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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호의 서재입니다.

오피스 108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중·단편

완결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9.10.25 20:57
최근연재일 :
2020.06.06 00:19
연재수 :
109 회
조회수 :
38,812
추천수 :
1,022
글자수 :
254,932

작성
20.05.09 02:26
조회
226
추천
6
글자
4쪽

84. 첫 휴가 (2)

DUMMY

철우와 연락이 닿은 덕에 친구들의 010 번호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친구들은 만나지 못했다. 철우는 자기 아버지 회사에 있어 마음대로 시간을 낼 수 있지만 상사의 눈치를 봐야 하는 다른 친구들은 목소리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예상과 달리 살벌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남보다 더 많은 시간을 회사에서 죽쳐야했던 것이다.


“미안하다. 요즘 일이 많아서 거의 매일 야근이야.”

“아냐. 나중에 시간 될 때 만나면 되지.”


전화를 끊고 생각해 보니 제 시간에 퇴근한 기억이 거의 없다. 요즘 같이 갈수록 청년 실업자가 늘어나는 시대에 직장이 있는 것만도 축복이다. 문득 어렸을 때 휴가 때가 아니면 늘 퇴근이 늦어 얼굴 보기가 힘들었던 아버지 생각이 난다.


“오늘은 어디 안 나가?”

“응.”

“휴가 때 집에서 푹 쉬는 것도 좋지. 엄마 모임 가니까 밥을 먹든지 라면을 먹든지 해. 냉장고 안에 불고기도 있고.”

“알았어. 아버진?”

“벌써 나가셨지. 오늘 늦는다고 하셨어. 엄마도 늦을 것 같으니까 저녁 챙겨 먹어.”


취직 이후 첫 휴가가 생소해서 그런가? 집에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루 종일 TV만 보자니 아까운 휴가를 낭비하는 것 같고 오랜만에 게임이나 할까 하고 접속했지만 그 마저도 귀찮다. 이럴 때 형제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밖을 내다보니 날씨가 너무 좋다. 이런 날들을 솔로로 보내야 하다니.


[날씨 정말 좋네요.]

[어디에요?]

[집이에요.]

[어디 안 갔어요?]

[네. 친구들이 바빠서 시간도 없고 아무 준비도 없이 휴가를 맞이했더니 할 일이 없네요. 참, 마감 때인데 도한씨 없어도 괜찮겠어요?]

[저도 걱정했는데 도한씨가 준비를 다해놓고 갔더라고요]


오지랖인가? 휴가 중인 사람이 걱정할 일이 아니다. 문득 일벌레가 돼 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일종의 책임감? 휴가를 마치고 다음 주에 출근하면 마감이 끝난 뒤일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내년에도 선미와 휴가를 보낼 가능성은 희박하다.


‘결국 이렇게 끝나네.’


사나흘을 빈둥거림으로 보내고 나니 남들은 쏜살같이 지나간다는 휴가가 거북이처럼 지나간다. 차라리 잘 됐다. 너무 빨리 끝나버린 휴가에 대한 아쉬움 보다 재충전 하고도 남는 휴가였다고 위안을 삼는다. 그렇지만 여전히 2%의 아쉬움이 사라지지 않는다. 맞다 오늘은 마감이 끝나는 날이다.


[휴가 마지막 날이자 불금이네요,]

[안 그래도 톡하려던 참이었어요.]

[그러면 같이 저녁 먹을까요?]

[그래요. 우리 청계천 가요. 거기 먹거리도 많다던데.]

[저도 좋아요. 실은 한 번도 안 가봤거든요.]


전화를 끊고 외출 준비를 하려고 욕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왠지 낯선 느낌이 들어 거울을 봤더니 웬 노숙자가 거울 안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니 철우를 만난 이후 면도는 물론 세수를 한 기억이 없는 것 같다.


“이게 누구야?”

“누구긴 누구야? 아들이지.”

“어찌나 꼴 보기 싫던지. 그런데 어디 가?”

“누구 좀 만나러.”

“여자?”

“응.”

“전에 말한 그 애?”

“응.”

“만나는 건 좋은데 네 나이도 생각하면서 만나. 엄마 얘기 무슨 말인지 알지?”

“알아. 다녀올 게.”


하긴, 서른을 훌쩍 넘겼는데 아무 얘기 없는 게 더 이상하다. 더구나 이미 준비된 신랑인데. 이따가 저녁 먹고 얘기해 볼까? 아냐. 너무 일러. 정식커플이 된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천정에서 방송이 흘러나온다.


“이번 정차할 역은 을지로 3가, 을지로 3가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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