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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알라 님의 서재입니다.

21세기 퇴마록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위대한알라
작품등록일 :
2015.02.13 16:20
최근연재일 :
2015.04.12 18:01
연재수 :
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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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32
추천수 :
565
글자수 :
387,690

작성
15.02.19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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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4
추천
14
글자
17쪽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10)

본 글에 등장하는 사건, 장소, 인물, 단체는 실존하지 않으며 모두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든 허구임을 미리 밝혀드립니다.




DUMMY

“그럼 지켜보시죠. 혜미 씨.”

“알겠어요.”


혜미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동시에 개량 한복의 넉넉한 소매에서 또 다른 부적을 한 움큼 꺼내 간단한 수인을 맺고 허공에 뿌렸다. 특별한 주문을 외운 것도, 영체살해자를 겨냥해 뿌린 것도 아니었지만 부적은 괴물의 팔다리에 들러붙는다.


영체살해자가 부적을 떼어내려고 손톱을 사용했지만 재빨리 맺은 혜미의 수인에 부적은 촤라락 하는 소리와 함께 더더욱 휘감길 뿐이었다.


“추(錘)!”

“크악!”


쿠웅. 혜미의 술법에 의해 묵직한 소리와 함께 두 발로 서있던 영체살해자가 무릎을 꿇고 네 발로 주저앉았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성대가 검기를 최대한도로 발휘하여 영체살해자에게 쇄도했다. 날카롭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성대의 검을 가볍게는 아니지만 그래도 별 어려움 없이 피한 영체살해자가 뒤로 펄쩍 물러섰다.


그러자 이번엔 인권이, 정확하게는 인권의 옆에 있던 푸르른 갈기의 늑대가 움직였다. 네 발로 서있어도 웬만한 성인 남자의 키와 비슷한 크기의 거대한 늑대는 그 위압적인 몸체를 돌진시키며 발톱을 거세게 휘둘렀다. 인권이 소환할 수 있는 얼음의 정령 중에서도 물리적인 능력을 빼면 하급에 속하는 소환수이기는 했지만 시퍼런 냉기가 추가적인 피해를 입힌다.


끼앙. 쇠가 깎여나가는 소리와 함께 늑대와 영체살해자가 밀려난다. 이미 술법 때문에 움직임이 제약되어있는 데다가 성대의 공격을 피해서 몸을 날렸던 상황에서 그만한 힘을 내다니. 인권은 그의 예상보다 훨씬 강한 힘을 보유한 것을 알고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성대. 긴장해라.”

“알아요.”


-비검술 제 2검, 참(斬)!


무섭게 공기를 가르는 성대의 검이 수평으로 날아가 영체살해자의 오른팔을 노렸지만 너무 정직한 공격이었는지 손톱으로 튕겨낸다. 하지만 이번엔 통했다. 영체살해자의 손을 보니 엉망이 되어버린 손톱이 보였다. 재생 속도도 아까와는 달리 느리다. 역시나 방어력이 뛰어나더라도 한계가 있는 법. 연계 공격으로 차근차근 데미지를 누적시키면 잡기 불가능한 상대는 아니다.


“한쪽 손톱을 못 쓰게 되었으니 이제 금방 끝나겠군.”

“와. 저게 대체 무슨 기술이야?”


검이 저절로 공중을 날아 성대의 손으로 되돌아오는 걸 가리키며 벨라가 입을 떡 벌렸다. 하긴, 그녀가 보기엔 성대의 검술은 서커스나 카니발에서나 볼 수 있을 만한 묘기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이 한국 땅엔 약 1300년 정도 전쯤에 멸망한 고구려라는 국가가 있었어. 제법 큰 국가로서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지. 특히 고구려에는 조의선인이라는 강력한 무력 집단이 있었는데 중국에서는 그들을 마주치면 무조건 도망치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대. 그들의 검술은 특이하고 강력하다고 소문이 났지. 그게 바로 저 녀석이 사용하는 비검술이라는 거야.”

