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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그다르 님의 서재입니다.

더 팔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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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그다르
작품등록일 :
2012.11.30 22:01
최근연재일 :
2014.03.09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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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2.12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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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더 팔라딘(The Paladins)-71화: 브라이튼(Breiten)의 공주

DUMMY

토후바는 히아신스에 대해 경계를 풀고 있었다. 그는 명검 페어리스트를 지팡이 삼듯 기대고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했다.

“아가씨의 신분이 드러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살모사왕이라고 불리는 칼리그렌이 아가씨를 그대로 놔둘 것 같나요?”

“살모사 왕이라뇨!?”

그녀는 칼리그렌을 살모사라 부르는 토후바에게 발끈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이내 시무룩해졌다. 만약에…… 그러니까 만약에라도 칼리그렌이 자신을 붙잡을 가능성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풀죽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실…… 우리 엄마도 그것 때문에 함부로 신분을 밝히면 안된다고 했어요.”

“맞습니다. 아마도 칼리그렌은 아가씨를 붙잡고 아가씨의 왕국에 협박을 할 겁니다. 때문에 여기서 아가씨의 정체가 발각되면 안되는 것이죠.”

히아신스는 말이 없었다. 토후바는 씨익 웃더니, 안내하는 형식으로 손을 펼쳤다.

“그럼 가실까요? 아가씨?”

“잠깐요!”

그녀가 갑자기 토후바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아저씨는 기사단원이라면서요? 근데 기사단원이 이렇게 치사한 수를 써도 되는 건가요? 남의 약점이나 잡고…….”

히아신스의 말에 토후바는 일순 당황하였다. 하지만 이내 그는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둘러대기 시작했다.

“흠! 그건…… 음…… 사실 연약한 숙녀를 힘으로 제압하는 것이야말로 기사단원으로선 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아가씨를 신사적인 방법으로 모셔가려고 했던 것이죠.”

하지만 그의 말은 히아신스를 발끈하게 만들었다.

“연약하다구요!? 제가?”

그녀가 소리치는 바람에, 길을 가던 사람들은 히아신스와 토후바를 바라보게 되었다. 토후바는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그녀를 만류하였다.

“조용하십시오. 여기서 이러시면 더욱 일이 커집니다.”

그때 병사들의 큰 외침이 들려왔다.

“비키시오! 비키시오!”

그리고 곧바로 사람들의 웅성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병사들의 연이은 함성과 함께 사람들이 몰아닥쳤다. 그 인파에 히아신스는 밀려났고,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뭐야? 저건?”

사람들은 길가 양 옆에 길게 늘어서 있었으며, 사슬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열을 맞추어 행진하고 있었다. 병사들은 사자문장이 새겨진 코트를 갑옷 위에 걸쳐 입고 있었는데, 히아신스는 사자문장이 낯익다는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이 문장을 예전에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건 브라이튼 왕가의 문장인데?’

병사들 뒤로 붉은색의 마차가 오는 것이 보였다. 마차는 백색의 말들이 이끌고 있었는데 말들은 하나같이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고르고 고른 명마들임에 분명했다. 또한 마차의 테두리는 금박으로 장식이 되어있었는데, 붉은색과 어울려 상당히 고급스러워보였다.

마차가 지나갈 때마다 남자들은 자신의 모자를 벗어 가슴께로 내리고 있었다. 그중 한 사내가 모자를 흔들며 소리쳤다.

“공주님께 평강이 늘 함께하시길!!”

평강신 플라투스는 서방대륙에서 보편적으로 믿어지는 신이었다. 이 사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많은 남자들이 플라투스의 이름과 함께 공주에게 축복을 빌어주었다.

잠시 후, 마차의 커텐으로 가느다란 손이 슬며시 나왔다. 장갑을 낀 이 손은 마차의 커텐을 조용히 걷었다. 순간 사람들의 감탄사가 남자들의 함성을 짓눌러버리고 말았다.

