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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그다르 님의 서재입니다.

더 팔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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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그다르
작품등록일 :
2012.11.30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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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9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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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1.30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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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더 팔라딘(The Paladins)-45화: 잡화상 아벤(Aben)

DUMMY

“그 자코란 자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있나?”

“자세히는 모릅니다. 단지 제보자의 말에 따르면 와이즈브룩으로 가고 있을 거라 합니다.”

순간 필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깐만, 제보자라고 했나? 그 악랄한 녀석이 혼자라고 했잖은가? 그런데 제보자가 있다니? 그에게서 달아난 자가 있단 말인가?”

베롬은 일순 당황하며 간신히 대답하기 시작했다.

“사, 사실…… 그 제보자는 자코란 자에게서 달아난 사람이 아니라, 도움을 받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같은 패거리죠.”

“같은 패거리? 그자도 살인을 했나?”

베롬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살인은 아니지만 그만한 죄를 지었습니다. 세금을 내지 못했지요.”

필론의 눈살이 지푸려졌다.

“그게 무슨 말인가? 더 자세하게 말해보게.”

“경도 아시다시피 로베른경은 체납자들을 추적하여 붙잡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코란 자가 나타나서 로베른경과 그의 병사들을 죽이고 달아났습니다. 고로 체납자들이 모두 도주하게 되었는데, 그중 한 녀석이 도둑질을 하다가 우리에게 붙들렸지요.”

베롬은 말을 멈추더니 필론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필론의 얼굴엔 불쾌함이 가득했는데, 베롬은 그걸 알아채고는 필론에게 다시 말하였다.

“영주님.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법은 신성한 것입니다. 자기 생각에 법이 틀렸다고 그걸 어긴다면, 이 세상엔 온갖 핑계거리를 가진 범죄자들로 넘쳐날 것입니다. 최근에 부과되는 세금이 좀 과한 감은 있지만, 그것을 내지 못한 것은 명백한 범죄행위입니다. 그걸 양지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필론은 손으로 그의 얼굴을 감싸쥐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법은 약자들을 보호하려고 있는 것이네…… 그런데 법으로 약자들을 괴롭힌다면, 그게 도적두목이 보호세를 뜯어내는 것이랑 다를 것이 뭐가 있겠는가?”

베롬은 필론에게 반론을 제기하려다가 관두었다. 그는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흠!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자코의 위치겠지요. 이 제보자의 말에 따르면, 자코는 와이즈브룩의 아벤이란 젊은이를 만나러 간다고 합니다.”

“어째서?”

“그건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필론경도 찾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리로 온 것이고요.”

“뭐, 뭐라고?”


× × × × ×


에투렐리아의 수도, 웰마운틴의 광장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붉게 피어오르는 노을빛은 광장가운데에 세워진 교수형대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국왕 칼리그렌은 단상위의 의자에 앉아있었는데, 백색 갑옷 위에 황금왕관을 쓴 그의 풍채는 시민들에게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칼리그렌의 옆에는 총리대신 갈락서스가 서 있었으며, 그는 두루마리를 피고는 그것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브로도스의 위대한 선조들과 신성한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노라. 죄인 페르반테스(Pervantes)는 세금납부의 신성한 의무를 져버리고, 그것도 모자라 칼리그렌 전하에게 반란의 칼을 들었다. 이것은 법치위에 세워진 에투렐리아 전체를 뒤흔드는 행위이며, 이에 국법에 따라 처형을 선고하노라.”

갈락서스가 두루마리를 접자, 처형대 아래에서 사내의 외침이 울려퍼졌다.

“이놈 칼리그렌! 사형당해야 할 자는 네놈이다! 너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우리에게 세금을 걷지 않았거늘, 네놈이 대체 뭐길래 귀족들에게도 세금을 내라 하는가!”

병사들에게 끌려오는 사내는 귀족의 예복을 걸치고 있었다. 그는 형장으로 끌려가면서도 계속하여 칼리그렌에게 저주의 말을 퍼부었다.

