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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알라 님의 서재입니다.

21세기 퇴마록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위대한알라
작품등록일 :
2015.02.13 16:20
최근연재일 :
2015.04.12 18:01
연재수 :
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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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30
추천수 :
565
글자수 :
387,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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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03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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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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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6쪽

Chapter4.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6)

본 글에 등장하는 사건, 장소, 인물, 단체는 실존하지 않으며 모두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든 허구임을 미리 밝혀드립니다.




DUMMY

-그는 평생 동안, 그러니까 그가 만들어진 1532년부터 이 책이 쓰여 진 1968년까지 약 십만의 생명을 죽였다.


벨라는 움찔하고 말았다. 많은 인명을 살해한 건 알고 있었지만 십만이라니.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다.


-모두 인간은 아니다. 비인외도의 마법사와 유사인간, 마물도 그 숫자에 포함된다. 그 중 절반가량은 흡혈귀로 19세기 초반, 그가 엠파이어 오브 뱀파이어, 통칭 제국과 단신으로 전쟁을 벌일 때 난 사상자이다. 당시 전 세계 흡혈귀의 수가 80% 급감하였고, 5대 뱀파이어 프린스 자르옌 키에프와 기사 장 바티스트 몽블랑도 이때 살해당했다. 이는 사실상 멸종에 가까운 수치로서 아인잠카이트는 뱀파이어 학살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언젠가 세준이 털어놓은 이야기였다. 절대로 씻을 수 없는 죄. 그는 현재 뱀파이어 프린세스인 세레나를 간접적으로 도우며 속죄를 행하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사건은 1650년대에 무려 100여명에 달하는 인간을 납치해 생체실험을 행하고 그 시신을 먹은 일이다.


덜컹 하고 의자가 뒤로 나뒹굴었다. 벌떡 일어선 벨라는 눈앞의 텍스트를 믿을 수가 없었다. 문장 아래로 내용이 이어진다.


-수많은 마법사들이 여러 가지 추측을 내놓았지만 본인이 생각하기로 가장 신빙성 높은 가설은, 그가 인간이 되기 위해 그랬다는 것이다. 인간이 되기 위해 근원을 탐색하던 끝에 좌절과 회의감을 느끼고 미신에 사로잡혀 식인(食人)을 했다. 왜 그가 인간이 되기 위해 식인행위를 했는지 이해가 쉽도록 풀어 설명하겠다.


-무언가를 먹는 행위는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개념이다. 예로 음식을 생각하면 쉽다. 신체에 영양이 부족하기에 우리는 음식을 먹는다. 식인행위도 같다. 인간이 아닌 자가 인간을 먹어 인간이 되고 싶은 것, 그게 식인행위의 본질적인 목적이다. 동양의 구미호 전설(모르는 이는 폴 베르만의 세계마물백과사전을 참고)이나 영체살해자(이하 동문)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모든 문화권에서 식인행위는 쉽게 접할 수 있다.


벨라의 머릿속에 지난날의 영상이 스쳐지나간다. 노랗게 변색된 달. 그 아래서 피를 뒤집어 쓴 채 슬프게 웃는 세준. 시체가 된 영체살해자를 앞에 두고 그가 말했었다.


‘인간이 되고 싶어서야. 인간이 아닌 자가 인간을 먹으면 인간이 된다. 오래된 미신이지. 일종의 의식에 가까운 행동이야. 물론 인간을 먹어도 그렇게 되지 못하는 건 스스로가 더 잘 알지만 생물이라는 건 궁지에 몰리면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일이라도 기적을 바라며 행동하거든.’

‘그걸 어떻게 알았지? 물어보기라도 한 거야?’

‘아니. 그는 대답하지 않았어. 그냥... 아주 먼 옛날에 비슷한 일이 있었거든.’


그때 한 말의 의미가 이런 것이었나.


