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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알라 님의 서재입니다.

21세기 퇴마록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위대한알라
작품등록일 :
2015.02.13 16:20
최근연재일 :
2015.04.12 18:01
연재수 :
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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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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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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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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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06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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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Chapter4.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7)

본 글에 등장하는 사건, 장소, 인물, 단체는 실존하지 않으며 모두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든 허구임을 미리 밝혀드립니다.




DUMMY

수혁은 꺼림칙해했다. 헌터로 활동해오면서 해외의 마법사들을 만나 마법을 직접 경험해 본 적 있지만 익숙한 일은 아니었다. 특히 자신을 대상으로 한 건 처음이었다. 거부감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준은 태평해 보이는 얼굴로 마법을 준비했다. 빛이 새어나가지 않게 커튼을 치고,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 인식 방해 결계를 침상 주변에 둘렀다. 의미 모르는 몇 개의 단어를 읊조리자 은은한 빛이 두 손에 어른거린다.


“지금부터 네 의식 일부에 나를 만들 거야.”

“쉽게 말해봐.”

“난 인형이기 때문에 정신이나 의식 같은 게 없다는 말은 했지? 그래서 네 정신에 트랩을 설치하는데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해. 일반적인 방법이란 시전자의 의식을 대상에게 이식해서 누군가 침투해오면 자동적으로 방어하는 걸 말해. 내겐 의식이 없으니까 편법을 쓰는 거야.”


턱을 몇 번 긁적이던 세준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설명을 이어나간다.


“내 의식이 아니라 인격을 복사하는 거랄까. 간단히 말해 네 안에 또 다른 나를 만드는 거지. 실체 없이 정보로만 이루어진 분신이야. 그러면 서큐버스가 널 죽이러 꿈에 침투했을 때 복제가 나서서 그걸 막는 거야. 간단히 말하자면 그래.”

“마음에 드는 방법은 아니군.”

“어쩌겠어. 이게 서큐버스를 잡을 유일한 방법인데.”


수혁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복제된 네 의식이 나한테 피해주는 일은 없겠지?”

“물론이지. 거창해보이지만 절대로 해가 될 일은 없어. 방어 프로그램만 입력시켜 놓을 거야. 이번 일만 끝나면 바로 원상복구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난 무얼 하면 되지?”

“아무것도. 그냥 가만히 있어.”


빛나는 손이 수혁의 이마 위에 얹어졌다. 세준은 무척이나 신중한 표정이었다. 눈을 감고 나지막이 뜻을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운다. 갓난아이에게 기름을 붓고 축복을 내리는 신부처럼 일견 성스럽게까지 보이는 모습이다.


주문이 거의 막바지에 달할 때 즈음엔 그의 손에 맺힌 빛이 맹렬하게 환해지면서 수혁은 도저히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주문이 끝나고 시동어를 읊조리자 마법이 발동된다. 빛이 몸으로 스며들어간다.


“후.”

“끝난 거야?”

“마법은 성공적이야. 다만 네 몸에 완전히 정착되려면 시간이 필요해.”

“어느 정도지?”

“한 2시간 정도.”


머릿속이 징징 울리는 묘한 기분이었다. 이건 마치 수혁의 페르소나, 슬레이어가 말을 걸 때의 감각과 비슷했다. 자신 안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있는 감각. 불쾌하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으음.”


약한 현기증이 몰려와 관자놀이를 부여잡는 수혁에게 당부한다.


“한숨 자라. 정상적인 거부반응이야. 아침에 일어나고 보면 현기증도 없어질 거야.”

“넌 돌아갈 건가?”

“아니. 조사 좀 해보려고.”

“지금?”


현재 시각은 새벽 3시. 같은 병실의 사람들이 모두 잠들고 인적이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기다렸던 탓에 야심한 시각이었다. 조사를 하겠다는 그의 말이 선뜻 이해가지 않았다.


“백 퍼센트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 게 있거든. 운이 좋으면 범인도 잡을 수 있고.”

“뭔데 그게.”

