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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님의 서재입니다.

두윤이의 무림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김영남
작품등록일 :
2018.05.20 22:25
최근연재일 :
2019.01.11 21:06
연재수 :
144 회
조회수 :
362,867
추천수 :
3,806
글자수 :
842,547

작성
18.06.01 21:24
조회
4,348
추천
37
글자
16쪽

무공은 너무 어려워요 -7

DUMMY

추운 겨울날.


마당 한편에 장작이 쌓여 있다. 소년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장작을 정리하다 벌떡 일어났다. 산 아래 오솔길에서 ‘사박사박’ 눈 밟는 소리가 난다.


“장평 아저씨!”


“이 녀석! 못 본 새 많이 컸구나.”


한 해가 가고, 올해 열세 살이 된 소년은 여전히 다른 아이들보다 키가 작았다. 아마 제대로 먹지 못해서 일게다. 장평은 등에 메고 있던 짐을 내려놓았다.


“말린 나물하고 육포를 가져왔다. 옷가지도 몇 개 챙겼는데, 자! 이건 따듯한 겨울옷이야.”


“와, 정말 푹신해요!”


소년이 풍성한 옷을 안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장평아저씨, 너무 마음에 들어요. 덕분에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거 귀한 옷 아닌가요?”


장평은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저씨한테는 네가 더 귀하단다.”


“하하핫, 아저씨.”


녀석이 목에 매달리자, 장평은 못 이기는 척 엄살을 떨었다.


“아저씨 목 아프다. 어서 짐을 정리해야지.”


“아저씨! 제가 그동안 익힌 무공을 보여드릴게요. 광 할아버지께 배운 무공이에요.”


“무공? 어디 한번 구경해볼까.”


장평은 마당 한쪽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녀석이 쪼르르 달려가 나무 막대기를 들고 온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금방 펼칠 수 있는 무공이 아니라고요. 먼저 심결을 외우고 호흡을 진정시켜야 해요.”


진지한 표정을 하고서 막대기를 겨눈다. 장평은 환하게 웃음 지었다.


“천천히 해도 돼.”


“좋아요. 지금 하겠어요. 절대삼검 제 일초 횡소천군!”


나무 막대기가 빌빌거리며 가로로 그어진다.


“보셨어요?”


소년이 표정 가득 기대감을 머금고 외친다.


“그래, 아주 잘하는구나.”


“그게 아니에요. 이제까지 연습한 것과 뭔가 다른 것 같아요.”


손에 들린 막대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고개도 갸웃거린다.


“분명히 뭔가 달라요. 마치 손끝에서 뭔가가 뻗어 나가는 느낌이에요. 이게 뭘까요?”


“글쎄, 난 잘 모르겠다.”


“그럼 다음 초식을 펼쳐볼게요. 절대삼검 제 이초 독사출동!”


아무 형식 없이 앞으로 찌르는 동작, 변화가 없고 속도도 느리다.


“이번에도 뭔가 달라요. 손끝이 간질이는 느낌인데 참 신기해요!”


장평은 자리에서 일어나 녀석에게 다가갔다.


“네 무공이 한 단계 발전한 거겠지.”


소년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환호성을 내지른다.


“정말이요? 좋아라!”


“그보다 두윤아.”


장평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오늘 밤 안으로 눈이 많이 올 것 같구나. 그리되면 당분간 이곳에 올라올 수가 없는데.”


“······.”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녀석, 장평은 두 손으로 안아 올렸다.


“이참에 아저씨 집으로 가자꾸나. 맛있는 음식이 아주 많단다. 네가 좋아하는 고기만두도 있지!”


“절 내려주세요.”


장평은 소년을 다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전 아직 엄마 곁을 떠나기 싫어요. 할아버지도 기다려야 하고요.”


장평은 긴 한숨을 내뱉었다.


“게다가 전 여기서 할 일이 아주 많아요. 글공부도 해야 하고요, 무공도 익혀야 해요. 여기 있으면요. 정말 하루하루가 너무 즐거워요.”


“알았다. 그래도 가끔은 아랫마을에 내려오고 그래라. 아주머니께서 널 보고 싶어 하잖니. 다른 사람들도 궁금해하고.”


“죄송해요. 제가 생각이 짧았나 봐요. 그런데요. 걱정하시지 말라고 아저씨가 전해주세요. 물론 아주머니께는 가끔 내려갈게요. 가면 맛있는 음식 많이 해주실 거죠?”


“그래, 언제든 환영이다.”


“하하하. 정말 신나요!”


“나는 이만 산에서 내려가야겠다. 눈이 그치면 꼭 내려오는 거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눈발이 점점 거세진다.




장평아저씨가 떠나고 다시 혼자가 되었지만, 두윤이는 외롭다거나 서운하지 않았다. 아까 펼쳤던 무공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정말 이상해.”


