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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님의 서재입니다.

두윤이의 무림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김영남
작품등록일 :
2018.05.20 22:25
최근연재일 :
2019.01.11 21:06
연재수 :
1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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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885
추천수 :
3,806
글자수 :
842,547

작성
18.05.30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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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32
추천
40
글자
16쪽

무공은 너무 어려워요 -6

DUMMY

“다녀오셨어요?”


초가집으로 돌아오니, 녀석이 마당 한편에서 나뭇가지를 휘두르고 있다. 천존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평상에 앉았다.


“지금 무공 수련 중이에요.”


“심결은 다 외웠느냐?”


“외웠어요. 아, 외우려고 노력 중이에요. 어려운 글자가 많아서 힘들긴 하지만요, 하나 궁금한 게 있어요.”


“뭐냐?”


“그 심결대로 숨쉬기 운동을 하면요. 뭔가 오묘한 구석이 있어요. 할아버지 말씀대로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어요. 잠을 자지 않아도 전혀 피곤하지가 않아요. 참 신기하죠?”


“녀석도 참, 그래도 잠은 잘 자야 한다. 넌 아직 어린아이니까.”


이제 겨우 열두 살 소년이다. 천존은 평상에 놓인 찻주전자를 집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녀석이 후다닥 달려온다.


“차는 제가 끓일게요. 제 담당인걸요?”


“됐다. 너는 무공 연습이나 마저 해라. 헌데 지금 연습하는 무공은 무엇이냐?”


“횡소천군이라는 초식이에요. 정말 어려운 초식이지만 꾸준히 연습하면 호랑이를 만나도 물리칠 자신 있어요.”


“쯧, 그럴지도.”


“횡소천군! 참 멋진 이름이죠? 무공에는 저마다 이름이 있나 봐요. 할아버지가 쓰신 책에도 무공이 정말 많잖아요. 이름 없는 무공을 찾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제 심결에는 왜 이름이 없을까 아침 내내 고민했어요. 이름조차 없다니 좀 서운하잖아요.”


천존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건 널 주려고 만든 세상에서 둘도 없는 심결이기 때문이다. 네가 직접 이름을 지어주거라.”


“정말이에요? 진짜 제가 이름을 지어도 되나요?”


“물론이다.”


천존은 찻주전자를 들고 화로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장작을 더 집어넣으니 곧 찻주전자가 끓기 시작한다.


“‘횡소천군!”


밖에서 소년이 무공 연습하는 소리가 들린다. 지치지도 않고 참 열심히 연습한다. 천존은 찻주전자를 들고 다시 평상으로 돌아왔다. 소년의 손에 들린 나뭇가지가 빌빌거리며 세상을 가로 벤다.


“그 초식은 언제까지 연습할 거냐. 이제 좀 다른 초식으로 넘어갈 때가 된 것도 같은데?”


녀석이 소매를 들어 이마의 땀을 닦으며 히죽 웃는다.


“할아버지께서 애써 가르쳐주신 검법이잖아요. 전 열심히 연습할 거예요. 비록 지금은 많이 부족하지만요. 계속 연습하다 보면 정말 멋진 검법이 될 거예요.”


“허 참...”


삼류보다 못한 횡소천군으로 그래, 호랑이를 물리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터무니없는 검법으로는 삼류고수조차 이길 수 없음이 분명하다. 무공에 소질이 없는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밑바닥인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네 녀석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구나.”


“제가 할아버지의 상상을 뛰어넘었다니, 이거 기뻐해야 하는 거죠?”


“······.”


“전 무림인이 될 생각은 없고요. 또 어려운 무공을 배우고 싶지 않아요. 엄마가 항상 말씀하셨어요. 사람은 각자 자신에게 맞은 방법이 있다고요. 그래서요. 전 이 검법이 제일 마음에 들어요. 쉽고 재밌어요! 호랑이도 무서워할 절대삼검!”


녀석이 하늘에 대고 나뭇가지를 휘두른다.


“아이고, 내가 못 살아.”




시간이 흘러 늦가을이 되었다. 어제저녁부터는 제법 매서운 바람이 불어온다. 곧 겨울이 오려나 보다.


천존은 나무 빗자루를 들고 마당에 떨어진 낙엽을 치우기 시작했다. 평소 같았으면 장풍으로 날려버렸을 테지만, 그러기가 싫다.


점심나절, 아랫마을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가을 내내 넉넉하게 땔감을 날라다 준 장평이 저녁 식사에 초대한 것이다. 오랜만에 돼지랑 닭을 잡았다나 뭐라나. 천존은 뛸 듯이 기뻐할 소년을 생각하며 기꺼이 초대에 응했다.