“빌어먹을 놈! 세상 사람들이 왜 네놈을 살모사라 부르는지 모르느냐? 은혜를 원수로 갚는 네 성품 때문이다! 키워준 아버지를 죽이고, 나라에 헌신한 충신들을 목매다는구나!”

칼리그렌은 대꾸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이놈들아! 놓지 못하겠느냐!?”

결국 귀족 페르반테스는 교수형틀에 매달려 숨을 거두고 말았다. 사형집행이 끝나자 칼리그렌은 왕성 매그니움으로 돌아갔다. 그가 궁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전령이 달려왔는데, 전령은 황급히 예를 갖추더니

“국왕전하! 애로우루트(Arrowroot)성의 바리우스(Barious)경이 프란치아에 귀순했다고 합니다!”

전령은 다급한 목소리로 칼리그렌에게 배반의 소식을 알렸다. 칼리그렌은 눈썹을 이그러뜨리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폴로위니아(Paulowinia)성의 사두란(Saduran)경에게 방비를 철저히 하고, 바리우스에게 회유문서를 보내도록 하게. 원군을 최대한 빨리 보내겠다는 말도 전하고.”

전령은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칼리그렌의 말을 두루마리에 휘갈겨적었다. 글을 모두 받아적은 전령이 두루마리를 칼리그렌에게 내밀자, 칼리그렌은 그 아래에 친필서명을 하였다. 전령이 달려나가자 칼리그렌은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한 녀석을 잡으면, 또 다른 녀석이 문제를 일으키는군.”

갈락서스가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변방의 영주들 중에는 여전히 전하의 정책에 반발하는 자가 많사옵니다. 변방은 국가의 안보에 중요한 곳일 터, 그곳에서만은 세금을 영주보고 직접 걷으라고 하심이…….”

“총리대신. 나의 조부님이신 브로도스경께서 왜 폴라리스로부터 독립했는지 아는가?”

칼리그렌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갈락서스는 잠시 움찔하였다. 하지만 학식이 풍부한 이 늙은이는 금새 대답하였다.

“물론이옵니다. 폴라리스의 왕 크누투스(Knutus)가 백성들을 탄압했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

칼리그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크누투스는 영주들에게 자율적으로 세금을 걷도록 지시했지. 하지만 영주들은 국왕이 요구한 것 이상으로 세금을 걷었어. 그래야만 자신의 배를 불릴 수 있으니까 말이야. 나라방비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 매번 세금을 걷게되니 백성들은 점점 피폐해져갔어. 보다못한 나의 할아버지께서 크누투스 왕에게 반기를 들고 이 나라를 세운 것 아니겠나?”

갈락서스는 칼리그렌의 의중을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으나 표정은 탐탁치 않아보였다.

“그래서 전하께서는 세금을 영주들이 걷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까? 하지만 그것은 너무도 비효율적입니다. 세무관이 걷어온 돈을 중앙에서 처리하고 다시 지방으로 보내는데 많은 시간이 소모됩니다.”

그렇다. 에투렐리아의 세금은 영주가 걷는 것이 아닌, 중앙의 세무관들이 걷는 형태였다. 중앙의 세무관들은 각 지방의 인원을 계수하여 그에 맞게 세금을 걷었다. 그리고 걷혀진 세금을 국가에서 다시 지방 영주들에게 분배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것에 불만을 갖는 귀족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귀족들을 분노케 했던 것은, 세무관들이 귀족들에게도 세금을 걷어갔기 때문이었다. 칼리그렌은 총리대신 갈락서스에게 말하였다.

“일에선 효율성이 중요하지만, 비효율적이라도 가치있는 일을 하는게 중요하네. 물자는 투명하게 움직여야만해. 거대한 나무를 죽게하는 것은 천둥도 아니고 산불도 아니네, 그런건 나무가 매년마다 견디어 내는 것들이야. 하지만 큰 나무가 썩어들어가 죽는다면 이유는 단 하나, 내부에서 번식하는 벌레들이지. 마찬가지로 부패는 아무리 거대한 나라도 무너뜨린다네.”