미모의 여인이 얼굴을 드러낸 것이었다. 다소 야위어보이는 얼굴에 살짝 튀어나온 이마가 묘한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살짝 돌출한 이마는 그녀를 귀엽게 보이게 하였으나 가녀린 턱선은 그 얼굴에 성숙미를 가미하고 있었다. 다소 붉은끼가 섞인 갈색머리의 이 아가씨는 사람들을 향해 살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히아신스 옆에 서 있던 남자는 숨이 멎을 듯이 감격해하며 입을 열었다.

“벨리시아(Belicia)공주님은 정말 아름다우시군, 마치 여신이 내려온 것 같아.”

“미쳤어요? 여신이 여길 왜 내려와요?”

히아신스는 사내를 밀치고는 관중들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히아신스 앞으로 마차가 지나가기 시작했다.

벨리시아공주의 푸른 눈동자가 히아신스의 눈과 마주쳤다. 두 사람은 신기하다는 듯 서로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히아신스는 아름다운 벨리시아의 눈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재수없어.’

라고 정의할 수 있었다. 한편 벨리시아는 히아신스의 기괴한 행색을 훑어보고 있었다. 사슬갑옷을 입은 여자가 머리를 풀어헤친 채 우두커니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허리께에는 곤봉이 달려 있었으며, 등에는 큰 십자궁을 메고 있었다.

“풋.”

벨리시아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 짓고 말았다. 히아신스의 행색이 너무도 우스웠던 것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커텐을 다시 내렸다. 히아신스는 그녀의 미소에 기뻐하며 옆의 아줌마에게 물었다.

“와! 저 사람이 절보고 웃었어요! 제가 마음에 들었나봐요! 난 재수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줌마는 미소를 지으며 히아신스에게 대답했다.

“축하해요. 아가씨도 공주님처럼 좋은 사람에게 시집갈 거에요.”

히아신스는 아줌마의 말에 기뻐했다. 그녀의 머릿속엔 칼리그렌과 결혼식을 올리는 자신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하하. 고마워요. 그런데…… 저 브라이튼 공주는 누구랑 결혼하는데요?”

아줌마는 그것도 모르냐는 듯이 놀라면서 대답했다.

“몰랐어요? 우리의 국왕이신 칼리그렌님과 결혼하잖아요?”

“네에에에에에에엣!!!?”

히아신스는 전신이 얼어붙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줌마는 웃으며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선남선녀가 따로 없지 않나요? 우리 에투렐리아가 강성해지니 브라이튼에서 공주님을 보내는 거라고요. 소문으로 듣기엔 벨리시아 공주님도 매우 영리하다고 하는군요. 두분이 결혼하시면 그 후세도 분명 똑똑한 아이가 나올테고…….”

토후바는 인파 사이를 간신히 비집고 나오더니 히아신스의 팔을 붙잡았다.

“아가씨, 이제 돌아갑…….”

“이거 놔요!”

히아신스가 거칠게 팔을 뿌리치자 토후바는 놀라고 말았다. 히아신스는 씩씩거리며 아줌마에게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오늘 결혼식을 올린다는거죠!? 왜 난 그것도 몰랐던 거지!?”

히아신스는 마음 한켠에 배신감까지 드는 것을 느꼈다. 이런 중대한 일을 칼리그렌 국왕 뿐만 아니라 제이드만까지 자신에게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했다.

하지만 아줌마는 손사래를 치며 웃을 뿐이었다.

“호호호. 오늘 결혼하는건 아니에요. 오늘은 그저 벨리시아 공주님이 이곳을 방문하는 것 뿐이죠. 그전부터 오신다 오신다 소문을 듣기만 했는데, 드디어 실물을 보는군요. 정말 오늘은 너무 기쁜 날이에요. 마치 시집오는 새댁을 검사하는 시어머니의 느낌이라고 할까? 어쨌든 일단은 합격이에요! 호호…….”