“비검술?”

“직역하자면 검을 날려 적을 베는 기술이라고 할까? 특성상 여러 개의 검을 가지고 다니는 게 기본인데 저기 저 녀석은 한 자루를 들고 다니는 대신 검기를 이용해서 회수하는 방법을 쓰는군.”

“어떻게?”

“네 눈엔 안 보일 거야. 저 녀석, 검 위에 오러를 덧씌우면서 자신의 손과 검을 연결시켜놨어. 마치 와이어처럼 말이야. 기력 소모는 심해도 비검술 운용에 있어서 더 자유롭지. 머리를 제법 썼는걸?”

“흐음. 그럼 실력은 어느 정도야?”

“어디가도 전혀 꿀리지 않을 정도. 하지만 검에 의존하는 정도가 너무 커서 정확한 실력 파악은 좀 힘들어.”


세준이 말하는 것은 분명 성대가 가진 검은 기운을 뿜어내는 불길한 검이리라. 사실 검기는 다룰 수 있어도 그 위력은 실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객관적으로 관찰했을 때, 성대는 이제 막 검기를 운용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위력적인 검기를 사용할 수 있다. 그 이유가 검 자체가 가진 힘이라는 걸 세준은 어렵지 않게 간파해냈다.


“저게 대체 뭘까?”


그러자 세준이 얼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저게 무엇이든 그다지 좋은 건 아니야. 아주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사용자를 잠식하려고 하고 있어. 아무래도 악령이 깃든 것 같은데 꽤나 강력해 보여. 수십 년에서 수백 년 정도 묵은 듯한데 그 정도면 악령도 악마 급의 힘을 갖추게 돼. 성직자들이 보면 참 좋아할 물건이지.”

“마법으로 탄생된 건 아니란 거지?”

“맞아. 어떤 사연으로 저 검에 갇힌 영혼이 사악한 힘에 오염되었고 사용자들의 사념을 빨아들이거나 검에 의해 죽은 자들의 영혼을 흡수하면서 시간이 흘러 지금처럼 되었겠지. 그런데 이상한 점은 저런 마검이 어째서 조의선인들에게 있느냐는 거야. 그들도 나름대로 도인이라고 하는 자들인데 저 물건은 평범한 사람이 봐도 수상한 냄새가 풀풀 풍기거든.”


-비검술 제 1검, 섬(殲)! 응용기, 회(回)!


“프로즌 니들!”


다시 한 번, 세 명의 능숙한 연계 공격이 쏟아졌다. 빗줄기처럼 가느다란 얼음의 바늘이 쏟아지고 새카만 검이 공중을 갈랐지만 영체살해자 또한 익숙해진 듯 보였다. 이제는 피부나 옷깃을 스치는 경미한 타격만을 줄 뿐이었다. 검에 의해 부서진 영체살해자의 손톱은 여전해도 민첩성이나 근력은 줄어들 기미가 없다.


인권의 늑대가 내뿜는 냉기, 혜미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술법에도 불구하고 움직임을 막을 수 없었다. 아직 전력을 다하지 않은 둘이었지만 그래도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었다.


혜미는 영체살해자의 상상을 초월하는 힘에 적잖이 놀라 좀 더 강력한 부적을 쓰기로 했다. 아까 전과는 달리 소매에서 글씨가 적혀있지 않은 부적을 꺼내들었다. 그리곤 갑자기 엄지손가락을 꽉 깨물어 피를 내고는 빈 부적에 무언가를 흘겨 쓰기 시작한다.


마침내 다 쓴 부적을 입에 살짝 물고 공중에 불어 날렸다. 그 전까지 보지 못한 복잡한 수인을 맺으며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게 주문을 읊조렸다.