그런데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이 녀석은 어딜 간 게야? 보나 마나 또 놀러 나간 게지.’


천존은 찻주전자를 들고 화로에서 몸을 일으켰다. 뜨거운 차를 음미하며 하늘하늘 흩날리는 단풍잎을 바라보니,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봄부터 푸르렀던 이파리도 가을의 끝자락을 맞이하면 결국 쇠하기 마련이다. 그동안 치열하게 살아왔다. 이기려 노력했고 수없이 이겨왔다. 패자를 짓밟아버리고 약자라는 이름은 다시 거들떠보지 않았다.


왜 그렇게 살아왔을까? 가슴 한구석이 시려 온다. 후회 없는 삶이라 여겼다. 이쯤 되면 위대한 인생이라고 자신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고금제일인, 그것밖에 남지 않았다.



아내는 물론 아들도, 손자도 없이, 그 멍청한 이름만 얻었을 뿐이다. 이제 시간이 흐르면 더 강한 자가 나타날 게다. 고금제일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도 저 낙엽처럼 쇠하여 스러질 것이다.


멍청히 생각에 잠겨 있던 천존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벌써 해가 넘어가려 하는데 녀석은 돌아오지 않았다. 무슨 사고라도 생긴 걸까? 그도 아니면 짐승의 습격? 천존은 기를 모아 주변을 탐색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사람의 숨소리가 느껴진다. 순간, 천존의 몸이 연기처럼 꺼져버린다.



늦가을 폭포는 무척 매섭다. 사납게 몰아치는 물보라는 뼛속마저 시리다. 천존은 폭포에서 조금 떨어진 물가에 내려섰다. 소년이 물가에 앉아 멍하니 폭포를 올려다보고 있다.


“대체 여기서 뭣 하고 있던 게냐?”


천존은 조금 화가 났다. 지금쯤 아랫마을에는 푸짐한 음식이 차려져 있을 텐데.


“장평 아저씨가 저녁 식사에 널 초대했다. 어서 일어나라.”


“여기 조금만 더 있으면 안 될까요?”


“사람들이 기다릴 게다.”


“전 수영을 잘해요. 여름이었으면 벌써 옷을 벗고 뛰어들었을 거예요. 한번은 폭포까지 수영해 갔는데요. 엄마가 그걸 보고 엄청 화를 내셨어요.”


천존은 눈살을 찌푸리며 소년이 쪼그려 앉은 평평한 바위로 다가갔다.


“그만 일어나자. 곧 해가 질 거야.”


“와! 그때랑 똑같아요. 엄마도 그러셨어요. 지금 할아버지가 서 계신 그곳에서 말이에요. 사실 빨래를 하고 계셨지만요. 제가 물속에서 물장구를 치면요. 엄마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셨어요.”


천존은 자신의 발밑을 내려다봤다. 평평한 바위 옆 얕은 물은 빨래하기에 참 좋은 자리다. 자꾸 엉뚱한 소리를 하기에 한소리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오늘이 무슨 날이더냐?”


소년은 말이 없다. 한없이 슬픈 눈으로 바위만 바라본다.


“혹시 너희 엄마가...”


“네, 오늘이에요.”


소년이 먼저 답하고 나온다. 천존은 말없이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전 슬프지 않아요. 할아버지께서도 절 동정하지 마세요. 이제 아무렇지도 않은걸요.”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가 오늘따라 구슬퍼 보인다.


“할아버지는 가족이 있나요? 사랑하는 사람 말이에요.”


“없다.”


“갑자기 슬퍼지려 하네요. 가족이 없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잖아요.”


천존은 미간을 좁히며 조용히 말했다.


“가족은 없는데 제자가 둘 있었지.”


“가족만큼 사랑했나요?”


“그래. 두 녀석 모두 아들처럼 여겼다. 이젠 내 곁을 떠나버렸구나.”


소년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말리시지 그러셨어요?”


“말릴 수가 없었다.”


천존은 회한의 시선으로 거센 물줄기를 응시했다. 유난히 추웠던 어느 겨울날, 수많은 고아 중에 녀석들을 발견했다. 두 고아 소년의 신체는 놀랍도록 뛰어난 무골기재였으니, 주저 없이 제자로 거두었다.


신이 내린 무골답게 소년들은 엄청난 기세로 무공을 배워나갔다. 마치 목화솜이 물을 흡수하는 것처럼, 어려운 무예를 척척 익히는 소년들을 보며 크게 만족했다. 그래서 그런 실수를 저질렀나 보다. 천존은 두 소년을 매섭게 다그쳤다. 호승심도 자극했다. 둘 중 한 녀석에게만 천하를 주겠다고 약속을 해버린 것이다.



