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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호의 서재입니다.

오피스 108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중·단편

완결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9.10.25 20:57
최근연재일 :
2020.06.06 00:19
연재수 :
109 회
조회수 :
38,828
추천수 :
1,022
글자수 :
254,932

작성
20.05.01 01:50
조회
233
추천
6
글자
6쪽

82. 독대(獨對)

DUMMY

지난주 보다 한명이 더 자리를 비우긴 했지만 선미가 없으니 사무실이 허전하다. 이것이 사랑하는 마음일까? 예전에도 자리를 비운 적이 있긴 하지만 그때의 느낌과는 사뭇 다른 것이 일마저 손에 안 잡힌다. 입사한 이래 처음으로 겪어보는 상황이 당황스럽다.


“순홍씨는 휴가 어디 갔다 왔어?”

“일주일 동안 친구들하고 계곡에서 죽쳤습니다.”

“한순씨는?”

“전, 여고 동창하고 동해안 드라이브했어요. 그 애한테 차가 있거든요.”

“아니, 이 험한 세상을 여자 둘이서 돌아다녔단 말입니까? 세상에.”


생각지 않았던 순홍의 익살에 사무실은 웃음바다가 됐다. 그러나 미호는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표정 없이 모니터만 들여다보고 있다. 하지만 강팀장이 있을 때보다는 평온해 보인다. 그만큼 지난번 그 일로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이때 책상 위에 있던 전화기가 벨을 울려댄다.


“정보관리팀 대리 진정도입니다.”

“비서실 유가인입니다.”

“네.”

“지금 회장님께서 찾으십니다.”

“저를요?”


갑자기 무슨 일이지? 옛날에 마주한 적은 있지만 그때는 사장이었을 때고 지금은 최고경영자인 회장이 부른다는 소리에 온 몸이 경직된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회장실로 올라갔다.


“어서 와. 앉아.”


이게 무슨 일인가? 회장과 마주 앉다니, 얼떨결에 앉고 보니 들어올 때보다 더 긴장된다. 만약 잘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어쩌지? 그래도 업무와 관련된 것일 테니 정신만 바짝 차리면 된다. 그런데 회장은 비서실에 차를 시키고는 엉뚱한 얘기만 한다.


“하는 일이 세 가지나 된다면서?”

“네. 그런데 네트워크 관리는 업체에서 파견된 직원이 맡게 돼서 크게 힘들진 않습니다.”

“다행이네. 강팀장이 아주 칭찬을 많이 하더군. 맡은 일에 빈틈이 없다고 말이야.”

“과찬이십니다.”


이때 노크 소리와 함께 유가인이 쟁반에 차 두 잔을 받쳐 들고 들어왔다. 살포시 차를 내려놓는 그녀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오자 역시 대단한 미인이란 생각이 든다. 큰 눈에 약간 들린 오뚝한 코가 아이돌 뺨칠 정도다.


“우리 얘기하는 동안 누구도 들이지마. 결재 맡을 것 있으면 나중에 다시 오리고 하고.”

“예. 회장님.”


아직 본론은 꺼내지 않은 건가? 회장이 권하는 차를 마시는데 긴장이 돼서 그런지 맛을 모르겠다. 잠시 향을 음미하던 회장은 찻잔을 내려놓고 앞에 있던 서류철을 집어 안에 있는 것들을 탁자 위에 꺼내놓고 입을 열었다.


“내가 자넬 부른 것은 다름이 아니라 사적인 부탁이 있어서 그런데 이것 좀 봐.”


이게 뭐야? 일과 관련된 것인 줄 알았는데 노트북 팸플릿들이 아닌가? 다음 주 수요일이 딸의 생일인데 무엇을 선물해야 좋을지 몰라 불렀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라면 다음 주 월요일에 출근할 강팀장을 통하면 될 것을 왜 일개 대리에게 부탁하는 걸까?