아줌마의 웃음은 히아신스의 얼굴이 이그러지는 것을 발견하고는 점점 사그라들었다. 한편, 토후바는 우두커니 서 있는 그녀에게 다시 경고하였다.

“흠. 흠!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저와 함께 돌아가지 않으실거면 저는 어쩔 수 없이…….”

“돌아갈래요.”

히아신스의 말에 토후바는 다시 놀랐다. 히아신스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다시 말했다.

“돌아가겠어요. 이곳은 제가 있을 곳이 아니었어요.”


× × × × ×


한편, 에투렐리아의 총리대신 갈락서스는 호들갑을 떨며 국왕의 집무실로 들어섰다.

“국, 국왕폐하!”

칼리그렌은 책상에 앉아 문서를 점검하고 있었다. 그의 머리칼은 빗질이 되지 않았는지 헝클어져 있었으며, 가슴께엔 음식소스가 묻어있었다. 식사를 하면서 일을 했기 때문이었다. 칼리그렌은 예를 갖추던 갈락서스를 제지하며 말했다.

“격식은 안갖춰도 되네. 중요한 일이 있다면 얼른 이야기해.”

허리를 구부리던 갈락서스는 고개를 들며 물었다.

“제가 중요한 일 때문에 왔다는 것을 어찌 아시나이까?”

“그렇지 않으면 그대가 이토록 황급하게 들어올리가 없으니까. 그런데…… 무슨 일인가? 어디서 반란이 일어났나?”

“아니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큰일이 일어났나이다!”

이 순간 칼리그렌은 레드드래곤 기가비어턴이 나타났다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갈락서스의 표정이 즐거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장난치지 말로 얼른 말하게. 아! 혹시 나의 생일인가? 아니, 생일은 아직 더 있어야 할텐데…….”

갈락서스는 두 주먹 꾸욱 쥐며 대답했다.

“브라이튼의 벨리시아 공주님께서 오셨나이다!”

칼리그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잠깐, 그게 벌써 오늘인가? 생각도 않고 있었군.”

“생각지도 않으셨다니요? 지금이라도 의복을 갈아입으시고 준비를 하소서!”

“굳이 그래야 하나? 지금 이대로의 복장도 괜찮은데 말이지.”

“아니되옵니다! 이런 중요한 일에 그런 복장이라니요.”

칼리그렌은 눈을 지푸렸다.

“이보라고. 지금 해야 할 일이 산더미야. 그런데 외국의 공주를 만나야 하나? 사실 말이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그녀가 오는 이유는 브라이튼에서 보내오는 선물을 전달하기 위함이 아닌가?”

“명목상으론 그렇습니다만, 실제로 브라이튼에서 사절로 공주를 보낸 것은 다른 의도가 있기 때문이옵니다. 이를테면…….”

“이를테면, 뭐?”

갈락서스는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국왕폐하와 사돈을 맺으려는 것이 분명하옵니다. 그 전 단계로 공주의 얼굴을 보여드릴려는 것이지요.”

칼리그렌의 얼굴이 더 지푸려졌다.

“그렇다면 나도 본모습을 보여야 옳겠군. 이런 모습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결혼은 무리지 않은가?”

“아니될 말씀이십니다. 브라이튼은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국가입니다만 우리가 북쪽의 패권을 차지할 때에 원군으로 큰 역할을 할 수 있사옵니다! 북방의 폴라리스가 강국이지만 우리와 브라이튼이 양동공격을 하면 금새 그들을 무너뜨릴수 있나이다! 고로 이번일은 중대한 일일줄로 사료되옵나이다! 통촉하시옵소서!”

칼리그렌은 포기했다는 듯이 서류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의자 뒤로 몸을 젖히며 말했다.

“대체 국왕이 뭐가 최고 권력자란거야? 이렇게 잔소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말이지. 어서 의복을 준비하도록 하게.”

갈락서스가 예를 갖추며 물러나자 칼리그렌은 머리를 긁었다.