-그의 식인행위는 마법학적으로 즐거운 논의거리가 된다. 합리적인 사고와 프로그램된 감정으로 움직이는 인형이 어째서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였는지, 또 인간이 되기 위해 근원을 탐색하던 그가 왜 그런 짓을 벌였는지. 이는 애초에 마법으로 근원을 찾는 게 불가능한 게 아니라는 추측도 조심스럽게 하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상 누구보다도 근원에 근접한 아인잠카이트가 미신 따위에 집착하며 100여 명의 인간을 먹지 않을 테니까. 혹은 사고회로의 이상으로 인한 단순한 오작동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거기까지만 읽고 벨라는 책을 덮었다. 아직 뒷장은 많이 남았으나 이후를 읽기 위해선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전설보다 훨씬 거대하고 악한 죄... 세준이 말하길 극도로 꺼리던 것들...


과연 자신이 알기를 바랐던 게 이것일지 헷갈렸다. 물론 벨라는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걸 알고 싶었던 걸까? 그가 얼마나 추악한 존재인지?


‘과거의 죄는 과거의 죄일 뿐이야. 그보다 현재가 더 중요해. 하지만 잊진 않아. 그래서 속죄를 하는 거야.’


어느 날인가 그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다. 어떻게 보면 참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말이다. 100여명의 인간을 먹은 자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직접 보았던 그는 어땠지? 앞집 소녀를 좋아하고, 흡혈귀를 보호하고, 위협적인 마물들로부터 사람을 구하기 위해 앞장서 퇴치하는 그는 어떤가.


“...아무것도 모르겠어.”


어느 쪽이 그의 진짜 모습일까. 아니, 진짜 모습이 있긴 한 걸까.


“시몬 교수님. 오래간만이네요.”


벨라는 깜짝 놀랐다. 생각을 너무 깊게 한 탓인지 어느 샌가 지척에 다가온 그 사람은 그녀를 웃으며 쳐다보고 있었다.


이상하게 이름이 선뜻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력이 비상한 그녀가 한 번 본 사람의 이름을 잊는 경우는 잘 없는 일이었다. 분명 기억은 났다. 학교로 돌아오고 나서 식당에서 마주쳤던 영국인 청년이다.


“아, 오래간만이네요. 그...”

“벌써 잊으셨군요. 하긴 2주일이 지났으니까요. 알렉스 블레이크입니다.”

“미안해요, 알렉스.”

“천만에요.”


알렉스가 이곳에 있는 걸 보면 그도 금서를 열람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자신을 7학년이라고 소개했던 게 기억났다.


“그 책 읽으신 건가요?”


읽고 있던 책을 유심히 보던 그가 물었다.


“조금요.”

“충격적이죠?”

“당신도 읽었나요?”

“오래 전에 한 번 읽었죠. 강의를 위해서 읽으시려는 건가요?”

“알고 있어요?”

“그럼요. 수업 참관도 했는데요.”


벨라의 강의는 비록 흥미로운 점이 많다 하더라도 교양으로 분류되어 있다. 금서에도 접근이 허락된 고학년 학생이라면 굳이 들을 필요가 없을 텐데.


“그러고 보니 교수님은 한국에서 아인잠카이트와 만난 적이 있다는데, 책을 본 소감은 어떠세요?”

“...어느 쪽이 그의 진짜 모습인지 모르겠어요.”

“하하. 그렇죠?”


책 겉표지를 조심스럽게 매만지던 그가 말했다.


“마왕과 평화로운 은둔자. 진짜 모습은 둘 다 일지도 몰라요.”

“둘 다 진짜?”

“사람은 누구나 양면성과 모순점을 가지고 있죠. 그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요? 하하. 물론 인형이지만.”


벨라는 문득 궁금해졌다. 알렉스라는 이 청년은 어떻게 이토록 아인잠카이트에 대해 잘 아는 것일까.


“저도 당신처럼 아인잠카이트에겐 꽤 관심이 있어요.”

“나처럼?”

“연구 목적은 아니에요. 순수한 호기심이죠. 존재 자체가 워낙 대단한 인물이다 보니까요.”


그러더니 이렇게 덧붙인다.


