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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님의 서재입니다.

돛대 없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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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냐
작품등록일 :
2022.05.27 23:51
최근연재일 :
2022.12.05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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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6,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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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06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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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개전 연설

DUMMY

카추샤 두나가 주브만칼리 국민들에게 선사한 불로불사는 은혜인 동시에 통제의 수단이기도 했다.


늙지 않는 건강한 몸을 가진 주브만칼리 국민들은 곧 오만해졌다. 각하께서 내려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헌신했던 것도 잠시, 2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정부의 부름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만칼리 정부가 주도하는 체력 훈련과 각종 품앗이에 점차 공석이 생겨났다. 체력 훈련이라 함은 결국 군사 훈련이었고 품앗이는 공장에서 화약과 무기를 만드는 모임이었다.


참모들과 카추샤는 이런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지한 국민들은 각하의 은혜를 점차 잊을 겁니다. 어떻게 할까요?”

“괘씸하네. 하지만 예상했던 일이잖아. 예전부터 기획했던 행사를 시작하자.”


그 행사란 공개 참수였다.


고대부터 조직의 대가리에 앉은 지도자란 족속들은 사람의 대가리를 따는 것도 참 좋아했다. 그렇게 딴 대가리를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널어두어 자신의 위세를 널리널리 광고하는 것이다. 카추샤 두나 또한 지도자였으므로 참수를 좋아했다.


그녀는 수감 중이었던 사형수 중 12명을 무작위로 골라 영생약을 접종시켰다. 그리고는 그 다음날 자정, 그들의 목을 썰어 아루신의 동서남북에 3구씩 걸어놓았다.


영생약을 접종했기에 그들은 죽지 않았다.

하지만 평범한 옥토끼와 달라 염력을 부릴 수 없었기 때문에 잘린 몸뚱아리가 날아와서 척 붙지도 않았고, 피가 머리 안쪽에 머물러 있지도 않았다. 잘린 목의 단면에서는 계속해서 피가 뚝뚝 흘러내려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사형수들은 입을 계속 뻐금거렸다. 그 모습에 만칼리 국민들은 측은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들의 밑에 공지된 흉악한 죄목을 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 국민들의 정부 사업 참여도가 수직 상승했다.


“국민들도 무언가 깨달은 게 있나 봐요. 역시 개돼지들은 보여줘야 말을 듣나 보네요.”


참모진은 그 수치가 기록된 차트를 들곤 카추샤의 현명함을 칭송함과 동시에 국민들의 아둔함을 비난했다.


카추샤는 킬킬 웃으며 포도주스를 들이켰다.


“아직 다 안 보여줬는데.”


다음날이야말로 참수 행사의 하이라이트였다.


아루신 안팎의 국민들은 여느날과 달리 공사와 훈련이 일찍 끝나 마음이 들떠 있었다. 하지만 대신 저녁 시간에 중요한 발표가 있으니 광장에 모이라는 지령을 받고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평소라면 한창 저녁을 지어먹었어야 할 시간에 아루신의 북쪽, 태양궁 앞 광장에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은 막연하게 ‘당연히 걸어놓은 목은 치워놨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산 채로 참수되고 참수된 채 살아있는 3개의 머리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음을 확인했을 때, 그리고 사람들이 점차 모여 광장이 시끄러워지고 있음에도 누구도 머리들을 치우러 오지 않았을 때 직감적인 절망을 느꼈다.


“뭐야, 저 사람들 왜 안 치워?”

“설마······.”


아루신에 사는 사람들은 정치인의 잔혹함을 잘 알았다. 그들은 곧 아주 끔찍한 광경을 보게 될 것임을 깨달았다.


일몰이 시작되었을 때 카추샤 두나가 성 위 난간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군중 사이에 감돌던 미묘한 공포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열광이 터져나왔다.

사람들은 환호성으로 카추샤를 맞이했다. 사람들에게 그녀는 죽음과 질병과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원해준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특히나 시한부 환자나 치매 노인 혹은 그 가족이었던 자들은 자신의 성대를 불살라서라도 더 큰 소리를 카추샤에게 들려주려고 발악했다.


