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김영남 님의 서재입니다.

두윤이의 무림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김영남
작품등록일 :
2018.05.20 22:25
최근연재일 :
2019.01.11 21:06
연재수 :
144 회
조회수 :
362,884
추천수 :
3,806
글자수 :
842,547

작성
18.06.05 21:36
조회
3,982
추천
42
글자
11쪽

절친을 만났어요 -9

DUMMY

커다란 찜통에서 새어 나오는 만두 냄새가 기절할 만큼 향기롭다.


“아저씨!”


만두피를 빚고 있던 아저씨가 고개를 든다.


“저랑 거래하실래요?”


“무슨 거래?”


“제가 무공을 많이 알고 있는데요. 이 만두랑 바꾸실래요?”


아저씨의 얼굴이 왕창 일그러진다.


“꺼져 이놈아!”


“아니 왜요? 제가 알고 있는 무공은 정말 멋지다고요. 사냥할 때 쓰면...”


“아, 됐어!”


두윤이는 입술을 삐죽이다가 슬쩍 만두를 내려다봤다.


“아저씨가 빚은 만두는 정말 맛있어 보여요. 저는 이렇게 먹음직스러운 만두는 태어나서 본 적이 없어요. 분명 아저씨의 만두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을 거예요.”


“그러냐? 하나 먹어봐라.”


아저씨가 만두 하나를 건네준다. 두윤이는 허겁지겁 만두를 집어 먹었다. 정말 꿀맛이다.


“와!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았어요. 정말 맛있어요.”


“먹었으면 이제 좀 가라?”


“에이 그러지 마시고요. 제 말을 들어보세요. 정말 멋진 무공이라니까요.”


“무슨 무공인데?”


아저씨가 관심을 보이자, 두윤이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천존검법이에요. 이름도 멋지죠?”


고금제일인의 최강 검법이 만두 몇 개에 팔려나가는 순간이다.


“싫어. 안 배워.”


“아이참, 그럼 하늘의 빛 천광은 어떠세요? 만두 튀길 때 쓰면 딱 좋을 것 같은데요.”


“흠, 그럼 어디 한번 구경이나 해보자꾸나.”


“죄송한데요. 지금 막대기가 없어서 펼칠 수가 없어요.”


“이걸로 해라. 이거나 막대기나 거기서 거기 아니냐.”


아저씨가 기다란 국자를 건네준다. 두윤이는 국자를 내려다보며 뽀로통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국자로 어떻게 검법을 펼쳐요?”


“못하겠으면 말고.”


전설로 추앙받는 천검의 절대삼검이 국자로 펼쳐지려는 순간이다. 두윤이는 국자를 치켜들다 말고 힘없이 손을 내렸다.


“갑자기 왜 그러냐?”


“그냥 안 할래요. 여기는 사람이 너무 많잖아요. 누군가 다칠지도 몰라요.”


“넌 정말 못 말릴 아이로구나.”


“전 아이가 아니에요. 벌써 열일곱 살이라고요.”


“에이, 아닌 것 같은데?”


“흥! 됐어요. 만두 안 먹어요.”


등을 휙 돌리자 아저씨가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알았다. 어서 이리 와라. 배가 많이 고픈 게로구나.”


“네, 낮에 돈이 든 봇짐을 그만 잃어버렸지 뭐에요.”


“그럼 이거라도 먹어라. 찌다가 터져버린 만두지만 맛은 좋을 거다.”


“하하핫, 아저씨 정말 고맙습니다.”


“원 녀석도 참.”


두윤이는 만두를 조금 얻어 강변으로 돌아왔다. 시원한 강바람이 뜨끈한 만두를 적당히 식혀준다. 허겁지겁 만두를 집어 먹는데 왠지 기분이 묘하다. 마치 누군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시선. 휙 고개를 돌려보니, 조금 떨어진 곳에 녀석이 앉아 있다.


