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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알라 님의 서재입니다.

21세기 퇴마록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위대한알라
작품등록일 :
2015.02.13 16:20
최근연재일 :
2015.04.12 18:01
연재수 :
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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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46
추천수 :
565
글자수 :
387,690

작성
15.03.30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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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Chapter4.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3)

본 글에 등장하는 사건, 장소, 인물, 단체는 실존하지 않으며 모두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든 허구임을 미리 밝혀드립니다.




DUMMY

벨라가 미국으로 떠난 지 벌써 2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세준은 그동안 정들었던 말동무가 없어져 아쉬웠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애당초 우연한 만남이었고 오래 가지 못할 인연이었다. 벨라도 자신의 갈 길이 있으므로 언제까지나 곁에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 아쉽긴 해도 다시 보기 힘들겠지.


그런데 요즘은 특히 그녀가 그리웠다. 아닌 게 아니라 그녀 대신(?) 새로 생긴 동거인(?)은 매우 비협조적이고, 말수 적고, 특히 유머라고는 전무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쪽에서 말을 걸면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무시로 일관해버리니 화가 날 지경이다.


또 이것저것 챙겨줘야 할 것은 어찌나 많은지... 동거인은 기본적인 생활면에서 최악이었다. 몸이 좋지 않으면서 불규칙한 수면은 물론이고, 거실에서 땀을 뚝뚝 흘리며 운동을 하지 않나 정성스럽게 영양식을 차려주면 입만 대고 사라져버리기 일쑤였다. 모든 일에 삐딱한 시선을 가지고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면서 대드는 게 귀염성이라곤 전혀 없었다.


이러니 세준이 벨라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었다.


"박수혁! 밥 남기지 말라고 했지!"

"..."


대꾸조차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수혁의 등 뒤로 불덩어리를 쏘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간신히 참는다.


"으휴. 어쩌다 저런 놈을 집에 들일 생각을 했을까. 나도 참 못 말린다니까."


이 기묘한 동거는 사실 세준이 제안한 일이었기에 우위를 점하는 건 언제나 수혁이었다. 이제와 마음에 안 든다고 내버릴 수도 없었다.


박수혁. 전 세계의 수많은 헌터들 가운데 단연 두각을 드러내며 세 자리 숫자의 흡혈귀를 무참히 살해한 젊은 영웅. 슬레이어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얼마 전 루터즈 패밀리를 몇 명의 생존자를 제외하고 전멸시켜버렸다. 그 전까지의 숫자와 합치면 대략 300에 육박하리라.


흡혈귀 300명. 직접 보지 못한다면 도저히 믿기 힘든 숫자였다. 일반적인 인간 헌터는, 아니 전문적인 퇴마 훈련을 받은 자라도 평생 퇴치한 흡혈귀 토벌수가 10명 정도면 굉장한 실력자고, 그 이상이면 구를 대로 구른 베테랑 취급을 받는다. 300명이면 상식을 뛰어넘은 것이다.


물론 그걸 가능하게 해준 것은 페르소나의 힘이었지만 그걸 제외하고라도 무시무시한 실력이다. 실제로 그는 최대한 페르소나를 쓰지 않고서 싸워오지 않았던가.


세준과 수혁. 두 사람이 함께 살게 된 건 세준의 제안 때문이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 있었다.


첫째, 수혁은 갈 곳이 없었다. 지난 번 흡혈귀들의 습격으로 거처를 잃어버린 그는 돈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세레나의 '뱀파이어 커뮤니티', 즉 VC가 흡혈귀를 보호하는 마당에 일거리도 없어 당장 돈도 벌지 못하는 실정이다. 아마 세준이 거둬주지 않았다면 길거리에 나앉아 노숙하는 형편이었을 것이다.


둘째로, 수혁의 페르소나 때문이었다. 위험천만한 힘을 계속 쓰게 내버려둔다면 언젠가 커다란 재앙이 될 게 뻔했다. 세준은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그를 옆에 두는 선택을 했다.


선택의 결과가 이러니 세준이라도 짜증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었다. 페르소나를 당장 없애는 건 불가능했다. 우선 흡혈귀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를 진정시켜야했다. 그러나 일상적인 대화조차 거부해버리는 통에 여태껏 진척이라곤 전혀 없었다.


