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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그다르 님의 서재입니다.

더 팔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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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그다르
작품등록일 :
2012.11.30 22:01
최근연재일 :
2014.03.09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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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1.29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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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6쪽

더 팔라딘(The Paladins)-44화: 손님, 손님, 그리고 또 손님

DUMMY

“영주님께서 오십니다!”

성문이 열리며 하인들이 마중을 나왔다. 셀로나는 마중나온 하인들을 유심히 관찰하였다. 하인들 중에 젊은 여자는 없었으며, 늙은 할머니와 뚱뚱한 아주머니가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허리가 굽은 정원사와 한참이나 어려보이는 소년, 마지막으로 성내를 지키던 병사들이 필론을 맞이하였다.

“세상에! 오랫동안 돌아오시지 않아, 무척이나 걱정했었다구요! 별고 없으셨나요?”

뚱뚱한 아주머니가 호들갑을 떨며 수건을 내밀었다. 필론은 수건을 받아들며 대답하였다.

“마사(Martha)아주머니의 옥수수빵을 먹기 위해서라도 돌아와야죠.”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는 그 머릿결과는 다르게 허리가 꼿꼿히 세워져 있었으며, 그 움직임에는 기품이 있었다. 그녀는 수레에 앉아있는 셀로나를 바라보며 필론에게 물었다.

“나리. 이 아가씨는 뉘신지요?”

“셀로나양이에요. 미스 데이비(Miss Daiby)가 잠시 쉴 거처를 마련해주세요.”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백발의 여인은 아직까지 결혼을 하지 못했는지, 미스 데이비라고 불리고 있었다. 필론은 셀로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미스 데이비는 이 성의 집사역할도 하고 있어요. 불편한 것이 있으면 미스 데이비에게 말하세요. 저는 그동안 밀려있는 일을 마쳐야 하니, 당분간 이곳에서 쉬고 있어요.”

셀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스 데이비는 소년에게 투스텝을 맡기고는, 셀로나에게 따라올 것을 권하였다. 셀로나는 어리둥절한 채로 그녀를 따라 안채로 들어갔다. 그녀의 눈에 비친 필론의 성은 영주의 성 치고는 허름하기 그지 없었다. 셀로나가 책에서 보았던 정원의 분수는 없었으며, 복도에는 미술작품도 걸려있지 않았다. 미스데이비는 주변을 둘러보는 셀로나를 의식한 듯, 그녀에게 말했다.

“놀라셨죠?”

셀로나는 처음 만난 미스 데이비에게 대답을 하고 싶지 않았다. 단지 고개를 끄덕이기만 할 뿐이었다. 미스 데이비는 2층으로 올라가며 말을 이어갔다.

“영주님께선 성내를 꾸미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혹시나 아가씨께서 오해하실까봐 미리 말씀드리지만, 잠자리가 더러울 수 있으니 양해해 주시길…….”

한층 더 올라간 3층에서, 미스 데이비와 셀로나는 허름한 문 앞에 도착하게 되었다. 미스 데이비가 문을 열자, 어두컴컴한 실내가 드러났다. 가재도구라고는 탁자 하나와 침대 뿐이었다.

“이곳에서 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불편한 것이 있으면 제게 말씀해 주세요. 영주님께서 이 성을 비운 동안 많은 일거리들이 산적해 있으니 당분간은 뵙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셀로나가 방 안으로 들어가자 미스 데이비가 문을 닫았다. 촛불 하나 없는 방은 금새 어둠으로 바뀌었다. 셀로나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침대 안에는 지푸라기로 채워져 있었다. 어둠 속에 홀로 있던 그녀는 몸을 웅크린 채 침대 구석으로 조금씩 들어갔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불편함을 느낄 정도의 어둠이었으나 그녀는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아…… 이제 좀 쉬겠구나…….”

순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셀로나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자, 밖에서 미스 데이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셀로나양 계십니까?”

셀로나는 늘 그랬듯이 대답하지 않았다. 문이 열리며 미스 데이비가 들어오더니

“에그머니나!”