“설명은 내일 해줄게. 자라. 이 마법은 대상자에게 무의식으로든 체력적으로든 큰 부담이 돼. 애써 괜찮은 척 할 필요 없어.”


그 말대로 였다. 마치 격렬한 전투 후처럼 수혁은 피로에 지쳐있었다. 조금만 눈을 감아도 금방 잠에 곯아떨어질 것 같았다. 이렇게 졸음이 쏟아지는 건 처음이다.


결국 수마(睡魔)에 견디지 못하고 잠들고 만다.


세준은 수혁의 상태를 다시 한 번 점검하고 병실을 나왔다.


서큐버스 같은 몽마(夢魔)는 드림다이브라는 특수한 능력, 즉 대상의 꿈에 침투함으로서 생명력을 빼먹는 마물이다. 종류에 따라 신체적인 접촉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서큐버스는 조건 없이 먼 거리에 있는 대상에게 드림다이브를 할 수 있다.


때문에 서큐버스를 잡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며, 혹여 잡았다고 하더라도 물질적인 증거가 없어 처벌이 어렵다. 세준이 고난이도 정신마법으로 수혁을 미끼로 사용하면서까지 한 이유가 거기 있었다.


앞서 말했듯 서큐버스는 신체적인 접촉 없이 대상의 꿈에 침투할 수 있다. 그 말은 정신적인 접촉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드림다이브가 가능하겠는가.


그렇다면 서큐버스는 신체 접촉 없이 어떻게 드림다이브를 실현하는 걸까. 알고 있는 이는 별로 없지만, 바로 투사체(投射體)를 이용해서이다. 투사체란 꿈속에서 자신을 투영시키는 모습인데 서큐버스는 이를 현실로 불러들일 수 있다. 일종의 생령이나 유체이탈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면 쉽다. 요지는 육체는 가만히 있지만 정신은 자유롭게 돌아다닌다는 말이다.


현실 위에 덧씌워진 꿈속에서 거니는 투사체는 영혼이 아니다. 에너지 그 자체이자 몽마의 꿈속에서 만들어진 존재가 일시적으로 현실로 불러와진 것뿐이다. 즉, 현실세계와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여서 꿰뚫어 볼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또 볼 수 있다고 하더라도 물리력과 마법을 행사하는 건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 세준이 뛰어난 마법사여도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실현할 수 있는 힘은 없었다.


세준이 희망을 거는 건 서큐버스가 명확한 의지를 가지고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죽은 이의 영적 정보가 시공간에 새겨진 원령과 마찬가지다. 현실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싶어 하는 투사체는 그만큼 현실과 가깝기 때문에 모습도 한층 뚜렷해진다. 범인의 인상착의가 투영된 모습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발견한다면 큰 수확일 것이다.


병원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영화에서처럼 으스스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딱 필요한 만큼만 켜놓은 조명 덕분에 많이 어둡지 않았다. 데스크에는 당직을 서는 간호사 두 명이 조용하게 수다를 주고받고 있었다. 세준은 그들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고생하십니다.”


간호사들은 세준의 용모에 깜짝 놀라면서 야심한 밤 불쑥 찾아온 사람에게 친절한 미소를 잊지 않았다. 먹고 있던 과자는 보이지 않게 데스크 아래로 내린다.


“무슨 일이세요?”

“아, 무슨 일은 아니고 잠이 안 와서 병원 구경하고 있었어요.”

“밤에 그렇게 돌아다니시면 안 돼요. 다른 환자분들한테 피해가 갈 수 있어요.”

“죄송합니다.”

“환자분이세요?”

“아뇨. 친구가 입원해서 따라왔어요. 할 일도 없고 오늘은 여기서 자기로 했는데... 하하. 아무래도 쉽지가 않네요.”


오랜 경험을 통해 세준은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자기들만의 시간을 방해받은 간호사들은 불쾌함이나 어색함을 느낄 새도 없이 그의 화술과 유머에 이리저리 휘둘렸다. 자그마치 500년이나 갈고 닦은 말솜씨에 더해 뛰어나게 아름다운 용모까지 지니고 있으니 상대가 누구든, 특히 여성 같은 경우는 한 번 세준의 대화에 휘말리면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연약해 보이는 여성 두 분이 밤을 새서 근무하신다는 게 정말 대단하네요. 저라면 힘들어서 못할 텐데.”