“쳇. 머리는 언제 감아야 하지?”


하지만 브라이튼의 벨리시아 공주는 저녁이 되어서야 왕궁 매그니움에 도착했다. 때문에 칼리그렌은 충분히 복장과 용모를 정리할 수 있었다. 칼리그렌과 대신들은 알현실에 모여 공주가 들어오기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왕궁에 도착했다는 공주가 여전히 나타나지 않자 대신들은 수근대기 시작했다.

“대체 왜 안오시는 거지?”

“점심 넘어서 도착하셨다고 하던데? 지금은 저녁 아닌가?”

“이거야 원! 우리 국왕폐하를 모독하는 건가? 일개 섬나라 주제에!”

그때 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브라이튼의 벨리시아 공주님께서 오십니다!”

대신들은 더욱 큰 소리로 수근대기 시작했다.

“이제야 나타나는건가!?”

“대체 어떻게 생긴 아가씨길래…….”

알현실의 문이 열리자, 대신들은 모두 입을 다물지 못하게 되었다. 눈부신 아름다움을 지닌 아가씨가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녀의 복장은 굉장히 아름다웠는데, 크게 부풀린 치마와 각종 장신구들이 번쩍거리는 상의를 입고 있었다. 오렌지색의 드레스는 그녀의 붉은끼가 섞인 갈색머릿결과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칼리그렌 또한 그녀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말았는데, 하마터면 왕좌에서 일어날 뻔하였다.

공주 벨리시아는 우아한 걸음걸이로 권좌 아래로 다가와 예를 갖추었다.

“브라이튼의 벨리시아입니다. 국왕폐하의 얼굴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녀는 당황한 칼리그렌의 표정을 보면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칼리그렌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그녀의 인사를 받았다.

“어흠! 칼리그렌이오. 예상외로 늦게 오셨구려.”

“이곳의 날씨가 너무 좋아 햇살을 즐기다가 늦었습니다. 제 고향 브라이튼에선 햇빛을 보기가 힘들거든요.”

“흠. 하지만 왕궁에 도착하시고서도 한참 있다가 들어오신 이유는 무엇인지요?”

벨리시아는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녀는 에투렐리아의 왕궁 매그니움에 도착한 후에 복장을 더욱 화려한 것으로 갈아입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칼리그렌을 당황시키기 위해서인데, 그녀의 계산대로 칼리그렌은 당황하고 있었다.

“여자로서, 국왕 폐하에게 좀더 좋은 모습을 보이고저 했습니다.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몇 차례의 형식적인 인사가 오고간 후, 그녀는 브라이튼에서 가져온 선물들을 소개했다. 금과 은, 그리고 브라이튼에서 가공된 세공품들과 양모로 만든 옷감들…… 특히나 브라이튼의 옷감은 상당히 유명했는데, 가져온 양이 상당히 많았기에 대신들은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아바마마께서 친선의 표시로 이 선물을 받아주시길 원하십니다.”

한편 칼리그렌은 이 많은 양의 선물을 보면서 기가 질려하고 있었다. 받았으면 또한 받은만큼 돌려줘야 하는 것이 관례인지라, 이 많은 양의 선물을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선뜻 떠오르지가 않았다.

“고, 고맙다고 전해주시오. 그런데…….”

“네?”

“어찌하여 대신이 안오고 공주께서 직접 오셨소? 전부터도 짐은 그것이 궁금했소이다.”

벨리시아는 당황하지도 않고 미소를 한번 짓더니 즉시 대답하였다.

“대신들은 이곳에 오는 것을 두려워 했습니다. 살모사왕이라는 그 위세가 널리 알려져서이겠지요. 그래서 제가 이곳에 오는 것을 자원했습니다.”

칼리그렌의 별명 살모사는 비공식적으로 통용되는 말이었다. 헌데 공주의 입에서 살모사라는 별명이 버젓이 나오니 대신들은 수군거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칼리그렌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칼리그렌은 오히려 벨리시아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대가 보시기에 짐은 어떻소? 정말로 살모사로 보이오?”