“한 마디로 매료되어 버린 거죠.”

“매료라고요?”


알렉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반했다고 해도 좋아요. 500년 전 교회와 휴전협정을 맺은 위대한 마법사의 인형이며, 마물 퇴치 집단 ‘까마귀’를 설립한 역사상 최강의 마법사. 간간히 세계가 멸망할 위험을 막아냈던 영웅이지만 그 사이사이에 무수한 악행을 저지른 마왕. 지금은 한국이란 나라에서 조용히 살고 있는 은둔자. 듣기만 해도 매력적이지 않아요?”


벨라는 그 외의 모습도 알고 있다. 검소한 생활을 즐기고, 남에게 친절하며, 불의를 참지 못하고, 인형이면서 한 소녀를 좋아하고 그런 자신을 부정하는 세준을.


아, 그렇구나. 벨라는 깨달았다. 알렉스가 말한 게 옳았다. 매료. 자신은 세준에게, 정확히는 그가 가진 모순된 모습에 매료되어 있었다.


“벨라?”


잠시 표정이 굳어져 있던 벨라를 알렉스가 걱정스럽게 불렀다.


“갑자기 왜 그래요?”

“아, 아무 것도 아니에요. 난 이만 가볼게요.”


혹시 율리아는 이런 자신을 꿰뚫어 본 것일까? 오늘 밤 12시, 14연구실로 가면 알 수 있게 될 거라는 말을 했던 건 그곳에서 아인잠카이트에게 매료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라는 말이었을까?


하지만 도대체 그곳에 무엇이 있길 래?


벨라는 복잡한 마음으로 알렉스에게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서둘러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알렉스는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야심한 밤의 쉼포네시스는 날이 밝을 때완 전혀 다른 모습이다. 초현대적으로 지은 거대한 지하묘지와 같았다. 조명은 딱 발밑을 밝힐 정도였다.


그 아래로 시커먼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유령처럼 돌아다녔다. 쥐 죽은 듯이 제 갈 길만 가는 그들은 서로에게 아는 척은 고사하고 아예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무제한 통행을 승인받은 마법사들이다. 대단한 실력임과 동시에 괴팍하고, 무신경하며, 오로지 마법에만 열정을 바친 괴짜들이었다. 사람과의 접촉을 꺼려하는 그들에겐 일반 학생들의 통행이 금지된 밤은 자신만의 세상이었다. 낮에는 연구실에 처박혀 있다가 밤에 사람이 적어지면 돌아다니는 것이다. 마치 들짐승이나 벌레 같이.


벨라도 한때 저랬던 적이 있었다.


11시 40분. 그녀는 환승층에 들렸다. 쉼포네시스의 자랑거리인 무지개 분수는 작동하지 않는다. 마음의 무게를 재는 청동 저울이 어둠 속에서 푸르게 빛났다. 그 주위로 몇몇 마법사가 지나간다. 벨라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다. 야간엔 비밀스러운 연구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서로 얼굴을 감추는 게 언제부턴가 암묵적인 룰로 자리 잡고 있었다.


5시 승강기에 타려고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렇게 많이 모이는 건 처음이었지만 벨라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우연히 가려는 층이 같을 수 있었다.


승강기에서 내렸을 때 상황이 이상해진다는 걸 깨달았다. 벨라와 같이 타고 온 이들은 흩어지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같은 곳을 향했다. 그곳은 14연구실이었다. 벨라가 가고자 하는 곳과 동일했다.


14연구실 앞에는 이미 많은 마법사들이 모여 있었다. 족히 50명은 넘어보였다. 모두 얼굴을 감추기 위해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다. 아무래도 벨라와 같이 온 이들이 마지막이었는지 닫혀있던 연구실의 문이 열리고 모두가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벨라는 잠깐 고민했다. 머릿속에 사이렌이 울리고 있었다. 본능적인 감각이 들어가지 말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는 천성적인 마법사로 궁금한 것은 절대 참지 못하는 성격이다. 여기까지 온 이상, 율리아가 자신에게 했던 말의 의미와 여기에 모인 자들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온 것인지 알고 싶었다.