얼굴이 유독 하얀 소년, 잘 차려입은 옷매무새는 단정했고 신발에는 먼지 한 톨 묻어있지 않다. 멋들어지게 허리에 찬 검이 앉은 자세 때문에 고양이 꼬리처럼 엉덩이 쪽으로 튀어나왔다. 아까 그 소년이다.


‘꼬르륵!’


뱃속에서 민망한 소음이 들린다. 두윤이는 흠칫 녀석을 돌아봤다. 녀석도 이쪽을 쳐다본다.


“하나 먹을래?”


만두를 들어 보이자 녀석의 입가에 실금이 그어진다.


“배고프지 않아. 너나 많이 먹어.”


두윤이는 입을 삐죽였다.


“너 나보다 어린 것 같은데 왜 반말이야?”


“뭐라고?”


녀석의 눈이 도끼눈으로 변한다. 두윤이는 움찔 고개를 돌렸다.


“아, 아니야. 내가 무슨 말을 했더라?”


녀석이 뚜벅뚜벅 이쪽으로 걸어온다.


“하나 줘봐. 맛이나 보게.”


하얀 손이 내밀어진다. 두윤이는 만두 하나를 집어 조심스레 손 위에 올려놓았다. 터진 만두소가 녀석이 입은 고급 옷감에 떨어져 내린다. 괜스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거 맛있는데?”


“그렇지? 아저씨의 만두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거 같아. 그런데 배고플 때 먹어서 그런지도 몰라.”


“아저씨가 누군데?”


“저기 만둣집 가게 아저씨.”


녀석이 힐끔 돌아보다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맛은 그렇더라도 모양이 왜 이래?”


“그건 내가 아저씨한테 공짜로 얻은 거라서 그래. 아저씨는 정말 친절한 분이셔.”


“공짜로 얻었다고? 너 돈 없냐?”


두윤이는 슬쩍 눈치를 살피다 한숨을 내쉬었다.


“돈은 있었는데 다 잃어버렸어. 이제 빈털터리야. 할아버지가 계신 형산까지 가야 하는데...”


“형산은 여기서 족히 수천 리 길이야. 돈도 없이 어떻게 가려고 그래?”


“나도 몰라. 어떻게 되겠지, 뭐.”


무심코 만두를 집어 들던 녀석이 슬쩍 내려놓는다.


“그런데 내가 계속 빼앗아 먹어도 돼?”


두윤이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엄마가 그러셨어. 음식은 여럿이서 나눠 먹어야 한다고 말이야. 그럼 더 맛있다고 하셨거든. 그런데 난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서 내심 궁금했어.”


“뭐가?”


“나눠 먹으면 정말 맛있는지 말이야. 지금 생각해보니까 엄마 말이 맞는 것 같아. 너랑 나눠 먹으니까 더 맛있는 것 같아.”


“푸하하하!”


녀석이 커다란 웃음을 터트린다. 두윤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녀석을 바라봤다. 얼마나 재밌는지 배를 쥐고 웃으며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너 정말 웃기다. 잠깐 따라올래?”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앞장선다. 두윤이는 무심결에 뒤를 따랐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만둣집이다.


“먹고 싶은 데로 마음껏 먹어. 내가 살게.”


“정말 그래도 돼?”


녀석은 아저씨에게 돈을 내밀었다. 아저씨는 동전을 받아들다 말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거스름돈은 필요 없어요.”


“이건 너무 많은데?”


아저씨가 손에 든 동전을 내려다보자 녀석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만두를 집어 들었다.


“아저씨 성의에 대한 보답이에요.”


“허 참, 일이 또 그렇게 되는군. 나는 터진 만두를 줬을 뿐인데 말이야. 아무튼 고맙다.”


그러거나 말거나, 두윤이는 허겁지겁 만두를 집어 먹었다.




거하게 만두를 먹고 나니 배가 부르다. 두윤이는 강변에 앉아 배를 두드렸다.


“덕분에 잘 먹었어. 고마워.”


“고마워할 필요 없어. 먼저 만두를 준 건 너였으니까.”


“후아! 배부르다. 배가 터질 것 같아.”