"끄응. 어쩌면 좋지. 반쯤 죽일 수도 없고."


세준은 남은 반찬에 보존 마법을 걸고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얼마 전부터 해오던 방법인데 이렇게 하면 아무리 남기더라도 언제나 신선하게 먹을 수가 있다. 입 짧은 수혁 때문에 취한 조치였다.


"안 돼. 오늘만큼은 얘기를 해봐야겠어."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나서 세준은 문을 두드렸다. 당연한 얘기지만 반응은 없었다.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버린 세준은 그냥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이. 얘기 좀 하지?"

"할 얘기 없다."


수혁은 침대에 반쯤 누워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같이 지내면서 알게 된 조금 의외의 사실인데, 수혁은 피로 얼룩진 행적과 달리 책에 무척 관심이 많았다. 세준의 집엔 책, 특히 소설책 종류가 많았는데 첫날 쭉 한 번 둘러보더니 읽어도 되냐고 물어봤었다. 그때는 좋은 얼굴로 승낙했지만 설마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책을 읽는 것도 증오를 다스리는데 좋은 방법이지. 하지만 너한텐 일단 대화가 필요해."


파라락. 마법을 사용했는지 수혁의 손에서 저절로 책이 날아오르더니 책장에 꽂힌다. 그제야 이쪽을 바라본다.


"무슨 짓이야."

"입 닥쳐. 나도 그리 인내심 좋은 편이 아니니까."


세준이 침대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대화를 해보자고.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수는 없는 거잖아."

"도대체 무슨 대화를 한다는 거냐?"

"너에 대한 대화."


손가락으로 수혁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간다.


"내가 널 여기로 데려온 이유, 알려줬지? 그럼 협력해."

"내 힘이 위험해서 그걸 막겠다는 이유였지."

"그래. 그러기 위해선 네 증오를 없애야 하고."

"첫날에 이미 얘기가 끝났을 텐데. 그럴 일은 없어."


수혁이 그와 대화를 피하는데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증오를 버리라니. 그것 하나 만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왜 아직도 흡혈귀를 미워하는 거지? 최현주는 살아있고, 지금 세레나의 보호 아래 들어가 잘 지내고 있어. 복수 때문에 이 길로 들어섰다면 문제는 해결된 거나 마찬가지잖아."

"현주는 흡혈귀가 되어버렸어. 저주받을 괴물들에 의해서. 문제가 해결 돼? 아무것도 해결된 건 없어."

"그래. 흡혈귀가 되어버렸지. 그건 비극적인 일이야. 아니, 사실 비극적인 일도 아니지만 네가 인간이라는 점을 감안해서 그렇게 생각해주지. 그래도 살아 있잖아."

"비극적인 일이 아니라고?"


수혁이 발끈해 되물었다. 세준은 전혀 꿀리지 않고 대꾸한다.


"흡혈귀가 되는 게 뭐가 비극적인 일이란 거야? 단지 인간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그게 문제이긴 하지. 인간과 흡혈귀. 맺어지기 어려운 사이니까. 그러나 흡혈귀로 변한 것 자체가 비극적인 일은 아니야."

"뭐가 아니란 거냐."

"흡혈귀도 엄연히 지구상에 사는 생명체다. 비록 인간의 피를 마시고 태양의 축복을 받지 못했지만 지성과 인격을 가진 생명체라고. 무슨 통제 불가능한 괴물이 되어버린 게 아니란 말이다."

"괴물이지."

"후우. 네 말따나 백 번 양보해서 괴물이라 치자. 인간적인 괴물로 봐줄 순 없는 거냐?"

"인간적인 괴물? 넌 세레나 아우렐리에 같은 흡혈귀를 인간적이라고 생각하나보지? 헛소리다. 보호해준다고? 인간과의 평화노선? 웃기지 마. 그 괴물이 400년 동안 살면서 몇 명의 인간을 잡아먹었을 것 같나. 10명? 100명? 적어도 1000명은 넘겠지. 그런 주제에 선군노릇을 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괴물은 괴물이야."