그 이후, 언제나 한 몸처럼 붙어 다니던 소년들은 서로 적이 되었다. 무공 대련을 핑계로 상대에게 살수를 날리는 일도 적잖았다. 그러다 결국 사달이 나버렸으니. 한 소년이 다른 소년의 눈을 찌른 것이다. 오른쪽 눈을 부여잡고 피를 철철 흘리던 소년은 기절해버렸다. 놀란 사람들이 소년을 부축했을 때, 천존은 남은 한 소년을 돌아봤다.


소년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검을 내팽개쳤다. 그리고는 몸을 날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모든 게 내 잘못이었다.”


“정말 가슴 아픈 이야기에요. 그런데 할아버지 잘못이라면 가서 미안하다고 하면 안 되나요?”


천존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발했다.


“글쎄다. 할 수 있었다면 벌써 했겠지. 이미 오래전 일이구나.”


소년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엄마는 떠나시면서 선녀님을 만나러 가신다고 하셨어요. 언제나 제 곁에 있을 거래요. 그래서 전 이곳에 오면 힘이 나요.”


구름 사이로 맑은 밤하늘이 드러난다. 그 속에 수많은 별이 새초롬히 떠 있다.


“저기 저 별자리는 첫째 선녀님 별이에요. 그 옆은 둘째 선녀님이고요.”


천존은 하늘에 떠 있는 북두칠성을 올려봤다. 오늘따라 왜 이리 별이 많아 보이는가.


“저건 엄마별이에요. 그런데 장평 아저씨는 자꾸 북극성이래요. 제가 우겨서 결국 이겼죠. 그리고요, 그 옆에는 금동이 별도 있어요. 어떨 때는 말이에요. 제가 셋째 선녀님처럼 하늘을 날아서 엄마를 만나러 가는 상상을 해요. 제게 그런 무공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 할아비에게는 있다.”


소년이 이쪽을 올려다본다. 커다란 눈에 슬픔이 가시고 어느새 기대감이 잔뜩 스민다. 천존은 소년의 몸을 부둥켜안았다. 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워 더 꼭 안아주었다.


“꽉 붙잡아라. 아랫마을까지 단숨에 날아갈 테니까.”


“완전 신나, 출발!”


‘쉬이익’하는 파공성과 함께 천존의 몸이 하늘로 치솟는다. 포근한 달빛이 인적 없는 물가를 환하게 비춰준다.




이른 아침.


오두막을 나온 소년은 크게 환호성을 내질렀다. 소담스러운 눈발이 흩날리고 세상은 하얗게 변했다. 첫눈이 내린 것이다.


“그렇게 좋으냐?”


천존은 채비를 마치고 오두막을 나섰다.


“할아버지! 세상이 온통 하예요. 정말 멋지지 않아요? 이건 막내 선녀님 솜씨에요. 틀림없다고요.”


“그래그래. 알았으니까 옷부터 입거라. 감기 걸린다.”


“맞다! 깜빡했어요. 오늘은 중요한 날이잖아요.”


소년이 쪼르르 달려간다.


“그러다 넘어진다. 아직 시간 많으니까 천천히 준비해라.”


“천천히 할 수 없어요. 오늘은 할아버지와 시내에 나가는 날이잖아요. 전 정말 기대 돼요. 큰 시내는 처음 나가보거든요.”


오두방정을 떨어대며 짐을 챙기는 녀석, 천존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준비가 끝나자, 천존과 소년은 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잔뜩 신이 난 녀석은 몇 번이나 주의를 줘도 마치 토끼처럼 깡충댔다. 물론 걱정과는 다르게 녀석은 정말 산을 잘 탔다. 아랫마을에 도착하니, 장평이 같이 따라나선다. 큰 시내에 가서 사 올 것이 많단다. 소년은 뛸 듯이 기뻐하며 가운데 서서 양손을 꼬옥 부여잡았다.


산길을 얼마나 내려갔을까? 평지가 나오자, 본격적으로 마차가 다닐 만큼 넓은 길이 나온다. 천존은 말이 끄는 수레를 빌려 녀석을 앞자리에 태웠다. 뛸 듯이 기뻐하는 녀석을 보면서 진작 데려왔으면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달그락달그락’ 말수레를 타고 도착한 곳은 제법 큰 시내다. 태산을 초입에 둔 도시로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과거 황제가 태산을 오르기 전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다고도 한다. 고즈넉한 향취와 함께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유람객으로 시내는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와, 저것 봐요!”