부적이 하늘로 날아오른 순간, 영체살해자는 혜미에게 달려들었다. 뒤에서 강력한 공격을 하는 그녀를 노린 공격은 제법 위협적인 것이었으나 인권이 만들어낸 얼음 방패로 인해 무산되고 만다.


결국 몸 몇 군데에 얼음 파편만 박힌 채 다시 물러난 영체살해자였다. 휙 고개를 들어보니 부적은 영체살해자의 머리 바로 위에 둥둥 떠서 푸른 스파크를 튀기며 윙윙 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뇌전향(雷電響)!”


콰직! 눈앞에서 섬광이 터졌다. 공중에 떠있던 혜미의 부적이 힘을 발휘한 것이었다. 땅에서 고작 4m 떨어진 허공에서부터 떨어진 벼락은 번쩍임과 동시에 영체살해자의 정수리부터 사타구니까지 꿰뚫었다.


이번의 술법은 움직임을 방해하는 잔재주와는 달리 부적술사의 가장 강력한 술법 중 하나에 속하는 것이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즉사, 영체살해자 같이 육체변이를 일으킨 강력한 마물일 경우 단숨에 죽이지는 못할 지라도 온 몸의 신경을 태워버려 몇 초, 혹은 몇 분 동안 마비시켜버리는 효과를 가진 술법이다.


“크롸롸!”


괴성을 지르는 영체살해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사지를 사정없이 벌벌 떨었다.


끝낼 시간이다. 성대는 그렇게 혼잣말하면서 성큼 한 발 앞으로 내딛어 검을 휘둘렀다. 그 누구도 그의 매서운 검이 영체살해자의 목을 베고 지나갈 것을 의심하지 않는 순간이었다. 심지어 옥상에서 구경하던 벨라와 세준마저도 그랬다.


그런데 신경이 다 타버렸을 줄 알았던 영체살해자의 몸이 푹 바닥으로 꺼져버리더니 성대의 검을 피하고 다시 솟구쳐 올랐다. 애초에 실패할 리가 없는 공격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성대였기에 기적에 가까운 괴물의 움직임에 반응하지 못했다.


그 찰나의 순간 그의 뇌리를 스쳐지나간 것은 영체살해자가 가진 영혼강탈능력이었다. 그 흉악한 괴물의 손짓이 생명체에 한 번 닿으면 살을 찢고 뼈를 부수는 것과 상관없이 그는 죽는다.


우적


그 장면을 지켜보던 세준이 성대의 위험을 감지하고 영체살해자의 정수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려던 찰나, 갑자기 들려온 이상한 소리에 눈살을 찌푸렸다. 잘못 본 건가? 아니다. 틀림없었다.


괴물의 손이 막 성대의 이마와 거리가 겨우 2cm 정도 남았을 때 분명히 그가 들고 있던 검에서 새카만 어둠이 빠져나와 영체살해자의 팔을 날려버렸다.


아니, 날려버렸다고 하기 보다는 ‘먹어치웠다’고 해야 하는 편이 맞을까?


약 7kg정도의 고깃덩어리를 먹어치운 어둠 속에서도 선명한 어둠은 등장했던 것처럼 순식간에 검으로 빨려 들어간다.


“어?”

“크윽!”


성대는 팔을 타고 올라오는 독기 어린 어둠의 힘에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끼고는 털썩 주저앉았다. 이미 검을 사용할 수 있던 한계에 아슬아슬 걸쳐있던 상황에서 깃들어 있던 악령이 날뛰게 되면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방금 전, 검에서 튀어나온 정체불명의 어둠이 영체살해자의 팔을 먹어치우고 오염시킨 것처럼 그의 팔에 밤의 어둠과도 확연히 차이 나는 밀도 높은 칠흑이 덮기 시작했다. 검에서부터 시작되어서 팔꿈치로 뻗어나가는 탐욕스러운 검은 색 촉수는 마치 성대의 팔과 검이 하나로 연결된 것처럼 보이게 했다. 동시에 검에 붙어있던 봉인을 위한 부적들이 독한 연기를 뿜어내며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갔다.


