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커마는 못 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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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어, 음, 냠.
"뭐여···?"
나는 어느새 착륙한 애버릭을 가리키며 말했다.
"버릭아, 확인 좀 해 봐. 진짜 죽었어?"
"확인!"
애버릭은 쓰러져 있는 페이크마우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살폭살폭.
애버릭은 쥐고 있던 막대기로 꾹꾹 찔렀다.
처음에는 머리를 꾹꾹 눌렀고, 그 다음엔 가슴으로 추정되는 곳, 팔다리 이곳저곳.
페이크마우스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진짜 죽은 모양.
하긴 레벨업 했다는 상태창도 떴으니 죽은 건 확실했다.
다만, 죽은 과정이 워낙 어이가 없어서···
"그렇게 죽어버린다고?"
이거 완전 그거 아니냐.
반으로 갈라져서 죽어?
나는 힐러인데요?
왜 즉사기가 발동한 거지?
나는 '집구석에서 즉사기를 발동하였습니다'가 아니라 '집구석 힐러'를 지향하고 있다고!
<C급 게이트는 5분 후 폐쇄됩니다>
어익후, 얼른 우선 나가야겠다.
게이트 공략에 성공했는데도 나가지 않으면 그대로 게이트에 갇힌다.
게이트에 갇힌 사례가 좀 있는데 그들은 그대로 실종 처리.
실종 처리 당하고 싶지 않으면 나가야지.
휙.
<C급 게이트에서 탈출하였습니다>
철썩!
처어어얼썩!
밀려오는 파도가 우리를 반겨줬다.
애버릭과 애증이 역시 ㅇ_ㅇ;; ㅡ_ㅡ;; 살짝 황당한 표정.
얘들아, 제일 황당한 건 나란다.
한번 스킬창에 나와있는 스킬 설명 좀 읽어봐야겠다.
엥? 스킬을 얻었는데 설명도 안 읽어본 거 쓴 거냐고?
아니, 전자제품 사고 사용설명서 읽는 사람 있냐고!
마찬가지란 말씀!
여튼, 우선 상태창부터 확인해 보고.
"상태창."
===================
<상태창>
◆이름: 한지우(*소대장)
◆레벨: Lv30
◆특성: 지원
◆직업: 프리스트(힐러)
◆등급: S
※S급 특전: 힐러용 노트북 지급
※S급 특전2: 매일 쪽지 100회 무료
※S급 특전3: 커스터마이징 기능 활성화 - '커마 상점' 이용
<스킬창>
※자세히 보기
===================
어라, 잠깐만.
스킬창으로 넘어가기 전에 눈에 띄는 부분이 생겼다.
원래 특전은 2개뿐이었는데?
"커스터마이징 기능 활성화?"
기다렸다는 듯 떠오르는 상태창.
<커스터마이징 기능을 활성화하겠습니까?>
쓰읍, 커마는 못 참지.
"활성화!"
<커스터마이징 기능이 활성화됐습니다>
<파티원을 꾸밀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아이템을 원할 경우 '커마 상점'을 이용하십시오>
커마 상점? 이야, 이거 완전 본격적이었다.
슬금슬금.
애버릭과 애증이가 어느새 내 양옆에 자리잡고 있었다.
마치 범죄자를 호송하는 형사들과 같은 모습.
가뜩이나 맑은 눈에서 광기가 흐르던 녀석들의 눈동자에서 탐욕이 느껴졌다.
"...커마하고 싶나보지?"
"추어어어어어어어엉엉성! 그으으으으으으으으저정!"
"녬···"
??? 방금 뭐야.
애버릭의 우렁찬 충성 소리 다음에 뭐였지?
분명 듣기만 해도 힘이 쭈욱 빠지고 풍선에서 바람 새어나가는 소리가 들렸는데?
"애증아, 혹시 방금 네가 말한 거야?"
애증이가 손발을 꼼지락거리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녬···"
뭐야, 왜 이렇게 말투가 하찮고 귀엽지?
레벨업을 하면서 말도 할 수 있게 된 모양이었다.
"잘 됐네. 드디어 소통이 한결 편해지겠어."
"긍정!"
"녬···"
나는 곧바로 '커마 상점'을 켰다.
켜는 방법은 간단했다.
상태창에 떠있는 특전 부분을 누르면 됐다.
<'커마 상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어떤 파티원을 커스터마이징 하겠습니까?>
"우선, 애버릭!"
<파티원 '애버릭'을 선택하였습니다>
<커스터마이징할 컨셉을 고르십시오>
<선택한 컨셉은 향후 30일 동안 변경하지 못합니다>
원래 커마는 30일마다 바꿔주는 게 국룰이다.
매달 새로운 컨셉이 출시되니까.
원치 않으면 원래 애착인형 컨셉으로 돌려놓으면 그만.
띠잉.
눈앞에 컨셉 종류들이 떠올랐다.
군인 같은 군복도 입을 수 있고, 양복을 입을 수도 있으며 심지어 몬스터 외갑을 입을 수도 있었다.
"흠, 컨셉이 다양하네."
손으로 슥슥 슬라이드를 하던 도중에 내 손가락이 멈췄다.
역시... 이건가.
스윽.
나는 슬쩍 애버릭을 바라봤다.
짧디 짧은 몸뚱아리.
이 옷이 맞을까···?
칼각을 잡으려면 팔다리가 좀 길어야 할 텐데.
음, 헷갈리면 뭐다?
당연히 해보면 되지.
"오케이, 이 컨셉으로 할게. 애버릭은 어때?"
"그그그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정!"
어어, 그래. 엄청 좋아하는군.