결국 벨라는 그들과 함께 연구실에 발을 내딛었다.


연구실은 넓었다. 실습 목적의 강의실로도 쓰이는 곳답게 의자와 책상도 마련되어 있다. 벨라는 다른 이들처럼 의자에 앉았다. 이윽고 모든 사람이 착석했을 때 누군가 단상에 올라섰다.


“Zu der große einsamkeit!”


단상에 선 자, 남성의 목소리를 가진 자가 외치자 사람들이 따라 외친다.


“Zu der große einsamkeit!”

“Zu der große einsamkeit!”

“Zu der große einsamkeit!”


독일어였다. 뜻은 위대한 고독을 위하여... 아니, 위대한 ‘아인잠카이트’를 위하여 인가?


“오늘도 이렇게 집회에 참석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목소리는 생소했다. 전혀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들어봤다 하더라도 마법으로 약간 변형시켰겠지만 체형을 봤을 때 분명한 건 율리아는 아니었다. 그녀가 아니라는 사실에 왜 안도하는 것인지 몰라도.


“저번보다 수가 늘었군요. 좋은 현상입니다. 우리 집회가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이 되고 있다는 의미이니까요. Zu der große einsamkeit!”

“Zu der große einsamkeit!”

“Zu der große einsamkeit!”


자주 외치는 걸 보니 이 집회의 구호인 듯싶었다. 막연히 불길했던 예감이 점차 뚜렷하게,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현실화 되는 것 같아 벨라는 불안해졌다.


그는 목을 한 번 가다듬고 이어나갔다.


“우리 집회는 아인잠카이트님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부디 그 분께서 구원의 길을 찾길 바라는 기도입니다. 여러분 기도합시다. 그 분이 인간을 저버리질 안 기를. 부디 구원자로서 세상을 정화시키기를.”


우릴 저버리질 않기를. 세상을 정화시키기를. 좌중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아인잠카이트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은 악으로 가득 차 그 안에 사는 자, 악에 물들지 않고는 살 수 없다고. 한때 그 분도 악에 물들어 악행을 일삼으셨습니다. 그 분의 시련이었습니다. 우리는 진노한 구원자가 파괴를 하실 때 눈물을 흘렸습니다. 기도를 했습니다. 부디 제 길을 찾아 구원을 찾으시기를.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신 그 분은 마침내 시련을 이겨내고 출발선에 서셨습니다. 동양의 작은 땅에서 시작된 구원의 길은 이제 막 시작하여 곧 세상을 향해 뻗어나갈 것입니다.”

“세상을 항해!”

“뻗어나가리!”

“그렇습니다. 여러분. 자, 기도합시다. 그 분께서 구원의 길을 통해 진정한 마법사들의 세상을 만들기를.”


모두가 고개를 숙이며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였다. 오로지 한 사람, 벨라만이 그러지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후드로 가려진 얼굴은 경악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이들은 소문으로만 들었던 아인잠카이트 숭배자들이었다.


아인잠카이트 숭배자들의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해서 모르는 이들이 없었다. 말 그대로 아인잠카이트를 숭배하고 찬양하는 자들이다. 그의 압도적인 무력, 현명한 지혜, 우주와 같은 지식을 신격화한 자들.


“구원의 길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마법사들의 세상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그 분께서 또다시 시련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음 구원은 언제 찾아올지 모릅니다. 무한한 삶을 사시는 그분께 우리 같은 필멸자들의 시간은 중요치 않으니까요. 그분은 그렇습니다. 너무나 위대하신 나머지 그 아래 있는 것들을 잘 살피시지 못하지요. 저는 가끔 그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안타까운 나머지 눈물이 나옵니다.”


단상에 선 자의 목소리가 울먹였다. 놀랍게도 주변 사람 몇몇도 훌쩍인다. 이들은 완전히 아인잠카이트에게 심취한 광신도들이었다.