“혜미 씨! 봉인이!”

“알고 있어요!”


바닥에 쓰러져 팔을 움켜잡은 성대에게 다가간 혜미는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부적을 꺼내들었다. 우선은 검이 그의 몸을 점령하려는 것부터 저지시켜야 했다.


“크큭. 조상님들. 제 몸을 탐내시는 겁니까? 아직 백 만년은 이릅니다.”

“성대 씨. 말하지 말고 정신을 집중시켜요. 최대한 오염을 저지시켜야 해요.”


이미 검은 얼룩은 그의 쇄골을 지나 오른쪽 얼굴까지 퍼져나간 상태였다. 징그러운 촉수처럼 꾸물꾸물 거리는 얼룩이 성대의 눈 근처까지 덮자 흰자위가 허옇게 드러나더니 갑자기 검게 물들기 시작한다. 인간 최후의 마지노선, 뇌에서 인간의 정신력과 악령이 힘을 겨루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였다. 더 이상 상황을 지체했다간 정말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다행히도 서로 다른 10가지 수인을 끝맺은 혜미가 검에 부적을 붙여 간신히 잠식의 진행을 멈출 수 있었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몰아 내쉬었다.


한편, 세 명에서 두 명이 빠져나가는 바람에 혼자서 영체살해자를 상대하게 된 인권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성대의 검에 의한 오염이 더 이상 몸에 퍼지지 않도록 스스로 한쪽 팔을 떼어낸 괴물이 자신을 옭아매던 포위망이 느슨해진 것을 노리고 필사적으로 도망가려고 그에게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후웅


팔이 날아가도 도무지 기세가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 공격에 그는 혀를 내둘렀다. 지금의 영체살해자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정령이야 넘치고도 남지만 상위의 정령을 소환시키기 위해서 정신을 집중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계속 싸우기에는 푸른 늑대의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았다. 정령계에서 소환된 정령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힘은 극히 제한되어 있어서 그 힘이 전부 소모되었을 때는 강제소환이 되어 정령계로 돌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이대로 소모전을 지속하다간 맨 몸으로 저 무시무시한 영체살해자와 싸워야 되는 인권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최후의 수단이다.’


퍼컹 하는 소리가 나더니 푸른 늑대의 발톱이 부러져 공기 중으로 녹아든다. 몸을 유지될 시간이 줄어들다 보니 자연스레 늑대의 힘도 감소하는 까닭이었다. 인권은 어쩔 수 없이 정령술사의 가장 강력한 비술이면서 배척받는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인을 맺었다.


분명 간단한 수인뿐이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세찬 바람이 골목 안쪽으로 불어온다. 그리고 한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겨울의 매서운 추위가 들이닥쳤다.


“가라.”


낮은 목소리로 명령을 내리자 푸른 늑대의 눈빛이 시퍼렇게 빛나고 주위 공기를 얼리는 냉기의 파도와 함께 노도 같은 기세로 영체살해자에게 달려든다. 그 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속도에 미처 피하지 못하고 성한 팔로 늑대를 받아내려 했지만 그것은 손가락으로 새는 댐의 구멍을 막으려는 어리석은 짓과 같았다.


콰와와. 단단하기 그지없는 시멘트 바닥에서 가루가 튀며 푹 파였다. 대략 1m 정도를 날아가지 않고 밀려나기만 한 영체살해자는 간신히 버티고는 있었지만 그것이 다인 것 같았다.


그리고 늑대와 괴물의 주위로 새하얀 안개가 끼고, 얼어붙은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어느 한 쪽이 조금이라도 힘을 빼는 순간, 그대로 힘의 균형이 깨지는 상황이 지속된 지 겨우 수 초, 서서히 밝아지던 늑대의 몸에서 돌연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새파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늑대의 사지가 얼음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영체살해자는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자 몸을 피하려고 했지만 늑대의 몸과 같이 얼어붙어 버린 팔은 떨어지지 않았다.


