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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y 0601

웹소설 > 자유연재 > 라이트노벨, 드라마

완결

baekmirr
작품등록일 :
2022.03.17 03:29
최근연재일 :
2022.07.06 03:03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934
추천수 :
0
글자수 :
81,193

작성
22.05.27 07:49
조회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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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8쪽

박카스 한 병

DUMMY

대한고등학교 근처 스터디 카페.



- 너 교과서 외우니? ㅋㅋ 잠깐 쉬는 타임!



이표는 국어교과서 위로 작은 쪽지가 툭 떨어지자 정신이 번쩍 들며 깊은 생각에서 벗어났다.


옆자리에 앉은 현진은 30분전쯤에 이표에게 수학문제를 물어보려다 그가 국어교과서를 펴놓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을 보고 나중에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직까지 같은 페이지를 쳐다보고 있는 그를 보며 졸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표는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현진이 들어간 휴게실쪽을 쳐다보았다.


맞은편에서 중권과 제니가 나란히 앉아 같은 수학문제집을 풀고 있는 것을 확인한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조용히 휴게실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담임은 교장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혼자 이표에 대한 신상정보를 캐보려 애를 썼지만 교육청등 관공서에서 열람신청을 거부하여 결국 포기해야만 했다.


자살소동을 벌이던 그 선배는 사건 다음날부터 학교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데 학생들 사이에선 그가 강제전학을 당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전교생들의 큰 관심을 받으며 며칠동안 학교에서 시달림을 받아야했던 이표는 중간고사 기간이 다가오면서 학생들의 관심에서 점점 벗어날 수 있었다.


또한 자살소동 장면이 담긴 동영상도 결국 존재하지 않았는데 학생들중 누군가가 분명히 촬영할 것이라 믿었던 당의 예측이 보기좋게 빗나간 것이다.


조만간 언론에 그 탈북자 브로커의 피살사건이 보도되고 그 선배의 안타까운 소식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이표는 초조한 마음에 며칠동안 악몽에 시달렸는데 항상 마지막에는 그 선배가 살려달라고 외치는 모습에 놀라며 잠에서 깨곤 했다.


그가 휴게실에 들어서자 현진은 종이컵에 든 아이스커피를 건네며 간이 테이블쪽으로 가서 작은 의자에 앉았다.


휴게실은 음료를 마실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지만 방음시설이 잘 되어있어서 웬만해선 밖으로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는다.



"너 요즘 좀 피곤해 보여? 요즘에 뭐 해?"



종이컵에 든 아이스커피를 한모금 마시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든 이표는 그녀의 맞은편 작은 의자에 앉았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그녀와 마주 보는 것은 처음이다.



"아니, 괜찮아. 그냥 집중이 안되네."


"너 방금 졸았지?"



현진이 작게 웃으며 말하자 그는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차마 말할 수 없어 적당한 핑곗거리를 생각해 냈다.



"'삼포 가는 길'에서 새가 모여 드는 것의 의미를 전혀 모르겠어. 그게 왜 인물들과 대조적이야?"



그가 갑자기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소설이야기를 꺼내자 현진은 손으로 입을 막으면서 소리내어 웃었다.


"그건 그냥 해설 보면서 '그렇구나'하고 이해하면 돼. 누가 그거 읽고 그런 생각을 해?"


"그런거야? 난 아무 생각도 안들어서 답답했는데..."


"그거 때문에 30분동안 같은 페이지만 봤던 거야?"



이표는 더이상 대꾸하지 않고 커피를 한 모금 삼키면서 그녀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녀와 같이 있으면 항상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가벼워진다.


북에서 교육시간에 사랑이나 동정심, 외로움과 같은 감정은 사상무장에 독이 될 뿐이라고 배웠지만 아직 17세에 불과한 자신이 감정을 통제하는 것은 어려울 수 밖에 없다고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야, 둘이서 뭐하는거야? 이제 드디어 둘이 사귀나?"



중권과 제니가 언제 들어왔는지 휴게실 문을 닫히면서 중권의 목소리가 좁은 공간에 크게 울려퍼졌다.



"야 조용히 해. 밖에 다 들려."



그들이 갑자기 들어와 둘만의 시간이 짧게 끝나버리자 현진은 공연히 중권에게 화를 냈다.



"아냐, 이 스터디 카페는 서울에서 방음시설이 최고야. 절대 안들려. 절대."



