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내 몸이 둥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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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짝 걱정을 했다.
막상 뒤를 졸졸 쫓아오는 최주혁을 힐끗거리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하긴 뉴스에서 그렇게 많이 보여준 얼굴이니까.'
다행히 헌터라는 직업 특성상 사람들이 쉽사리 말을 걸진 못했다.
아이돌 같은 연예인과는 달리 기다란 칼을 허리춤에 매달고 다니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건 꽤 큰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최 헌터님."
"예."
"원래도 이렇게 자주 사람들이 알아보시나요?"
"예, 자주 그럽니다. 불편하시면 마스크라도 끼겠습니다."
"아, 마스크를 들고 다니세요?"
"예, 전투용 마스크가 있습니다."
엥? 전투용?
최주혁은 갑자기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얼굴 전체를 가릴 수 있는 전면 마스크였다.
평범하지 않은 재질로 만들어진 듯 묘한 색감이 흘렀다.
톡톡.
최주혁이 마스크를 몇 번 두드려보고는 얼굴에 썼다.
나는 멍하니 최주혁을 올려봤다.
'더 시선을 끌게 생겼군···'
그래도 주변 사람들이 최주혁인지는 모를 터였다.
초여름에 전면 마스크를 쓴 또라이가 최주혁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테니까.
나는 마스크를 끼고 있는 최주혁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부탁을 드리고 있는 처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 이후로 대화는 없었다.
최주혁은 원래 과묵한 성격이었고, 나는 최주혁을 옆에 두고 걷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게이머나 축구선수가 함께 걷고 있는 기분이라고 보면 됐다.
"아, 도착했군요. 저 혼자 다녀오겠습니다."
헌터협회에 최주혁을 대동하고 들어간다?
뉴스에 나오고 싶다면 이처럼 간단한 방법은 없겠다만.
유명해지는 건 나중이다.
"예,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다행히 최주혁은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나는 감사 목례를 하고는 헌터협회 안으로 들어갔다.
데스크에는 익숙한 얼굴이 두 명 있었다.
'임 주임과 박 과장!'
둘 다 내가 S급이란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들은 내 상태창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별도 마력 검사를 해서 등급을 추출해야 한다.
하지만 힐러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별도 마력 검사고 뭐고 모두 패싱.
마력 유무만 판단할 수 있는 간이 검사로 헌터라이센스증을 발급 받은 상태였다.
임 주임과 박 과장도 날 알아본 모양이었다.
"어, 안녕하세요. 금방 오셨네요? 그 힐러님이시죠? S급이라고 주장하셨던. 하하."
임 주임이 생글생글 웃었다.
후, 막상 선한 얼굴을 보니까 화가 가라앉았다.
하긴 나 같아도 다짜고짜 S급 힐러라고 주장하는 민원인이 나타나면, 가볍게 씹고 시작할 것 같았다.
'하루에 한 명만 그런 또라이가 나타나도 1년이면 365명이지.'
굳이 윽박질러서 마력 검사를 하게 되면 S급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만.
아니, 또 모르지.
힐러 특유의 마력 때문에 S급이 안 나올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앞으로 자주 볼 사이인데 그럴 바엔 그냥 사회인 답게 농담을 던지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S급 맞다니까요, 저! 딱 봐도 스페셜하잖아요."
"네, 알았어요. 믿을게요, 우리 S급 헌터님."
임 주임 역시 웃으며 농담을 받았다.
옆에 있던 박 과장도 살짝 긴장했던 기색을 내려놓고 헤벌쭉 웃었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임 주임의 물음에 나는 휴대폰을 꺼내 보여줬다.
"아, 게이트 공략 신청하려고 하는데요. 처음에는 오프라인 접수가 필요하다고 해서요."
임 주임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내 앞에 놓인 태블릿을 가리켰다.
"네, 그러시군요. 어떤 게이트 공략을 원하세요? 앞에 태블릿을 보시면 현재 발견 및 보고된 게이트들이 있습니다. 지금 공략이 가능한 빈 게이트는 초록색 네모가 표시가 돼 있고, 예약이 돼 있는 게이트는 주황색 네모, 공략 중인 게이트는 빨간색 네모가 표시돼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숙여 태블릿을 슥슥 내렸다.
