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JNH

Spy 0601

웹소설 > 자유연재 > 라이트노벨, 드라마

완결

baekmirr
작품등록일 :
2022.03.17 03:29
최근연재일 :
2022.07.06 03:03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940
추천수 :
0
글자수 :
81,193

작성
22.04.16 03:30
조회
45
추천
0
글자
6쪽

이은해

DUMMY

벤치에 혼자 앉아있던 이표는 텅 빈 농구장에서 바람이 불 때마다 시끄럽게 굴러다니는 음료수 캔 하나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남조선 학생들은 겉으로는 화려하고 남부러울 것 없이 보이지만 다른 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해 우울증에 걸리고 자살을 기도하기도 한다.


평양에서 사상교육시간에 '남조선 사람들은 모두 천민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 우울증에 걸려서 시달리다가 결국 자살한다'는 말을 들으며 지나치게 과장된 내용이라고 흘려들었었지만 방금 중권은 그 내용이 일부 사실임을 확인시켜 줬다.


순진한 학생들마저 돈의 노예가 되어 친구들을 괴롭히고 그 괴롭힘을 당한 친구들은 이를 견디다 못해 자살을 한다.


이표는 차라리 그 불량선배들을 못만난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만약에 그들과 몸으로 싸웠다면 큰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여러 명이 동시에 공격해오면 막을 재간이 없고 특수훈련때 배운 잔인한 기술들이 본능적으로 나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면 결국 정체가 탄로나서 지난 일년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그는 갑자기 평양에 있는 부모님과 여동생을 떠올리며 가슴속으로 깊이 파고드는 외로움을 느꼈다.


어쩌면 평양을 떠나기 전 가족들과 나눴던 그 인사가 그들과의 마지막 대화였는지도 모른다.


이런 낯선 땅에서 완전 위장을 하여 최상위 엘리트계층이 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당이 내린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북으로 돌아갈 수 없고 이곳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해야 한다.


그래야 가족들이 무사할 수 있다.


갑자기 허탈한 기분이 든 그는 긴 한숨을 쉬며 벤치에서 몸을 일으켰다.


교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던 이표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는데 멀리 어딘가에서 사람의 고함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여학생의 목소리다.


농구장을 한바퀴 휙 둘러본 그는 주위에 아무도 보이지 않자 자신의 신경이 너무 예민해졌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교실쪽으로 향하다가 무언가가 철문에 쿵쿵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몸을 굳혔다.


그는 제자리에 서서 가만히 소리를 듣다가 고개를 돌려 농구장 구석에 있는 나무자재들을 쳐다보았다. 천천히 소리나는 쪽으로 걸어가던 그는 나무 자재들 앞까지 와서 깜짝 놀랐는데 자재들 바로 뒤에 작은 창고가 하나 보였다.


높이 쌓인 나무 자재들에 가려져 있어서 가까이 오지 않으면 볼 수가 없다.


붉은색 페인트가 거의 다 벗겨진 허름한 철문에는 그곳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자물쇠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야, 이년아 누가 너보고 돈 가져오래?"


"그건 진짜 못 해. 제발 부탁이야."


"아니 이게 그래도 사람 말을 못 알아듣네. 너 진짜 인터넷에서 그 사진들 보고 싶어?"


"한 번만 봐 줘. 은해야. 그거만 빼고 니가 시키는 대로 다할게. 진짜야."


"이게 학교생활 편하게 해주니까 잘난 줄 알지?


"제발 부탁이야. 이렇게 빌게. 한 번만 살려 줘"


"이런 미친 년이. 누가 너보고 죽으래?"



그들의 대화를 듣던 이표는 어떤 여학생이 다른 여학생들에게 심하게 협박을 당하고 있다고 느꼈지만 지금 자신이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얼른 몸을 돌렸다.


그 순간 갑자기 철문이 덜컹 열리면서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마지막에 머리가 심하게 헝클어진 작은 체구의 여학생 한 명이 나왔는데 눈물범벅이 된 그녀의 얼굴에는 피에 절은 머리카락이 엉겨붙어 있었다.



"이건 또 뭐야?"


