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악플러 혼내 주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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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릅."
나는 입가에 흐르던 침을 삼키며 천천히 일어났다.
온몸이 개운했다.
바닥에 블루 리자드의 가죽을 깔고 그 위에 토퍼를 깔았을 뿐인데.
숙면에 완벽한 온도였다.
최소 27도 이상 후덥지근했던 텐트는 체감상 이상적인 온도인 20도 정도로 떨어져 있었다.
사방에 블루 리자드의 가죽을 깔아둔 덕분에 선선함이 절로 느껴졌다.
"살짝 싸늘한 곳에서 이불 덮고 자는 게 국룰이지."
30분만 낮잠을 자려고 했는데 2시간을 자버렸다.
슬쩍 일어나자, 애버릭과 애보관, 애증이들이 옆에서 자고 있었다.
무슨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 고양이들도 아니고.
깜빡하고 소환해제를 안 했더니 다들 옹기종기 모여있던 모양이다.
"병장··· 애증이···예요···"
다른 작은 애증이들은 보초를 서고 있었다.
"너희들은 안 자니?"
"교대···하여요···"
자고있던 작은 애증이들이 ㅇ_- 졸린 눈으로 주섬주섬 일어났다.
그리고 군복을 입고는 보초를 서던 애증이들과 근무교대를 했다.
"금일의··· 암구호는··· 문어에···"
아니, 얘들아.
여기는 명목상 '기지'인 것이지, 진짜 부대가 아니란다.
어째서 경계용 암구호까지 만들어서 공유하니···?
스윽.
나는 일어난 기념으로 잠시 꺼뒀던 스마트폰을 켰다.
슬슬 속세가 그립다기보다는.
유행한다는 디지털 디톡스 좀 해보려고 했으나, 바로 실패.
이렇게나 스마트폰 중독이 무섭다.
우우우우우웅.
"음?"
스마트폰을 켜자마자 톡들이 도착했다는 진동이 마구 울렸다.
<한이슬: 훈련 복귀함>
<한이슬: 올 때 메로나>
<한이슬: 한지우 너 어디냐?>
<한이슬: 설마 너 외박하냐? 여친 생김? 니가?>
<한이슬: ??? 왜 안읽냐??>
<한이슬: 설마 가출했냐? 아니면 독립? 나야 좋지 완전 땡큐다>
그냥 평상시처럼 동생 한이슬의 잡담이었다.
그런데 맨 마지막에 눈에 띄는 톡 하나.
<한이슬: 야!!!!! 이 미친 놈아!!!! 너 최주혁 마스터님한테 뭔 짓을 한 거야!!!!>
<한이슬: 당장!!!!!!!!! 전화 받아!!!!!!!!!!!!!!! 미친 놈아!!!!!!!!!!!!!>
<한이슬: 제발 톡이라도 읽어주라··· 제발 부탁드립니다··· 오···빠···님···>
아, 맞다.
그동안 애착기지 증축에 너무 빠져 있느라, 잠시 잊고 있었다.
최주혁 헌터님 버리고 도망친 거지, 나.
심지어 현수막도 준비했던 것 같은데 말이지.
"흠."
한이슬로부터 부재중 통화가 156개 있었고, 이름 모를 번호로 1개가 와 있었다.
아마 이름 모를 번호는 최주혁 같다만.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가 겨우 한 번 전화를 한 모양이지?
"음, 관심 받는 기분 나쁘지 않아."
A급 헌터(동생)와 S급 헌터가 내게 애걸복걸(애걸복걸하지 않았다)하는 모습.
꿈에도 그리던 상황이었다.
심지어 오빠라고 부르면 몸에서 두드러기가 난다는 한이슬조차 오빠라고 부를 정도라니. 급하긴 한가보다.
하긴 직장 상사, 아니 직장 대표니까 그럴 수밖에 없나?
나는 슬쩍 스마트폰을 애착이들에게 보여줬다.
"어떻게 생각해? 예의가 있는 것 같아?"
애보관이 제일 먼저 고개를 내저었다.
"예의 없음. 복무신조 외우게 하고 싶음."
애버릭과 애증이 역시 고개를 흔들었다.
"아우! 형님! 예의! 필요!"
그렇지, 아우는 형님에게 예의를 보여줘야지.
"매로··· 맞아야···해요···"
어? 제일 작고 귀여운 애증이에게서 이런 올바른 말이 튀어나올 줄이야.
역시 애증이가 최고다.
일단 톡 하나 정도는 남겨둬야 할 것 같았다.
괜히 재수없게 실종신고라도 했다가는 경찰이 위치추적을 할 수 있었으니까.
토토토톡.
<지우: 예의가 없구나, 동생아>
슈욱.
톡을 보낸지 1초만에 곧바로 톡이 왔다.