논리대로라면 수혁도 지지 않았다. 세준은 할 말을 잃었다. 확실히 옳다. 세레나도 한때 철없는 젊은 흡혈귀였었다. 공주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힘을 불렸던 적도 있었다. 과거의 죄는 과거의 죄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법.


"그 죄를 갚기 위해서 지금 그녀가 치르는 희생은..."

"하. 희생? 자기와 같은 괴물들을 보호해주는 게 희생이라고? 차라리 그동안 긁어모은 돈이나 뿌리라고 하지 그래? 그 나이를 먹었으면 은행 금리로도 수 조원은 벌었을 텐데."


그즈음 되자 세준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근본적으로 지금 수혁이 하는 말은 세준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라 모욕을 당한 것만 같았다.


"그럼 현주는? 현주도 괴물이란 거냐? 그래서 죽일 거냐?"

"..."


수혁은 입을 다물었다. 그동안 자신이 믿어온 신념, 실천해온 방침과 전혀 반대되는 상황에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방황하는 눈빛이었다. 수혁의 가장 큰 약점은 역시 현주였다.


꽤 시간이 흘렀지만 수혁은 아직 현주를 어떻게 대해야 할 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 속 증오를 정리하지 못하는 이상, 평생 그럴 것이다. 차마 죽일 수도,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다. 딜레마. 스스로가 만든 함정에 빠진 격이었다.


"거 봐. 넌 현주를 전혀 생각지도 않고 말하고 있잖아."

"...그게 너와 무슨 상관이야."

"불리하니까 이번엔 발을 빼려하는군. 그런 태도는 전혀 도움이 안 돼."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거냐?"

"난 네가 극단적인 선택을 바라는 건 아냐. 그저 차분히, 천천히 생각해보자는 거지. 네가 과연 무얼 선택할 지. 선택하지 않고선 이대로 있을 수밖에 없어. 그 무엇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영원히 갇혀버리는 거다. 앞으로 나가기 위해선 두 가지 중 어느 쪽이든 선택해야 해. 난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게 길을 인도하는 것뿐이고."


이번엔 효과가 있었는지 수혁은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래. 너 스스로 정하는 거다.'


말했듯이 세준은 그저 인도하는 역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어떤 선택이든 그는 수혁을 존중할 생각이었다. 스스로 하기엔 너무나 힘든 선택이지만 다른 누군가가 정해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아니까.


다만, 증오를 택할 시에는 그에게도 결단이 필요했다. 수혁을 죽여야 한다. 그래서 최대한 그를 바른 길로 안내하려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세준은 수혁이 좋았다. 자신의 감정, 그 하나에만 집중하여 거침없이 행동하는 그가 부러웠다.


그때 휴대폰 진동음이 들렸다. 세준의 전화였다. 액정을 확인하자 의외의 인물에게서 걸려온 전화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광명스님?"


수혁이 고개를 들고 이채로운 눈빛을 띤다. 광명이라면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퇴마사들에게 전설적인 존재였다. 세준에 비해서 손색이 있어도 평범한 인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카톨릭 교회의 릴리만 신부랄까. 광명은 불교계에서 그만한 명성을 가지고 있는 퇴마사였다.


세준과 아는 사이였나? 그건 별로 놀랍지 않더라도 세준이 존대를 하는 건 의외였다. 500년 동안 산 할아버지면서...


"예. 예. 아, 그렇지 않아도 그 사건은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었습니다. 단순한 사고인지 아니면 누군가 살인을 저지르는 건지 심증이 확실해질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 보려고요."


사건 얘기가 나오는 걸 보니 무슨 문제가 있는 모양이었다.


"........또 그런 일이 있었군요. 벌써 3명 째라. 이젠 지켜볼 때가 아니라 직접 개입해야 되겠군요. 예.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런 종류는 스님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상대하기 좀 어렵겠죠. 일단 상성이 맞질 않으니까요. 네. 네. 네. 알겠습니다. 하하. 아닙니다. 부탁이라뇨. 네. 한 번 살펴보고 곧 연락드리겠습니다."


통화를 종료한 세준이 수혁을 바라본다.