그의 질문은 상대를 곤란하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살모사왕이라는 이름은 칼리그렌의 위엄을 드러내는 말이기도 하지만 아버지를 죽인 칼리그렌을 비꼬는 말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살모사같지 않다고 말하면 칼리그렌의 위엄을 무시하는 것이 되며, 반대로 살모사같다고 말하면 칼리그렌을 패륜아로 간주하는 꼴이 된다. 칼리그렌은 벨리시아가 어떻게 대답할지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네. 살모사로 보입니다.”

벨리시아의 말에 대신들은 크게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이어 그녀의 말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적들에게만 그렇게 보일 것입니다. 오히려 백성들과 폐하의 보호아래 있는 사람들에겐 천사로 보일 것입니다. 훌륭한 왕은 위엄과 자애를 동시에 지니고 있지 않습니까? 살모사왕이란 이름은 그래서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가 칼리그렌의 질문을 교묘히 빠져나가자, 칼리그렌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적들에겐 살모사로 보인다고 하셨는데, 그대는 짐을 살모사로 본다고 했소. 이건 무슨 의미요?”

“아직은 제가 외인이니까 그렇습니다. 같은 편이 된다면 제겐 천사로 보이겠지요.”

갈락서스는 벨리시아의 말에 크게 기뻐하며 입을 열었다.

“국왕폐하와 같은 편이 된다, 그야말로 양국의 큰 경사가 아닐수 없소이다. 하하하.”

갈락서스는 칼리그렌이 쳐다보자 웃음을 거두었다. 칼리그렌은 벨리시아에게 말했다.

“보내주신 선물 잘 받겠소이다. 너무 많은 선물을 보내주셔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소.”

“과찬이십니다. 저는 오히려 더 선물을 드리고 싶은걸요. 그걸 가져오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벨리시아의 말에 칼리그렌은 호기심을 느끼며 그녀에게 물었다.

“가져오지 못해서 아쉽다니요? 무슨 선물이길래?”

“브라이튼식 장궁(Long bow)입니다. 그걸 가져오지 못한게 아쉽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벨리시아는 알현실을 거닐며 대답하기 시작했다.

“웰마운틴으로 오면서 이곳의 병사들을 보았습니다…….”

사실 그녀가 늦게 온 것은 에투렐리아의 병사들과 갑옷, 무기들을 관찰하고 왔기 때문이었다.

“……대개는 미늘창과 십자궁으로 무장했더군요. 하지만 십자궁은 장궁에 비해 명확한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칼리그렌이 끼어들었다.

“그러나 십자궁은 익히는데 시간이 적게 소요되오. 병사들을 무장시키고 빠르게 실전에 동원할 수 있소이다.”

“하지만 그 전술은 장궁 앞에선 통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병력체계라면 솜씨좋은 장궁수를 많이 보유한 국가에게 당하게 될 거에요. 최근 발티지(Baltige)전투를 보자면 장궁수를 보유하지 못했던 폴라리스는 본국에 패하고 말았지요. 십자궁수들의 방패는 불화살로 무력화되고, 곡사가 가능한 장궁수들에게 약점을 노출했습니다. 기사들은 그들의 갑옷만 믿고 있다가 장궁의 먹이가 되고 말았고요.”

벨리시아는 공주임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정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뭔가 더 말하려고 하자 칼리그렌이 손을 들어 그녀를 제지하였다.

“잠깐. 지금 그대의 말은…… 장궁수를 보유하지 못한 우리가 브라이튼에 비해 약하다는 뜻이오?”

“폐하께서 널리 헤아리시길 원합니다. 에투렐리아는 장궁수를 육성해야 합니다.”

그녀의 대답은 브라이튼이 에투렐리아보다 전술적으로 우수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대신들은 흥분하기 시작했고, 칼리그렌 또한 그녀의 말에 발끈하게 되었다.