말로만 들어오던 S급 게이트는 당연히 없었고, 대부분이 C급 아니면 D급 게이트였다.
간혹 B급이나 A급 게이트가 있었는데, 이미 예약 중이었다.
아마 대형 길드가 경매로 구매한 모양이었다.
'어디 보자, F급 게이트.'
게이트 공개 공략 시간이 끝나면, 헌터협회 소속 헌터 혹은 헌터군에서 직접 나서서 공략에 나선다.
아무리 F급 게이트여도 공략하지 못하면 작은 반경이어도 대지가 폭발하는 건 똑같았기 때문이다.
'F급 게이트가 하도 많아서 혜택도 많이 주는 편이지. 그래서 낮은 등급의 게이트여도 활발한 공략이 이뤄질 테니까.'
F급 게이트를 공략하면 정부에서 별도 혜택을 준다.
마석 판매시 금액을 더 쳐준다든가 하는 사소한 혜택이었다.
사소한 F급 게이트까지 모두 처리하려면, 헌터협회 소속 헌터 및 헌터군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까 유인책을 쓰는 셈이다.
마침 집 뒷산에 F급 게이트 하나가 열려 있는 게 보였다.
아직 게이트 공개 공략 시간도 넉넉하게 3시간 이상 남아있었다.
"저 이 게이트로 하고 싶은데요."
"아, 네. 그럼 파티원 현황 확인하겠습니다."
임 주임이 몇 번 키보드를 두드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파티원 2명 확인되었습니다. 그런데··· 파티원분의 닉네임이 독특하시네요···?"
나는 화면을 슬쩍 보고는 피식 웃었다.
파티장은 나, 파티원은 애착인형이었다.
"네, 애착인형이 없으면 잠을 못 잔대요."
"하하하, 저도 그래요."
임 주임은 가볍게 웃고는 접수 절차를 끝냈다고 알려줬다.
"다 됐습니다, 한지우 헌터님!"
"아, 넵.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또 오세요!"
나는 살짝 흔들렸지만, 도끼병을 꾸욱 눌렀다.
이래서 사람 상대하는 직업이 힘든 것이다.
'또 오세요' 한마디에 흔들리는 심장이라니.
하지만 나는 이미 수많은 사례를 겪어본 절정고수.
"네, 그럼 수고하세요."
가벼운 감사인사와 함께 접수대를 나왔다.
그리고 다음 민원인이 내 옆을 지나가는데···
'어?'
나는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옆모습만 봐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하긴 저 파란 머리를 보고도 모르면 그 사람은 헌터업 접어야지.
'S급 헌터 구라온!'
국내 S급 헌터 톱3로 불리는 한 명이었다.
최주혁은 당연히 넘버원이고 박태우와 구라온이 넘버투 자리를 얻기 위해 엎치락 뒤치락 하고 있었다.
구라온은 역시 소문답게 항상 커피를 들고 다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커피가 담긴 컵이 구라온 옆에 동동 떠다녔다.
'역시 초능력술사답네.'
구라온의 직업은 초능력술사였다.
초능력술사도 여러 특성이 있는데, 구라온의 특성은 무려 공격이었다.
집채만한 바위를 초능력으로 들어서 던진다고 생각해보자.
'아찔하지.'
하지만 나는 구라온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사생활이 더럽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특히 성추문이 많았는데, 역시나.
구라온은 임 주임에게 찝쩍거리고 있었다.
"임 주임, 오늘도 섹시하네."
임 주임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하하··· 감사합니다. 구라온 헌터님. 무슨 일로 오셨을까요?"
"에이, 뭐 꼭 일이 있어서 와야 하나. 그냥 보고싶어서 왔지."
"아··· 하하··· 고맙습니다만··· 별 업무가 없으시면 다음 민원인께서 기다리고 계셔서요···"
구라온이 갑자기 뒤를 홱 돌아봤다.
그리고는 손을 몇 번 휘저었다.
