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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호의 서재입니다.

오피스 108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중·단편

완결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9.10.25 20:57
최근연재일 :
2020.06.06 00:19
연재수 :
109 회
조회수 :
38,818
추천수 :
1,022
글자수 :
254,932

작성
20.06.01 01:47
조회
209
추천
8
글자
8쪽

102. 아버지의 비밀

DUMMY

불가능한 줄 알고도 잘하면 했던 기대가 실망으로 변했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에 연연할 이유가 없다. 드디어 양가가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하는 날, 예비사위 자격으로 처갓집에 갈 때보다 설렘이 더하다. 아버지가 안 계신 선미네는 큰오빠 내외가 엄마를 보좌하기로 했다.


“버스 타고 가려면 서둘러야 돼.”

“이럴 때 차 있었으면 편했을 텐데.”


아버진 의도치 않게 은퇴를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갖고 있던 차를 팔아치웠다. 당장 수입이 끊어진 마당에 굳이 유지비가 만만치 않은 차를 놔둘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엄마의 궁시랑 대는 소리를 귓등으로 흘리며 용인행 버스에 올랐다.


“야! 일찍 나오길 잘했다.”

“여보. 정도 결혼하면 우리도 차 한 대 삽시다.”

“차는 뭐 하러 사?”

“우리 아파트에서 차 없는 집은 우리뿐입디다.”


두 분이 옥신각신하는 사이 버스는 용인 요금소를 빠져나와 시내를 달리고 있었다. 아버지 친구 분이 경영한다는 한식집 인근에서 내려 조금 걸어가자 넓은 주차장과 함께 고급스런 한식집이 눈에 들어온다.


“와! 굉장하네요.”


엄마도 건물의 위용에 압도됐는지 조금 전까지 끊이지 않았던 궁시랑 소리가 사라졌다. 안에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 친구라는 사람이 반갑게 마중을 나왔다. 그는 엄마와도 구면인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친구와 할 얘기가 있다는 아버지를 남겨 놓고 종업원을 따라 2층에 있는 특실로 올라갔다.


“엄마. 아버지 친구 분 대단하지 않아?”

“대단하지. 아버지 친구는 밑바닥부터 시작했다더라. 남의 식당에서 십년 이상 일하다가 아버지 은퇴하실 때 개업했는데 이렇게 클 줄 누가 알았니?”


엄마의 얘기를 들으면서 시계를 보니 아직 약속시간까지 40분이나 남았다. 아버진 엄마의 얘기가 거의 끝나갈 때쯤 손에 서류 봉투를 들고 들어왔다. 평소 호기심이 많은 엄마가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아버진 아무것도 아니라고 얼버무리곤 벽에 걸린 시계로 시선을 돌렸다.


“거의 올 시간 됐구나.”

“네. 한번 나가볼까요?”

“그래. 미리 나가있어.”


선미네는 건강이 안 좋은 어머니를 모시고 오느라 분명 차를 갖고 올 것이다. 서울과 달리 용인은 공기가 깨끗해서 그런지 잠깐 서 있었는데도 한기가 느껴진다. 시계를 보니 12시 20분전이다. 이때, 멀리서 선미네 집에서 봤던 차종과 같은 승용차 한 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매정하게 지나가고 말았다.


“길이 막히나?”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혹시 사정이 생겨 늦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조바심이 생긴다. 선미한테 전화를 해볼까하다가 괜히 부담을 줄 것 같아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몇 분 뒤, 주차장에 들어선 승용차 안에서 손 흔든 것을 보고 다가가 뒷좌석 도어를 열었다.


“오셨습니까?”

“우리가 먼저 와 있어야 하는 건데. 부모님들께 죄송해서 어쩌나?”

“그러게. 이게 다 작은 오빠 때문이지 뭐. 집에 봉고차도 있구먼.”

“자, 올라가시죠.”


선미네 식구를 2층 특실로 안내하면서 양가의 상견례가 시작됐다. 아버지와 엄마의 소개에 이어 선미 큰오빠의 집안 소개가 이어졌다. 그런데 이런 자리는 서로 처음 만나는 것인 만큼 자연스럽지 못해야 정상인데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집안처럼 어머니들의 수다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거기에 선미 큰올케까지 가세하자 남자들은 감히 끼어들지도 못하는 분위기 속에 상견례가 끝났다.


“저희 선미를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가 고맙습니다.”

“맞아요. 저희 남편도 그렇고 얘도 집에 오면 말이 없어서 사막이 따로 없다니까요.”

“엄마 좋겠네? 이제 같은 편 생겨서.”

“말이라고 하니?”


엄마의 푼수 섞인 농담이 화기애애한 상견례의 정점을 찍었다. 선미네를 보내고 서울로 향하는 동안 엄마는 사돈이 너무 마음에 든다며 흡족해했다. 그런데 엄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사이 아버진 봉투 속에 있던 서류를 꺼내 한 장 한 장 세심하게 살피고 있었다.


“그게 뭐예요?”

“집에 가서 얘기해 줄 게. 아직 멀었니?”


그 사이 버스가 서울에 가까워지면서 서서히 길이 막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버스 전용차선 덕에 거북이걸음은 아니었지만 내려 올 때보다 답답한 주행이 계속됐다. 결국 서울엔 내려올 때보다 40여분을 더 소요한 끝에 도착했다.


“버스전용차선도 별 수 없네.”