침대에 쭈그리고 앉은 셀로나를 본 그녀는 놀라고 말았던 것이었다. 미스 데이비는 황급히 옷매무새를 고치고는 전의 그 무표정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흠…… 장난이…… 심하시군요. 계시면 계시다고 말씀을 해주셨더라면 오늘같은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셀로나는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오는 것을 느꼈다. 미스 데이비는 얼굴을 붉히며 탁자 위에 초를 올려놓았다.

“어두우실까 걱정되어 초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방안이 어두우면 저쪽 창문을 여시길 바랍니다. 전 그럼 이만…….”

그제서야 셀로나는 벽 한쪽에 나무로 만들어진 문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미스 데이비가 나가자 셀로나는 창문을 열었다. 창문 밖으로는 써드윈 성의 안뜰과 그 너머의 농장들이 보였다. 그녀의 눈에, 농부들이 즐겁게 웃으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과 알록달록 예쁜 집들이 모여있는 모습이 보였다.

“성은 허름하지만 사람들은 행복해 보이네…….”

순간, 한 농부가 셀로나를 발견하고는 모자를 벗어 인사를 건네는게 아닌가? 셀로나를 귀족으로 아는 듯 하였다. 놀란 셀로나는 황급히 창문을 닫았다.

‘내 얼굴을 봤을거야!’

셀로나는 얼굴을 움켜쥐며 침대에 몸을 묻었다. 그녀의 어깨는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볼수록, 그녀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 비참하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다음날 아침, 배불리 아침을 먹은 농부들은 콧노래를 부르며 농장으로 가고 있었다.

“비켜라! 비켜!”

수레를 동반한 한 기사들의 무리가 필론의 영지인 써드윈 마을을 지나고 있었다. 농부들은 화들짝 놀라며 길을 비켰다. 기사들은 흙먼지를 일으키며 써드윈 성으로 달려갔다. 농부 중 하나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먼지 속에서 손사래를 치며 입을 열었다.

“허…… 높으신 분들이 아침부터 왠일이지?”

“뻔하지. 밀린 세금을 받으러 온거 아냐!”

뚱뚱한 아낙네가 입을 열었다.

“당신 그거 아세요?”

“뭐?”

“다른 곳에선 세금을 못낸 사람들이 붙들려서 노예로 끌려간다 하더라고요.”

양 미간이 가운데로 몰린 농부가 두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세금을 못낸다고? 그게 말이나 되는가? 세금이 얼마나 된다고…….”

나이가 들어보이는 농부가 굽어진 허리를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자네들은 뭘 모르는군…… 이 프란치아에서 세금을 적게 내는 건 우리들 뿐일세.”

“에에? 어째서죠?”


하얀 셔츠를 입은 필론은 탁자에 앉아 지금껏 밀린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시종이 불러주는 금액과 장부를 대조하며 각종 계획서에 서명을 했다. 그는 부지런히 일을 했으나, 탁자에 쌓인 서류들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때 문을 두두리는 소리가 나더니 한 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주님. 벨 크리스타(Bell Crista)에서 오신 가엘(Gael)경이 영주님을 뵙고자 합니다.”

벨 크리스타는 프란치아의 수도였다. 수도에서 기사가 왔다는 말에 필론은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들어오시라고 하게.”

문이 열리자, 갈색의 곱슬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기사가 성큼성큼 들어왔다.

“가엘 마소란트(Gael Masorante)가 필론 그레이스톤경을 뵙습니다.”

가엘은 다소 과장된 동작으로 손을 휘두르며 필론에게 예를 갖추었다. 필론은 탁자에서 일어나며 허리에 손을 얹었다.

“또 뵙는군요. 이번에도 가엘 경은 세금을 받으러 오셨겠지요?”

가엘은 웃으며 대답했다.

“잘 아시는군요. 필론 경께서 와이즈브룩을 지나셨다는 보고를 받고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하하하.”

필론은 예산서를 집어들고는 가엘에게 물었다.

“이번엔 얼마를 세금으로 내야 합니까?”

“네. 이번엔 특별세를 포함하여 금화 3000닢입니다.”

필론의 눈이 커졌다.