다시 막대기를 들고 절대삼검을 펼쳤다. 아까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유, 추워! 내일 해야겠다.”


후다닥 집안으로 뛰어들어가니 따뜻한 온기에 기분이 좋아진다. 또 책을 읽을 생각을 하면, 한숨이 나왔지만 말이다. 그래도 읽어야 한다. 할아버지가 남기신 편지 때문이다. 어제까지 읽다가 책상 뒤로 던져버린 책을 찾았다. 휘리릭 책장을 넘겨봤지만, 기억나는 내용은 쥐뿔도 없다.


‘어제 읽은 책이 아닌가. 하나도 기억이 안 나네?’


물론 아침에 읽은 책 내용도 가물가물했는데.


‘맞아. 할아버지께서 알려주신 심결을 써보자.’


두윤이는 바닥에 앉아 심결을 되뇌며 숨쉬기 운동을 했다. 새삼스레 할아버지의 잔소리가 머릿속을 맴돈다.


‘제발 집중 좀 해라! 심결을 외우면서 구결대로 호흡을 해야지. 그래야 몸속에 흐르는 기를 느낄 수 있다고 내 몇 번을 말하냐! 너처럼 주의가 산만하면 평생 기를 느끼지 못할 게다.’


“할아버지도 잔소리 좀 그만하세요. 심결을 외우는 데 방해된다고요!”


두윤이는 벌떡 일어나 방안을 살폈다. 그 어디에도 할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금방 돌아오신다고 했으면서, 거짓말쟁이!”


갑자기 모든 게 귀찮아진다. 두윤이는 주저 없이 나무 침대로 몸을 날렸다. 푹신한 이불을 덮으니 잠이 스스로 오지만, 눈앞에 보이는 책장에 시선이 간다. 할아버지가 손수 만들어주신 책상.


지금 누워있는 침대, 탁자도 모두 광 할아버지가 만드신 거다. 책장 밑에는 작은 나무상자가 놓여 있었는데 뚜껑을 여니 편지와 함께 가죽 주머니가 나온다. 편지에 뭐라고 쓰여 있냐면.


‘급한 일이 생겨 먼저 떠난다. 그동안 글공부와 심결을 열심히 익히도록 해라. 아니, 열심히 익혀두는 게 좋을 거다. 내 돌아가서 제대로 공부했는지 검사할 테니까. 행여 그럴 일은 없겠지만, 글공부가 끝나거든 책은 모두 불태워버리도록 해라. 그리고 언제 이 할아비 집에 놀러 오려무나. 호남 형산에서 천존궁을 찾으면 된다. 같이 넣어둔 패가 길을 인도할 것이니, 꼭 목에 걸고 다녀라. 잃어버리면 혼날 줄 알아!’


‘칫!’


편지를 내려놓고 가죽 주머니를 열어봤더니, 동전 크기의 반달 패가 굴러떨어진다. 두윤이는 반으로 쪼개진 듯한 패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 반쪽뿐일까?”


맨 밑에 영(令)이란 글자가 음각되어 있고 그 위 글자는 반밖에 없다. 형체가 완전하지 않으니 뜻을 알아볼 수 없었는데. 가죽 주머니 안도 살피고 나무상자 이곳저곳을 뒤적였지만, 나머지 반쪽은 찾을 수가 없다.


“할아버지가 돌아오시기 전에 글공부를 해야 하는데 영 귀찮네. 잠이나 자야지.”


두윤이는 머리 뒤로 책을 던져버리고 자리에 누워버렸다.




긴 겨울이 지나고 늘 그렇듯 봄이 왔다. 울긋불긋 피어난 야생화가 초가집 주변을 감싸 싱그러움을 발한다. 소년은 여전히 마당 한복판에서 나무 막대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추운 겨울에는 수련에 집중할 수 없었기에 방에 처박혀 글공부만 전념했다. 이제 날이 풀렸으니, 무공 수련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는데.


“후우, 횡소천군을 다 익혔으니 이젠 독사출동을 연습해야지.”


두윤이는 들고 있던 막대기를 비스듬하게 고쳐 잡았다.


“절대삼검! 제 이초 독사출동!”


‘쉬익!’


제법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게 끝이다.


“뭔가 좀 이상한데. 이걸로 호랑이를 물리칠 수 있을까?”


물끄러미 막대기를 내려다보던 두윤이는 다시 자세를 고쳐 잡았다.


“자, 그럼 이번에는 절대삼검 제 삼초 팔방풍우다!”


‘쉭쉭쉭!’


아무렇게나 사방으로 막대기를 휘두르는 모양새. 마치 미친놈이 개를 패듯 어처구니없는 꼴불견이 연출된다. 다행히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아아! 아직 삼초는 너무 어렵구나. 어려운 건 나중에 하고 이번에는 보법이다!”