"......"


"아까 도망간 그 놈이잖아."


"어? 그러네."


"......"


"너 여기서 뭐했어?"


"예?"


"우리가 하는 얘기 엿들었어?."


"아..아뇨 그냥 지나가다가..."



그 여학생들은 앞에서 머뭇거리고 서 있는 이표를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너 우리가 누군지알아?"


"네? 모르는데..."



그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여학생이 낄낄거리며 웃자 옆에 있던 대여섯 명의 여학생들이 따라 웃었는데 이표는 그들의 뒤에서 협박을 당한 여학생이 고개를 숙인채 가만히 서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얼굴은 반반해 가지고..."


"......"


대장으로 보이는 그 여학생이 가까이 다가오자 이표는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뭐야? 홍이표?"


가까이 다가와 이표의 명찰을 확인한 그녀는 이표를 위아래로 쭉 훑어보았는데 순간 이표는 아까 벤치에서 재원이라는 놈 옆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여학생이 얼핏 떠올랐다.


눈화장을 하고 짧게 줄인 체육복 바지를 입고 있던 여학생이다.



"야, 아까 재원이 뭐라고 하디? 얘 어떻게 한대?"


"내일 점심때 교실로 찾아간대."


"으이구, 이 불쌍한 놈..."


그녀는 안됐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동안 이표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그와 눈이 마주치자 피식 웃었다.



"야, 가자."



몸을 돌린 그녀는 멀리서 협박을 당했던 그 여학생이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을 보더니 크게 소리쳤다.



"야, 넌 이제 꺼져. 나중에 수업마치고 오면 돼."



그때 점심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렸는데 그들은 잠깐동안 서로 무슨 얘기를 주고받더니 빠른 걸음으로 농구장을 떠났다.


이표는 가만히 서 있는 그 여학생에게 천천히 다가갔는데 가까이서 보니 그녀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저기...혹시 무슨 일이신지..."



그녀는 이표를 쳐다보지도 않고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울었는데 이표는 무슨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이 순간 자신은 그녀에게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표는 5교시가 무슨 수업이었는지 잠시 생각하다가 그녀가 말없이 계속 서 있자 그냥 교실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괴롭힘을 당하다가 자살을 하는 학생이 있다'는 중권의 말이 마음에 다소 거슬렸지만 처음 보는 이 여자 선배의 사연을 듣기 위해 수업을 빼먹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가 교실쪽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그 여학생의 입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는데 이표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그녀쪽으로 다시 돌았다.


"좀 도와줘."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Spy 0601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4 청년의 꿈 (최종회) 22.07.06 29 0 11쪽
23 평양시 송화1동 22.06.26 26 0 8쪽
22 Tears in Heaven 22.06.20 28 0 10쪽
21 빨간색 플라스틱 조각 22.06.14 27 0 8쪽
20 여동생의 비밀, 접선 22.06.10 28 0 9쪽
19 비상사태 22.06.06 28 0 8쪽
18 박카스 한 병 22.05.27 27 0 8쪽
17 VX 스프레이 22.05.24 25 0 7쪽
16 남조선식 성교육 22.05.18 31 0 8쪽
15 당신을 위해 준비했어요 22.05.13 30 0 7쪽
14 괴물 22.05.11 38 0 8쪽
13 유자차 22.05.04 39 0 7쪽
12 안재욱의 '친구' 22.04.29 44 0 7쪽
11 교장을 바른 여학생 22.04.22 40 0 8쪽
10 조건만남의 미끼 22.04.20 44 0 9쪽
» 이은해 22.04.16 46 0 6쪽
8 침묵하는 아이들 22.04.13 43 0 8쪽
7 일진 22.04.09 45 0 6쪽
6 반장선거 22.04.06 48 0 9쪽
5 몸이 기억하는 것 22.03.30 52 0 7쪽
4 동무 여러분 22.03.25 47 0 6쪽
3 네임펜 22.03.23 54 0 7쪽
2 나이키 운동화와 인스타그램 22.03.20 55 0 7쪽
1 자본주의 냄새 22.03.18 67 0 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