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카운트다운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다.’는 말처럼 사람이 많으니 별의별 사건들이 끊이질 않는다. 한동안 회사를 들썩이게 했던 스캔들도 보름 뒤 회장이 출국하면서 서서히 사람들 기억에서 지워졌고 이제 2주 앞으로 다가온 결혼 소식에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축하 전화 받기에 정신이 없다.
“그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진대리님 축하드려요.”
본격적인 결혼 준비를 위해 사직서를 낸 선미는 10년 가까이 몸담았던 정보관리팀과 눈물로 작별을 고했다. 특히 입사부터 선미와 같이 했던 하얀과 한순의 울음보는 팀원 모두의 눈시울을 젖게 만들었다.
“수고 많으셨어요. 언니.”
“고마워. 나중에 승진하면 꼭 연락하고.”
사내결혼이라는 게 이런 것인가? 기분이 묘하다. 돌이켜 보니 지난 2년간 다른 여자에게 눈길을 준적이 없었다. 처음부터 선미에게 꽂혔던 것 같다. 엄마 얘기에 의하면 아버지도 그러셨다는데 부자는 성격도 닮는 것 같다. 하지만 외모는 엄마를 닮았다는 말을 들었다.
“진선미 대리. 진심으로 축하해요. 진과장하고 같이 있는 것을 보니까 두 분 정말 잘 어울립니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강팀장의 덕담을 끝으로 선미는 결혼 2주를 앞두고 청육과의 오랜 인연을 끝냈다. 그동안 살던 집은 다른 세입자에게 넘긴 뒤라 점심을 먹고 천안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 전에 엄마 단골집에 들러 예복을 찾을 생각이다.
“많이 서운하죠?”
“아니라면 거짓말이죠.”
“점심 먹고 예복 찾으러 갈 때 같이 가요.”
“회사는요?”
“아까 나오기 전에 강팀장한테 얘기했어요.”
점심을 먹고 엄마 단골 의류매장에 들러 예복을 찾았다. 눈에 콩깍지가 씌워서 그런지 탈의실에서 예복을 입고 나온 선미 밖에 보이지 않는다. 선미도 마음에 들어 하고 선미가 맞춰준 예복에 엄마와 친분이 있는 주인여자의 축하선물까지, 손에 든 쇼핑백만 봐도 부자가 된 느낌이다.
“함 가는 날 봐요.”
그런데 걱정이 생겼다. 마땅한 함진아비가 없다. 함진아비는 신랑 친구 중 득남(得男)을 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청첩장을 받았을 친구 중에 그런 요건을 갖춘 친구가 있는지 모르겠다. 더구나 설령 있다고 해도 청년 실업자 백만 시대에 서로 바쁘다 보니 문자나 보낸 게 전부다. 그런데 그런 부탁을 들어줄까?
“대학 때 친했던 친구 몇 명한테 연락을 하긴 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꼭 아들 안 낳았어도 돼.”
“그런데 함에 뭐 넣는 거예요?”
“넌 그것도 모르냐? 원래 혼인 전에 신랑 측에서 신부 측으로 혼서지(婚書紙), 채단(采緞) 등을 보내는 데 그것들을 함(函)을 넣는 거야.”
아직 2주라는 시간이 남았으니 그 전에 나서주는 친구가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진동음을 느끼고 스마트폰을 드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든다. 전화를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손노문, 그냥 인사치레로 창첩장을 보냈는데 직접 전하를 한 것이다.
“축하해.”
“감사합니다.”
“예전부터 뭔가 좀 이상하다 했는데 역시 진과장 여자 보는 눈 있네.”
그동안 손노문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얼마 전 그곳 대표이사로 있던 주전노가 퇴임하고 손노문이 그 자릴 차지했다 그런데 평생 물러나지 않을 것 같던 주전노가 물러난 이유가 가관이다. 재직 중 대표이사라는 직위를 남용해 회사 공금을 사적인 목적에 쓰다가 감사에 걸려 권고사직을 당했다는 것이다.
“처음엔 완강히 거부했는데 공금횡령 죄로 고소한다니까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지. 결국 그동안 부당하게 전용했던 공금을 모두 변상하는 조건으로 고소는 하지 않기로 했어.”
“제 버릇 남 못줬네요.”
“그러게 말이야. 하긴, 나도 잘한 건 없지. 아무튼 축하해. 결혼식 날 꼭 갈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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