갈락서스는 고개를 저었다.

“노여워 마소서. 전하의 말씀이 옳습니다만, 비효율적으로 시간이 오래걸리는 지금 방식으로는 에투렐리아가 더 커질경우엔 문제가 생길 것이옵니다.”

“이 나라의 크기를 더 키울 생각은 없어. 포틀랜드 이야기 못들었나? 포틀랜드의 옛 지배층들은 지금도 독립을 계획하고 있네. 지금 생각해보면 칼로 사람을 지배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야. 나라는 적의 침입을 막아낼 정도의 크기와 국력만 있으면 상관없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칼리그렌과 갈락서스는 국왕의 침실까지 걸어오게 되었다. 갈락서스는 예를 갖추며 말했다.

“신은 이만 물러가겠나이다. 송구스럽지만, 오늘은 일찍 주무시면 좋겠사옵니다.”

칼리그렌은 피식 웃었다.

“알겠네. 늦게까지 책을 읽지는 않을거야. 가보게.”

침실로 들어온 칼리그렌은 나무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시동들이 다가와 그의 갑옷을 벗기기 시작하였다. 갑옷이 벗겨지는 동안 칼리그렌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그의 스승인 알베르토를 떠올렸다.

‘스승님……. 당신의 가르침을 이행하는게 이리도 힘든건지 몰랐습니다.’

갑옷이 모두 벗겨지자, 칼리그렌은 시동들에게 나가라고 말한 후 책상 앞에 앉았다. 그가 마지막 서랍을 열자 낡은 편지가 나왔다. 칼리그렌의 스승이자 내무대신이었던 알베르토가 그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였다. 칼리그렌은 부들거리는 손으로 이 낡은 편지를 집어들었다.

‘이 편지가 유서가 될 줄이야…….’

그는 조심스레 편지를 펼쳐보았다. 알베르토가 드래곤스폰 글라디미르와 전투를 하기 전, 칼리그렌에게 보냈던 마지막 편지였다. 편지의 내용은 현 에투렐리아의 문제점과 그 개선방안이었다. 개중에는 지금의 조세개혁안도 포함되어있었다.

칼리그렌은 스승의 필적을 다시 읽으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감정이 점점 격해지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둑어둑해지는 에투렐리아의 밤거리에는 늦게까지 놀고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저녁식사를 먹이려고 재촉하는 아낙네들과, 하루의 피로를 술기운으로 달래는 남자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에투렐리아의 현 상태가 어떨지라도, 이것 하나만은 확실했다.

‘백성들은 이곳에서 웃으며 살고 있다.’

칼리그렌은 이들의 얼굴에 담긴 소소한 행복을 지켜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살모사국왕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야만 했다.

“……산다는 것은 힘들구나…….”


× × × × ×


“힘들구나…… 힘들어!”

남방 프란치아에는 무더위가 일찍 찾아왔다. 와이즈브룩의 잡화상 아벤(Aben)은 무더위 속에서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더위를 조금이라도 쫓아내려 하였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손님은 없고! 대신 거지들이 사방에 깔려있고!”

가혹한 프란치아의 세금정책은 길거리에 빈민이 즐비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돈이 돌지 않으니 잡화상의 물건 또한 팔려나갈 기색이 보이질 않았다. 정오의 뜨거운 태양만이 잡화점의 도자기와 물건들을 뜨겁게 달굴 뿐이었다.

“당신이 아벤이요?”

금속성의 묵직한 목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 아벤은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전 세금은 꼬박꼬박 잘 내고 있…….”

아벤은 말을 멈추었다. 가게에 찾아온 것은 세금을 걷는 관리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로브를 몸 전체에 걸친 커다란 거인과, 머리털이 듬성듬성 빠진 늙은 노움이었던 것이었다. 아벤은 몸가짐을 바로 하고는 헛기침을 했다.

“어험! 맞소. 내가 아벤이요. 그런데 무슨 용무로 오셨소?”

“자코님. 다행이군요. 우리가 잘 찾아온 것 같습니다요. 네.”