두윤이는 아예 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녀석이 곁에 앉는다.


“그런데 어쩔 거야? 돈을 다 잃어버렸으니 이대로 형산까지 가는 건 무리잖아.”


“나도 모르겠어.”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부모님께 잘 말씀드리면 여비를 주실 거야.”


“난 부모님이 안 계셔서 여비를 받을 수가 없어. 게다가 장평아저씨께 또 돈을 달라 부탁할 수는 없다고. 장평아저씨는 정말 친절한 분이셔. 그렇지만 내가 돈을 잃어버렸다고 하면 엄청 걱정하실 거야.”


“저기, 미안해...”


“뭐가?”


두윤이가 고개를 돌리자, 녀석은 애써 시선을 회피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뭐가 궁금한데?”


“너 어린 시절. 이제까지 혼자 살아온 거야?”


“그게...”


두윤이는 태산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녀석에게 들려주었다. 너무 많은 일이 있었기에 광 할아버지 이야기는 미처 해주지 못했다. 그 이야기를 하려면 아직 한참을 떠들어야 했는데, 녀석 때문에 그만두고 말았다.


“왜 울어?”


녀석이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보인다.


“내가 언제 울었다고 그래? 나 안 울었어. 그냥 눈에 뭐가 들어가서 그래.”


“······.”


두윤이는 뒷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녀석의 얼굴이 한없이 슬퍼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난,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줄 알았거든. 근데 그게 아닌가 봐.”


힘없이 고개를 숙이는 녀석에게 두윤이는 엉덩이를 움직여 가까이 다가갔다.


“야, 우리 친구 할래?”


“친구?”


두윤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난 장두윤이라고 해. 두윤이라고 불러도 좋아. 올해 열일곱!”


“정말? 나보다 어린 줄 알았는데.”


녀석이 마주 일어나 손을 잡아준다.


“난 남궁주상. 나이는 너랑 동갑이고.”


“완전 신나! 나이도 같으니까 우리 친구 맞지?”


“맞는 것 같아.”


“대단해! 진짜 친구를 사귀어본 건 네가 처음이야. 너도 그래?”


“아, 아니 난...”


“장평아저씨께서 그러셨어.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다고 말이야. 돈을 잃어버린 건 나쁜 일이야. 그래서 난 오늘 좋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


두윤이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정말 좋은 일이 일어날 줄이야. 내가 친구를 사귀게 되다니.”


녀석이 뭐라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닫아건다. 뒤에서 청년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주상아! 너 거기서 뭘 하고 있는 것이냐? 이제 숙소로 돌아가야 한다. 빨리 오너라!”


녀석이 얼른 동전 하나를 손에 쥐여 준다.


“이게 뭐야?”


“이거 빌려주는 거야. 그러니까 나중에 꼭 합비에 있는 남궁세가에 들려야 해.”


녀석이 일행이 있는 곳으로 뛰어간다. 청년의 호통이 커다랗게 메아리친다.


“뭘 꾸물거리고 있어. 저 거지 같은 놈은 또 뭐고?”


“아, 저기 그게...”


“빨리 가자. 이러다 늦겠다.”


멀어져 가는 녀석을 보며 두윤이는 열렬히 손을 흔들어 주었다. 강바람이 들뜬 마음을 상냥하게 달래준다.


친구가 떠나버리고, 두윤이는 멍하니 손에 들린 금화를 내려다봤다. 형산까지 가기에 넘치도록 충분한 돈이다. 동시에 서운함도 밀려온다. 친구에게 고맙다는 말은커녕, 작별 인사마저 못 했기 때문이다.


“남궁세가라고 했지? 꼭 갚을 게.”


두윤이는 동전을 소중히 품에 갈무리했다.




새벽별이 반짝이는 하늘.