“삼, 삼천닢!? 저번보다 천닢이 더 늘어나지 않았소!?”

필론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가엘은 능글능글 웃으며 대답했다.

“경도 아시다시피, 가돌프 국왕께서는 본국의 유력한 귀족들과 각국의 사절단을 초청하여 정치적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나라를 지키는 데에는 검도 중요하지만 외교는 더욱 더 중요하죠. 때문에 경비가 더 늘어났습니다. 원래는 석달 전에 받아갔어야 했지만, 필론경께서 이리로 꼭 오실 줄 알고 기다렸습니다. 하하하.”

“그게 무슨 소리요!?”

필론이 갑자기 호통을 치자, 가엘은 화들짝 놀라고야 말았다. 가엘은 허리춤에서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아내며 필론에게 물었다.

“무슨 소리라뇨? 전 오히려 필론경께서 화를 내시는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흥! 정치적 활동!? 귀족들끼리 백성들의 고혈로 연회를 열고 그 사치스러움을 경쟁하는 것이 정치적 활동이라고!? 와이즈브룩의 굶주린 시민들은 보았소!?”

가엘의 얼굴이 굳었다.

“말씀이 심하시군요. 지금 경께서는 우리들의 국왕 가돌프폐하께서 그저 놀고만 계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방금 경의 말은 중앙에 보고될 경우, 안 좋은 방향으로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경께서 벼락출세하여 이 성을 가지게 된 것이 누구의 은혜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모든 영광을 잃어버릴 생각이십니까!?”

필론은 머리가 멍해질 지경이었다. 사악한 레드드래곤은 세상을 지배하기 위한 야망을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는데, 프란치아의 지도층은 향락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필론은 이를 갈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런 식으로…… 이런 식으로 계속 가다간, 시민들은 세금을 내지 못하게 될 것이고 이 왕국은 큰 위기에 닥칠 것이오.”

“하! 세금을 내지 못낸다구요? 여기로 오면서 다 보았습니다. 이곳의 주민들은 부유해보이고 살쪄있더이다. 그런데도 세금을 내지 못하게 될 거라고요?”

순간 가엘의 얼굴 옆으로 망치가 날아들었다. 쏜살같이 날아온 망치는 문을 찍더니, 필론의 곁으로 돌아갔다. 필론이 아이타로스의 사제 프렌시오에게서 얻은 마법망치 페이터였다. 가엘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필론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무슨 의미요!?”

필론은 마법망치 페이터를 든 채로 대답했다.

“이건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던 프렌시오란 ‘악당’에게서 뺏은 것이오. 경이 보기엔 이 마법망치의 가치가 어느정도라고 생각됩니까?”

가엘은 갑작스런 필론의 질문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뭐, 뭐…… 한 금화 천칠백닢정도 될 거라고 생각되오.”

“좋소! 그럼 금화 천육백닢이라고 칩시다! 이걸 세금으로 내겠소. 그리고 나머지를 지불하지…… 이러면 되오!?”

가엘은 기가 막히다는 듯,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보시오 필론경…… 세금은 영주가 백성에게 미리 걷어놓고, 그걸 중앙에 내는 것이오. 그런데 이런 식으로 하면 필론경이 백성들 대신에 세금의 대부분을 내는 것 아니오?”

“그럼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내가 그 망치를 팔아 금화를 얻었소. 그중 금화 두 냥을 대장간의 빌트릭(Billtrik)에게 주었고, 빌트릭은 그걸로 세금을 냈지. 나는 또 금화 두 냥을 푸줏간 마도크(Mardork)에게 선물로 주었고, 마도크가 그걸로 세금을 냈소. 그리고 나는 금화 두 냥을…….”

가엘은 손사래를 쳤다.

“알았소! 알았소! 세금으로 인정하리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두시오! 그대가 이런식으로 시민들의 짐을 진다고 그들이 경을 존경할 거라는 생각은 접어두시오. 저자들은 자신의 배만 불리면 그것으로 족한 족속들이란 말이오!”

“됐으면 어서 이 집무실에서 나가시오! 경이 방해하면 세금을 더 늦게 낼 수밖에 없지않소. 정산이 끝나면 세금을 보내리다.”

