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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호의 서재입니다.

오피스 108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중·단편

완결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9.10.25 20:57
최근연재일 :
2020.06.06 00:19
연재수 :
109 회
조회수 :
38,808
추천수 :
1,022
글자수 :
254,932

작성
20.06.02 18:14
조회
211
추천
8
글자
6쪽

103. 그것 때문에?

DUMMY

무사히 상견례가 끝나고 이제는 품절남이 되는 일만 남았다. 약혼은 보름 뒤, 그날 이후 부모님은 결혼 날짜 잡히기 전에 신혼집부터 준비해야 한다며 인근 부동산 중계소 순회에 여념이 없다. 두 분이 이렇게 서두르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동안 정부의 부동산 정책으로 매물이 늘어 시세가 떨어졌을 때 사둬야 한다는 것이다.


“많이 떨어졌더라. 1년 전만 해도 매물이 없었는데 말이야.”

“그래요?”

“응. 잘하면 30평짜리도 사겠더라.”


하지만 아버지에게 그만한 돈이 없다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주고 싶은 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대신한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대출받아 신혼집을 마련하는 경우가 허다한 마당에 이만하면 복 받은 것 아닌가?


“참, 저쪽에서 무슨 애기 없었니?”

“무슨 얘기?”

“원래 신랑 예복은 신부 측에서 해주는 것이거든.”

“그 문제는 저쪽에서 말 나오기 전까진 얘기 하지 마.”


엄마는 신부 측에서 신혼집 일부를 혼수로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은근히 속내를 내비췄다. 이것은 선미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정이 허락하는 선에서 하면 될 것을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다. 혹시 이러한 문제로 선미가 부담을 느낄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진다.


“아버진 아무 애기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그냥 한번 슬쩍 떠봐.”

“에이. 뭐 하러 그래? 알아서 하겠지.”


인륜지대사라고 하지만 생각할 것이 이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 문득 세상사 쉬운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에 비하면 고속승진을 두 번이나 한 지금까지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밤에 잘 잤어요?]

[네. 정도씨는요?]


상견례 이후 아침마다 나누는 채팅주제다. 약혼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느낌이 다르다. 한 여자의 희생을 책임지는 일이 사소한 것이 아니란 아버지 말씀이 바로 이것이었나 보다. 그런데 한창 달콤한 상상에 빠져 있는데 기절초풍할 일이 찾아왔다.


“진과장.”

“예. 팀장님.”

“오늘 점심 같이 합시다.”


웬일이지? 하루가 멀다 하고 얼굴을 들이대는 딸랑이들 때문에 팀원들과 식사 한번하기 힘든 강팀장이 점심에 초대를 하다니, 뜻밖이다. 그런데 오전 일과를 끝내고 강팀장을 따라갔는데 뭔가 이상하다. 1층에서 내릴 줄 알았던 강팀장이 지하 주차장으로 가는 것이다.


“팀장님. 1층에서 내리는 게 아니었습니까?”

“오늘은 좀 색다른 곳에서 먹어볼까 해요.”


대체 어디로 가는 거지? 그 덕에 생전 타 본적 없는 외제차까지 타보는 행운을 누렸다. 한참을 달려 간 곳은 일반인들은 있는지 조차도 모를 산속에 위치한 음식집이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주차장을 채운 차들을 보니 서민들은 감히 엄두도 못 낼 수준인 게 분명하다.


“아직 안 오셨나?”

“누구 또 올 사람 있습니까?”

“두고 보면 알아요. 앉읍시다.”


식탁 밑에 훤히 뚫린 공간에 발을 넣고 않으니 의자에 앉은 것처럼 편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크소리와 함께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누군가 했던 사람이 다름 아닌 강회장인 것이다.


“아냐. 아냐. 그냥 앉아있어.”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그 뒤를 따라 모습을 나타낸 정이사까지, 회사의 실세들이 모두 모인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알았을까? 강회장이 먼저 악수를 청하더니 결혼축하 인사를 건네는 게 아닌가? 기절초풍할 일에 멘붕에 빠질 지경이다.


“정이사. 내가 진과장 그런 사람인 줄은 진즉에 알았지만 정말 입이 무겁더군.”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정이사가 사람 보는 눈이 있어.”


이건 또 무슨 소리? 궁금증은 오래가지 않았다. 회장이 하는 얘기를 듣는 동안 까맣게 잊고 있건 과거의 한 조각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그것은 아주 오래 전에 목격했던 남들이 알아선 안 되는 그날의 광경이다.


“그날 내가 그 차에 있었는데 알았어?”

“솔직히 짐작은 했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모른 척 했단 말이야?”

“굳이 아는 척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순간, 이것 때문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남들에겐 평생 한번 있을까 말까한 두 번에 걸친 고속승진이 이에 대한 대가였나 하는 것이다. 전에 회장실에 불려간 것도 어쩌면 일종의 시험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속에서 소름이 끼친다.


“아직 밥이 오려면 멀었으니까 정이사 그거.”

“예. 진과장. 받아. 회장님께서 결혼 선물로 주시는 거야.”

“결혼할 때 줘야 하는데 내가 조만간 외국에 장기출장 갈 일이 있어서 말이지. 아무튼 축하해.”

“감사합니다.”


포장지에 쌓인 작은 상자가 제법 묵직하다. 정신없이 점심을 먹고 회장 일행과는 별도로 회사로 돌아왔다. 그러면 강팀장도 강회장과 유가인의 관계를 알고 있다는 것인데 작은아버지하곤 담을 쌓고 있으면서 그 아들인 사촌 동생은 어떻게 믿을 수 있는지 신기하다.


“진과장은 앞으로 큰일 할 사람이니 회장님 배신하면 안 됩니다. 알았죠?”

“네.”

“지금 궁금한 게 많겠지만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모른 척해요.”

“알겠습니다.”

“야! 그런데 아까 먹은 갈비 정말 예술이지 않아요?”


화제를 바꾸는 강팀장의 말에 장단을 맞추며 그의 말대로 오늘 일은 무덤까지 갖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어쩌다 이런 일에 빠졌는지는 모르지만 가슴 깊은 곳에 깔린 찜찜함이 걸린다. 행운일까? 아니면 마(魔)의 전조일까? 그런데 입막음을 위한 것이라지만 대기업 회장이 일개 과장의 결혼까지 챙기는 속내가 무엇일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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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101. 유리벽 20.06.01 205 7 5쪽
100 100. Ring! Ring! 20.05.31 205 8 6쪽
99 99. 날개 20.05.31 211 7 4쪽
98 98. 체제 강화 20.05.28 214 6 4쪽
97 97. 예비 사위 20.05.27 220 7 9쪽
96 96. 예비 며느리 20.05.27 243 9 4쪽
95 95. 프러포즈 20.05.25 219 8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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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93. 나르시즘 20.05.22 224 6 4쪽
92 92. 절묘한 수습 20.05.20 221 6 5쪽
91 91. 스캔들 20.05.17 220 7 5쪽
90 90. 벼랑에서의 탈출 20.05.16 226 6 4쪽
89 89. 술이 웬수 20.05.15 245 7 4쪽
88 88. 업그레이드 20.05.14 225 8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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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86. 막연한 기대 20.05.11 226 6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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