진즉에 인형옷이라도 입혀줄 걸 그랬다.
맨몸으로 다녔으니 얼마나 추웠을까.
미안하다, 못난 주인이다.
<컨셉 '하늘의 지배자'를 선택하였습니다>
<커스터마이징이 활성화됩니다>
화아아아악!
동시에 애버릭의 몸에서 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오, 뭐야."
빛이 사라지고 나타난 건 ㅡ_ㅡ 늠름한 표정의 애버릭.
분명 팔다리가 길쭉한 전투기 조종복이었는데 애버릭에 사이즈가 맞춤화 돼 있었다.
심지어 조종사들이 쓰는 베레모가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하사 애버릭!"
"...?"
병장이 아니라, 하사? 고새 진급했니?
표정을 보니 매우 흡족한 표정이다.
특히 왼쪽 상의에 새로 새겨진 V 모양의 계급장이 마음에 든 모양.
"하사 애버릭!"
"만족했으면 됐지. 그럼 이번엔 애증이로···"
<컨셉 '야전의 군인'을 선택하였습니다>
<커스터마이징이 활성화됩니다>
엥? 저기요? 파티장은 저인데요?
애증이가 어느새 마음대로 커마 상점 상태창을 눌러버렸다.
뭐 다행히 '오크' 커마 같은 건 선택하지 않아서 다행이다만.
그런데 또 군인···?
화아아아악!
하얀 빛이 애증이를 뒤덮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아주 천천히, 느리느릿하게 커지는 하얀 빛.
후우욱.
빛이 사라지고 군복을 입은 애증이의 모습이 드러났다.
어, 그런데 애버릭과는 확연히 다르다.
아까는 전투기 조종사처럼 매끈한 군복이었다면.
이건 진짜 야전의 군인 그 자체.
탄약띠에는 야삽과 수통 등이 매달려 있었다.
심지어 등에는 군장까지 들고 있었다. 뭐야? 어디서 났어?
"벼, 병장··· 애증이···예요···"
애증이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관등성명을 댔다.
너도 진급했니? 축하한다.
진급한 덕분인지 애증이도 풀문장으로 말하고 있었다.
다만 말꼬리에 힘이 없어서 듣는 사람도 힘이 빠진다는 게 단점이긴 하다만.
여튼, 커마를 해놓으니 훨씬 소대 같고 좋았다.
맨몸으로 싸우는 것보단 낫지 않겠어?
"이젠 스킬 설명을 다시 봐야지. 스킬창!"
+
<서브 스킬: 원격 제거(LV1)>
=대상자 몸속에서 발견한 이상 부위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스킬 발동시 현재 레벨 기준 최대 1cm 미만 무작위
=스킬 '원격 진료' 하위 서브 스킬들과 연계돼 있습니다
=이상 부위는 급소, 환부 등을 뜻합니다
+
"아까 이상 부위는 급소를 말했던 건가?"
그럼 모든 현상이 설명됐다.
페이크마우스의 급소가 보였고 당연히 그곳을 1cm 정도 없애버리면 죽는 게 당연하다.
만약 무작위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즉사하지 않았겠지만, 무작위 결과마저 좋았다.
이거 완전 힐러가 아니고 킬러 아니냐?
그런데 그때였다.
우우우우우웅.
책상 위에 올려놓았던 스마트폰이 마구 울렸다.
삼영그룹 주용호 사장이 절대 어떤 해킹이나 위치추적도 걸 수 없다며 선물해준 무적의 스마트폰.
목소리도 자동변환되어서 내 목소리를 들킬 염려가 없었다.
이미 한이슬에게 장난전화를 걸어 혹시 모를 보안 테스트도 성공적으로 끝냈다.
반짝반짝.
굳이 배경화면을 전환하지 않아도 스마트폰이 있는 곳 위치가 황금빛으로 반짝거렸다.
아주 훌륭하고 편의적인 시스템이군.
"네, 여보세요."
스피커 너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 선생님! 접니다, 주용호! 바쁘실 텐데 정말 죄송합니다. 전화를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다급한 목소리인데도 불구하고 예의를 차리는 주용호 사장.
아주 칭찬한다. 태생이 예의가 바르군.
"네, 무슨 일이세요?"
-아,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셨습니다··· 저희 그룹 병원으로 빠르게 모셔갔지만···
-의사들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 선생님밖에 떠오르지 않더군요··· 민폐인 것을 압니다만···
잠시간의 정적이 흐르고,
-...제발 도와주십시오, 선생님.
나는 고민을 했다.
물론 사람의 생명이 위험에 빠졌다는데 도와줘야지.
심지어 아는 사람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냥 돕는 건 원치 않았다.
지금은 S급 힐러인 한지우다.
'악! 내 물약!' 같은 불가촉천민 취급 받는 힐러를 다시 귀족으로 만들 것이라 다짐하지 않았던가.
엥, 언제부터 그랬냐고? 어제부터 그랬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스피커 너머에서 주용호 사장이 재빠르게 덧붙였다.
-당연히 충분한 보상을 드릴 겁니다! 계약서 보내드립니다!
우웅.
진동과 함께 스마트폰에 도착한 계약서.
사람 목숨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다는 게 불가능하다지만.
만약, 냉정하게 사람 목숨을 가치화한다면 주환기 회장의 가치를 제대로 본 계약서였다.
계약서를 스윽 읽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갑니다. 주소 찍어주세요."
-가, 감사합니다! 선생님!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나는 슬쩍 옆을 바라봤다.
늠름해진 애버릭과 애증이.
원래도 믿음직스러웠지만.
커마한 이후로 더더욱 믿음직스러웠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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