가엘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인사를 하였다.

“알겠소! 영접실에서 나의 수하들과 기다리고 있을테니 세금이 준비되면 속히 보내십시오. 이몸은 보기보다 바쁜 몸이니까요.”

가엘은 필론에게 대충 인사하고는 문 밖으로 나왔다. 그의 부하들이 다가오자 가엘은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흥! 재수없는자식! 이런 시국에서 혼자만 깨끗한 척을 하다니! 그 모습이 얼마나 가나 보자!”


정오가 되자 농부들은 일손을 멈추고 새참을 먹기 시작했다. 고소한 감자냄새가 모락모락 피어올랐으며, 농부들은 따뜻한 차와 함께 크림이 발라진 빵을 씹었다. 그때

“비켜라! 비켜!”

일대의 기사들과 함께 화려한 마차가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농부들은 먼지가 감자에 묻을 새라 황급히 바구니를 치우며 마차를 바라보았다.

“이게 뭐여? 또 우리 영주님을 찾는거여?”

아낙네가 남자의 옆구리를 찍으며 웃었다.

“저 마차를 보면 몰라요? 그분이시잖아요?”

“그분이라니?”

아낙네는 웃으며 대답했다.

“영주님을 정말로 보고 싶어했던 분이죠.”


“문을 여시오!”

우렁찬 병사의 목소리에, 셀로나는 창문을 조금 열었다. 창문 밖으로는 화려한 마차가 수행기사들을 동행하며 성내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셀로나는 금박으로 치장된 화려한 마차를 발견하고 눈을 떼지 못하였다. 마차가 정지하자, 수행원들이 문 앞에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그걸 본 셀로나는 호기심을 느꼈다.

‘대체 누구인데 흙바닥에 무릎을 꿇으면서까지 기다리는 거지?’

문이 열리자 셀로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너무도 화사하고 아리따운 여인이 마차에서 내렸기 때문이었다. 온갖화려한 장식이 달린 그녀의 복장은 오히려 불편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녀는 수행원이 내미는 손을 붙잡고, 수행원의 무릎을 밟고나서야 땅에 내려왔다. 바닥에는 이미 천이 깔려있어서 그녀의 화려한 드레스는 진흙에 닿지 않았다.

그녀의 갈색 머리카락에는 은색의 머리핀이 달려 있었다. 멀리서는 이 여인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지만, 그녀의 육감적인 가슴은 눈에 금새 들어왔다. 가슴골을 강조한 그녀의 드레스는 여성적인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저 여자는 누구지?’

이 화려한 모습의 여인은 드레스자락을 붙잡더니 종종걸음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달리자 수행원들이 놀라며 그녀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에밀라나님!”

“그러면 드레스를 버립니다요!”

셀로나는 에밀라나라는 이름을 기억해냈다. 필론이 수레바퀴를 수리하며 말했던 여자의 이름이 아닌가? 셀로나는 문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굳게 닫아버린 문이 보였다. 그녀는 안절부절 하다가 문고리를 붙잡았다.


“필론! 어디에 있는거죠!? 필론!”

성내로 들어온 에밀라나는 필론을 정신없이 찾기 시작했다. 그녀는 미스 데이비를 발견하고는 다그치듯 말했다.

“필론경은 어디 계시냐? 어서 안내하거라!”

미스 데이비는 예를 갖추며 그녀에게 대답했다.

“에밀라나님, 다시금 뵙게되어 영광입니다. 지금 영주님께서는 집무실에서 업무를 처리…….”

에밀라나는 미스 데이비를 밀치듯 복도를 지나쳤다. 영접실에 앉아있던 가엘은 에밀라나를 발견하고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레이디! 그동안 별고 없으셨습니까!?”

에밀라나는 가엘을 보고서는 대꾸도 하지 않고 집무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한편, 가엘의 부하들은 그녀의 무례한 행위에 분노하며 입을 열었다.

“필론도 재수없지만 저 여자도 재수없군요.”

가엘은 자리에 앉으며 짧게 말했다.