“내 딸이 지금 고1인데 작년에 이 녀석이 산지 1년도 안 된 노트북을 바꾸려고 하지 뭐야. 그래서 안 된다고 했지. 해달라는 대로 다해주면 버릇만 나빠지잖아. 그래서 이번 생일날 비싼 것 사달라고하기 전에 미리 선수 치려는데 어떤 게 좋겠어? 가격은 아무래도 상관없어.”

“고1이면 가볍고 기능이 다양한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회장은 추천한 것 중 하나를 고르고 비서 유가인을 불러 생일 전까지 구입할 것을 지시했다. 그렇게 남들은 1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회장과의 독대를 마치고 나오는데 겨드랑이가 땀으로 축축하다.


“진정도대리 회장님 만났다면서?”

“네. 질문하실 게 있다고 하셔서요.”

“그래?”


대리가 회장과 독대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그만큼 보기 힘든 일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전화를 걸어 회장과 무슨 관계냐고 묻기까지 했다. 그런데 스마트폰의 진동음을 느끼고 꺼내본 선미의 메시지는 정말 뜻밖이다.


[회장님하고 독대했다면서요?]

[네. 어떻게 알았어요?]

[다 알 수 있는 채널이 있죠. 정도씨 대단해요.]

[아녜요. 그냥 묻는 말에 대답만 하고 나왔어요.]

[그런데 한 가지 조심할 게 있어요.]

[그래요?]

[회장님하고 했던 얘기는 절대 입 밖에 내선 안 돼요. 특히 사적인 내용은 더더욱.]

[알아요. 그런데 지금 어디에요?]

[방금 KTX에서 내려서 엄마하고 가는 중에요.]

[부모님 추억이 있다는 그곳 말인가요?]

[네.]

[휴가 재미있게 보내고 잘 다녀와요.]

[고마워요. ♥]


이제 뭔가 좀 알 것 같다. 어쩌면 회장이 시험한 것일 수도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동안 일어났던 많은 일들에 관여되지 않은 적이 없다. 전 강철호 전무의 스캔들, 전 팀장 손노문의 ‘미래’ 스캔들, 그리고 가장 최근에 애를 먹었던 오너 일가의 파워게임까지 직장인에겐 파란만장하다고 할 만한 일들이다.


“진정도대리님. 회장님 방에 갔었어요?”

“네.”

“무슨 얘기 했어요?”

“그냥 이것저것 물어보시더라고요.”


뒤늦게 소식을 들었는지 평소 거의 말을 하지 않던 미호까지 관심을 보인다. 그런데 나중에 강팀장이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하지? 거짓말 할 수도 없고 정말 고민이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하면 회장의 미움을 살 게 뻔하고 거짓말로 둘러댔다가 들통 나면 강팀장이 서운해 할 것이다. 지난번엔 운 좋게 넘어갔지만 이번엔 쉽지 을 것 같다.


‘젠장.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겨?’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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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99. 날개 20.05.31 212 7 4쪽
98 98. 체제 강화 20.05.28 215 6 4쪽
97 97. 예비 사위 20.05.27 220 7 9쪽
96 96. 예비 며느리 20.05.27 243 9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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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94. 첫 만남 20.05.23 217 7 4쪽
93 93. 나르시즘 20.05.22 224 6 4쪽
92 92. 절묘한 수습 20.05.20 221 6 5쪽
91 91. 스캔들 20.05.17 220 7 5쪽
90 90. 벼랑에서의 탈출 20.05.16 226 6 4쪽
89 89. 술이 웬수 20.05.15 245 7 4쪽
88 88. 업그레이드 20.05.14 226 8 4쪽
87 87. 권한과 책임과 의무 20.05.12 226 7 4쪽
86 86. 막연한 기대 20.05.11 226 6 4쪽
85 85. 테스트 20.05.09 235 7 5쪽
84 84. 첫 휴가 (2) 20.05.09 227 6 4쪽
83 83. 첫 휴가 (1) 20.05.04 244 7 4쪽
» 82. 독대(獨對) 20.05.01 234 6 6쪽
81 81. 한마디의 위력 20.04.29 252 6 4쪽
80 80. 작전 실패 20.04.28 251 8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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