식당은 밑에 내려가서 왼쪽이에요.”

“식당 안에 뷔페에 쓰는 긴 식탁이랑 식사에 쓰는 작은 식탁 여러개가 있어요.”

“안쪽에는 주방이 있는데요, 주방으로 들어가는 문은 오른쪽에 있어요.”


등등등······. 어찌나 설명이 많고 섬세하던지 지원과 찬호와 기르불은 한 번도 4층에 들어가본적이 없었음에도 구조를 머릿속에 상세히 그릴 수 있었다.


심지어는 나실 호텔의 요원이었던 자가 비밀 통로의 위치조차도 알려주었다.


하지만 지원은 층을 내려가자는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찬호와 기르불이 열성적으로 사람들의 정보에 맞장구를 쳐주었지만, 그들이 계속 지원에게 ‘그럼 주방을 먼저 치면 되겠네요.’라든가 ‘저들이 비밀 통로를 알고 있을까’처럼 허락이나 동의를 구하는 발언을 하자 사람들도 지원이 의사결정자라는 것을 눈치챘다.


자치군 중 한 명이 지원에게 다가와 말했다. 청년 남성이었다.


“당신이 이 사람들 대장입니까?”


지원은 앉은 채 그에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 남자는 지원의 앞에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아래층에 저희 어머니가 게십니다. 부디 어머니를 구해주세요! 평생 고생만 하시다가 이제야 겨우 호강 좀 시켜드리는데······.”


그를 필두로 다른 사람들도 감성팔이를 시작했다.


“처자, 그이가 살아있는지만 확인하게 해주면 안될까?”

“친구들이 나실 호텔 밖에 있어요. 나가게만 해주시면 방해하지 않고 제가 알아서 할게요!”

“전 시한부라서 이게 제 인생 마지막 여행이에요······. 이런 식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았어요.”


지원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진정할 때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저절로 일어난 소란이 소강되자 지원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말했다.


“타카슬을 데려와야겠습니다.”


작가의말

타카슬과 츠카와 루니를 못 본지 꽤 됐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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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저격 22.09.10 31 1 11쪽
60 개전 연설 22.09.06 32 1 10쪽
59 생명줄 22.09.04 32 1 10쪽
58 단둘이 22.09.02 26 1 9쪽
57 나실 호텔의 최상층 22.08.30 19 1 9쪽
56 대장과의 합류 22.08.27 24 1 10쪽
55 분산되는 일행 22.08.23 30 1 11쪽
54 함필규 22.08.21 15 1 10쪽
53 첫 살인 22.08.16 17 1 9쪽
52 너겨 엿비 22.08.14 15 1 9쪽
51 지사리의 보증 22.08.12 14 1 10쪽
50 단군 하비나 +2 22.08.10 29 1 10쪽
49 불안 22.08.06 18 2 11쪽
» 인질들 22.08.05 17 1 9쪽
47 몰살 22.08.03 18 1 12쪽
46 기다림 22.07.31 20 1 10쪽
45 블러핑 22.07.28 21 1 9쪽
44 만칼리의 추억 22.07.26 23 1 11쪽
43 스위트룸 22.07.23 22 1 9쪽
42 모함 +2 22.07.21 29 1 11쪽
41 감금 +1 22.07.09 39 2 13쪽
40 진술 +2 22.07.06 39 2 9쪽
39 터리놀, 유흥과 죄악의 도시 22.07.04 26 2 9쪽
38 패륜 +2 22.07.03 29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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