늙은 노움은 카노트였다. 카노트는 자코와 함께 와이즈브룩에 들어온 것이었다.

아벤은 자코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로브에 둘러싸인 그의 몸은 상당히 거대했는데, 사실은 갑옷 겉에 로브를 입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카노트의 아이디어였는데, 그는 큰 로브를 구해 자코에게 입혀서 와이즈브룩으로 잠입하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전 자코에요. 아벤씨에게 긴히 전할 말이 있어서 왔어요.”

“오! 그렇다면 안으로 들어오세요!”

아벤은 자코와 카노트를 가게안으로 안내하고는 자리를 권하였다. 자코가 나무로된 의자에 앉자 갑옷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목 마르시죠? 차를 준비하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는…….”

하지만 아벤은 잽싸게 홍차가 담겨있는 주전자와 찻잔을 권하였다. 카노트는 찻잔을 받아들고는 홀짝홀짝 마셨으나 자코는 홍차를 마시지 아니하고 고개를 떨구기만 할 뿐이었다. 아벤은 손바닥을 비비며 자코에게 물었다.

“긴히 전달할 말씀이란게 뭐죠?”

자코는 마법주머니를 뒤지더니 피로 물든 면사포를 꺼냈다. 면사포를 본 아벤은 흠칫 놀라고말았다.

“아벤씨…… 당신의 약혼녀인 로라나양은 도적들에게 붙들려 결국……. 죄송해요…….”

아벤은 큰 충격을 받았는지, 말을 잇지 못하였다. 자코가 면사포를 아벤의 손에 쥐어주자, 아벤은 자코를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은…… 대체 누구신데, 그녀의…… 면사포를 가지고 있는거죠?”

자코는 고개를 떨구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바로 제가 그 도적들의 일원이거든요…….”

아벤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때문에 주전자와 찻잔이 땅에 떨어지며 어지러히 깨졌다.

“당신…… 당신이 그 도적이라고?”

자코는 흐느끼며 대답했다.

“변명으로 들리겠지만, 전 마지막에 회심하고는 로라나양을 구출하려 했어요. 하지만…… 두목의 칼날에 그녀는 죽고 말았지요.”

“그녀는…… 로라나는 어디에 묻혀있나요?”

아벤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제가 그 위치를 알고 있어요. 함께 가실래요?”

하지만 아벤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만, 그러기엔 힘들 것 같군요. 그녀의 무덤을 보면 저는 더 미쳐버릴 지도 몰라요……. 전,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벤은 점포 내의 방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자코는 카노트를 힘없이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의 일 하나가 끝났군요. 이제 이퀄리를 가져다주고 필론경을 찾으면 될 것 같아요.”


아벤의 잡화점을 떠난 자코와 카노트는 인근의 여관에 투숙하게 되었다. 여관주인은 그들에게 방을 제공해주고 식사 또한 넣어주었다. 카노트는 향긋한 프란치아음식을 맛있게 즐겼으나 자코는 그 음식들을 조금도 먹을 수가 없었다. 결국 카노트만이 음식을 먹었고, 싸갈 수 있는 빵과 치즈 그리고 육포등은 배낭에 넣었다.

어느덧 와이즈브룩의 하늘에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아우…… 오랜시간을 걸었더니, 오늘따라 특히 졸립군요. 저 먼저 잘게요. 좋은밤.”

카노트가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자코는 졸립지가 않았다. 약혼녀의 죽음을 알게된 아벤의 얼굴이 떠오르자, 그 또한 심적으로 괴로웠기 때문이었다.

‘그만 괴로워하자. 내게는 또 해야할 일들이 있어. 이젠 자야해. 내일을 위해서도…….’

자코는 몸을 두르고 있는 거대한 로브를 벗으려 하였다. 하지만 두터운 갑옷 덕택에 로브를 벗기가 힘들었다. 그가 힘을 잘못 주자, 로브가 우두득 하며 찢어지려 하였다.

‘안돼겠어. 카노트씨보고 도와달라고 해야겠다.’

자코는 잠이든 카노트를 흔들었다.