“매일 당직을 서는 것도 아니고 자리를 지키는 거라서 힘들 건 없어요.”

“헤에. 무섭진 않으세요?”

“처음엔 다 그렇죠. 근데 뭐 익숙해지면 괜찮더라고요.”

“전 귀신이 정말 무서워서 절대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네요.”

“어머. 귀신을 무서워하세요?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

“하하하. 제가 어렸을 때부터 귀신이나 유령 같은 걸 잘 보는 체질이라서. 참, 이 병원에서도 한 번 봤어요. 어제인가? 시간도 이때쯤이었는데 이상한 여자가 휙 하고 지나가더라고요.”


간호사들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며 말했다.


“정말 있구나.”

“내가 말했지. 있다니까.”

“무슨 얘기죠?”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묻자 둘 중 비교적 젊은 간호사가 말문을 열었다.


“반년 전부터인가. 갑자기 귀신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요. 온 몸이 파란 여자가 밤마다 병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는 소문이요. 예전엔 잊힐 만 하면 봤다는 사람이 나왔는데 최근엔 자주 나온대요. 오늘도 또... 전 원래 귀신을 안 믿지만 이젠 정말이지 않을까 싶네요.”

“최근이라... 혹시 한 달 전부터 아닌가요?”

“음.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세준은 속으로 환호했다. 유도질문이랄 것도 없는 질문에 걸려든 간호사의 얘기는 정말 귀중한 힌트였다. 등장하기 시작한 건 반 년 전부터. 그러면 투사체의 주인인 서큐버스가 이 병원에 입원 또는 드나들기 시작한 게 그때쯤이란 것이다.


그리고 첫 번째 살인이 일어난 시기는 한 달 전이다. 범인은 어떤 계기로 인해 살인으로 목적을 바꾸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 목격자가 많이 생겨났을 터였다.


“근무 하면서 직접 본 적 있나요?”

“전 본 적 있어요.”


다른 간호사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일주일 전이었어요. 연달아 당직을 서느라 무척 피곤했어요. 그래서 잠 좀 깨려고 화장실에 가려는데 파란 여자가 지나가는 거예요. 당황해서 꼼짝 못했는데 절 보지도 않고 그냥 가더라고요.”

“인상착의는요? 어떻게 생겼죠?”

“음. 아주 예쁘게 생겼어요. 스무 살... 도 안 되어 보였고, 긴 머리에 잠옷 비슷한 원피스를 입었었죠.”

“그런 사람을 전에 본 적이 있었나요? 이 병원에 있는 환자나 간호사, 의사 중에서.”

“아뇨. 전혀... 그런데 그런 건 왜 물어보시는 거예요?”


투사체는 아무래도 피해자들의 상상 속 여인의 모습을 하고 다니는 모양이다. 그럼 투사체를 만나봤자 범인을 직접 알기는 힘들다. 추적해서 투사체가 누구에게서 나왔는지 알아야 되고, 또다시 살인을 저지르려고 한다면 막아야 한다.


세준은 빙그레 웃어보였다.


“그냥 호기심이요. 아, 이제 졸리네. 전 이만 가볼게요.”


정보를 얻어낸 세준은 뭐지, 하는 표정의 간호사들을 뒤로 했다. 그리곤 그들의 시야에서 보이지 않는 복도 의자에 앉았다.


잠을 잘 수 있는 몸도 아니고 딱히 할 일도 없어 투사체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무식한 방법이긴 해도 어떤 마물을 상대로든 출몰할 지역에 먼저 자리 잡고 있는 건 사냥에 가장 효과적이었다. 투사체는 주변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다닐 테니 번거롭게 몸을 숨길 필요도 없다.