막대기를 품에 갈무리한 두윤이는 땅바닥을 내려다봤다. 주변에 돌멩이가 있는지 잘 살피고.


“무영보법 나려타곤!”


엉거주춤한 자세에서 갑자기 뒹굴뒹굴 땅바닥을 구르기 시작하는 두윤이, 구르는 동작에서 왠지 모를 절도와 품위가 묻어나는데. 이미 수백 번에 걸쳐 땅바닥을 구른 연습의 결과물이다. 옷에 흙먼지가 가득 묻고, 두윤이는 인상을 찡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 나려타곤은 어렵구나. 호랑이가 달려들면 제대로 피할 수 있을지 걱정이야. 게다가 언제까지 피하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 반격도 못 할 테니...”


당연한 말씀이다. 간질 환자처럼 땅바닥을 뒹굴뒹굴하면 어떻게 서 있는 상대에게 반격을 한단 말인가. 어지러워 비틀거리지나 않으면 다행일 터.


“아무리 잘 굴러도 만약 호랑이가 위에서 덮치면 꼼짝없이 당할 거야.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앗! 그렇구나.”


두윤이는 막대기를 움켜쥐고 자세를 취했다.


“차압! 나려타곤!”


민망한 소리를 외치며 두윤이는 재빨리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러다 막 등이 땅바닥에 떨어질 찰나, 번개같이 들고 있던 막대기를 휘둘렀다.


“와하핫 됐다, 됐어!”


뭐가 되었냐면.


“그래, 이거야! 나려타곤을 하다가 갑자기 횡소천군이나 독사출동을 펼치는 거야. 호랑이는 내가 이럴 줄 꿈에도 모르겠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막대기를 움켜잡던 두윤이는 이내 침울해졌다.


“그런데 호랑이가 피해버리면 어떡하지?”


난데없이 지극히 당연한 생각을 한 두윤이, 이내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맞아. 그렇다면, 우선 도망가는 게 상책이야. 그래! 나려타곤을 한쪽으로만 시전 해보자.”


사방을 뒤집어엎으며 정신없이 뒹굴뒹굴하던 기존의 자세를 떠나, 한 방향으로 뒹굴뒹굴할 상상을 했는데.


“간다. 한쪽 방향 구르기!”


‘뒹굴뒹굴, 쿵!’


빠른 속도로 굴러가다가 결국, 앞쪽 커다란 바위에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다.


“아이고 머리야!”


머리를 싸쥐며 아파하던 두윤이는 이내 뭔가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생각보다 오두막에서 멀리 굴러온 것이다.


“하하핫! 그렇구나. 한쪽으로 구르면 상대가 따라잡지 못할 만큼 빠르구나. 그런데 너무 어지럽고 바위에 부딪힐 수도 있으니 꼭 필요한 상황에서만 써야겠어.”


어느새 걸치고 있던 옷은 여기저기 다 해졌다. 매일 맨바닥에서 나려타곤을 연습했기에 옷 꼴이 그 모양이었지만, 얼굴에서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저녁이 되자, 두윤이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드러눕고 싶은데, 할아버지의 잔소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글공부를 게을리하면 혼날 줄 알아! 글을 읽기 전에 심결을 외우는 것도 잊지 말고.’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두윤이는 입을 삐죽이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동안 수없이 외웠던 심결이다. 심결만큼은 절대 까먹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심결대로 숨쉬기 운동을 하다 보면 뭔가 책이 더 잘 읽히는 것 같았다. 숨쉬기 운동을 끝낸 후, 책을 집어 들었는데 이번 건 제법 묵직하다.


“태극혜검 후삼식 태극만리라... 왜 이렇게 두꺼워!”


아무렇게나 책장을 넘기는 두윤이. 지금 이 모습을 무림인들이 보았다면 놀라 입에 거품을 물었을 것이다. 구파일방 중 소림 다음으로 강대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무당파. 과거 오늘의 무당파를 있게 한 장본인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태극혜검의 창시자인 무혜상인(武慧上人)이다.


태극혜검은 무당파의 장문인과 일대 제자만이 익힐 수 있는 절대무비의 검초다. 그리고 지금 책상 위에 놓인 고서는 무당파가 백여 년 전 변란으로 읽어버린 태극혜검의 후반부 삼식이었던 것이다. 수많은 도인과 제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는 검식이었으니, 무당파는 전반부 삼식만으로도 당당히 구파일방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아유 어려워. 이게 뭔 소리야.”


두윤이는 태극혜검을 머리 뒤로 던져버리고 다음 책을 집어 들었다. 책 첫 장에 부처님이 요상한 자세를 취하고 계신다. 그 밑으로 광 할아버지가 적은 주석이 친절하게 달려 있다.