<한이슬: 미친 놈아!!!!!!!!!!!!! 경찰에 신고할 뻔 했다!!!! 너 어디야!>
<지우: 너? 휴대폰 끈다?>
<한이슬: ···오빠님, 제가 실언을 하였습니다. 옥체는 강녕하신지요?>
<지우: 그래>
<한이슬: ···옥체가 어디에 계신지 미천한 제가 감히 여쭤봐도 될런지요?>
<지우: 아니, 안 돼>
<한이슬: ···오빠님, 진짜 뒤지기 싫으면 얼른 집에 오세요 그 나이 먹고 무슨 가출이··· 십니까··· 오빠님···제발 동생 좀 살려주세요··· 최주혁 마스터가 너를··· 아니, 오빠님을 간절히 찾고 계십니다···>
<지우: 나 가출 아니고 독립이다. 그러니 찾지 마라>
<한이슬: 야 이 개···>
나는 곧바로 스마트폰을 껐다.
내가 톡으로 '독립'을 외친 이상 경찰에게 실종신고를 해봤자 큰 의미가 없달까.
"흠, 우선 자잘한 건 처리했고."
나는 다시 힐러용 노트북 앞에 앉았다.
요즘 에고 서핑에 맛들렸거든.
에고 서핑이 뭐냐고?
인터넷에 내 이름을 쳐서 평판을 확인하는 행동이 바로 에고 서핑이었다.
나처럼 유명한 S급 헌터라면 당연히 하는 행동이지.
띠리링.
<헌터 커뮤니티 '헌스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음, 우선 이 단어부터 검색해볼까."
나는 헌스헌 위쪽 검색창에 '헌터생명'을 입력하고 엔터를 눌렀다.
딱.
촤르르르르르르르.
"흠."
내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예전에는 검색 결과 0개였다.
하지만 지금은 121개까지 늘었다.
대부분 나를 찬양하는 내용들.
ㄴ헌터생명 무조건 가입하세요 진짜 제값 함
ㄴ아직도 헌터생명 가입 안 함? 미치셨음? 뒤지고 싶으심?
ㄴ헌터생명 설계사님 용안 좀 뵙고 싶습니다 생명의 은인!!!
ㄴ특히 그 인형들이 개귀여움;;; 집으로 납치하고 싶음;;
ㄴ헌터생명 굿즈 만들면 살 의향 있는 1인
물론 어디든 악플이 있는 법.
악의적인 내용도 많았다.
ㄴ광고 자제 좀
ㄴ딱 봐도 광고네
ㄴ사장님 주작 티나요;;
ㄴ헌스헌도 맛갔네 알바 개많아짐
악플이 달렸다는 건 뭐다?
주위에 꽤 알려졌다는 얘기다.
헌터생명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악플이 늘고 있었다.
즉, 배가 아픈 녀석들이 많아졌다는 뜻.
"원래 수퍼스타의 길은 험란한 법이지. 악플러도 감싸야 하는 법."
이번엔 '애착대장'을 검색했다.
타타탁.
역시 찬양글부터 시작해야지.
ㄴ나 헌터협회 직원인데 요즘 매일 애착대장 보고서 쓴다
ㄴ얼마 전에 '블루 리자드 S+ 공략' 뜬거봄? A급들 개난리치는 데도 못 얻는 공지인데;;; 진짜 애착대장 개쩌는듯···
ㄴ애착대장=최주혁 맞음?
ㄴㄴ최주혁은 아닌 거 같음
ㄴㄴㄴ왜아님? 얼마전까지 최주혁썰 돌앗자나
ㄴㄴㄴㄴ나 백호길드원인데··· 원래 청룡길드하고 워크샵하기로 했거든? 근데 취소됨. 친한 청룡길드원한테 이유 물어보니까 최주혁 우울증 걸렸다는데?
ㄴㄴㄴㄴㄴS급헌터가 우울증? 네 다음 개소리
ㄴㄴㄴㄴㄴㄴ아니 진짜로;; 요즘 최주혁 대외활동 다 취소하고 있는 건 팩트임. 좀만 알아보면 나옴. 심지어 게이트 활동도 안하고 있을걸?
ㄴㄴㄴㄴㄴㄴㄴㅇㅇ 이건 진짜임
"크흐흠."
나는 머쓱한 느낌이 들어서 애꿏은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어··· 내가 도주했다고 우울 증상까지 생겼다고···?
괜히 죄책감이 든다.
S급 헌터가 뭔 우울증이야.
육체도 S급, 정신도 S급이어서 S급 헌터 아니냐고.
그런데 그때 치킨을 먹으면서 별처럼 반짝거리던 최주혁의 눈빛을 떠올려보면···
"꽤 상처를 받았을 것 같기도···?"
하긴 동생의 복수를 위해 수십년간 기다려왔던 것을 찾았는데, 그게 없어진 셈이니.
흠흠, 가끔씩 육지로 가줘야겠구만.
"음, 근데 아까부터 얘 좀 거슬리는데."