민원인들이 들고있던 대기표가 홱 날아가더니 구라온의 눈앞에 멈춰섰다.
찌지지직.
대기표들이 찢겨져 허공에서 휘날렸다.
구라온이 씨익 웃었다.
"제가 업무가 길어질 것 같아서요. 좀만 더 기다려주시면 좋겠는데··· 정말 급하신 분? 나는 정말 급해서 지금 당장 업무를 봐야겠다, 하시는 분 계시는지?"
씨익 웃었지만, 웃음 속에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
민원인들이 황급히 딴청을 부리며 일어났다.
"아, 맞다 내 정신 좀 봐! 장 봐야 하는데!"
"여보세요, 엄마?"
민원인들이 앉아있던 곳이 어느새 텅텅 비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헌터는 국가인적자원이다.
그 중에서도 S급 헌터는 국가최고중요인재로 꼽힌다.
S급 헌터가 없으면 높은 등급의 게이트의 원활한 공략이 어려워진다.
게이트 공략에 어려워지면 대지가 하나둘씩 터지고, 결국 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S급 헌터를 한국에 잡아두기 위해 수많은 혜택을 주고 있었다.
최주혁처럼 항상 겸손하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헌터가 있으면, 구라온 같은 양아치 같은 놈도 있는 법.
'대놓고 멱살을 잡을 순 없고. 일초컷일 테니까.'
그래도 뭔가 응징을 가하고 싶었다.
임 주임은 비록 내가 S급 헌터라는 것은 믿지 않지만, 대놓고 쪽을 주지 않고 오히려 친절하게 농담까지 던져줬던 직원이다.
'또 오세요'라고 말한 친절한 사람이기도 하고.
그런 사람의 표정이 납치된 사람처럼 거무죽죽한 것을 보니 심히 거슬렸다.
나는 민원인이 앉을 수 있는 의자 구석에 앉았다.
'기회는 곧 온다.'
나는 조용히 구라온과 임 주임을 지켜봤다.
박 과장은 임 주임을 위해 나섰다가 구라온의 초능력 때문에 허공에 붕붕 떠오르고는 조용히 구석에 앉아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경비원들이 황급히 어딘가로 전화는 했지만, 당장은 어쩔 방법이 없었다.
그때였다.
스윽.
구라온이 둥둥 떠있는 커피컵의 빨대를 향해 목을 길게 빼는 게 보였다.
빨대로 커피를 마시려는 모양.
나는 최대한 온 정신을 집중했다.
<서브 스킬 '투시 진료'를 발동하였습니다>
순간 구라온의 근육과 뼈들의 움직임이 보였다.
놀랍게도 빨간 부분이 아예 없었다.
회복이 필요한 부분이 없다는 뜻.
역시 S급 다웠다. 하는 행동은 -Z급이지만.
나는 슬쩍 손을 흔들었다.
<서브 스킬 '원격 강화'를 발동하였습니다>
나만 볼 수 있는 파란색 아지랑이가 빠져나와 구라온의 목쪽을 향해 스며들며 목 부분이 번쩍거리는 금색으로 변했다.
구라온이 한껏 그윽한 표정으로 커피를 빨아들인 순간.
커피가 미친 속도로 빨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후르르르르르릅.
엄청난 양의 커피가 목구멍에 쳐들어가는 게 보였다.
어후, 진공 청소기인줄.
불룩.
입에 커피가 가득 찬 구라온이 두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결국 참지 못하고 커피를 내뿜었다.
"푸흐으으으으읍!"
사방이 커피, 커피, 커피였다.
구라온의 입가에서 커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하필 바지 역시 하얀색 면바지였다.
면바지에도 커피가 묻어 있었다.
흡사 설사를 지린 듯한 모습··· 애도를 표한다···
커피를 빨아들이는 목의 힘을 강화시켜서 1의 빨아들임을 4로 만들어버린 결과였다.
'쌤통이다.'
나는 웃음을 꾹 참으며 재빨리 헌터협회를 나갔다.
아니, 나가려 했다.
둥둥.
어, 내 몸이 왜 둥둥 떠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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