하나 걱정되는 건 있었다. 간호사들의 말에 따르면 투사체를 목격한 사람이 많다고 했다. 살인을 목적으로 하는 만큼 현실 세계와 가까워진 상태란 것이다. 자칫 폭주하기라도 한다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랐다. 원령 비슷한 존재가 되어버리면 골치가 아프다. 꿈의 힘을 가진 투사체는 예측이 불가능한 힘을 실현시킬 수 있었다. 예를 들면, 꿈을 현실화시키던가 하는...


한참을 기다릴 필욘 없었다. 새벽 네 시쯤 되었을까. 공기가 술렁이는 게 느껴졌다. 주변 마력이 미세하게 요동쳤다. 자연 상태에서 그럴 일은 없다. 마법, 또는 이능력 발현이 일어났을 때 나타나는 반응이다.


간호사가 목격했다던 소문의 파란 여인이 홀연히 눈앞에 나타났다. 어디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그 자리에서 서서히 형체를 갖추더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잠깐 당황했으나 곧 쾌재를 불렀다. 생각보다 쉽게 찾아냈다. 운이 따라준 것이다. 아니면 범인인 서큐버스가 매우 부지런한 살인자이든가.


인상착의는 목격담과 달랐다. 투사체는 어깨자락까지 오는 짧은 곱슬머리를 한 15, 16세 정도의 소녀였다. 이번 타겟의 성적 취향을 반영한 모습인 듯 흔히 세일러복이라고 부르는 교복 차림이었다. 매우 아름답지는 않지만 충분히 매력 있는 얼굴이며 가슴은 평평했다. 꽤 매니악한 취향이다.


투사체 소녀는 세준을 인식하지 못한 채 명확한 방향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걷는다는 표현은 사실 올바르지 않았다. 발이 땅에 닿지 않는데도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이면 기절초풍할 일이지만 세준은 아무렇지 않게 그 뒤를 따라갔다.


병실로 들어가 마침내 침대에 누워있는 남자 옆에 선다. 투사체는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허리를 굽혔다. 꿈속에 들어가려는 것이다.


세준이 먼저 행동을 개시했다. 30대 후반의 나이로 보이는 남성의 이마에 손을 얹고 재빠르게 몇 가지 주문을 읊는다. 수혁에게 걸었던 것보다 훨씬 낮은 난이도로서 일시적으로 정신을 보호하는 마법이었다. 컴퓨터로 치면 바이러스를 걸러내는 기본적인 방화벽이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 정신트랩을 만들어 범인을 잡고 싶었으나 즉석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어쨌든 충분했다. 투사체는 남성의 몸 위에 자신을 포갰으나 꿈속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뜻밖에 정신적인 벽이 그녀를 막고 있었던 것이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주변을 둘러보지만 세준을 인식하지 못한다.


몇 번 더 시도한 끝에 포기한 듯 남성에게서 떨어진다. 투사체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갸웃했을 뿐이다. 그러다 고개를 숙여 볼에 입을 맞춘 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시 병실로 나가려는 것이다.


“실패하니 바로 포기하는 건가? 꽤 쿨한데?”


그 행동으로 알 수 있는 건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남자를 죽이려 했다는 것이다. 정기를 빼앗는 게 목적이라면 지금이라도 병실의 다른 자를 찾으면 되니까. 그렇다면 굳이 이 남자를 죽이려 한 이유는 뭘까.


그때 인기척이 느껴졌다. 투사체가 막 병실 바깥으로 나갔을 때였다. 아차 싶은 세준이 얼른 몸을 숨기려 했지만 마땅히 그럴 만한 엄폐물이 없어 그대로 노출되고 말았다. 분명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했었는데 남자가 죽지 않도록 마법에 신경을 쓰느라 한순간 방심한 탓이다.


인기척을 낸 사람은 믿기 힘든 표정을 한 채 문가에 서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형사 강민수였다.


귀신을 무서워하는 후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경비실에서 계속 CCTV영상을 감시하던 중 푸른 형체를 본 그는 공포를 이기고 도착한 병실 앞에서 보고야 말았다. 영상으로만 봤던 귀신이 웬 남성 몸 위에 올라타는 걸, 그리고 수상한 짓을 하는 세준을.