그가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음료를 들고 테이블로 다가오자 이표는 빈 종이컵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려고?"


"가야지. 여기 어떻게 네 명이 다 있어?"


"아, 그냥 우리가 서 있을게. 제니야, 너도 서서 마셔도 되지?"


"그래. 좀 있다가 가."



제니가 셀프음료바 앞에 서서 그냥 앉으라는 손짓을 하자 이표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잠시 서 있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야, 우리 오늘 범죄도시2 보러갈래? 마동석하고 손석..손석구? 암튼 걔들 연기 개쩐대."


"너 혼자 가. 지금 시험 며칠 남았다고..."



제니가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싫다는 반응을 보이자 중권은 현진을 쳐다봤다.



"나도 안 가. 난 그런 영화 싫어 해."


"그럼 이표 넌?"



중권이 맥이 빠진 표정으로 이표를 쳐다보자 이표는 작년 11월 남조선 영화 '오징어게임'을 밀반입한 주민이 사형을 당하고 그 영화를 시청한 학생들이 줄줄이 교화소로 끌려갔던 것을 떠올렸다.



"나도 싫어. 난 영화 별로 안 좋아해."


"그래? 그럼 나 혼자라도 보러 간다. 원래 영화는 혼자 보는 거야."



그가 지금 당장 예매를 하겠다는듯 스마트폰을 꺼내자 그를 힐끔 바라 본 제니가 못마땅하다는 듯 인상을 썼다.



"야, 그냥 시험끝나고 다 같이 보러 가. 혼자 뭐하는 거야?"


"그럼, 넌 가긴 할거야?"


"그래"



중권이 앱을 닫고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자 현진과 이표가 동시에 의자에서 일어났다.


현진은 범죄영화를 싫어하고 이표는 영화 자체를 싫어한다.


중권은 제니와 둘이서 영화를 볼 수 있을거란 생각에 혼자 몰래 미소를 지으며 휴게실 문을 열었다.


----------------------------------------------------


3시간 후.


스터디 카페 입구에서 나오는 그들앞으로 빈 박스와 폐지를 가득 실은 리어카 한 대가 지나갔다.


이표는 리어카를 힘겹게 끌고 있는 할머니를 보자마자 리어카 앞으로 재빨리 뛰어갔다.



"할머니, 이 무거운 짐을 끌고 혼자 어딜 가세요?"



중권, 제니, 현진은 그가 몸을 숙여 리어카 손잡이 안으로 들어가자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이표에게 리어카 손잡이를 맡긴 할머니는 옆으로 물러서더니 허리를 굽은 채로 그를 바라봤다.



"이쪽으로 가면 되요? 가면서 말해주세요."



리어카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세 사람은 얼떨결에 리어카 뒤로 다가가 다 같이 리어카를 밀었다.


빈 박스들과 폐지들이 생각보다 무겁다고 느낀 이표는 고개를 돌려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 그런데 이것들 가지고 뭘 하시려는 거에요?"



그는 혼자서 무거운 짐을 옮기는 할머니를 아무도 돕지 않는 이 남조선 사회가 비인간적이라고 느끼면서도 이 박스들과 종이들의 용도가 문득 궁금해졌다.


할머니는 말없이 손으로 이표에게 방향만 알려주었는데 대략 30분 후 리어카는 어느 고물상 앞에 도착했다.


고물상 안쪽으로 들어가자 사무실에서 주인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나오더니 할머니를 알아보고는 꾸벅 인사를 했다.


그는 교복을 입은 네 학생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없이 리어카의 짐들을 대형 철판 저울로 된 바닥에 거칠게 내려놓았다.


저울옆 작은 화면에 그 박스와 폐지들의 무게가 표시되자 그는 주머니에서 5000원짜리 지폐를 꺼내어 할머니에게 건냈고 할머니는 고개를 숙이며 두 손으로 그 지폐를 받았다.


52kg 에 5000원.


이표는 카페에서 파는 음료 한 잔 값의 돈을 받고 할머니가 처음으로 웃어보이자 가슴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북에서 사상교육시간에 배웠던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낮은 계급'의 모습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할머니가 기분이 좋은 듯 주머니에서 박카스 한 병을 꺼내더니 이표에게 건내자 중권, 제니, 현진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고...고맙습니다."



박카스를 받은 이표가 고개를 숙이자 할머니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그 순간 그의 눈에 고여있던 눈물이 바닥으로 주르륵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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