“닥치고 앉아.”

부하들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가엘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필론따윈 두렵지 않아. 다만 두려운 것은 에밀라나양의 가문이야.”

부하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가문? 저 여자의 가문이 어떻길래요?”

“플로란트(Florant) 가문이다. 멍청아.”

가엘의 말에 부하들은 입을 쩌억 벌리고야 말았다.

“플, 플로란트 가문이라면…… 와이즈브룩의 대영주 아닙니까?”

가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이를 갈았다. 플로란트 가문이 필론의 뒤에 있었기에, 필론이 자신에게 함부로 말해도 어쩌지 못했던 것이었다. 가엘은 안절부절 들썩이는 자신의 발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앉아있는 딱딱한 나무의자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써드윈 성 내의 가재도구는 소박하다 못해 불편할 지경이었던 것이었다.

“빌어먹을! 이 의자는 왜 이리 불편한거야?”


한편, 2층으로 내려온 셀로나는 에밀라나가 필론의 집무실로 들어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반면 그녀의 수행원들은 왠일인지 아래층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수행원들이 모두 사라지자, 셀로나는 조심스레 집무실로 다가갔다. 문은 살짝 열려있었으며, 셀로나는 몰래 집무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는 필론과 에밀라나가 서로를 끌어안고 입맞춤을 하고 있었다.

“아!”

셀로나는 놀라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내고 말았다. 에밀라나는 그 소리에 놀라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갈색 눈동자는 셀로나의 검은색 눈동자와 마주치게 되었다.

“넌 누구지!?”

에밀라나의 물음에 셀로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에밀라나는 필론을 감았던 손을 풀고는 셀로나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에밀라나는 셀로나의 허름한 복장을 보고선 그녀의 신분이 낮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챘다.

“내가 묻잖아. 왜 대답이 없는거지?”

보다못한 필론이 나서서 대신 대답하려 하였다. 하지만 에밀라나는 그녀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후드를 잡아챘다. 순간

“싫어!”

짝 소리와 함께 셀로나의 손이 에밀라나의 뺨을 후려치는게 아닌가? 에밀라나의 얼굴엔 당황과 분노와 수치가 복잡하게 휘감기고 있었다.

“감, 감히…….”

“에밀라나. 내가 설명할게.”

필론이 황급히 두 사람 사이를 중재하려 하였다. 하지만 에밀라나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 여자는 대체 누구죠!? 여봐라!”

그녀의 성난 목소리에, 셀로나는 겁을 먹고는 달아나려 하였다. 하지만 에밀라나의 목소리를 들은 수행원들이 올라와서는 셀로나를 붙들었다.

“놔! 놓으라고!”

셀로나는 몸부림을 쳤으나, 수행원들에게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한편, 필론은 에밀라나에게 사정을 설명하려했다.

“이 아가씨의 이름은 셀로나야. 내가 이곳으로 초대하여…….”

“잠깐만요.”

에밀라나는 붙들려온 셀로나에게 걸어가더니 그녀의 턱을 붙잡았다. 자신의 뺨을 때린 그녀의 뺨을 때리려는 것이었다. 셀로나는 억지로 머리를 돌렸으나, 에밀라나가 강제로 그녀의 턱을 앞으로 향하게 하자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며 그녀의 화상자국이 드러났다. 처참한 화상자국을 본 에밀라나는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이, 이 처참한 몰골이라니!?”

한편, 셀로나는 고개를 숙이고는 울기 시작했다. ‘처참한 몰골’이라는 단어가 그녀의 가슴을 후벼판 것이었다. 필론은 에밀라나에게 말했다.

“그녀는 어린시절 큰 화상을 입었어. 내가 그녀를 속죄의 샘물로 데려가 상처를 치료해주기로 약속했지.”

에밀라나는 부어버린 자신의 뺨을 어루만지며 필론에게 말하였다.

“그러면 교육을 똑바로 시키세요. 평민주제에 감히 겁도 없이 왜 이곳에 돌아다니는거죠?”

필론은 에밀라나와 셀로나를 번갈아보며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는 현명했으나 남녀간의 일에는 서툴렀던 것이었다.