“카노트씨. 피곤한 건 알지만, 일단 이 로브 좀 벗겨주고 주무세요.”

하지만 카노트는 일어나지 않았다.

“자는 척하시는 거 아니까 장난치지 말고요. 힘들더라도 이것만 좀 도와달라니까요?”

그래도 카노트는 쿨쿨거리며 자는 것이 아닌가? 자코의 눈이 커졌다.

‘이, 이건 수면제?’

본래 도적출신이었던 자코는, 그냥 자는 것과 수면제에 의해 자는 것을 구분할 줄 알았다. 그가 보기엔 카노트는 수면제에 중독된 것이 확실했다. 자코는 황급히 배낭속에 챙겨놓은 음식들을 꺼냈다. 치즈냄새를 자세히 맡아보니 수면제의 향이 나는 것이 아닌가? 자코는 등골이 오싹해져옴을 느꼈다.

‘무슨 일이지? 누가 우리를 노리고 있는 걸까?’

잠시 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인장입니다. 계시는지요?”

자코는 대답하지 않고 벽에 몸을 붙였다.

‘우리가 잠들었는지 알아보는거야!’

자코는 몸의 소리를 죽였으며, 카노트의 우렁차게 코고는 소리만이 방안을 가득채우고 있었다. 문은 두어차례 더 두드려지더니 주인장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네. 주문하신 후식 들어갑니다요.”

자코는 주인장의 이 말이 다른 손님들에게 들으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임을 감지했다. 자코는 벽 뒤쪽으로 더욱 몸을 밀착하며 숨을 죽였다. 이윽고 문이 열리더니 사내들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들의 손에는 후식이 아니라 칼과 밧줄이 들려있었다.

“어? 큰놈이 없는데?”

순간, 쾅하는 소리와 함께 한 사내가 천장으로 솟아올랐다. 자코에게 뒷덜미를 잡혀 천장에 던져진 것이었다. 그가 쓰러지자 다른 사내들이 소리쳤다.

“이놈은 잠들지 않았어!”

그들은 자코에게 덤벼들었으나, 자코의 무지막지한 힘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자코가 휘두른 주먹에 사내들은 얼굴이 깨지고 날아갔으며, 그걸 본 여관주인은 달아나려 하였다.

“어딜!”

자코는 손을 뻗어 여관주인의 멱살을 잡아올렸다. 옷깃이 그의 목을 조르게 되자, 여관주인의 얼굴은 빨갛게 변해버렸다.

“누구냐!? 누가 시켰지?”

자코의 물음에 여관주인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제가…… 그저 제가 그냥…….”

자코는 멱살을 뒤흔들었다.

“내가 멍청이인줄 아나? 여관주인들이 그냥 이런 일을 할 것 같아? 누구의 사주를 받아서 하는 거잖냐!?”

여관주인이 대답치 아니하자 자코는 쇠주먹을 뒤로 당기며 말했다.

“널 죽이고 네놈 아내와 아이들을 족쳐야겠군!”

그제서야 여관주인은 겁에 질려 황급히 입을 열었다.

“켁! 켁! 알려, 알려드리겠습니다요!”

“누가 시켰나!? 그리고 이유는 뭐지?”

“이, 이유는 잘 모르겠고…… 잡화상 아벤이 시켰습니다요!”

“뭣이!?”

자코는 아벤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사람을 보냈다는 것을 알게되자 일순 당황하고야 말았다.


-계속


작가의말

헉헉! 오늘이 연참대전 마지막 날인가요? 제발 그랬으면 좋겠는데요? 여러분들께서 사랑해주셔서 좋지만 좀 쉬고 싶기도 하거든요.^^;


자코란 캐릭을 기획한 의도는 “악당인데 착한 악당"이었습니다. 본업은 도적이지만 전사처럼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그런 캐릭입니다. 죄와 용서 사이에 늘 고뇌하는 그의 모습은  토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서 모티브를 따왔죠.


그의 모험은 어떻게 될지. 다음편에서 뵙겠습니다.


모두들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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