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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호의 서재입니다.

오피스 108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중·단편

완결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9.10.25 20:57
최근연재일 :
2020.06.06 00:19
연재수 :
109 회
조회수 :
38,829
추천수 :
1,022
글자수 :
254,932

작성
20.05.04 02:21
조회
244
추천
7
글자
4쪽

83. 첫 휴가 (1)

DUMMY

휴가 첫날을 여유로운 늦잠으로 시작했지만 생각지 못했던 회장과의 독대 후유증 때문에 마음이 찜찜하다. 선미에게 톡을 보낼까 했지만 시간상으로 바쁜 오전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 생각을 접었다.


[아들. 일어났어?]


엄마가 갑자기 웬 문자를? 거실로 나가보니 이미 집안은 비어있고 주방 식탁엔 냉장고에 먹을 것 있으니 알아서 먹으라는 메모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냉장고를 뒤져 대충 아점을 때우고 샤워를 하고 나니 오늘 해야 할 일을 모두 끝낸 기분이다. 허전한 마음에 소파에 등을 붙이자 자동적으로 TV 리모컨이 손에 잡힌다.


‘그래. 오랜만에 영화나 보자.’


그런데 그동안 잠이 부족했었나? 소파에 누워 느긋한 마음으로 양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다른 영화가 방영되고 있다. 베란다에 나가 밖을 내다보니 늦은 오후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문득 옛날 캥거루 시절이 생각난다. 하지만 그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선미씨. 휴가 잘 갔다 왔어요?]

[네. 어디에요?]

[집이에요.]

[어디 안가요?]

[그냥 집에서 쉬면서 친구들이나 만나야겠어요. 서로 바빠서 오랫동안 못 만났거든요.]


그런데 누굴 만나지? 대학 때는 거의 매일 같이 살다시피 했던 친구들인데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주소록을 뒤져보니 의외로 많은 전화번호들이 남아 있다. 그 중에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이런,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번호가 바뀐 것이다. 어쩜 그리도 무심했을까? 저장된 번호들이 모두 옛날 번호가 아닌가? 혹시 하는 마음에 차례로 걸어보았으나 변경된 번호를 안내해 주는 멘트조차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거의 포기하려는 순간, 귀가 번쩍 뜨인다.


“여보세요?”

“철우냐?”

“야! 정도.”

“그래. 반갑다.”

“야, 이게 얼마만이냐?”


철우는 대학 때 당구장에 가면 항상 편을 먹던 친구다. 부유한 집안 배경 덕에 아버지 회사에서 과장으로 일하면서 경영 수업을 받고 있었다. 철우는 청육이라는 대기업에 취직했다는 것을 알고 뒤늦게 축하를 했다.


“안 그래도 회사 입사하고 나서 너한테 제일 먼저 전화했는데 연락이 안 되더라.”

“너 졸업하자마자 취직한 것 아니었어?”

“사실은 아버지로부터 독립하려고 곧바로 사업 시작했는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더라고.”


대학 때부터 장사를 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철우는 졸업하자마자 아버지 도움으로 커피숍을 차렸다고 한다. 그러나 경험 없이 시작하고 보니 모든 게 서툴렀고 특히 바리스터를 통제하지 못해 2년간 돈만 날리고 문을 닫고 말았다. 그나마 아직 젊고 부유한 배경 덕에 타격이 크지 않았던 것이다.


“그 바람에 아버지 말에 순순히 응할 수밖에 없었어. 싫으면 그 돈 갚으라는데 어쩌겠어? 그런데 넌 어때? 일할 만해?”

“직장이 그렇지 뭐.”


저녁은 원래 직급이 높은 사람이 사는 거라며 철우가 부담했다. 그 대신 후식으로 커피를 샀는데 녀석의 입이 워낙 고급이라 평소엔 거의 쳐다보지도 않는 고급 커피를 마셔야 했다.


“앞으로 자주 연락하자.”

“그래. 혹시 소고기 살일 있으면 전화해. 직원용으로 사면 원가에 살 수 있어.”

“안 그래도 선물 준비할 일이 있을 것 같은데 잘 됐다.”

“그럼. 운전 조심해.”


멀어지는 녀석의 외제차를 보는데 왠지 초라한 느낌이 든다. 누구의 눈치 볼 일 없이 풍족한 삶을 사는 녀석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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