“셀로나양은 나의 손님이야. 그러니 이곳에 자유롭게 다닐 권리가 있어.”

셀로나는 필론이 자신의 편을 들자 마음의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반면, 에밀라나는 필론의 대답에 충격을 받은 듯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손님이라고요? 하! 이 여자가 당신 영지에서 농사를 짓는 여인과 무슨 차이가 있는거죠? 평민 주제에 성내를 함부로 다니고…… 그것도 모자라 당신 집무실을 엿봤다구요!”

그녀의 말에 필론이 대답치 못하자 에밀라나는 다시 따지고 들었다.

“왜 대답을 못하시죠? 이 여자가 얼굴에 큰 화상을 입어 불쌍하다고 여기는 건가요? 아니면…….”

“내 목숨의 은인이야.”

필론의 대답은 에밀라나와 셀로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필론의 말은 계속되었다.

“기가비어턴과의 싸움에서 난 죽을 지경이 되었어. 개울가에서 죽어가던 나를 그녀가 구했지. 그녀가 아니었으면 난 여기로 돌아오지도 못했을거야.”

필론의 말에 에밀라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녀가 수행원들에게 고갯짓을 하자 수행원들은 그녀를 놓아주었다. 순간 셀로나는 도망치듯이 달려갔다. 필론이 그녀를 잡으려했으나, 에밀라나가 필론의 팔을 잡았다.

“그런데 그녀가 제 뺨을 때린 것은 어떻게 하실 거죠? 전 괜히 그녀에게 얻어맞았다구요.”

필론은 에밀라나의 자존심이 무척이나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뭐라고 대답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럼 내 뺨을 때려. 내가 대신 맞을테니…….”

에밀라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내가 당신의 뺨을 때릴게요. 대신 아랫것들이 보면 안되니까…….”

에밀라나가 수행원들을 바라보자 그들은 황급히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들이 내려가자 에밀라나가 필론의 턱을 붙잡았다. 그런데 필론의 얼굴로 날아온 것은 그녀의 손바닥이 아닌 그녀의 입술이었다. 입술을 뗀 그녀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담겨있었다.

“제가 당신 뺨을 어떻게 때리겠어요. 이걸로 뺨맞은 것은 없었던 걸로 할게요. 하지만 부탁이 있어요.”

“부탁?”

에밀라나의 뺨은 붉게 달아올라있었다. 필론은 그녀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챘다.

“미안해…… 하지만 저번에도 말했듯이 기가비어턴을 해치우기 전까지는 결혼을 할 순 없어.”

에밀라나는 고개를 저었다.

“후훗. 그건 알고 있어요. 제가 하려는 부탁은 다른거에요…….”

그녀는 필론의 집무실을 둘러보며 말을 이어갔다.

“나중에, 제가 이곳에서 살게되면 함께 이 성을 꾸미도록 해요. 당신의 성은 영주의 성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허름하고 뭐랄까? 촌구석 같다고나 할까요?”

에밀라나의 눈에 비친 필론의 성은 고칠 것 투성이였다. 장식하나 없는 벽과, 초를 아끼느라 어두컴컴한 실내, 그리고 바닥의 타일은 군데군데 빠져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 궁금한게요……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 수 있는거죠? 돈을 좀 들여서 샹들리에도 만들고, 촛대에 금도금을 하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요새 프란치아식 유행은 말이죠…….”

필론은 마지못하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지금 이 성엔 여유자금이 없어. 북방 메자히스탄(Mejahistan)의 동태도 확인해야하고, 병사들의 순찰을 더 강화할 자금도 필요해. 그리고…….”

에밀라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게 무슨 걱정이에요? 주민들에게 특별세를 걷으면 되잖아요?”

“그건 안돼. 힘없는 저들을 쥐어짤 순 없어.”

“에휴~ 백성들을 걱정하면 큰 일을 못해요. 저들은 우리에게 세금을 내야 할 의무가 있다구요.”

필론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지금의 국왕께서는 터무니 없이 많은 세금을 요구하시더군. 그 상황에서 나까지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면 그들은 피폐해질것이 틀림없어.”