“그러나 저는 개의치 않습니다. 그분께서 저를 짓밟으시어 걸어가신다고 해도 기꺼이 짓밟히겠습니다. 그로 인해 그 분이 올바른 길을 걸어가실 수 있다면, 혹 잘못된 길로 가신다고 하더라도 뒤를 돌아보셨을 때 제 시체를 보시어 다시 올바른 길로 돌아가실 수만 있다면. 전 제 한 몸 그분을 위해 바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저 또한 그렇습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위해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부디 그분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간절한 기도가 그분에게 전달되고 마침내 그분께서 깨달으시어 진정한 구원자의 길을, 진정한 마법사의 길을 걸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합시다.”


집회는 약 한 시간가량 이어졌다. 대부분 비슷비슷한 얘기고 항상 기도로 끝났다. ‘아인잠카이트님께서 말씀하시길’이라는 말을 자주 썼고 기독교의 성경이나 이슬람의 코란 같은 명확한 기준이 되는 경전이 없어 주제도 중구난방이고 말의 앞뒤가 맞지 않는 게 수두룩했다. 과거의 일화를 소개할 때도 그게 사실인 지 알 턱이 없었다. 물론 식인행위 같은 악행이 거론되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회에 참여한 자들은 매우 충성스러운 모습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광신 상태로 빠지게 한 것일까. 종교란 단순히 말만 잘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그게 사실이라는 물질적인 증거가 있어야 했다. 아니면 목격자라든지. 이들에겐 그런 게 전무했다.


“...자, 그럼 이만 집회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혹 질문이 있으신 분은 손을 들어주십시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앞쪽의 누군가 손을 든다. 연설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 자가 일어섰다.


“저는 이 집회에 몇 번 참여한, 이제 막 구원자의 존재를 믿기 시작한 미천한 마법사입니다. 그래서 아인잠카이트님께서 앞으로 행하실 진정한 마법사의 길이 과연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또 그 끝에 찾아오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어디선가 들은 적 있는 목소리였다.


“형제여. 그대는 참 훌륭하고 충실한 마법사로군요. 잘 모르는 것을 배우려는 자세는 매우 좋습니다. 형제여, 안타깝게도 저도 정확한 것은 잘 모릅니다. 다만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는 사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예.”

“진정한 마법사의 길이란 바로 근원으로 향하는 길을 뜻합니다. 그 분께선 오래지 않아 마침내 근원에 도달하셔서 그 힘을 손에 넣으실 겁니다. 그리고 그 힘을 그동안 그 분을 위해 봉사했던 저희들에게 나누어주실 겁니다.”


그는 마치 지금 이 순간 그 힘을 얻은 것 마냥 감격에 겨워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린다.


“우리 마법사들의 시대가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주의 질서인 근원을 자신들의 것처럼 마음대로 바꾸어 말하며 호시탐탐 어두운 욕망을 드러내던 교회, 이슬람, 불교와 같은 이단(異端)은 모두 힘을 잃고 쇠락할 것이며, 마법의 힘이 강대해진 세상에서 새로운 국가가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마법사들만의 국가. 더 오리진(The Origin)이!”


열정적인 설명에 흥분한 사람들이 ‘더 오리진’을 연신 외쳤다. 질문을 한 자는 거기에 편승하지 않고 침착한 말투로 질문했다.


“마법사들만의 국가라면 정말 살만 하겠군요. 그 나라가 도래한다면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 자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들은 마법을 믿지 않은 죄로 미개해질 것입니다, 형제여. 그들을 불쌍히 여기나 그건 그들의 죄입니다.”

“그렇군요. 그거 정말 좋은 세상입니다.”


질문을 한 자의 말투에서 비아냥거림이 느껴졌다. 이미 자신의 연설에 심취한 자는 알아차리지 못했어도 벨라는 확실히 느꼈다.


“그렇소이다. 자, 우리 모두 기도합시다. 언젠가 찾아올 더 오리진을 위해서!”