도시는 낮의 열기를 식히느라 어둠 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그 시각, 두윤이는 잠을 청할 곳을 찾아 이곳저곳을 쏘다녔다. 이슬이라도 피할 곳이 있으면 좋으련만, 이곳에서는 그런 곳을 찾을 수가 없다. 결국, 터덜터덜 걷다 보니 도시 외곽까지 나왔다. 슬슬 다리가 아파져 올 무렵.


멀찍이 불빛이 보인다.


제법 고급스러운 건물, 객잔이 분명하다.


“잠을 자는 데 돈을 써야 한다니. 조금 아까운걸?”


친구가 준 돈을 바로 써버리기에는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오늘만이라도 이 동전을 품에 꼭 간직하고 싶다. 서운한 마음에 객잔 입구를 지나는데 난데없이 안에서 누군가가 뛰쳐나온다. 냉랭한 인상의 할아버지, 등에 큰 짐을 지고 계신다.


“넌 뭐냐?”


“저요?”


두윤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그래, 표사 같지는 않은데? 아무튼 마침 잘 왔다. 이 짐을 마차에 가져다 놔라.”


“전 표사가 아니에요. 그런데 표사가 뭐에요?”


“문노! 한시가 급해요. 빨리 떠나야 합니다.”


안에서 청아하고 밝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문노라 불린 할아버지는 다짜고짜 짐을 넘겨줬다.


“표사가 아니라면 짐꾼이라도 좋다. 넌 어디까지 가느냐? 일행을 구한다고 방을 붙였는데.”


두윤이는 객잔 문에 붙어 있는 방을 바라봤다. 뭘 구한다고 쓰여 있는데 미처 읽어볼 시간이 없다.


“전 호남까지 가요. 형산에...”


“그럼 됐어. 빨리 따라와라.”


그렇게 두윤이는 짐을 든 채 할아버지를 따르게 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두윤이의 무림일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5 친구야 울지마 -25 +3 18.07.06 3,351 36 15쪽
24 친구야 울지마 -24 +6 18.07.04 3,391 38 15쪽
23 친구의 집은 최고예요 -23 +8 18.07.02 3,424 36 13쪽
22 친구의 집은 최고예요 -22 +4 18.06.30 3,359 38 14쪽
21 친구의 집은 최고예요 -21 +4 18.06.28 3,369 42 14쪽
20 친구의 집은 최고예요 -20 +3 18.06.26 3,557 37 14쪽
19 무당산은 정말 멋져요 -19 +8 18.06.24 3,551 44 15쪽
18 무당산은 정말 멋져요 -18 +3 18.06.22 3,433 42 16쪽
17 무당산은 정말 멋져요 -17 +3 18.06.20 3,477 40 16쪽
16 무당산은 정말 멋져요 -16 +3 18.06.18 3,534 40 14쪽
15 소림사에 놀러왔어요 -15 +2 18.06.16 3,655 35 17쪽
14 소림사에 놀러왔어요 -14 +3 18.06.14 3,622 41 15쪽
13 소림사에 놀러왔어요 -13 +5 18.06.12 3,633 41 14쪽
12 소림사에 놀러왔어요 -12 +4 18.06.10 3,814 35 14쪽
11 들적은 나빠요 -11 +4 18.06.08 3,811 43 16쪽
10 들적은 나빠요 -10 +5 18.06.06 3,886 41 13쪽
» 절친을 만났어요 -9 +4 18.06.05 3,983 42 11쪽
8 절친을 만났어요 -8 +4 18.06.03 4,265 39 14쪽
7 무공은 너무 어려워요 -7 +6 18.06.01 4,349 37 16쪽
6 무공은 너무 어려워요 -6 +3 18.05.30 4,432 40 16쪽
5 무공은 너무 어려워요 -5 +2 18.05.28 4,597 37 13쪽
4 제 이름은 두윤이에요 -4 +2 18.05.26 4,985 36 15쪽
3 제 이름은 두윤이에요 -3 +2 18.05.24 5,492 38 14쪽
2 제 이름은 두윤이에요 -2 +3 18.05.22 6,282 43 16쪽
1 제 이름은 두윤이에요 -1 +8 18.05.20 9,851 42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