"의뢰가 하나 들어왔어. 너도 와서 도와."

"내가 왜?"

"첫째, 넌 지금 내 집에 신세를 지고 있어. 둘째, 넌 딱히 하는 일 없는 백수야. 내가 설마 무료봉사를 한다는 생각은 아니겠지? 난 집세만큼은 꼭 받아낼 거니까 너도 와서 도우라고. 아르바이트 비 정도는 줄 테니까."


그런 거라면 수혁도 나서야 하는 건 맞았다. 슬슬 잡일 같은 걸 해서 라도 세준에게 진 빚을 갚을 생각이었다. 빚지는 것만큼은 질색인 그가 어쩔 수 없다곤 해도 신세만 지는 상황은 절대로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뭘 죽이러 가는 거지?"


죽이러 가다니... 이 녀석은 도대체 죽인다는 것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할 줄 모르나? 갈 길이 멀군. 세준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서큐버스."


----------------------------------


문제의 사건이 일어난 곳은 서울시에 위치한 XX대학 병원이었다. 한 달 동안 죽음을 맞이한 3명의 피해자는 모두 입원해있던 환자였다.


세준이 관심을 가지게 된 건 한 신문을 통해서였다. 첫 번째와 두 번째 환자는 거의 하루 간격으로 사망했는데 당시 난 기사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비록 암환자이긴 했으나 조기치료를 통해 완전히 몸을 회복한 상태였고 곧 퇴원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 두 명 모두 퇴원을 며칠 앞 둔 어느 날 갑작스럽게 죽었다. 사인(死因)은 동일하게 심장마비로 잠자는 도중 돌연사였다.


여기까지라면 세준도 의료사고나 정말 낮은 확률로 일어난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목격자인 간호사들의 진술이었다. 심장마비를 일으켜 소생술을 실시했던 간호사이자 최초 목격자이기도 한 여성이 진술하기를 피해자들의 시신은 죽기 전 체온이 매우 높았고, 식은땀을 흘렸으며 놀랍게도 발기를 한 상태였다고 한다. 후에 살펴본 결과 그들은 사정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유족들은 당황스러워하면서도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암치료를 위한 약의 부작용이 아니냐는 주장이었다. 병원 측은 단호하게 부정했고, 이 일은 법정에서도 크게 주목을 받아 신문에 실리게 된 것이다. 그게 일주일 전이었다.


"심장마비. 고온. 발기. 수면 중 돌연사. 전형적인 몽마야. 피해자들이 남성들만이니 그 중에서도 서큐버스의 짓일 공산이 커."

"그런 게 있다고는 들었지만 진짜 있을 줄은 몰랐군."


세준과 수혁, 두 사람은 사건이 일어난 병원 정문 앞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잠이 든 상대의 꿈에 찾아간다는 몽마(夢魔)들 대부분은 영체로 존재하는 잡귀들이야. 낮에는 조용히 허공을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상대가 있으면 꿈으로 들어가는 거지. 영능력자가 아니고서야 볼 수 없어. 꿈 속 내용은 현실에서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니 자기가 뭘 당했는지 알 수도 없지."

"서큐버스도 영체인가?"

"아니. 몽마들 중 최상위 계층인 서큐버스, 인큐버스는 실체를 가지고 있어.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단순한 겉모습부터 구성 물질까지 완벽한 인간이지. 다만 드림다이브라는 특수한 능력으로 인간의 정기를 빼앗는 것만 다를 뿐이야."


수혁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흡혈귀 같은 놈들이군."

"끙... 굳이 말하자면 비슷하다고는 할 수 있지."

"흡혈귀와 다른 점은 뭐지?"

"흡혈귀는 살아가려면 주기적으로 피를 마셔야 하는 한편, 서큐버스는 그럴 필요가 없어. 뭐랄까, 그들 입장에서 보면 장난이나 유희, 그 정도의 일이지. 꼭 정기를 빼앗아야 할 이유는 없는 거야."

"그럼 이 일을 벌인 놈, 아니 여자는 인간을 살해할 목적으로 했다는 얘기군?"

"그렇게 되는 거지."