소년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각종 군것질거리와 만난 먹거리가 넘쳐났기 때문이다. 점심은 고급스러운 객잔에서 먹었다. 소년은 생전 처음인 산해진미에 놀래 하면서도, 그렇게 맛은 있지 않다는 평가를 내려 일행을 웃게 했다.


문득, 등 뒤에 검을 빗겨 찬 사람들이 객잔 안으로 들어온다. 우락부락하게 생겨먹은 사내가 커다란 대감도를 ‘쿵’하고 내려놓자 탁자가 들썩인다. 소년은 놀란 표정으로 귓가에 속삭였다.


“저 사람들은 누구예요?”


“저들이 바로 무림인이다.”


소년이 어깨를 움츠린다.


“무림인은 아주 무섭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가 봐요. 우리를 때리면 어떻게 하죠?”


천존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할아비가 있으니 걱정 말거라. 그리고 무림인이 다 나쁜 사람들은 아니란다. 협과 의를 중시하는 참된 인재들도 많지.”


“협과 의요?”


소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녀석에게는 아직 어려운 말일 게다.


“협이란 의기로움이다. 무를 익히는 사람은 무릇, 그 힘을 옳은 곳에만 써야 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않으며, 어려움을 무릅쓰면서 남을 돕는 것이니라. 이것이 무림인의 본분이지.”


소년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와! 멋진 말이에요. 그 말씀대로라면 무림은 정말 천국 같은 곳일 거예요.”


천존은 헛웃음을 들이켰다.


“이론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자, 그만 일어나자꾸나.”


객잔 밖으로 나서자 장평이 물건을 다 샀는지 등에 큰 짐을 지고 있다.


“어르신, 이제 돌아가야 합니다.”


천존은 수레를 가져오도록 한 후, 소년을 앞자리에 태웠다. 그 옆으로 장평이 올라탄다.


“할아버지! 빨리 타세요. 저 얼른 집으로 돌아갈래요. 엄마한테 자랑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다고요.”


“나는 가지 않는다.”


“살게 더 남았나요?”


천존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소년에게로 다가갔다.


“잠시 가볼 곳이 있다. 먼저 가거라.”


소년의 얼굴에 실망감이 묻어난다.


“오래 걸리나요? 그럼 저도 따라가면 안 돼요?”


“어허! 여기서 먼 곳이다. 아마 며칠 걸릴 게야. 그동안 장평 아저씨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저도 따라갈게요. 그냥 말 안 하고 옆에 가만히 있을게요. 그러면 되잖아요. 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어리광을 부리는 게냐? 열두 살이면 더는 어린아이가 아니다.”


“죄송해요.”


소년이 고개를 떨어뜨린다.


“이보게 장평이, 서두르게. 지금 출발해도 어두워질 때 도착하겠어.”


“예, 어르신. 아마 그럴 겁니다.”


“고생이 많겠구먼. 어서 출발하게.”


수레가 떠난다. 천존은 휙 몸을 돌렸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희미해지고 멀리서 녀석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온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천존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천검에게 난생처음 패배를 당했을 때도 이렇게 몸이 떨리지 않았다. 결국,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멀리 길이 뻗어있다. 이미 수레는 보이지 않았다. 흙먼지조차 날리지 않는데, 그게 왜 이리 서운한지 모르겠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숲. 그럼에도 천존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몇 달 전, 그때도 이렇게 산을 올랐던 기억이 난다. 같은 산이지만, 그때와는 다르게 너무나 높고 멀어 보인다.


드디어 도착했다. 초가집에는 불이 켜져 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혼자 재우지 말라고 아랫마을 장평에게 부탁했다. 그런데 장평은 녀석이 고집을 꺾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결국, 그의 말대로 되었다. 천존은 한참을 산 숲에 앉아 있었다. 아주 잠깐만이라도 얼굴을 보고 싶다.


‘덜컹!’


문이 열리고 녀석이 나온다. 마당에서 잠시 왔다 갔다 하더니 곧 장작을 들고 다시 집안으로 사라진다. 짧은 만남이다.


‘그래, 이제 되었다.’


천존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 그래도 가야 했다. 사람에게는 각자의 길이 있고 운명이 있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가슴이 무거운가.’


고개를 들고 태산을 올려봤다. 그런 후, 다시 세상을 돌아봤다. 장쾌한 산봉우리가 굽이쳐 높은 절벽을 만들고 인간의 접근을 불허하듯 한순간에 곤두박질친다. 굽이쳐 대륙을 휘감은 산세, 마치 대해(大海)처럼 끝도 없이 펼쳐진 광활한 대지, 그 숨 막히는 절경.


“천하가 넓구나. 이렇게 넓었구나!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천존은 그렇게 산골 깊숙이 자리한 정든 초가집을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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