광신(狂信)의 기도가 끝나고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들은 제각기 흩어졌다. 서로 정체를 들킬 만한 사적인 대화 하나 나누지 않고 신속하게.


벨라는 아무도 남지 않은 연구실에 남아있었다. 충격과 공포에 질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방금 전 이 장소에서 일어났던 일은 직접 보고 들어도 도저히 믿기 힘들었다.


맙소사. 합리적이고 실용적이며 현실적인 마법사들이 종교에 빠지다니. 그것도 단어와 약간의 개념만 바꾸면 완전히 다른 종교와 똑같지 않은가.


손톱을 깨물었다. 고민할 때 나오는 옛날 버릇이었다. 도대체 율리아는 무슨 생각으로 자신을 여기로 보냈을까. 모르는 것을 여기서 찾게 될 거라고? 그럼 내가 그에게 매료되어 숭배하기라도 한단 말인가?


아니, 그보다 율리아 또한 이 종교에 빠져있는 걸까?


당장 율리아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쳤다. 깜짝 놀란 벨라의 몸이 들썩했다.


“이런,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검은 로브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로 알 수 있었다. 아까 집회 마지막에 질문을 한 자였다.


“아, 아뇨, 괜찮습니다.”

“그 목소리는... 시몬 교수님?”


서둘러 자리를 떠나려는데 몸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상대는 자신이 누군지 아는 것이다. 이 자리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최소 마법사 자격 박탈로 평생 학교에 발도 못 붙일 징계가 떨어지기 충분한 걸 알기에 벨라는 겁먹었다.


“교수님도 이 집회의 일원이셨군요.”

“아, 아닙니다. 전 시몬 교수도 아니고 집회는 아는 사람의 권유로 속아서 온 겁니다. 그럼 이만.”


뿌리치고 가려는데 남자가 깊게 눌러쓰고 있던 후드를 벗는다. 드러난 얼굴은 벨라도 몇 번 봐서 알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목소리만 들어도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었는데 어째서 지금껏 모르고 있었을까.


“알렉스... 블레이크.”


로브를 입은 자는 넉살 좋게 식당에서, 바로 오늘 오후에 도서관에서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던 영국인 청년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인물을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만난 까닭에 몹시 당황해 자신의 정체를 스스로 드러내는 꼴이 되었다.


“시몬 교수님이 역시 맞군요.”

“당신이 왜 여기에...”

“그건 제가 할 말입니다.”


그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여긴 대화를 나누기 적절한 장소가 못 돼요. 자리를 옮기죠.”


두 사람은 충격의 장소에서 벗어나 환승층의 벤치에 앉았다.


알렉스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교수님도 더 오리진에 계실 줄은 몰랐네요.”

“더 오리진?”

“아인잠카이트 숭배자들의 종교 이름입니다. 그들이 바라는 왕국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부르죠.”


그들은 다시 후드를 깊게 눌러쓴 상태였다. 야심한 시각,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걸 들키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상한 소문이 나는 건 둘째 쳐도 아까부터 벨라에겐 환승층을 오고가는 자들이 전부 그 집회에 있던 사람들로 보였던 것이다. 자신이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 집회가 마법사 사회에 알려지게 되면 어떤 파장이 일어날지 추측해보면 끔찍했다.


“이런 사이비(似而非) 종교에 흥미가 있을 줄은 몰랐네요.”


하긴 알렉스는 낮에 도서관에서 만났을 때, 스스로 아인잠카이트에게 매료되어 있다고 밝혔었다. 그런 자가 좀 더 심취해서 오리진에 가담한 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금서를 열람할 수 있는 똑똑한 마법사가 가장 비합리적이라고 여겨지는 종교에 빠진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개인적인 흥미입니다. 전 숭배자라기보다... 관찰을 목적으로 그곳에 갔던 거고요. 물론 이 시점에서 제 말이 설득력이 없다는 건 잘 압니다.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고요.”


벨라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니라 벌어졌던 겁니다. 꽤 오래 전부터 오리진은 전 세계 지하에서 활동하고 있었어요. 환한 대낮이 아니라 모두가 잠든 밤에 은밀한 곳에서.”