“방금의 그 말씀은 너무 앞서나가신 것 같군, 공주께서는 지금 외국에 홀로 있다는 것을 잊으신게요?”

칼리그렌의 말은 벨리시아를 억류할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벨리시아는 웃으며 대답했다.

“잘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각국에서는 저 같은 소녀를 지켜주시는 폐하의 기사도에 찬사를 보낼 것입니다.”

기사도…… 그것은 칼리그렌이 끝까지 지켜오던 자신의 덕목 중 하나였다. 왕국을 이끌어나가는데 명분만큼 중요한 것은 없었다. 여기서 그가 발끈하여 외국의 공주를 사로잡으면 자신은 그만큼의 명분을 잃게 되는 것이 당연하였다.

칼리그렌은 그제서야 눈 앞의 공주가 보통내기가 아님을 깨달았다. 칼리그렌은 얼굴에 웃음을 지으며 왕좌에서 일어났다.

“그대의 고견을 잘 듣겠소. 자만은 추락을 부른다고들 하는데, 그대의 말이 없었으면 우리는 방비를 소홀히 할 뻔했소. 시장하실텐데 우리가 준비한 주연을 즐기시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길 바라오.”

벨리시아 공주는 예를 갖추고는 안내를 받아 알현실을 나갔다. 대신들 또한 연회장으로 가기 시작했으며, 칼리그렌 곁에 남은 갈락서스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폐하…… 소문대로 아주 영특하신 분이십니다.”

“제이드만을 부르게.”

“네?”

“그녀에 대해서 샅샅이 조사하도록 지시해.”

갈락서스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될 말씀입니다! 연인이 될, 아니 이웃의 공주를 뒷조사 하다니요?”

칼리그렌은 씨익 웃으며 윙크를 했다.

“연인이라고? 후훗. 그렇다면 더욱 자세히 조사해야겠지. 안그런가?”


× × × × ×


워터루트의 선착장…… 눈부신 햇살이 선착장의 짠내음을 더욱 진하게 퍼트리고 있었다. 좋은 경치였으나 선착장에선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는데, 다름아닌 토후바였다.

“뱃편이 없다니! 그게 말이 돼!?”

선장으로 보이는 털복숭이사내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무리 기사나리라도 안되는 건 안되는거유. 아시다시피 칼리그렌 국왕께서 모든 뱃편을 노움들을 나르는데 동원하라고 하셔서 여유가 없소.”

한참을 실랑이하던 토후바는 히아신스를 바라보았다. 히아신스는 넋이 나간 듯이 나루터에 주저앉아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가씨! 뱃편이 없답니다!”

히아신스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아, 네~.”

“‘네’ 라뇨!?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까?”

히아신스는 한숨을 크게 내쉰 후에야 대답하였다.

“그래요. 돌아가고 싶어요. 에투렐리아엔 다신 안올거야.”

하고는 그녀는 고개를 푹 수그릴 뿐이었다. 토후바는 히아신스가 대답만 하고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자 갑갑한 가슴만 두들기더니 선장에게 다시 말했다.

“들었나? 아가씨가 빨랑 가고 싶으시다잖아?”

“그래서 제가 뭘 어떻게 한답니까? 저 여자분이 국왕폐하보다도 높은 분이시오? 뱃편이 정말 없다니까 그러네!”

사실은 선장들의 입장에서도 노움을 나르는게 이득이었다. 가까운 거리의 노움들을 이곳으로 옮기기만 하면 되기에,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토후바가 말한 목적지인 버려진땅은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제 정신이 아니고서야 버려진땅으로 항해를 나갈 선장은 없었던 것이다. 그때

“이보게 기사양반…….”

한 걸걸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게 아닌가? 토후바가 고개를 돌리자, 그늘가 옆에 술병을 든 노인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내 그곳까지 태워드림세…….”

뱃편이 생기자 토후바는 기뻐하였다. 하지만 노인이 비틀거리며 걸어오자 토후바는 정색을 하며 물었다.