“그나마 버스였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저녁에 도착했어.”

“참, 아까 그거 뭐에요?”

“뭐가 그렇게 급해? 아직 옷도 안 갈아입었어.”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모이게 한 아버지는 궁금했던 서류를 까내 놓고 얘기를 시작했다. 그 서류는 친구가 건넨 것으로 한식집 경영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 얘기가 계속되면서 뜻밖의 사실이 드러났다.


“사실은 그 한식집 지분의 반이 내꺼야.”

“뭐라고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버진 두 번씩이나 살려준 후배에게 뒤통수 맞고 의도치 않은 은퇴를 하게 되자 속이 상해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쉰이 넘은 나이에 취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일찍이 조리사 일을 하고 있는 친구를 찾게 되었다.


“그 자식 믿지 말라니까. 결국 당하고 말았네.”

“그러게 말이야. 자길 두 번이나 살려줬는데도 뒤통수를 치다니. 참.”

“저기 말이야. 나하고 같이 일 안할래?”

“일?”


오랜 세월 요식업에 종사하면서 경력을 쌓은 친구는 개업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자금이 부족해 망설이던 중이었다. 은행 대출로 충당할 수도 있었지만 오래 전 섣불리 개업했다가 십년 이상 상환에 시달렸던 기억 때문에 거의 포기하고 있던 차에 아버지가 찾아 온 것이다.


“경영은 내가 할 테니까 반반씩 투자하는 거야. 그땐 경험이 없어서 문을 닫았지만 이번만큼은 자신 있어.”


그러나 십년지기도 돈이 얽히면 자칫 원수가 되는 세상에 선뜻 투자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당장 취직할 데도 없고 퇴직금만 까먹게 된 마당에 무조건 마다할 수도 없었다. 결국 고민 끝에 투자를 결심했고 친구가 담보 대신 넘겨준 가게 등기서류를 믿고 과감한 선택을 했던 것이다.


“그동안 우리 식구 먹고 사는데 들어간 돈이 거기서 나온 거야.”

“그런 일을 상의 한마디 없이 결정했단 말이에요?”

“말해봐야 당신 반대할 게 뻔하니까.”


물론 처음부터 대박을 친 것은 아니다. 아버진 그것에 대비해 퇴직금에서 2년 치 생활비만 남기고 남은 돈을 모두 쏟아 부었다고 한다. 다행히 친구가 수완이 좋아 3년째 접어들면서 조금씩 흑자를 내기 시작했고 옆에 있던 가게까지 인수해 확장을 한 것이 2년 전이다.


“이제 왜 내가 차를 팔았는지 알겠어?”

“후유!”

“이 사람 갑자기 한숨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래요. 만약 그 분이 망했으면 어쩔 뻔했어요?”

“당시엔 나도 조마조마했었어. 당신 말대로 망했더라면 최악의 사태를 맞았겠지.”


결국 아버진 식구들에게 얘기도 안 하고 혼자서 그 많은 짐을 짊어지고 있었다는 얘기다. 원래부터 살이 없었지만 어쩌면 그때의 마음고생 때문에 여전히 살이 안찌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샤워를 하는 동안 엄마는 그런 것도 모르고 친구들과 놀러다녔던 자신이 한심하다고 자책했다.


“그게 어디 엄마 잘못이야? 알고도 그랬겠어?”

“아무튼 네 아버지 진짜 무섭다. 그런데도 어쩜 내색하나 안할 수가 있니?”


지난날이 후회스러운 것은 엄마뿐이 아니다. 아버지가 속으로 끙끙 앓고 있을 때 밤새워 게임에만 몰두했던 시간들을 지우고 싶다. 이제야 가장의 무게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가 어렴풋이 느껴진다. 그런데 예순을 넘긴 지금, 아버지 건강은? 혹시 문제가 있는 데도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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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103. 그것 때문에? 20.06.02 212 8 6쪽
» 102. 아버지의 비밀 20.06.01 210 8 8쪽
101 101. 유리벽 20.06.01 205 7 5쪽
100 100. Ring! Ring! 20.05.31 205 8 6쪽
99 99. 날개 20.05.31 212 7 4쪽
98 98. 체제 강화 20.05.28 215 6 4쪽
97 97. 예비 사위 20.05.27 220 7 9쪽
96 96. 예비 며느리 20.05.27 243 9 4쪽
95 95. 프러포즈 20.05.25 219 8 4쪽
94 94. 첫 만남 20.05.23 217 7 4쪽
93 93. 나르시즘 20.05.22 224 6 4쪽
92 92. 절묘한 수습 20.05.20 221 6 5쪽
91 91. 스캔들 20.05.17 220 7 5쪽
90 90. 벼랑에서의 탈출 20.05.16 226 6 4쪽
89 89. 술이 웬수 20.05.15 245 7 4쪽
88 88. 업그레이드 20.05.14 226 8 4쪽
87 87. 권한과 책임과 의무 20.05.12 225 7 4쪽
86 86. 막연한 기대 20.05.11 226 6 4쪽
85 85. 테스트 20.05.09 235 7 5쪽
84 84. 첫 휴가 (2) 20.05.09 227 6 4쪽
83 83. 첫 휴가 (1) 20.05.04 244 7 4쪽
82 82. 독대(獨對) 20.05.01 233 6 6쪽
81 81. 한마디의 위력 20.04.29 252 6 4쪽
80 80. 작전 실패 20.04.28 250 8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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