두 사람은 서로 멀뚱히 몇 초 동안 쳐다봤다.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세준이었다.


“아. 저기 이건 그러니까 말이죠. 오해하기 쉬운 상황인 건 알겠는데 먼저 제 말을 들어보실래요?”

“...널 세 건의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하겠다.”


그의 입장에선 당연히 그렇게 볼 수밖에 없었다. 귀신이든 뭐든 단순하게 생각해서 이런 야심한 시각에 환자 이마에 손을 가져다대는 청년은 누가 봐도 용의자였다.


민수가 총을 꺼내들었다. 짤막한 경찰용 리볼버다. 저런 장난감 같은 물건으로 세준이 다칠 리가 없으나 상황은 더 골치 아파졌다. 보아하니 이번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인 것 같은데 그만큼 사명감도 투철할 테니 최면이나 인식불능을 유발하는 마법은 먹히지 않을 게 뻔했다. 물리적으로 기절시키는 방법도 있지만 가능한 한 폭력적인 건 피하고 싶었다.


‘정말 이럴 때면 세레나의 권능이 부럽다니까.’


마법은 전지전능한 것이 아니라 까다로운 조건과 시간, 노력이 갖춰져야 성공률이 높아진다. 반면 세레나의 능력, 수혁의 페르소나, 서큐버스의 드림다이브 등 흔히 초능력으로 불리는 것은 개인의 능력대로 결과가 정해진다.


이런 갑작스러운 상황을 타개하려 할 때 마법은 아무 쓸모없다.


“천천히 양 손을 머리 위로 올려. 환자에게서 떨어지고.”


어쩔 수 없이 민수가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일단 그를 안심하게 해야 했다.


“형사님. 오해입니다. 전 범인이 아닙니다.”

“변명은 나중에 해. 뒤로 돌아.”


한숨을 내쉬고 뒤로 도니 민수가 다가와 수갑을 채웠다. 우악스러운 손길로 세준을 다시 앞으로 향하게 한 뒤 묻는다.


“한 가지만 묻자. 저건 도대체 뭐야?”

“그러니까 전 범인이 아니라... 잠깐, 저거라뇨? 뭘 말하는 거죠?”

“아까까지 너랑 같이 있었던 거 말이야. 모른다고 하지 마라. 네가 그걸 쳐다보는 것도 다 봤으니까. 저거랑 무슨 관계냐? 정체가 뭐지?”


질문을 쏟아내는 그는 식은땀마저 흘리고 있었다.


“파란 여자 말인가요?”

“그래, 그거!”


투사체가 보였다는 건가. 그렇다면...


그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마침 전부터 줄곧 생각해오던 일이었다.


“알고 있죠.”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자신만만하게 말하자 예상대로 형사는 추궁하려 했다. 그의 말을 끊고 세준이 말했다.


“수갑을 풀어주는 대신 말씀드릴게요.”

“웃기지마. 허튼 수작은 안 통해. 어차피 넌 잡혔어.”

“몇 번을 말씀드려야 하죠? 전 범인이 아닙니다. 투사체가 사람을 죽이려 한 거죠. 전 그걸 막으려 한 것뿐이라니까요. 보세요. 이 남자는 죽지 않았어요.”


민수는 여전히 총구를 겨누며 손가락을 환자의 코에 가져가 댔다. 고른 바람이 드나들었다. 확실히 죽진 않았다.


“너 방금 저걸 투사체라고 불렀냐? 무슨 뜻이야?”

“쉽게 말하면 귀신. 투사체는 전문용어죠.”

“전문용어?”

“네. 전 퇴마사입니다. 정확히는 마법사이고요.”


상황이 상황인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건 웬 미친놈이... 그럼 뭐 네가 고스트버스터즈(귀신을 물리치는 내용의 미국 영화)나 X파일 같은 거라고?”

“좀 많이 다르긴 한데... 그렇다고 해두죠.”