“어이! 자네 선장 맞나?”

햇살로 그슬려진 검은 피부의 노인은 크게 비틀거리며 대답했다.

“그러어엄! 이 몸은 노리아스(Noriahs)선장이라고 하지! 배 위에서 잔뼈가 굵은…….”

노리아스는 비틀거리다 균형을 잃고 옆으로 쓰러졌다. 한편, 토후바는 기가 찬 듯 팔짱을 꼈다.

“땅에서도 이렇게 비틀거리는데, 배 위에선 어쩌려고 그래?”

노리아스 선장은 몸을 일으키며 대답했다.

“땅은 땅이고! 배는 배! 이 몸의 항해술은 으뜸이라구! 앙!”

토후바는 뱃편을 구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노리아스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알았어! 알았다구! 그럼 배삯은 얼마지?”

노리아스는 계속 휘청휘청거리며 대답했다.

“좋아……(딸꾹!) 손님은 꼬맹이 한놈이랑 여자애 하나니까 금화 500닢!”

“미쳤군! 겨우 두 사람 타는데 금화가 500닢이나 된단 말야?”

“당연히 두 사람 뿐이 안타니까 500닢 이지! 돈 없어?”

토후바에겐 금화 500닢은 없었다. 착수금으로 왕비에게 받은 돈 대부분은 분다르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길! 그만한 돈은 없다고!”

노리아스는 술을 크게 들이키더니 웃었다.

“푸하하하! 가난뱅이 기사로구만! 좋아 다섯 닢으로 하지!”

가격이 백배나 줄어들자 토후바는 놀라고 말았다.

“뭐, 뭐야? 너 지금 장난해? 가격이 왜 이렇게 바뀌는거야?”

토후바는 노리아스가 자신에게 장난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한편 노리아스는 킬킬 웃으며 토후바의 질문에 답하였다.

“히히. 그야 당연히 저 여자애 때문이지.”

“그, 그게 무슨 말이야?”

노리아스는 토후바의 귀에 손을 대고 귓속말을 하기 시작했다.

“딱 봐도 고귀한 혈통같지 않아? 분명 집에 데려다 주면 큰 포상을 받게 될거란 말이지. 푸헤헤헷!”

토후바는 노리아스의 말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너, 너…… 대체 뭐하는 놈이야!?”



-계속


작가의말

안녕하십니까? 레그다르입니다.

백업님께서 알려주신 어떻해는 원문에서 수정했습니다.^^ 저도 이렇게 간단한 문법을 모르고 있었네요. 어떻게해가 맞는표현이고 님께서 말씀하신 것저럼 어떡해 등이 맞는 것이더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업로드한 글에는 고칠 엄두가 안나서 팔라딘 원문에는 전부 수정했어요.(자동수정 기능 이용하니까 그 많은 것들이 함께 수정되더군요. 다만 웹에 올린 글은 전부 찾아 고칠 자신이 없어서 그건 하지 못했습니다. 양해 부탁드릴게요.)

아! 그리고 dsafsdasdf님께서 좋은 질문 해주셨네요. 이퀄리브리온은 반쪽일 경우엔 상대방의 피를 흡입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정수의 경우엔 좀 달라지는데요, 상급악마 텔베오스는 주물질계 존재가 아니고 타차원에서 불려온 존재이므로 이퀄리브리온에게 흡수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내용들을 제가 잘 적지 못했군요.(진땀…… 사실은 님께서 지적해주셔서 금새 만든 변명이었습니다.^^;)

어쨌든 님덕에 설정이 더욱더 철저하게 변할 수 있었네요. 감사드립니다.