아까부터 계속 눈에 띄는 닉네임이 있었다.
'헌터생명'을 검색했을 때도, '힐러'를 검색했을 때도, '애착대장'을 검색했을 때도.
계속 쭈욱 모든 글을 따라오며 악플을 다는 녀석이었다.
<국민거품최주혁 : 국거최>
심지어 닉네임조차 범상치 않았다.
최주혁은 국내 명실 상부 최고의 S급 헌터인데?
최주혁이 거품이라고?
이놈은··· 그냥 넘어가선 안될 것 같았다.
헌터는 나름 대외적인 활동을 하는 직업이다.
헌스헌에서 쓰이는 닉네임이 공식 닉네임이라는 것.
그런데 대놓고 저런 범상치 않은 닉네임을 쓴다는 건 둘 중 하나다.
"미친 놈이거나, 또라이거나."
뭐 둘 다 같은 말이지.
저런 닉네임을 쓰는 사람이 정상일 리가 없으니.
국민거품최주혁, 즉 국거최가 남긴 악플들은 죄다 정상이 아니었다.
ㄴ헌터생명? ㅈㄹ하고 자빠졌네. 나 위험할 땐 나오지도 않더만??
ㄴ뭐? 인형들? 인형 머리 찢어버리고 싶다
ㄴ애착대장? ㅋㅋㅋㅋㅋ 겨우 F급 게이트 꼼수 발견해서 S+ 공략 받은 것뿐인데··· 존나 올려치기 하네;; 기껏해야 B급 아니, C급 헌터라는 거에 내 새끼손가락 건다
나는 조용히 힐러용 노트북 화면을 옆으로 틀었다.
내 뒤에서 화면을 보던 애착이들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조용히 악플들을 읽던 애착이들이 기함을 토했다.
"훈육! 필요! 동물! 왈왈!"
"참교육 해야함. 복무신조 밤새 읊게 해야함."
"매로··· 세게···맞아야 해요··· 두 번···"
그 착하던 애증이조차 세게 '두 번'이나 맞아야 한단다.
애증이조차 열 받게 하는 악플인 셈.
끄덕.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비장한 표정으로 마우스를 잡았다.
"애착소대."
애착소대가 기다렸다는 듯 소총을 위로 치켜들었다.
그 모습은 저 중동의 위험한 집단 모습과 매우 흡사했다만···
다행히 얼굴이 순해서 괜찮았다. 아마도.
철컥!
나는 마우스를 누르며 비장하게 말했다.
딸깍.
"악플러 혼내 주자고."
***
"음?"
S급 헌터 박태우는 뒤를 홱 돌아봤다.
하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뭐지? 분명 뭔가 기감에 잡혔는데?"
자신은 A급도 아니고 무려 S급 헌터다.
벌레의 기감조차 잡을 수 있다는 소리.
"벌레인가."
박태우 헌터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앞에 떠오른 게이트.
"아··· 내가 F급 게이트 따위를 공략해야 해? 존나 쪽팔리네."
박태우 헌터는 앞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칙칙, 화륵.
"후우우우··· 아오··· 최주혁 그 새끼는 어떻게 S+ 공략 방법을 알아낸 거지?"
자신의 촉은 확실했다.
애착대장은 분명 최주혁이다.
만약 다른 S급이었다면, 이미 헌스헌에 올려서 자랑질을 했을 만한 놈들이다.
S+ 공략을 하고도 조용히 있을 헌터는, 최주혁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정도로 멍청한 녀석이었으니까.
"내가 최주혁이었으면 진짜··· 떼돈을 긁어모았을 텐데. 멍청한 놈."
최주혁은 방송에도 나오지 않고, SNS도 하지 않았다.
그저 길드 운영, 게이트 공략, 길드 운영, 게이트 공략.
더럽게 재미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다 가식이고 거품이지. 최주혁 새끼."
그랬다.
박태우 헌터의 헌스헌 닉네임은 '국민거품최주혁'이었다.
그의 직업은 '환술사'.
어차피 기본적으로 닉네임은 익명 보장이고, 대외적으로 보일 때 닉네임은 환술을 사용해 다르게 보이게 설정하면 그만.
그것은 환술사의 능력 중 아주 작은 것에 불과했다.
"레드 리자드, 블루 리자드 다음은 당연히 블랙 리자드겠지?"
헌터협회 직원들에게 환술을 이용해, S+ 공략에 대한 정보들을 하나둘씩 모았다.
아직 성공한 적 없다만, 자신이 누군가.
S급 헌터다. 곧 성공할 것이 분명했다.
처음 2번은 '애착대장' 최주혁이 가져갔지만.
3번째부터는 다시 뺏으면 그만이다.
"자, 공략해볼까."
박태우 헌터는 게이트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F급 게이트에 입장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가 바라봤던 곳에 새하얗고 작은 물체들이 엎드려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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