일반적으로 서큐버스는 잠에서 일어나면 몸이 무겁고 컨디션이 나쁜 정도로만 정기를 뺏는다. 몸에 꼭 필요한 것도 아닌데 굳이 많이 빼앗아서 사람을 죽이기라도 했다간 사냥꾼들이 몰려드니까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생각이 있는 자라면 절대로 이런 짓을 벌이진 않는다.


"주의해야 할 점이라면 뭐가 있지?"

"없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강한 편은 아니야. 말했듯이 일반적인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능력 면에서 특수한 것 뿐 위험하진 않지. 곤란한 거라면 있어. 잡기가 까다로워."


사람이 자고 있을 때 꿈에 침투하는 드림다이브 능력은 상대하기가 까다로웠다. 상대를 살해할 목적으로 쓰인다면 그보다도 완벽한 방법이 없다. 물질적인 단서가 전혀 남지 않기 때문에 범인을 추정하는 것도, 혹 의심 가는 자가 있더라도 증거가 없어서 단정 짓기 곤란하다.


그런 이유로 불교계를 대표하는 퇴마사 광명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세준에게 부탁했다. 그 선택은 옳았다. 세준은 오랜 세월을 살아서 서큐버스를 잡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미끼가 필요해."

"미끼?"


수혁이 알아차렸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마법인가?"

"일명 '정신트랩'이라고 하는데 원래는 정신계열 마법사들을 상대하기 위해 개발된 마법이야. 정신계열 마법사들은 자신의 의식을 적에게 침투시켜 정보를 빼내거나 교란시키거나 환각을 보여주거든. 정신트랩은 말 그대로 함정이야. 상대가 악용할 만한 트라우마, 기억하기 싫은 어린 시절 등에 걸어놓고 거기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덜커덕, 하고 함정이 발동하면서 적의 의식을 오히려 자신의 의식 속에 가둬버리는 거야."

"그러면 그 자는 죽는 거 아닌가?"

"원래는, 이라고 했잖아. 난 이걸 좀 응용할 생각이야."

"네가 알아서 하겠지. 그만하면 어떻게 잡을 건지 감은 잡았어."


확실히 이 방법이라면 드림다이브라는 괴상한 능력을 가진 자도 덜미가 잡히게 될 것이다. 한 가지 조건이 있다면 미끼였다. 범인이 무슨 수로 미끼를 물게 한단 말인가. 그러기 위해선 범인이 살인을 저지르는 규칙을 파악해서 예상 피해자에게 마법을 걸어야 하는데 그건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미끼라면 여기 있잖아?"


세준이 씨익 웃었다.


"너?"

"아니. 난 안 돼. 왜냐하면 난 꿈을 꾸지 않거든."


당연한 말이었다. 세준은 인간이 아닌 인형. 잠도 자지 않는 인형이 꿈을 꿀 리가 없다. 더 나아가 정신이랄 게 없으니 범인이 드림다이브를 할 꿈도, 정신트랩 마법을 걸 수도 없다.


거기까지 생각한 수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 자식 설마...


"날 말하는 건 아니겠지."

"맞아. 너야."

"나보고 미끼가 되라고?"


미끼라니! 언제나 사냥꾼으로 살았던 수혁이었다. 미끼를 만들어 적을 유인한 적은 있어도, 자신이 미끼가 된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왜 하필 자신이란 말인가. 차라리 다른 환자를 미끼로 삼으면 될 것을.


그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세준이 단호하게 말했다.


"다른 사람은 안 돼. 정신마법은 굉장히 고난이도의 마법이라고. 아무리 나라고 해도 눈 깜박할 새에 뚝딱하고 걸 순 없단 말이야. 최소한 3시간은 필요해. 시전자만이 아니라 대상이 되는 사람도 정신을 집중해야 제대로 발동하는데 일반인에게 그런 걸 어떻게 써? '저희가 서큐버스를 잡으려고 하는데 잠시 마법을 걸 테니까 협조 좀 해주실래요?'라고 물어볼 수도 없잖아."


장난스런 말투로 말하는 게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세준은 희미하게 웃으며 말하고 있었다. 이 상황을 즐기는 게 분명하다.