“아인잠카이트 숭배자들은 이미 예전에 다 잡혔다고 알고 있는데요.”

“단순히 잡아들인다고 해서 그게 끝날까요? 종교란 게 그렇게 쉬워 보이세요? 이건 마치 유전자 조작을 거친 잡초 같습니다. 아인잠카이트라는 원인이 있는 이상, 뽑아도 자라죠.”

“존재 자체가 문제라고요?”

“기분이 상하셨나 보군요. 그가 살아있는 이상 그를 추종하는 세력이 없어지지 않을 거란 말이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발끈한 벨라는 무안해져서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

“어떻게 해서 당신이 집회로 온 거죠? 오리진은 무척 폐쇄적인 집단입니다. 오리진 내부에서도 영향력이 있는 사람의 권유가 아닌 이상 그들은 절대로 신참을 받아들이지 않아요. 정보가 생명이니까요.”


율리아. 벨라가 존경하고 롤모델로 삼고 있는 현명한 교수이며 마법사.


“권유가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당신에게 밝힐 순 없어요.”


그녀에게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는 벨라로선 도저히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 율리아가 오리진의 광신도라니. 확인해봐야 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봐서 율리아가 과연 오리진과 어떤 관계인지 밝혀야 했다. 그 전엔 어떠한 섣부른 판단도 금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군요. 이해합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권유로 나오게 되었고 그 사람을 밝히기 싫으니까요.”


덧붙여 알렉스는 자신이 아인잠카이트에게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안 누군가에게 권유를 받았다고 했다.


“아마도 그게 그들의 방식인 것 같습니다. 주의 깊게 관찰한 뒤 평소 친분이 있는 자를 통해 끌어들이는 거죠. 그러면 쉽게 헤어 나오기 어렵습니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 누군가의 사활도 걸려있으니까요. 노련하고, 꽤 머리를 썼습니다.”

“당신은... 당신은 계속 이 집회에 나올 건가요?”

“네.”

“어째서?”

“말했듯이 전 매료되어 있습니다. 아인잠카이트 그 존재 자체한테요. 그를 숭배하고 말고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게다가 거긴 꽤 재밌거든요. 아인잠카이트가 과연 마법사들에게 어떤 존재일까, 하는 주제에 대해 생각하기 좋은 곳입니다.”


벨라는 단순히 학구적인 의미에서 집회를 나간다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가장 믿었던 율리아를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에 대한 신뢰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흥미를 유발하는 것 중 일례로 집회에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 아니 제가 생각할 땐 모든 사람이 평생 아인잠카이트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을 겁니다. 과연 무엇이 그들을 응집하게 만들고 하나로 뭉치게 했을까요.”

“주모자가 있다는 말이군요.”

“네. 한 사람, 그것도 쉼포네시스 학교 내는 물론이고 마법사 사회에서도 꽤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주모자겠죠. 그 또는 그녀는 분명 아인잠카이트를 만나봤을 겁니다. 그렇지 않고선 최초 집회를 열 때 신도들에게 설득력이 부족했을 거예요. 그게 제 추측입니다. 하지만 주모자가 한 번도 집회에서 모습을 드러낸 적은 없어요. 적어도 제가 보기엔.”


그게 율리아일까. 율리아라면 알렉스가 말한 대로 영향력이 대단한 마법사이다. 더구나 아인잠카이트를 실제로 만나본 사람이었다. 모든 조건에 부합하며, 그녀가 벨라에게 집회에 가보라고 한 걸 보면...


“전 그 자를 만나봐서 얘기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있는 자들은 두루뭉술한 얘기 밖에 듣지 못해요. 앞뒤도 맞지 않고 기도 밖에 하지 않죠. 그냥 광신도들입니다. 주모자는 다르겠지요. 그자는 명확한 이유를 가지고,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집회를 만들었을 테니까요. 한 번이라도 집회에 나왔으면 좋겠군요. 질문할 게 참 많은 데 말이죠.”