한참 후에야 군중이 진정했을 때, 카추샤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마이크를 통해 잡음이 섞인 목소리가 광장 전체에 울려퍼졌다.


“주브만칼리의 국민들이여! 가나 대륙의 소방 전쟁이 끝난지 어언 30년이 지났다. 그대들 중 기억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비록 소방 전쟁에서 한발치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진심으로 그들의 고통을 어루만져주었고, 진심으로 그들의 평화를 축하해주었다.


그 호의는 대가를 바랐던 것이 아니었다. 30년 동안 우리는 가나 대륙에게 무엇을 받았나? 저 오만한 자들이 수령님과 대모님께서 내려주신 은혜를 무시했지만, 우리는 단 한 번도 그들을 질책하지 않았다.


이해하려 했었다. 낯선 평화에 얼마나 당황했을까, 상황을 수습하는데 어려움을 겪는건 당연한 것이라고 그들과 다시 친구가 될 수 있는 날을 기대해왔었다.


허나! 그 결과는 배신이었다! 그대들 중 기억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가 가나 대륙에게 받은 게 무엇인지!


107명의 간첩, 49척의 밀항선, 200여정에 달하는 총과 10000여발이 넘는 총탄과 수류탄! 그리고 그 앞에서 저물어간 200명의 무고한 우리 국민들! 수령님과 대모님의 은혜에 가나 대륙이 지난 5년간 보낸 답례가 이러하다!”


카추샤의 말에는 날조된 거짓과 변조된 진실이 섞여 있었다.


지식인 중에는 카추샤의 연설에서 묘한 어색함을 느끼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영생약을 접종받기 전까지 힘들게 생업에 종사하며 만칼리 정부의 선동을 아무 거리낌 없이 수용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지 자신의 주군을 경애롭게 올려다볼 뿐이었다.


만칼리 정부가 몇 년 전부터 세간에 흘려왔던 선동과 카추샤 두나의 위대한 업적이 합쳐져, 그 순간의 카추샤의 말과 몸짓 하나하나가 신성불가침한 영보교의 성경이 되어가고 있었다.


“주브만칼리의 국민들이여! 나는 그대들을 사랑한다. 나는 너희를 강대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제 여러분이 가나 대륙의 오만함 앞에 스러지는 모습을 두고보지 않겠다.

하지만 내가 구하지 못했던 자들이 있다. 매 순간 그들의 이름이 아른거리는구나. 비아스, 라간드, 고소리, 그미리, 소마, 아리타, 류노, 베카린······. 이 수많은 나의 국민들을 나는 지키지 못했다.”


카추샤는 약간의 울먹거리는 연기를 곁들였다. 그녀는 잠깐 연설을 멈추고 깊게 심호흡하여 군중의 감수성을 자극한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주브만칼리의 국민들이여! 여러분은 이제 죽지도 않고, 늙지도 않으며, 역병에 걸리지도 않을 것이고, 영원히 배고플 일도 없을 것이다.

그대들의 힘을 나에게 빌려다오. 가나 대륙의 마수가 더 이상 우리 국민을 해칠 수 없을 때까지, 나는 언제나 여러분의 앞에 있을 것이다. 너희 중 누구도 나보다 더 큰 짐을 짊어지지 않을 것이며 누구도 주브만칼리 국민들이 궁핌하고 패배했다는 소리를 감히 지껄이지 못할 것이다!

나와 함께하겠는가? 역사를 만들어가겠는가? 힘들고 명예로운 길을 걸어가겠는가? 너희는 비아스, 라간드, 고소리, 그미리, 소마, 아리타, 류노, 베카린의 복수를 이행할 수 있나? 주브만칼리의 국민들이여!”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이제 마지막 행사가 남았다.


아루신의 동서남북의 광장 중 북쪽, 태양궁 앞 태양광장에 걸린 3구의 사형수는 가나 대륙에서 파견되었던 간첩들이었다.