“그거야 당연하죠. 왕국을 유지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잖아요? 백성들의 희생은 당연하다구요.”

“아니, 백성들에게만 세금을 부과하는게 잘못됐어. 귀족들은 세금을 내지 않으니 돈을 물쓰듯이 쓴다고.”

에밀라나는 필론의 말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 당신 말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고래부터 우리 가문은 세금을 내지 않았는데 어찌 세금을 내라고…….”

“에투렐리아는 귀족에게도 세금을 걷고 있어. 우린 그들의 제도를 본받아야해.”에밀라나는 갑갑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 에투렐리아의 살모사왕 이야기를 하는 건가요? 그자는 미쳤어요. 아버지를 죽이는 것도 모자라 귀족들에게까지 세금을 부과했어요. 이미 수 많은 귀족들은 그를 미워하고 있다구요. 제가 듣기로도 그자는 굉장히 야만적이고 잔인무도하다고 하더군요.”

필론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알기론 그럴 분이 아냐.”


노을이 깔리기 시작하자, 농부들은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때

“비켜라! 비키라구!”

일대의 기사단이 또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농부들은 황급히 길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사단이 지나가자 붉은 머리칼의 농부는 모자를 벗더니 피어오르는 먼지를 휘저으며 입을 열었다.

“오늘 대체 뭔일이래?”

“영주님께서 바쁘시겠구만.”

농부는 아낙네에게 물었다.

“어이! 이번엔 저들이 누구라고 생각해?”

아낙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글쎄요……. 처음보는 문장인데요?”

늙은 농부가 먼지에 재채기를 하며 입을 열었다.

“저들은 라이온하트 기사단이야.”

“라이온하트 기사단이요?”

늙은 농부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영주님께선 머지않아 또 다시 모험을 떠나실 것 같네.”


“라이온하트 기사단의 베롬 브랑슈아(Berome Brancoir)라고 합니다!”

보고서에 서명을 하려던 필론은 갑작스럽게 뛰쳐들어온 기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베롬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갑자기 뛰쳐들어와 죄송합니다. 하지만 너무도 급한 사안이라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필론은 한숨을 크게 쉬었다.

“미안하네만 오늘은 너무나 일이 많았네. 오늘은 이곳에서 하룻밤 쉬고 내일 말해주면 안되겠나?”

베롬은 우물쭈물 하더니, 결심을 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로베른 경께서 돌아가셨습니다.”

필론은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로베른경이? 무슨 일로 말인가?”

“적의 습격입니다. 중대 두 개가 순식간에 격파당하고 로베른경은 머리가 깨져 돌아가셨습니다.”

필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로베른경은 공격당할 위치에 있지 않았을텐데? 대체 적의 규모가 어떻길래 그렇게 되었나?”

베롬은 고민하다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저기…… 한명입니다.”

“한명!?”

베롬은 고개를 끄덕이며 굳은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자코라는 이름의 극악무도한 살인범입니다. 그자는 라이온하트기사단의 바란님을 살해한 것도 모자라, 카르타스의 신전을 부수고 수많은 기사와 사제들을 수장시켰으며, 최근에는 로베른경과 그 부하들을 도륙했습니다.”

필론은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그 많은 일을…… 한명이 모두 해냈다는 말인가?”

“상대는 거대도끼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휘두르는 장사입니다. 저도 한번 맞서봤는데, 그 괴력에 당해낼 도리가 없었습니다.”

필론은 순간, 예전에 그가 상대했던 글라디미르를 떠올렸다. 글라디미르 또한 엄청난 괴력으로 수 많은 사람들을 해쳤던 것이었다.

베롬은 필론의 황금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교단에선 필론경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그 잔인한 살인마를 해치우는데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계속


작가의말

저번에 여러분들의 말씀 정말 감사했습니다. 여러분들의 말씀대로 효과음은 넣지 않고 있다가 꼭 필요한 부분에만 효과음을 넣어야 할 것 같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고민하던 것을 간단히 해결하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조금 분량이 많네요. 다음 편에 뵙겠습니다.


내일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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