그건 벨라도 마찬가지였다.


알렉스는 일어나면서 말했다.


“당신은 더 이상 이 일에 관여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제가 볼 때 당신은 좀... 위험하니까요.”


그가 어떤 의미에서 위험하다는 것인지 알려주지 않고 떠난 후에도 벨라는 한참을 거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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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퇴마록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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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Chapter4.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8) +3 15.04.12 636 8 15쪽
45 Chapter4.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7) +2 15.04.06 454 10 18쪽
» Chapter4.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6) +1 15.04.03 520 10 26쪽
43 Chapter4.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5) +2 15.04.02 497 6 21쪽
42 Chapter4.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4) 15.03.31 525 9 19쪽
41 Chapter4.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3) +2 15.03.30 672 11 19쪽
40 Chapter4.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2) +1 15.03.18 552 11 19쪽
39 Chapter4.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1) +1 15.03.17 622 14 12쪽
38 Chapter3. Love OR Hate(Epilogue) +2 15.03.15 642 10 12쪽
37 Chapter3. Love OR Hate(13) 15.03.13 484 6 26쪽
36 Chapter3. Love OR Hate(12) 15.03.13 462 6 18쪽
35 Chapter3. Love OR Hate(11) 15.03.11 459 9 19쪽
34 Chapter3. Love OR Hate(10) +1 15.03.10 446 10 16쪽
33 Chapter3. Love OR Hate(9) +1 15.03.08 352 9 16쪽
32 Chapter3. Love OR Hate(8) +1 15.03.08 604 9 21쪽
31 Chapter3. Love OR Hate(7) +2 15.03.07 528 11 29쪽
30 Chapter3. Love OR Hate(6) 15.03.07 457 9 21쪽
29 Chapter3. Love OR Hate(5) +1 15.03.06 508 9 21쪽
28 Chapter3. Love OR Hate(4) 15.03.05 431 9 17쪽
27 Chapter3. Love OR Hate(3) 15.03.05 513 9 26쪽
26 Chapter3. Love OR Hate(2) 15.03.04 528 9 19쪽
25 Chapter3. Love OR Hate(1) +1 15.03.02 617 16 21쪽
24 Chapter2. 시체놀이꾼(Epilogue) 15.03.01 408 9 11쪽
23 Chapter2. 시체놀이꾼(11) +1 15.03.01 535 10 16쪽
22 Chapter2. 시체놀이꾼(10) 15.03.01 559 15 16쪽
21 Chapter2. 시체놀이꾼(9) 15.02.28 534 10 20쪽
20 Chapter2. 시체놀이꾼(8) +1 15.02.26 447 10 20쪽
19 Chapter2. 시체놀이꾼(7) 15.02.26 676 11 21쪽
18 Chapter2. 시체놀이꾼(6) +2 15.02.25 682 10 25쪽
17 Chapter2. 시체놀이꾼(5) 15.02.24 597 13 24쪽
16 Chapter2. 시체놀이꾼(4) 15.02.23 458 10 19쪽
15 Chapter2. 시체놀이꾼(3) 15.02.22 581 12 13쪽
14 Chapter2. 시체놀이꾼(2) 15.02.22 688 12 14쪽
13 Chapter2. 시체놀이꾼(1) 15.02.21 763 15 19쪽
12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Epilogue) 15.02.20 754 11 14쪽
11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11) +1 15.02.20 584 15 16쪽
10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10) 15.02.19 644 14 17쪽
9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9) 15.02.18 770 13 15쪽
8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8) 15.02.17 764 14 16쪽
7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7) 15.02.17 771 16 20쪽
6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6) +1 15.02.16 931 15 15쪽
5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5) +2 15.02.15 965 19 20쪽
4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4) 15.02.14 1,084 16 17쪽
3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3) +1 15.02.14 1,225 20 16쪽
2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2) 15.02.13 1,711 26 15쪽
1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1) +2 15.02.13 2,891 3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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