그들의 목이 걸린 장대가 카추샤가 있는 난간까지 내려왔다. 간첩들은 희미한 의식 사이로 그들이 죽도록 보고싶었던 카추샤 두나가 눈앞에 있음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을 전할 수단이 아무것도 없었다.


카추샤가 연설을 재개했다.


“이들은! 지난주 우리 대륙의 동쪽 해안, 우리타 산맥을 넘어 침입을 시도한 자들이다. 용맹한 우리 전사들이 싸움 끝에 이들을 붙잡는데 성공했지만, 그 결과 5명의 전사가 수령님 곁으로 떠나고 말았다······. 이들을 어찌해야겠는가?”


답이 정해진 물음이었다. 흥분한 군중들은 범죄자의 처우에 대한 법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고려를 할 지능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과 상대의 상황이 전혀 상관없다고 확신한 인간이 언제나 보여주는 비열함으로 소리쳤다.


“죽여라! 죽여라!”

“당한 대로 갚아줘라!”

“들개한테 던져라!”


카추샤가 손을 들어 군중을 저지했다. 그녀가 손을 든 것을 본 사람들은 일순간에 입을 다물었다. 카추샤는 거의 2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한 번에 닥치게 만들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 도취하면서, 참모에게 손짓했다.


참모 소데라는 가방을 가져와 열었다. 가방 안에는 주사기 4개가 스펀지 속에 부드럽게 놓여 있었다.


카추샤는 주사기를 들어 3구의 머리에 약물을 주사했다. 그리고는 머리들을 떨어뜨리라 명령했다.


기다란 언월도가 장대에 묶여있던 간첩들의 머리카락을 한 번에 잘랐다.

간첩들은 성의 정문 바로 앞, 사람들이 모여있지 않은 곳에 쿵 떨어졌다. 마치 수박이 깨지듯 뼈와 육편이 흩뿌려졌다. 하지만, 다시 붙지 않았다.


“삶과 죽음이 모두 이 손 안에 있다. 두려워하지 말라, 주브만칼리의 국민들이여! 우리는 생명을 다룰 수 있는 힘을 손에 넣었다.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일지, 모두 우리가 결정할 수 있다! 그러니 앞으로 나아가 신화가 되어라!”


카추샤의 연설이 끝났다. 그날 저녁, 지금껏 양성해왔던 무기와 숙련되어왔던 병사들이 마찬가지로 무한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건조된 군함에 탑승했다.


군함의 출항과 함께 전쟁이, 비극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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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해후의 때 22.09.23 29 1 10쪽
62 신의 이름으로 22.09.15 23 1 9쪽
61 저격 22.09.10 31 1 11쪽
» 개전 연설 22.09.06 35 1 10쪽
59 생명줄 22.09.04 32 1 10쪽
58 단둘이 22.09.02 28 1 9쪽
57 나실 호텔의 최상층 22.08.30 19 1 9쪽
56 대장과의 합류 22.08.27 24 1 10쪽
55 분산되는 일행 22.08.23 31 1 11쪽
54 함필규 22.08.21 15 1 10쪽
53 첫 살인 22.08.16 18 1 9쪽
52 너겨 엿비 22.08.14 15 1 9쪽
51 지사리의 보증 22.08.12 15 1 10쪽
50 단군 하비나 +2 22.08.10 30 1 10쪽
49 불안 22.08.06 18 2 11쪽
48 인질들 22.08.05 17 1 9쪽
47 몰살 22.08.03 19 1 12쪽
46 기다림 22.07.31 20 1 10쪽
45 블러핑 22.07.28 22 1 9쪽
44 만칼리의 추억 22.07.26 24 1 11쪽
43 스위트룸 22.07.23 23 1 9쪽
42 모함 +2 22.07.21 29 1 11쪽
41 감금 +1 22.07.09 40 2 13쪽
40 진술 +2 22.07.06 39 2 9쪽
39 터리놀, 유흥과 죄악의 도시 22.07.04 27 2 9쪽
38 패륜 +2 22.07.03 30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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