 

예전부터 제 작품에는 어투의 문제가 많이 거론되었습니다. 무슨 조선시대도 아니고 말투가 사극풍이냐고…… 그런데 전 중세풍의 어투를 우리식으로 고친다면 사극풍의 말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칼리그렌에게 말하는 갈락서스의 말투가 사극풍입니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나으리’라던가 ‘나리’등의 옛날에 쓰던 호칭들도 과감하게 넣었습니다. 영어로 "Sir"는 우리말로 나리 정도가 될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전작 소서리스에 보면 칼리그렌이 그의 아버지 타토루스를 죽였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래서 살모사란 별명이 끈질기게 쫓아다니죠.

 

어쨌건 일주일만에 글을 올리네요. 육아와 병행하려니 많이 눈치가 보여서 글쓰는 시간을 내기가 힘드네요.^^; 그래도 틈틈이 글을 적었다가 꼭 올리겠습니다. 모두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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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더 팔라딘(The Paladins)-72화: 바다의 사냥꾼 +5 14.03.02 1,461 27 20쪽
» 더 팔라딘(The Paladins)-71화: 브라이튼(Breiten)의 공주 +5 14.02.12 1,181 26 23쪽
71 더 팔라딘(The Paladins)-70화: 또 뒷통수 +8 14.02.05 1,203 32 22쪽
70 더 팔라딘(The Paladins)-69화: 악마의 영혼 +5 14.01.29 1,437 29 18쪽
69 더 팔라딘(The Paladins)-68화: 다크엘프 대 글라디미르 +5 14.01.19 2,394 29 22쪽
68 더 팔라딘(The Paladins)-67화: 암살자들 +8 14.01.16 2,303 27 22쪽
67 더 팔라딘(The Paladins)-66화: 쌓아온 것이 무너지다 +7 14.01.10 1,110 34 21쪽
66 더 팔라딘(The Paladins)-65화: 식량 +12 14.01.08 1,984 35 21쪽
65 더 팔라딘(The Paladins)-64화: 신의 대결 +16 14.01.06 1,794 37 17쪽
64 더 팔라딘(The Paladins)-63화: 의식이 완성되다 +4 14.01.03 1,397 29 19쪽
63 더 팔라딘(The Paladins)-62화: 신의 섭리 +8 14.01.02 2,142 31 23쪽
62 더 팔라딘(The Paladins)-61화: 매를 버는 남자 +12 13.12.29 1,631 36 14쪽
61 더 팔라딘(The Paladins)-60화: 뒷통수 +16 13.12.28 1,796 39 20쪽
60 더 팔라딘(The Paladins)-59화: 인신공양(人身供養) +18 13.08.07 2,902 52 27쪽
59 더 팔라딘(The Paladins)-58화: 괴물들이 모이다 +7 13.08.05 2,615 45 15쪽
58 더 팔라딘(The Paladins)-57화: 론 런너(Lone Runner)의 정체 +10 13.08.02 3,271 46 13쪽
57 더 팔라딘(The Paladins)-56화: 레드아이(Red Eye) +22 13.08.01 4,359 63 21쪽
56 더 팔라딘(The Paladins)-55화: 부활 +33 13.03.02 3,193 51 19쪽
55 더 팔라딘(The Paladins)-54화: 외로운 협객 +15 13.02.25 2,570 43 20쪽
54 더 팔라딘(The Paladins)-53화: 라이온하트 기사단 +14 13.02.21 2,593 39 20쪽
53 더 팔라딘(The Paladins)-52화: 악의 군대가 움직이다. +19 13.02.16 2,178 48 18쪽
52 더 팔라딘(The Paladins)-51화: 에뎁세스(Edepses)의 반지 +26 13.02.13 2,612 42 25쪽
51 더 팔라딘(The Paladins)-50화: 지옥의 몽둥이 +31 13.02.11 2,607 32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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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더 팔라딘(The Paladins)-47화: 두루마리의 글자 +13 13.02.02 2,518 38 17쪽
47 더 팔라딘(The Paladins)-46화: 동방의 무술 +12 13.01.31 2,514 44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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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더 팔라딘(The Paladins)-44화: 손님, 손님, 그리고 또 손님 +12 13.01.29 2,345 36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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