“악을 억누르고자 여기 심득을 남기노니, 부디 이것을 행하여 선을 지킬지어다. 금강보리달마신공... 뭐냐 이건, 더 어렵잖아!”


책이 방 한구석으로 처박혀 버린다. 이 또한 소림의 제자들이 보았다면 대성통곡할 일이었으니, 수십 년 면벽 수련을 마친 고승조차 미치고 팔짝 뛰었을 것이다. 중원 무림의 총 본산 소림사, 천년의 유구한 세월 속에서 수많은 무공이 존재했지만, 가장 빼어난 것을 꼽으라면 단 둘뿐이다.


선종(禪宗)의 시조인 달마대사는 달마검법과 더불어 달마신공을 남겼는데, 그중 하나가 금강보리달마신공이다. 이는 공헌 된 최강의 내공심법임과 동시에 종국에는 도검이 불침한다는 금강불괴지체에 이를 수 있음이니. 통탄스럽게도 소림은 백오십 년 전, 이 신공을 분실하고 말았다.


그 외에 많은 책이 있다.


“그러니까 이게 다 내공심법이구나.”


책장이 ‘휘리릭’ 넘어가 버린다.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설마 혼자 써먹으려고 그런 건 아니겠지?”


답답한 마음에 두윤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꽃향기가 가득한 저녁 봄바람이 무척 상쾌하다. 고요한 밤,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정겹다.


“그게 아니라면 상상력이 부족해서 일 거야.”


이번에는 내공 수련이다. 두윤이는 할아버지가 알려준 대로 다리를 모아 가부좌를 틀었다.


‘너처럼 그렇게 아무렇게나 앉으면 안 된다. 바른 자세로 호흡을 해야 아랫배의 단전에 기를 모을 수 있다. 어허! 좀 더 다리를 모아야지.’


“아이참, 왜 이렇게 불편한 거야.”


두윤이는 홀라당 다리를 펴고 앉았다. 할아버지가 봤다면 전날처럼 노발대발했겠지만, 다행히 곁에는 아무도 없었으니.



어느덧 하늘에는 새벽 별이 반짝인다. 두윤이는 숨을 몰아쉬다 문득 몸이 한없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앉아서 숨을 쉬는 시간도 점점 길어져 간다.


“참 신기해. 잠을 자지 않았는데도 몸이 날아갈 듯 상쾌해.”


답답한 마음에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싱그러운 꽃향기가 마당 가득이다.


“정말 멋진 새벽이야. 할아버지가 계셨으면 더 멋졌을 텐데.”


두윤이는 무심코 문 옆에 세워둔 막대기를 집어 들었다. 길게 심호흡을 하며 세상을 향해 수평으로 휘둘렀다.


“앗!”


방금, 무언가 알 수 없는 기운이 손끝으로 빨려 나갔다. 지난겨울 장평 아저씨 앞에서 펼쳤던 횡소천군도 그러했다. 그땐 무심코 넘겼는데, 오늘은 특별하게 느껴졌다. 다시 심호흡을 가다듬고 막대기를 가로로 휘둘렀다. 미약하지만 분명 어떤 기운이 손끝을 간질이며 뻗어 나간다.


“아하, 그러니까 이게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기라 이거지?”


두윤이는 할아버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기는 천지간에 가득한 만물의 근원이다. 항상 순환하고 일정하지 않으며, 모이고 흩어져 변화무쌍하기 짝이 없다. 내공심법이란 이 기운을 쌓아 통제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를 왜 모아야 하지?”


인간이 살아가려면 필연적으로 호흡을 해야 한다. 호흡은 기를 마시는 것, 그 안에는 정제되지 않은 불순물이 가득하다. 결국, 호흡하면 할수록 불순물이 경락과 혈을 막게 된다. 이것은 기의 흐름을 방해해 인간을 쇠하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그렇다고 숨을 쉬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몇몇 천재들에 의해 창안된 것이 내공심법이다. 몸 안의 불순물을 걸러내고 순수한 기를 머금어 단전에 쌓아두는 것이 모든 심법의 기초였는데.


“꼭 기를 단전에 모아야 하는 걸까? 세상에 기가 가득한데 말이야. 그냥 아무 데서 끌어 쓰면 되잖아.”


두윤이는 한 번에 많은 양의 공기를 머금었다. 기는 커녕 숨만 가빠온다.


“그럼 이러면 어떨까?”


다시 막대기를 들고 횡소천군을 시전 했다. 수평으로 그어지는 막대기, 위력은 없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실망하고 있기에는 이 새벽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이 순간, 막대기를 휘두르는 이유는 단지 그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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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무당산은 정말 멋져요 -18 +3 18.06.22 3,432 42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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