완전히 얼음 조각상으로 변해버린 늑대가 돌연 폭발하여 하나하나가 강력한 힘을 가진 얼음 파편과 냉기를 사방으로 흩뿌린다. 그 범위가 너무 넓어서 옆에 있던 성대와 혜미에게까지 파편이 들이닥쳤지만 다행히도 혜미는 인권이 무엇을 할 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리 꺼내놓은 방어 부적으로 몸을 보호할 수 있었다.


“새크리파이스.”


말 그대로 정령을 자폭시키는 정령술사의 최후, 최강의 기술이었다. 사실 이 표현은 그다지 옳은 편이 아니다. 정령 희생, 혹은 정령 폭발은 정령의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폭발도 강력해진다. 인권의 푸른 늑대는 물리적 능력을 제외했을 때 하급에 속하는 부류였고 더구나 남겨진 힘도 별로 남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최후, 최강의 기술이라는 것과는 달리 그리 위력이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기술이라는 말을 듣기에 부족하지 않은 이유는 드러난 골목의 상태가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커다란 얼음 기둥들이 시멘트 바닥에 깊숙이 박혀있고 폭발의 중심지에서 아직까지도 뿜어져 나오는 냉기는 가히 살인적이었다.


“후우. 미안하다.”


이제 이것으로 푸른 갈기의 늑대는 앞으로 그의 앞에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위력에 비해 너무나 간단한 이 기술이 배척받는 이유에는 여러 가설이 있다. 정령이 영원히 죽어버린 것이라는 가설과 자신을 희생시킨 소환사에게 배신감을 느낀 정령이 더 이상 소환에 응하지 않는다는 가설.


정령술사들 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인권의 생각은 명백히 후자 쪽이었다.


“휘유. 아슬아슬 했네. 그렇지?”


타탁. 12m 쯤은 되어 보이는 건물에서 두려운 기색 없이 훌쩍 뛴 세준이 가볍게 착지하고 다가온다. 벨라는 도저히 그의 행동을 따라해 볼 엄두가 나지 않아 마법으로 떨어지는 속도를 조절하며 바닥에 살포시 착지했다.


“그쪽은 멀쩡한가?”


성대는 괜찮은 것 같았다. 검은색으로 물들었던 팔은 이미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고 검에는 혜미가 손을 쓴 듯 피를 휘갈겨 쓴 새 부적들이 더덕더덕 붙어 있었다.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 휴식을 취해야 해요.”

“그래. 그렇겠지. 그나저나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진 줄 알고 있겠지, 인권?”

“...알고 있습니다.”


인권은 세준의 질책에 고개를 숙였다. 비록 영체살해자가 알려진 바보다 훨씬 강력했지만, 애초에 이렇게 복잡하게 될 일이 아니었다. 인권이 그의 실력에 걸맞게 상위의 정령을 소환해놓고, 혜미가 더 강력한 주술이 담긴 부적을 준비해놓았다면 일이 이 지경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초반에 성대 혼자 영체살해자를 상대하느라 쓸데없이 힘을 낭비한 이유도 있었다.


즉, 그들은 영체살해자를 너무 깔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찮은 마물이더라도 항상 최선의 준비를 하고 사냥한다. 퇴마사의 첫 번째 자세를 내가 직접 가르쳤던 것 같던데 세월이 무섭군. 20년 전의 총명했던 네가 이렇게 허술한 퇴마사가 되다니. 실망이다.”

“할 말이 없습니다.”

“...뭐, 이미 끝났으니 듣기 싫은 얘기는 그만 두지. 아까도 말했듯이 교회에는 내가 잘 얘기해 줄게.”

“감사합니다. 아인잠카이트.”