"너. 처음부터 이럴 작정으로..."

"하하. 당연하지. 왜 내가 귀찮게 널 데려온 거라고 생각해?"


진심은 아니지만 세준은 그가 당황해하는 걸 보며 신나서 말했다.


"걱정 마. 좋은 경험한다고 생각해. 서큐버스가 꿈에 찾아온다면 인간 남성으로서 그건 그것대로 꽤 괜찮은 일이잖아."

"날 죽이러 온다면 얘기가 다르지."

"그렇게 안 내버려둔다니까. 죽기 직전에 함정을 발동시키면 되지. 그때까지 즐기면 되잖아? 하하."

"...망할 자식."

"싫어도 해야 할 걸. 여기로 오기 전에 빚은 꼭 갚겠다고 네 입으로 말했었지? 자, 미끼가 되어서 갚으라고."


작가의말

죄송합니다. 좀 많이 늦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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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4.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3) +2 15.03.30 673 11 19쪽
40 Chapter4.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2) +1 15.03.18 552 11 19쪽
39 Chapter4.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1) +1 15.03.17 622 14 12쪽
38 Chapter3. Love OR Hate(Epilogue) +2 15.03.15 642 10 12쪽
37 Chapter3. Love OR Hate(13) 15.03.13 484 6 26쪽
36 Chapter3. Love OR Hate(12) 15.03.13 463 6 18쪽
35 Chapter3. Love OR Hate(11) 15.03.11 459 9 19쪽
34 Chapter3. Love OR Hate(10) +1 15.03.10 447 10 16쪽
33 Chapter3. Love OR Hate(9) +1 15.03.08 353 9 16쪽
32 Chapter3. Love OR Hate(8) +1 15.03.08 605 9 21쪽
31 Chapter3. Love OR Hate(7) +2 15.03.07 528 11 29쪽
30 Chapter3. Love OR Hate(6) 15.03.07 457 9 21쪽
29 Chapter3. Love OR Hate(5) +1 15.03.06 508 9 21쪽
28 Chapter3. Love OR Hate(4) 15.03.05 431 9 17쪽
27 Chapter3. Love OR Hate(3) 15.03.05 513 9 26쪽
26 Chapter3. Love OR Hate(2) 15.03.04 529 9 19쪽
25 Chapter3. Love OR Hate(1) +1 15.03.02 618 16 21쪽
24 Chapter2. 시체놀이꾼(Epilogue) 15.03.01 408 9 11쪽
23 Chapter2. 시체놀이꾼(11) +1 15.03.01 535 10 16쪽
22 Chapter2. 시체놀이꾼(10) 15.03.01 559 15 16쪽
21 Chapter2. 시체놀이꾼(9) 15.02.28 534 10 20쪽
20 Chapter2. 시체놀이꾼(8) +1 15.02.26 447 10 20쪽
19 Chapter2. 시체놀이꾼(7) 15.02.26 676 11 21쪽
18 Chapter2. 시체놀이꾼(6) +2 15.02.25 682 10 25쪽
17 Chapter2. 시체놀이꾼(5) 15.02.24 597 13 24쪽
16 Chapter2. 시체놀이꾼(4) 15.02.23 458 10 19쪽
15 Chapter2. 시체놀이꾼(3) 15.02.22 582 12 13쪽
14 Chapter2. 시체놀이꾼(2) 15.02.22 688 12 14쪽
13 Chapter2. 시체놀이꾼(1) 15.02.21 764 15 19쪽
12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Epilogue) 15.02.20 754 11 14쪽
11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11) +1 15.02.20 584 15 16쪽
10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10) 15.02.19 645 14 17쪽
9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9) 15.02.18 771 13 15쪽
8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8) 15.02.17 764 14 16쪽
7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7) 15.02.17 771 16 20쪽
6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6) +1 15.02.16 931 15 15쪽
5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5) +2 15.02.15 965 19 20쪽
4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4) 15.02.14 1,085 16 17쪽
3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3) +1 15.02.14 1,226 20 16쪽
2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2) 15.02.13 1,711 26 15쪽
1 Chapter1. 영혼 없는 남자(1) +2 15.02.13 2,894 3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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