“내가 그걸 믿으라고?”

“믿고 안 믿고는 형사님 마음입니다. 하지만 보셨잖아요. 파란 여자를. 그런 게 있는데 퇴마사라고 없겠어요?”

“...”

“사실 제가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 당신을 제압할 수도 있습니다."

“웃기지마. 수갑이 채워졌는데 무슨 방법으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은색 수갑이 파캉 하는 소리와 함께 두동강 났다.


“이렇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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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Chapter4.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8) +3 15.04.12 637 8 15쪽
» Chapter4.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7) +2 15.04.06 455 10 18쪽
44 Chapter4.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6) +1 15.04.03 520 10 26쪽
43 Chapter4.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5) +2 15.04.02 497 6 21쪽
42 Chapter4.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4) 15.03.31 525 9 19쪽
41 Chapter4.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3) +2 15.03.30 673 11 19쪽
40 Chapter4.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2) +1 15.03.18 552 11 19쪽
39 Chapter4.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1) +1 15.03.17 622 14 12쪽
38 Chapter3. Love OR Hate(Epilogue) +2 15.03.15 642 10 12쪽
37 Chapter3. Love OR Hate(13) 15.03.13 484 6 26쪽
36 Chapter3. Love OR Hate(12) 15.03.13 463 6 18쪽
35 Chapter3. Love OR Hate(11) 15.03.11 459 9 19쪽
34 Chapter3. Love OR Hate(10) +1 15.03.10 447 10 16쪽
33 Chapter3. Love OR Hate(9) +1 15.03.08 353 9 16쪽
32 Chapter3. Love OR Hate(8) +1 15.03.08 605 9 21쪽
31 Chapter3. Love OR Hate(7) +2 15.03.07 528 11 29쪽
30 Chapter3. Love OR Hate(6) 15.03.07 457 9 21쪽
29 Chapter3. Love OR Hate(5) +1 15.03.06 508 9 21쪽
28 Chapter3. Love OR Hate(4) 15.03.05 431 9 17쪽
27 Chapter3. Love OR Hate(3) 15.03.05 513 9 26쪽
26 Chapter3. Love OR Hate(2) 15.03.04 529 9 19쪽
25 Chapter3. Love OR Hate(1) +1 15.03.02 618 16 21쪽
24 Chapter2. 시체놀이꾼(Epilogue) 15.03.01 408 9 11쪽
23 Chapter2. 시체놀이꾼(11) +1 15.03.01 535 10 16쪽
22 Chapter2. 시체놀이꾼(10) 15.03.01 560 15 16쪽
21 Chapter2. 시체놀이꾼(9) 15.02.28 534 10 20쪽
20 Chapter2. 시체놀이꾼(8) +1 15.02.26 447 10 20쪽
19 Chapter2. 시체놀이꾼(7) 15.02.26 676 11 21쪽
18 Chapter2. 시체놀이꾼(6) +2 15.02.25 682 10 25쪽
17 Chapter2. 시체놀이꾼(5) 15.02.24 597 13 24쪽
16 Chapter2. 시체놀이꾼(4) 15.02.23 458 10 19쪽
15 Chapter2. 시체놀이꾼(3) 15.02.22 582 12 13쪽
14 Chapter2. 시체놀이꾼(2) 15.02.22 688 12 14쪽
13 Chapter2. 시체놀이꾼(1) 15.02.21 764 15 19쪽
12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Epilogue) 15.02.20 754 11 14쪽
11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11) +1 15.02.20 585 15 16쪽
10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10) 15.02.19 645 14 17쪽
9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9) 15.02.18 771 13 15쪽
8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8) 15.02.17 765 14 16쪽
7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7) 15.02.17 771 16 20쪽
6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6) +1 15.02.16 931 15 15쪽
5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5) +2 15.02.15 965 19 20쪽
4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4) 15.02.14 1,085 16 17쪽
3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3) +1 15.02.14 1,226 20 16쪽
2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2) 15.02.13 1,711 26 15쪽
1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1) +2 15.02.13 2,894 3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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