인권이 쓰디쓴 표정을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보다 왜 우리에게 맡긴 겁니까? 원래 당신이 나설 생각이 아니었나요?”

“처음엔 그랬지. 웬 어설픈 퇴마사들이 내 먹잇감을 노리는지 괘씸한 마음이 들어서 혼쭐을 내주려고 했거든. 그런데 네가 있더군. 20년 간 어느 정도 성장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구경하기로 했지. 너도 알다시피 난 꽤 변덕스럽거든.”

“단지 그것 뿐만은 아니겠지요?”

“흐음. 글쎄. 호기심을 끄는 게 있기는 했지.”


인권은 눈치가 빠른 남자였다.


“성대의 검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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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Chapter4.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6) +1 15.04.03 520 10 26쪽
43 Chapter4.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5) +2 15.04.02 497 6 21쪽
42 Chapter4.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4) 15.03.31 525 9 19쪽
41 Chapter4.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3) +2 15.03.30 672 11 19쪽
40 Chapter4.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2) +1 15.03.18 552 11 19쪽
39 Chapter4.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1) +1 15.03.17 622 14 12쪽
38 Chapter3. Love OR Hate(Epilogue) +2 15.03.15 642 10 12쪽
37 Chapter3. Love OR Hate(13) 15.03.13 484 6 26쪽
36 Chapter3. Love OR Hate(12) 15.03.13 462 6 18쪽
35 Chapter3. Love OR Hate(11) 15.03.11 459 9 19쪽
34 Chapter3. Love OR Hate(10) +1 15.03.10 446 10 16쪽
33 Chapter3. Love OR Hate(9) +1 15.03.08 352 9 16쪽
32 Chapter3. Love OR Hate(8) +1 15.03.08 604 9 21쪽
31 Chapter3. Love OR Hate(7) +2 15.03.07 528 11 29쪽
30 Chapter3. Love OR Hate(6) 15.03.07 457 9 21쪽
29 Chapter3. Love OR Hate(5) +1 15.03.06 508 9 21쪽
28 Chapter3. Love OR Hate(4) 15.03.05 431 9 17쪽
27 Chapter3. Love OR Hate(3) 15.03.05 513 9 26쪽
26 Chapter3. Love OR Hate(2) 15.03.04 529 9 19쪽
25 Chapter3. Love OR Hate(1) +1 15.03.02 617 16 21쪽
24 Chapter2. 시체놀이꾼(Epilogue) 15.03.01 408 9 11쪽
23 Chapter2. 시체놀이꾼(11) +1 15.03.01 535 10 16쪽
22 Chapter2. 시체놀이꾼(10) 15.03.01 559 15 16쪽
21 Chapter2. 시체놀이꾼(9) 15.02.28 534 10 20쪽
20 Chapter2. 시체놀이꾼(8) +1 15.02.26 447 10 20쪽
19 Chapter2. 시체놀이꾼(7) 15.02.26 676 11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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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Chapter2. 시체놀이꾼(5) 15.02.24 597 13 24쪽
16 Chapter2. 시체놀이꾼(4) 15.02.23 458 10 19쪽
15 Chapter2. 시체놀이꾼(3) 15.02.22 581 12 13쪽
14 Chapter2. 시체놀이꾼(2) 15.02.22 688 12 14쪽
13 Chapter2. 시체놀이꾼(1) 15.02.21 763 15 19쪽
12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Epilogue) 15.02.20 754 11 14쪽
11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11) +1 15.02.20 584 15 16쪽
»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10) 15.02.19 645 14 17쪽
9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9) 15.02.18 770 13 15쪽
8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8) 15.02.17 764 14 16쪽
7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7) 15.02.17 771 16 20쪽
6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6) +1 15.02.16 931 15 15쪽
5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5) +2 15.02.15 965 19 20쪽
4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4) 15.02.14 1,084 16 17쪽
3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3) +1 15.02.14 1,225 2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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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1) +2 15.02.13 2,891 3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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